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63화 (163/216)

〈 163화 〉 노움의 눈물정 (4)

* * *

깊어가는 오해를 멈춰달라는 무언의 요청을 받고서도 오해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네로멜티아.

네로멜티아의 노골적인 부추김에 리겐하르트는 오해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잘못된 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불쌍하고 가엾다! 맥주를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다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이야!! 맥주는 노동의 열기와 땀을 달래주는 생명수가 아니냐!!!”

고블린의 머리 크기보다도 더 큰 주먹을 불끈 쥐고서 부들부들 떨어대며 격앙된 목소리를 한껏 높이는 리겐하르트.

그는 이마에 핏대가 서고 안면이 붉게 물들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넬라넬라는 상황을 바로잡으려 애를 썼다.

“술이 없는 게 아닙니다…! 주로 블랙베리나 플럼, 와일드 그레이프 따위의 과실을 이용한 술을 마십니다!”

귀한 곡식을 술로 빚지 못하는 대신 카보니 숲 여기저기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식량으로서 큰 가치를 지닐 수 없는 과실들을 이용해 술을 빚었던 오크와 오우거.

그들 나름대로 정착시킨 삶의 방식이며, 그들의 여건에서 고를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거기다 과실주의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과실주 특유의 숙취가 조금 있긴 하지만 애초에 신체적으로 강인한 종족인 오크와 오우거에게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는 특성이었고, 더군다나 조금 더 신경 써서 양조한다면 발효 방식에 따라 숙취를 유발하는 물질은 충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맥주에 대해 각별한 기호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오크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문제는 리겐하르트가 넬라넬라의 설명을 납득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소, 아가씨. 그동안 맥주를 즐기지 못했던 것은 망해버린 세상의 탓이지 오크들의 탓은 결코 아닐 것이오!”

일말의 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리겐하르트의 태도는 철벽같이 완고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현실을 이해해줄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 넬라넬라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때 네로멜티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앞세워 치고 들어왔다.

“지금 마왕성에는 맥주를 즐길 이들이 많아. 주점이라도 하나 생긴다면 고블린들은 노래하며 춤을 출 것이고, 오우거들은 술과 고기를 남김없이 먹어 치울 거야. 데모니안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웃을 것이고, 오크들은 노동으로 피로해진 심신을 달랠 수 있겠지. 주점은 무척 떠들썩하고 낭만이 가득할 거야.”

네로멜티아의 차분한 음성은 리겐하르트의 마음 속 이상적인 주점의 풍경을 그대로 연상시키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들려주는 듯, 그 모든 장면들이 선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리겐하르트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파악한 네로멜티아는 나직한 음성으로 이야기에 쐐기를 박았다.

“아쉽게도 현재 마왕성은 건설 단계라… 주점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백성들을 위해서 그런 낭만적인 주점을 지어 주려고 해도 다들 주점을 운영한 경험이 전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야?”

잔뜩 흥분해 있었던 리겐하르트의 기세가 어쩐지 조금 수그러들었다.

타오르는 눈빛에 담긴 열정의 기운은 조금 가라앉았고, 그는 시선을 낮춰 자신 앞에 놓인 맥주잔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의 적막이 이어졌다.

리겐하르트가 복잡한 상념에 빠져 있다는 증거였고,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침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군주는 사자와 같다고 논해지곤 하는데… 너는 여전히 여우로구나. 잔꾀가 많아.”

“후후후.”

“내가 너의 속셈을 눈치 챌 거라는 점도 알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너의 꾀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대놓고 이야기하는 거겠지…….”

“그 말 대로야.”

자신의 앞에 놓인 맥주를 내려다보던 리겐하르트는 고개를 들어 넬라넬라를 바라보았다.

올곧고 선명한 눈빛이 넬라넬라의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다.

마치 마음 속을 꿰뚫어 보고자 깊은 내면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은 눈빛.

한 드워프의 커다란 눈은 진심을 가득 머금고 확고한 의지를 전해오고 있었다.

“넬라넬라 아가씨. 나를 위해서 마왕성에 멋진 주점 하나를 마련해 줄 수 있겠소?”

“… 물론입니다. 폐하의 친우이신 분께서 주점을 세우신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됐소. 오늘 부로 이 주점은 문을 닫고, 마왕성에 새 주점을 열도록 하지.”

굉장히 파격적인 결단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리겐하르트.

