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넬라넬라의 비밀스러운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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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움의 눈물정에서 보낸 길었던 연회가 마무리 되었다.
리겐하르트는 연회의 뒷정리를 위해 자신의 주점에 남았고, 거나하게 취해 버린 멜키스는 니콜라스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는 자신들이 묵을 여관을 찾아 심야의 거리로 나섰다.
리겐하르트가 자신의 집에 빈방이 있으니 묵고 가라고 권유했으나, 네로멜티아는 극구 사양하며 여관을 구하기 위해 나선 상황이었다.
인원이 둘이나 되는데 방 하나에서 비좁게 잘 수 있겠냐는 궁색한 핑계를 늘어놓고 주점을 나선 네로멜티아는 리겐하르트의 권유를 그런 이유로 거절한 것이 무색하게 여관의 방을 하나만 잡을 계획이었다.
네로멜티아가 기대하는 바가 명백히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걷는 데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멀쩡한 넬라넬라였으나, 그녀의 안면은 작게나마 홍조를 띠고 있었다.
살짝 기분 좋을 정도의 취기가 오른 탓이었고, 그에 따라 체온 역시 오르는 모양인지 딱히 피부를 맞대지 않아도 넬라넬라에게서 은근한 열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네로멜티아는 그런 넬라넬라의 모습이 더욱 예쁘게 느껴졌다.
발그레해진 안면은 무척이나 귀여웠고, 달아오르기 시작한 체온은 무척이나 농염했다.
기대에 찬 미소를 슬며시 지으며 착용한 전투복으로 인해 훤히 드러난 넬라넬라의 탄탄한 허리에 네로멜티아가 손을 뻗는 순간.
넬라넬라가 눈에 띄는 확연한 반응을 보이며 탄성을 흘린 까닭에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음흉한 손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
“어, 어! 넬라, 왜 그래? 뭐라도 봤어?”
풋풋하고 싱그러운 매력을 자랑하는 넬라넬라의 갈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반짝이며 맥켄지 시티의 야경을 담고 있었다.
인공 태양이 사라진 뒤 어둠이 찾아와야 마땅할 심야의 시각에 드워프의 도시는 오히려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며 화려한 낭만을 자랑하고 있었다.
“날이 저문 뒤, 노움의 눈물정을 찾아갈 때도 보긴 했지만… 다시 봐도 이 야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후후. 그래? 넬라는 참 감성이 풍부한 아이란 말이야.”
“폐, 폐하…….”
자신을 귀여워하기 시작한 네로멜티아의 시선을 의식해버린 넬라넬라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네로멜티아는 그 모습 역시 귀여워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으나, 딱히 넬라넬라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대화를 이어나가며 넬라넬라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어떤 게 특히 예쁜 거 같아?”
네로멜티아는 그저 한마디의 화두를 던졌을 뿐이었으나, 마왕의 언행 하나하나 모든 것에 진심인 넬라넬라는 정직하면서도 성심껏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은근한 바이올렛 색상의 조명이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주점이나… 한낮의 태양에서 뻗어 나온 것 같은 백색광이 눈부신 의복 상점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푸른빛의 긴 조명이 한데 늘어서 있는 모양의 주점 역시 동화 속에 나오던 심해를 보는 듯 몽환적인 느낌이라 무척 감탄스럽습니다.”
주로 식당이나 주점이 많았으나, 넬라넬라는 그중에서도 자신이 솔직하게 예쁘다고 생각하는 가게들을 하나씩 짚고 있었다.
그러던 넬라넬라가 마지막으로 짚은 가게는 지금까지 고른 가게들에 비해서도 단연코 가장 화려한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넬라넬라는 그 가게를 바라보며 눈을 더욱 빛내기 시작했다.
“무슨 가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기는 특히 더 아름답습니다. 붉은색에 보라색, 녹색… 마치 페어리의 연회를 보는 것 같이 화려하면서도…”
“흠흠.”
