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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71화 (171/216)

〈 171화 〉 드베릭 록 하이젠버그 (5)

* * *

언제든지 거래를 거절할 수 있는 권한과 손해는 없을 거라는 약속.

사실상 네로멜티아는 드베릭 왕에게 칼자루를 쥐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상식적으로 난처하고 위급한 자가 도움을 청해야 할 자에게 주도권을 쥐어 주며 자세를 낮추기 마련이니, 드베릭 왕은 자신의 예상대로 헤모니겐트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라 확신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로멜티아님께서 말씀하시는 조건을 들어 봐야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모자랄 것이 없는 우리 드베르그릭으로써는 그리 내키지 않는 이야기군요……. 흠흠.”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짐짓 내키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한번 더 어필한 드베릭 왕은 그가 보이는 태도와 다르게 이미 네로멜티아와의 거래를 진행하기로 마음 먹은 상황이었다.

사실상 거래의 조율과 승인에 대한 권한을 자신이 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손실이 없이 이득만을 취할 수 있는 이 달콤한 기회를 그가 놓칠 리 없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보물에 대해서 깊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사실상 그녀가 빈털터리라 할지라도 얻어낼 것은 많았다.

근래 맥켄지 광산은 휴미안들에게 대략적인 위치가 발각된 상황이었다.

이는 네로멜티아가 구조한 드워프 조사대가 맥켄지 시티로 복귀하며 증언한 것으로 진실임이 확정되었다.

우선 네로멜티아가 맥켄지 광산의 위치를 특정한 휴미안들을 몰살시켰기에 지금 당장은 안심할 수 있었으나,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다면 헤모니겐트가 필요로 할 물품들을 얼마 쥐어 주고 네로멜티아를 내세운 맥켄지 광산 보호권을 얻는다면 그 역시 크나큰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무려 마왕이 계약에 묶여 맥켄지 광산을 손수 나서서 보호해 주게 된다면 웬만한 공습의 걱정따위는 봄 바람에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선 헤모니겐트에 보호해야 할 백성들은 얼마나 되는지요? 드베르그릭의 자원은 대체적으로 비싸니 그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으시다면 노동 인력을 파견 받는 조건도 괜찮을 듯 합니다.”

“노동 인력이라…….”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은 일을 하러 드베르그릭으로 넘어 오고. 그 값으로 헤모니겐트는 필요한 것을 얻으며, 파견 온 백성들도 깨끗하고 안전한 드베르그릭의 환경 아래 살아갈 수 있으니.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 아니겠습니까? 물론 가치가 있는 현물을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습니다만… 이러한 지불 방법도 있다고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래, 배려 고맙다.”

드베릭 왕이 생각하기로 부수적인 차선책이지만, 네로멜티아에게서 정 받아낼 것이 없다 싶으면 헤모니겐트를 구성한 백성들을 일부 노동 인력으로 데려오는 방법도 있었다.

실상 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네로멜티아의 성격상 불같이 화를 낼 것 같기에, 노동 인력이라 대체 단어를 사용해야 하겠지만 결국 그들의 역할은 노예.

드베릭 국왕 자신이 직접 나서서 드베르그릭의 이름 하에 노예를 판다면 얼마나 많은 금화가 들어올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이었다.

노동 인력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국가간 계약이라는 사슬을 채워 두면 팔려온 자신조차 노예 계약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없는 완벽한 노예가 완성되는 것이고, 명예를 중시하는 드워프들도 그 노예 계약을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로지 드워프밖에 없는 맥켄지 광산에 외모가 출중한 이종족 성노예를 들여온다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었다.

천 년 동안 동족의 이성들만을 보며 살아온 이들에게 새로운 외모를 가진 이종족 성노예는 그들의 혈기를 불타게 만들 아주 좋은 매물이 될 것이었다.

심지어 노예라는 명목이 아니라 국가 간에 성립된 거래의 일환으로 정당한 계약을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러 온 이종족이란 명목으로 데려오는 것이기에 면죄부까지 마련되는 셈이었다.

남창이나 창녀에게는 티끌만큼의 선입견도 없으나 노예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명예를 운운하며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 드워프들이기에, 그들의 납득을 받을 수 있는 합법적 성노예의 존재는 무척이나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굳이 성노예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 역시 좋은 매물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창조하는 일 자체는 즐거워 하지만 그 창조를 위해 재료를 모으거나 농사를 짓는 등 단순 노동은 귀찮아 하는 드워프들의 특성상 일 잘하는 이종족의 노예를 들여 온다면 드워프 백성들의 지지를 높이기 쉬워질 것이었다.

채광, 농경, 운송을 비롯한 단순 노동을 귀찮게 직접 하지 않아도 대신해 줄 노예가 있다면 드워프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것이기에 힘 좋고 솜씨 좋은 노예 역시 인기가 많을 것이었다.

물론 드베릭 왕의 예상대로라면 헤모니겐트의 파견 인력은 피골이 상접한 병자들일 확률이 높으나, 드베르그릭의 여유로운 식량 사정 아래에서라면 금방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기에 오히려 값을 싸게 후려쳐 데려와 좋은 인력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니 좋은 계약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었다.