그는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던 자신의 맥주를 비로소 힘껏 들이켰다.

마음의 정리를 마치고 남은 감정을 시원한 에일 맥주 한 잔에 쓸어 넘기는 것 같았다.

“이제 됐냐! 언제나 남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건 여전하구나!”

“후후후. 네 머리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올라 타면 편안할 거 같긴 해.”

푸득!

리겐하르트는 자신의 커다란 손에 꼭 맞는 크기의 커다란 포크로 커다란 소시지 하나를 쿡 찔러 들었다.

탄력이 넘치는 소시지가 포크에 꿰뚫리자 맛깔스러운 소리를 내며 한가득 육즙을 뿜어냈다.

겉이 약간 그을렸을 정도로 바삭하게 구워진 소시지는 내부에 꽉찬 고기가 탱탱하게 탄력이 넘쳤고 장작불 특유의 매캐한 향기마저 감돌라 무척 맛있어 보였다.

보기만 해도 기름지고 감칠맛이 넘칠 것 같은 소시지가 리겐하르트의 커다란 입 안으로 사라졌고, 수염이 가득한 그의 턱이 우물거릴 때마다 터져나오는 육즙의 소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허기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호쾌하게 안주 하나를 삼켜낸 리겐하르트는 자신의 잔에 재차 맥주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오냐! 정말로 그런 좋은 주점을 가질 수 있다면야, 너를 태우고 마왕성을 한바퀴 돌아줄 수도 있다!”

어느새 성사되어 버린 리겐하르트의 이주.

수천 년을 살아온 자신의 국가를 놓고 타지에 이주한다는 선택을 조용하면서도 과감하게 정리해 버린 리겐하르트에게 넬라넬라는 경의를 느꼈다.

그만큼 그의 열정에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선뜻 모험을 할 수 있는 행동력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는 넬라넬라를 발견한 리겐하르트는 고개를 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나한테 그리 놀랄 것 없소, 아가씨.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선택한 것 뿐이지. 설마 내가 진짜로 오크들이 맥주가 없어 고통받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겠소? 나는 모르는 종족이 없는 경험 많은 노인이오. 앞서 이야기 한 것들은 그저 장난을 친 것 뿐이지.”

“그렇… 습니까…?”

“내 장난에 어울리면서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니 나도 진심으로 응했을 뿐.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라오.”

진중해진 분위기의 리겐하르트는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그저 목소리가 나직해졌을 뿐이지만, 그 음성에 실린 무게는 상대의 정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리겐하르트는 조용히 질문 하나를 던졌다.

“아가씨. 네로멜티아가 가진 무기 중에 단연 최강이 무엇인지 아시오?”

넬라넬라는 갑작스러운 리겐하르트의 질문에 대답은커녕 오히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네로멜티아가 가진 무기라는 건 목격한 적도 없을뿐더러, 이전에 있었던 휴미안과의 전투에 대해서도 네로멜티아는 마법만을 사용해 그들을 제압했었다.

헤스티니아를 응징했을 때도 맨손으로 차원을 찢어 손가락을 튕겨 벌을 주었을 뿐이었다.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법에 대해서는 카디널 디재스터를 따라갈 것이 없고… 나이트 로즈, 어비스 가드, 레이 스팅어… 전설이라 불리는 무기들이 몇 가지 있소만. 그 중에서 물리적인 전투를 행한다면 ‘데우스 엔시스(Deus Ensis)’가 단연 최강이오.”

“레이 스팅어는 역사서에 언급되어 있어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과거 레비아탄이 폐하께 화친의 증표로 선물한 오리칼쿰들을 모아 만든 검이라고……. 그 외에는… 부끄럽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검날 길이 200멘톨. 전체 길이 260멘톨에 가로의 너비 50멘톨. 내부에 스타더스트(StarDust) 뼈대를 심은 순수 아다만트(Adamant)제 대검. 그게 데우스 엔시스요.”

“세상에…….”

아다만트는 테라리스의 수많은 광물 중 단연 최강의 경도와 내구도를 자랑하는 신화 속의 금속이었다.

외계에서 날아든 운석에 간혹 가다 섞여 있다는 스타더스트도 전설적인 광물이었으나 아다만트에 견주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단단함이라는 개념 그 자체라 불릴 정도로 그 위명은 대단한 것이었고, 용광로에서조차 녹여 내지 못할 정도로 상식 밖의 광물인 것이었다.