순간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며 넬라넬라의 말을 슬쩍 끊어낸 네로멜티아.
넬라넬라는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저지른 것인지 싶어 걱정이 가득한 눈을 하고서 네로멜티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깊은 걱정에 잠기기 시작하자, 부득이하게 자신이 나선 이유를 급히 설명하려 했으나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 조금 돌려서 말하기를 택했다.
“넬라. 저기는 그런 데야.”
“폐하…?”
“음… 으음…….”
이 순진한 오크 아가씨는 은근한 눈짓만으로는 결코 의미를 알아듣지 못할 모양이라 네로멜티아는 더욱 난처해졌다.
이럴 거 같았으면 차라리 내색하지 말고 그냥 넘길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간절하게 들기 시작했으나, 자신이 지목한 가게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분명 좋지 못한 반응을 보일 것이 틀림없을 넬라넬라이기에 네로멜티아는 그녀가 언젠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의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진실을 알려줄 의무를 느꼈다.
그렇기에 깊은 고민에 시름하던 마왕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넬라. 저기는 여성의 찬연한 봄을 파는 곳이야.”
“봄… 이라니… 계절 말씀이십니까…?”
“으으으음…….”
이성은 정공법을 택하겠다 마음 먹었는데 혀끝에서는 여전히 에둘러 설명하는 말이 나와 버렸다.
그러나 봄을 판다는 것은 꽤 유명한 은어였기에 어느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의 생각보다 더욱 순진한 아가씨였다.
넬라넬라의 그런 순진무구하고 청초한 모습이 네로멜티아는 죽을 정도로 사랑스러웠으나, 지금은 자신의 애정을 표출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그 터질 듯한 애정을 자신의 마음 속으로 있는 힘껏 꾹꾹 눌러 담았다.
“이게… 은어인데 말이야……. 봄에는 꽃이 만개하지?”
“그, 그렇습니다.”
“여성의 미모를 칭찬할 때는 꽃에 빗대기도 하고. 그렇지? 오늘만 해도 니콜라스가 넬라를 카디널 로즈에 빗대서 칭찬해 줬잖아.”
“아… 으음……. 아아아아아아아아…!!!!!”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고 나서야 잠시의 고민 끝에 비로소 해답을 찾고 비명을 질러 버린 넬라넬라.
사실 이 정도까지 설명해 줬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수준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해 준 편이었기에, 아무리 순진한 넬라넬라라 할지라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파는 가게.
온갖 화려한 색상의 조명들로 한껏 꾸며진 그 가게는 퇴폐적인 향락업소였다.
창녀들이 자신의 몸을 팔기 위해 손님의 술시중을 들고 침실로 안내하기까지 하는 윤락업소.
단 한 번도 본 경험이 없었기에 눈치 채지 못했을 뿐, 매춘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진 않았기에 넬라넬라는 그 의미를 깨닫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서 자신의 안면을 양손으로 가려버리기까지 했다.
“괜찮아, 넬라! 부끄러워 할 거 없어! 저런 가게는 원래 어느 도시에나 있고, 심지어 세금만 낸다면 대부분 합법이야! 의외로 정직한 가게라구! 나쁘고 수치스러운 게 아니야!”
다급히 넬라넬라를 달래주기 시작한 네로멜티아는 그녀에게 부끄러운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일색이었기에, 그녀가 최대한 이 상황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려 했다.
테라리스에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종족들 대부분은 매춘에 대해 금기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많았고, 오히려 도덕적인 관념에서도 전혀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종족이 더 많았다.
매춘을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여기는 종족은 엘프나 머메이드 정도의 자존심이 과도하게 높은 종족들 뿐이었고, 대부분은 자신이 팔 수 있는 노동력을 제공할 뿐인 접객업 정도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네로멜티아는 당연하게도 넬라넬라에게 걱정이 들었던 것이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전문가들이니까요……. 단지… 조금 부끄러웠을 뿐입니다…….”
