〈 172화 〉 황금의 거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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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가 가치가 더 높다…?”
드베릭 왕은 너무나도 달가운 네로멜티아의 이야기에 높게 치솟고 있는 관심을 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금화였으나 우직하게 왕국을 떠받들어 충성을 다하는 신하들이 거센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에 차마 자신의 입으로 금화를 택하기 껄끄러웠던 것이었다.
심지어 신하들의 논리는 백번 지당하고 상식적인 이야기였기에 그 판을 엎기가 더더욱 버거운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네로멜티아가 신하들의 올바른 의견과 정면으로 맞서자 내심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가득 쌓인 금화가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려운 구석을 너무나도 빠삭하게 긁어 주는 네로멜티아의 이야기가 무척 의심스럽기도 하였다.
“모두 잘 생각해 보거라. 현재 드베르그릭이 만족스러울 만큼 자원이 넘치는 것은 아니나, 모자라서 허덕이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 그런데 헤모니겐트에는 많은 것들이 모자란 상황이지.”
“그, 그게 문제이옵니다! 물자와 금화를 맞바꾸게 된다면 헤모니겐트에게만 이득이옵고, 우리 드베르그릭에게는 전혀 득이 될 것이 없지 않사옵니까!”
신하 중 하나가 말 한번 잘 했다는 듯, 네로멜티아의 이야기를 이어 받아 자신들의 논리를 더욱 확실하게 못 박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신하들의 태도가 우습다는 듯, 눈을 감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래다.”
네로멜티아는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뒤를 돌아 드베르그릭의 신하들을 내려다 보았다.
마왕의 제좌를 떠받들던 거대한 석판은 하나의 연단(??)이 되었고, 드워프 왕국의 신하들에게 마왕의 간교한 가르침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드베르그릭은 미래영겁 온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이 멸망한 테라리스의 가운데에서 맥켄지 광산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왕국이 언제 위기를 맞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 그러하지 않나?”
무엇 하나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논리.
그 논리가 추구하는 바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나열된 이야기들만은 분명히 백번 사실이었다.
맑고 아름다운 미성을 지녔음에도 그 한마디 한마디에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마왕의 연설은 논리까지 흠 잡을 데가 없었기에, 드베르그릭의 신하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 연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금화는 화폐다. 그럼 화폐의 가치는 무엇인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비교적 덜 필요한 것과 바꾸는 교환을 위한 약속의 증표이지. 지금 당장은 헤모니겐트가 실용적인 물자를 필요로 하고 있어 거래를 요청하고 있다만, 헤모니겐트에서 지급한 금화를 가지고 후에 닥칠 드베르그릭의 위기에서 헤모니겐트의 도움을 살 수 있다면 정말이지 간편하고 명확한 교환 아닌가.”
드베르그릭의 신하들은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마다 서로에게 의견을 교환하며 술렁이기 시작했고, 이는 신하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인 찬반의 토론이 진행중이란 증거였다.
저울의 추가 점차 기울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대들의 걱정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헤모니겐트의 재건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지. 휴미안과 드래곤 그리고 12신들의 손에 의해 파멸을 맞게 될 수도 있고, 테라리스의 오염을 견디다 못해 백성들이 전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있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현재에 윤택함을 잠시만 포기한다면, 그대들의 손으로 어쩌지 못할 위기가 찾아왔을 때 마왕과 헤모니겐트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드베르그릭의 신하들은 어느덧 저마다의 답을 가지고서 네로멜티아의 연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술렁이던 알현실은 조용해졌고, 네로멜티아의 음성 외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물며 짐이 부활하여 헤모니겐트와 함께 하고 있는데, 재건되는 헤모니겐트가 다시 멸망할 확률이 그리 높아 보이는가? 거기다 그대들 중에 과거의 마왕성에 대해서 아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아는 이들은 짐이 간략하게 호명하더라도 신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녔고, 그 이름의 무게는 끝을 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네로멜티아 본인도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신하들 사이에서의 신용을 바로 세운 것이었다.
심지어 헤모니겐트에 대한 네로멜티아의 보증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고, 신용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의 이름을 모두 나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블랙 나이트 단장, 크로포드 반 에이하르트. 마왕 비서관, 러스테리아 서비 아브노아. 선혈의 여제,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 영생의 마녀, 헤스티니아 위즈위치. 로널드 거트만의 딸, 베아트리스 더 매직 돌. 마왕 친위대 콰르텟, 니콜라스 스트라스버그.”