그 위명에 걸맞게 아다만트는 희소성이 극에 달해 있었고, 드워프들도 쉽게 다다르지 못하는 깊은 지하에서 가까스로 밀알 만큼씩을 얻을 수 있었으니 테라리스의 핵이 아다만트로 이루어진 게 아니냐는 말까지 떠돌 정도였다.

그런 아다만트를 그렇게나 많이 모을 수 있었다니.

심지어 인류가 만든 용광로로는 원석을 녹이는 일 조차 불가능한 아다만트로 그토록 거대한 대검을 만들다니.

넬라넬라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데우스 엔시스를 만들어낸 게 바로 나. 리겐하르트 아르비미르지.”

“…!!”

“루이나의 여신이 이토록 대단한 대장장이를 부른다면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아니겠소? 그런 이유로 나에 대한 대우는 소홀하지 않을 것이니 전혀 걱정할 것이 없고. 네로멜티아의 성격상 부탁을 하면 했지 억지로 작업을 시킬 일은 없을 테니 나는 자유로울 것이오. 맞지?”

리겐하르트는 그 짧은 순간에 모든 상황과 입지를 고려해 계산을 마친 것이었다.

나름대로 굳게 믿을 수 있는 요소가 있기에 수천 년을 쌓아온 자신의 거점을 모두 버리고 마왕성에 합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리겐하르트는 넬라넬라에게 들려주던 설명 마지막에 네로멜티아를 바라보며 동의를 물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내린 판단이 정확하냐는 질문이었다.

“응. 맞아. 네가 해머를 들지 않겠다고 해도 나는 아무 상관도 안 할거야. 다만… 덧붙이자면 나는 내 벗을 가까이 두고 싶었을 뿐이지, 네게 장인으로서의 일을 기대하고 권유하는 건 아니라는 거?”

“껄껄껄껄!!! 그거야 말로 최고로구만!!! 좋아!!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이야!! 크하하하하!!!”

언제나 자신의 능력과 위명만을 바라는 이들과 다르게 네로멜티아는 순수히 관계를 소중히 하는 존재였다.

현재야 휴미안의 마수를 피해 드워프들 전체가 숨어 있는 입장이라 무기를 쓸 일이 없으니 장인으로서는 놀고 있는 상황이지만, 천 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 상황이 그에게서 여유를 빼앗기 일쑤였다.

드워프 왕국 최고의 장인에게 쉴 틈이란 존재하기 힘든 것이었기에, 노움의 눈물정을 어떻게든 운영해 보려고 해도 진심을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며칠 문을 열었다가도 장기 휴업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때로는 갑작스럽게 주점의 문을 닫고 대장간에 틀어박혀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 명령을 내린 국왕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누군가를 원망한 적은 없었지만, 노움의 눈물정을 운영한 세월 만큼 그의 한숨이 쌓여온 것은 사실이었다.

멸망 이후에는 왕국 자체가 대외활동이 없으니 그 역시 여유가 많이 생겨 종일 주점과 양조장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있었으나, 한정된 물자로 국가가 운영되는 상황이라 손님 자체가 별로 없었다.

하루에 탁자 두셋 정도가 차면 많이 차는 수준이었고, 그나마 단 한 명의 손님조차 없는 날도 많았었다.

그런 와중에 마왕이 순수한 마음으로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 주고 많은 손님까지 예정된 장소에 정착할 수 있다니 리겐하르트가 기쁨에 취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끼이이익

리겐하르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맥주를 치켜든 사이, 요란한 경첩의 마찰음과 함께 누군가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 그다지 놀라울 건 없었지만, 리겐하르트가 그 방문자의 정체를 극구 밝히지 않은 탓에 무척이나 궁금했던 상황이었으니 대화는 깔끔하게 중단되었고 두 여성의 이목이 주점의 정문으로 집중되었다.

“아이고! 마왕님! 우리 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한 명은 낮에 만나 보았기에 넬라넬라도 익히 알고 있는 드워프인 멜키스 드루모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시커먼 갑옷이었다.

키가 작은 종족인 드워프가 함께 서 있어서 더욱 거대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긴 했으나, 애초에 그 갑옷은 넬라넬라조차도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흑철의 갑옷 내부에서 의외의 미성(美?)이 울려 나왔다.

“주군. 천 년만에 뵙습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