네로멜티아는 조금 부끄러웠던 수준이 아니었던 거 같다고 생각했으나, 꺼내지 못할 말 따위는 주저없이 삼켜버렸다.
그저 넬라넬라에게 다소 안심했을 뿐이었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닌 이상 어떤 존재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네로멜티아였고, 한 사람만을 사랑하지 못한단 이유로 순결하지 못하다며 창녀를 손가락질하는 이들과 넬라넬라가 같은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면 피치 못하게 실망할 뻔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오히려 몸을 판다고 해서 손가락질 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네로멜티아로서는 자신이 애정을 아끼지 않는 넬라넬라가 그런 편협한 사상을 지니길 원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넬라넬라의 답변은 네로멜티아에게 큰 안도감을 전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안도감에 잠시 시야가 흐려졌었던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가게의 앞에 나와 호객을 하는 창녀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네로멜티아는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하룻밤에 1실버 35코퍼’라느니 ‘식사 제공시 80코퍼 추가’라느니의 안내를 하는 여관 주인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서 금화 한 닢을 던진 뒤 열쇠를 낚아채 빈방으로 넬라넬라를 데려가기에 급했다.
그리고 본래 목욕을 하려면 여관 주인에게 추가금을 지불하고 목욕물을 받아내야 했지만, 네로멜티아에게 목욕물 준비는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도 증기가 모락모락 솟아나는 뜨거운 물이 빈 욕조에 가득 받아졌다.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와 함께 보낼 밤이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설레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의 목욕부터 시작할 생각이었기에, 욕조의 앞으로 넬라넬라를 천천히 이끌었으나 넬라넬라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바람에 따로 목욕을 해야만 했다.
“폐하께서 먼저 씻으시면 저는 그 다음에 씻겠습니다.”
결국 함께 하는 목욕을 포기해야 한다면 씻는 건 빨리 끝내고 속히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 생각한 네로멜티아가 폐하가 먼저라며 입욕을 거부하는 넬라넬라를 반 억지로 먼저 욕조에 밀어 넣고는 자신은 욕실 밖에서 마법으로 순식간에 씻어 버렸다.
그리고 목욕을 마친 넬라넬라가 욕실에서 나오자, 이미 침대 위에 누워 모든 준비를 끝낸 네로멜티아는 두 팔을 벌려 넬라넬라를 환영했다.
“어서와! 넬라!”
그러나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에게 안기지 않았다.
오늘은 얌전히 자고 싶다며 돌아 누워버린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이 뭔가 잘못하진 않았는지 필사적으로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늘 자신에게 애정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의 손길을 단 한 번도 거부한 적 없이 오히려 황홀감을 느끼며 달가워하기까지 한 넬라넬라가 자신의 권유를 거절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뚜렷하게 확신이 설만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무렵.
넬라넬라는 고개를 돌려 네로멜티아의 안색을 살폈다.
편히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네로멜티아.
조금 슬픈 기색으로 끙끙대며 잠든 모습이 넬라넬라가 권유를 거절하고 단호하게 돌아 누워 잠을 청했기 때문에 든 상실감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넬라넬라는 조금 안쓰럽고 씁쓸한 눈빛을 하고서 네로멜티아를 내려다 보았고, 이내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옷을 챙겨 입고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명백히 네로멜티아 몰래 외출을 시도하는 움직임이었고, 넬라넬라가 이 순간의 외출에 대해 네로멜티아에게 기약한 바는 당연히 없는 것이었다.
스륵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들며 일어났다.
애초에 네로멜티아는 잠에 빠져있지 않았고, 자는 척을 했을 뿐이었다.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몰래 열고 나간 문을 잠시 바라보았고, 어떠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내 마력을 움직여 마법 하나를 시전했다.
원거리 음성 전달 마법인 ‘메시지(Message)’였다.
“카디스. 지금부터 내가 불러주는 좌표로 와 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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