“후후. 우선 보상에 관해서는 우리의 요청 사항을 듣고 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우선 경청하도록 하지요.”

네로멜티아는 드베릭 왕이 제시한 대략적인 보상안을 별다른 첨언 없이 넘겨 버렸다.

드베릭 왕은 네로멜티아의 그러한 반응을 긍정적인 제스처로 이해했다.

처음 알현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왕궁 복도에 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까지 네로멜티아는 드베릭 왕 본인과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었다.

그토록 녹록지 않은 성격을 지닌 네로멜티아가 드베릭 왕 본인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별다른 반박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고, 네로멜티아가 제시된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수용할 수도 있다 여기는 증거라고 해석한 것이었다.

시작부터 자신에게 유리하고 진행마저 수월한 상황이라 생각하니 드베릭 왕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헤모니겐트는 현재 식량이 조금 모자란 상황이다. 아스타리스 대륙의 생존자들을 조금씩 받아들이다 보니 점차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하더군. 그래서 드베르그릭에 가축들을 조금 사들이고 싶다.”

“흐음… 이거 곤란하군요……. 하필이면 가축이라니……. 드워프들이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는 잘 아시겠지요? 실상 아무리 많은 양을 생산해도 드워프들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동낼 수 있는 것이 육류이기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뒤로 넘기는 드베릭 왕.

그러나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역시 자신은 지혜롭다.

자신이 예상한 바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않는다.

자신이 예상한 대로 헤모니겐트는 식량난을 겪고 있다.

드베릭 왕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우월감에 도취되고 있었다.

상대가 생각하는 바를 훤히 안다면 손바닥 안에 넣고 주무르기는 더더욱 쉬운 일일 테니 일말의 걱정조차 사라지는 느낌에 안락감마저 느끼는 상황이었다.

“식량 생산은 왕국이 유일하게 직접 개입하여 운영하는 일급 관리 대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축은 생산부터 배급, 세금 계산까지 모든 과정을 국가가 면밀히 감독하는 특별 관리 품목이지요. 드베르그릭의 가축과 헤모니겐트의 다른 물자를 교환하느니, 차라리 그 가축을 백성들에게 배급하여 민심을 회복하는 것이 더 이득인 상황입니다만…….”

여전히 거래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의 여건을 깎아 내리는 드베릭 왕.

그는 짐짓 심드렁하고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상황을 일관했으나, 네로멜티아가 전혀 난처해하지 않는 것을 보고 조금은 긴장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네로멜티아가 짓고 있는 여유로운 미소는 믿는 바가 있는 이의 확신에 찬 긍정이었다.

“금화다.”

“… 뭐라고 하셨습니까?”

“짐은 가축 공급의 대가로 드베르그릭에 금화를 지불하겠다.”

드베릭 왕은 이 역시 자신의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위기 의식마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그렇지, 멸망해 버린 아스타리스 대륙의 대지에서 무엇을 일궈낼 수 있었겠어.

그것이 드베릭 왕의 생각이었고, 네로멜티아는 드베릭 왕의 예상대로 개인의 재산을 털어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을 살려낼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안 됩니다, 국왕 전하!! 이미 드베르그릭의 국고에 금화는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옵고! 화폐로써의 가치는 있으나 실용성이 없는 금화를 받고 소중한 식량을 내어 주어선 결코 아니 되옵니다!!”

“현재 가축들은 생산량과 소비량이 거의 동일한 상황이옵니다! 충분한 배급량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젠장…!!’

드베릭 왕은 짐짓 구미가 당기지 않는 듯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금화가 탐이 나서 눈이 벌게질 지경이었다.

드베릭 왕이 유일하게 집착을 보일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 황금.

그러나 왕국에 유독 충성을 보이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올바른 신하들이 입바른 소리를 해대며 드베릭 왕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짐짓 내키지 않는 척을 하고 있었기에, 드베릭 왕이 이제 와서 자신의 태도를 번복하고 금화를 받겠다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인 상황이었다.

“후후후후.”

“…?”

드베릭 왕이 체면을 버리고 자신의 태도를 번복할지 눈물을 머금고 금화를 포기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 상황에서, 네로멜티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왕의 웃음이 알현실의 내부를 조용히 울렸고, 그에 따라 금화 자체를 거부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신하들 역시 마왕에게 시선을 돌리고 주목하며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아니지, 아니야. 오히려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금화가 더욱 가치가 높지 않을까?”

네로멜티아는 드베릭 왕과 신하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여유를 과시했다.

그녀의 말처럼 금화가 더 가치 있는 보상이라면 드베릭 왕의 욕망에 따른 선택이 지지를 받는 셈이 되기에, 드베릭 왕은 네로멜티아의 이야기가 첫마디부터 달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달가운 마음과 다르게 드베릭 왕은 순간 번뜩인 마왕의 선홍빛 안광이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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