과거 마왕군의 간부로서 유명했던 이들이 하나씩 호명될 때마다 드베르그릭의 신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과거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던 베아트리스의 경우에는 유명한 이명을 댈 것이 없어 로널드 거트만을 언급해 신뢰를 높였으나, 아는 이들은 아는 모양인지 신하들 중 몇은 다른 신하들에게 베아트리스에 대해서의 설명을 전하는 눈치였다.
그나마 유명한 이명은 ‘킬링 머신’인데 비공식적인 악명에 가까운 데다 베아트리스 본인이 싫어하는 이명이기에 차마 그것을 언급할 수는 없었다.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던 베아트리스를 빼놓고서는 대부분의 신하들이 호명되는 이들을 모두 알고 있는 듯, 이름이 하나씩 호명될 때마다 술렁임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언급한 이들 모두가 생존해 있었고, 현재 마왕성의 일원으로 합류한 상태다. 거기다 이들에 못지 않은 신임 간부들도 있지. 그 예가 바로 지금 내 곁에서 호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넬라넬라다. 오크군 공병대장의 자리에서 마왕성의 재건을 총괄하고 있으면서도, 그녀 본인의 무력은 오크군 최강의 검이란 칭호를 가지고 있을 정도지. 현재 마왕성은 기존의 생존 세력인 데모니안들 외에도 오크와 고블린 그리고 오우거의 세력이 합류한 상태다.”
앞서 언급된 간부들은 하나하나가 가벼이 볼 수 없는 천재지변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단신으로 맥켄지 시티의 모든 드워프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는 존재들인 것이었다.
신하들은 더 이상 헤모니겐트를 낮잡아 볼 수 없었다.
마왕 본인도 마음만 먹는다면 멸망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존재였으나, 그녀의 휘하에 간부들 또한 걸어다니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대부분 건재하다는 사실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휴미안의 나라를 전화(戰火)로 태워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12신들과 드래곤은커녕 휴미안의 일개 전초기지 병력조차 어쩌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숨죽여 지냈던 드워프들이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군사력인 셈이었다.
그러나 무력만 강하다고 해서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토록 강대한 힘을 지닌 마왕이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않고 조용히 국가를 재건하고 있다는 건, 국가를 충분히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생존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드베르그릭의 신하들은 바보가 아니었고, 오히려 영민한 편이었기에 네로멜티아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너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것이었다.
지켜야 할 백성이 있기에 마왕성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간부들이 대부분 생존해 합류했음에도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고, 백성들의 안정된 생활과 안전한 터전을 위해 헤모니겐트를 재건하고자 하는 것이 틀림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재건이 진행 중인 헤모니겐트조차도 허울 뿐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수의 인구가 모여서 이룰 수 있는 민중의 힘.
국가의 모든 운영을 빠짐 없이 도맡을 수 있고.
국가의 모든 물자를 정체 없이 순환시키며.
국가의 모든 구성을 빈틈 없이 번영시킬 수 있는 것.
아무리 유능한 자들이 모이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소수가 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회의 존속에 얽힌 모든 구성 요소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인구가 존재해야만 번듯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다수의 힘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라도 국가에서 소비되는 의류의 모든 분량을 홀로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바느질을 할 줄 아는 평범한 여성 일천 명이 모인다면 능히 가능한 일.
그것이 민중의 힘이었고, 국가에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헤모니겐트에는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내 더 할말은 없다만, 이거 하나는 알아 두도록. 헤모니겐트는 반드시 재건에 성공할 것이다. 천 년 전보다도 더욱 찬란한 모습으로 재건될 것이다.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그리 만들 것이다!”
그토록 의견이 분분했던 드베르그릭의 신하들 사이에서 더는 부정적인 의견이 들려오지 않았다.
행여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신하들이 있을 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전혀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었다.
대세는 결국 마왕의 연설에 물들어 긍정을 표하는 신하들에게로 기운 셈이었고, 나아가 드베릭 왕은 자신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까 싶어 은근한 화색이 돌고 있었다.
무려 마왕이라는 존재가 친히 자신의 이름을 걸어 가며 맹세를 하는데 신뢰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었다.
마왕은 헤모니겐트의 재건에 이름을 걸었을 뿐, 그에 연결하여 이야기하는 드베르그릭의 이득에 관해서는 그 약속이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화폐가 얽힌 거래라는 것은 결국 양측이 동의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것.
명확한 기준이 명시되지 않은 약속 따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분명 마왕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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