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노움의 눈물정 (1)
* * *
투박하지만 따스한 정성이 느껴지는 가게.
기본적으로 2층에 투숙할 수 있는 객실이 구성되어 있어 여관의 형태를 띠고는 있으나, 여행자가 있을 턱이 없는 세상이기도 하고 가게 자체가 술과 고기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 뿐이기에 가게의 이름처럼 주점이라고 봐야 하는 장소였다.
끼이이익
정문으로써 존재하던 낡아빠진 여닫이문을 밀자 경첩이 가늘고 높은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문 자체는 마르거나 바스러진 부분이 없어 꾸준히 관리되고 있다는 증명을 하고 있었으나, 오랜 시간 문의 무게를 지탱해왔던 경첩은 내부가 조금 휘었는지 작은 마찰음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기름칠이 잘 되어 있어 번들거리고 있었음에도 소리가 날 정도였는데, 경첩의 수리 따위는 드워프에게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란 걸 생각해 본다면 그저 일부러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목재로 이루어진 문은 꾸준히 바니쉬를 칠하고 흠이 난 부분을 갈아내어 관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경첩은 전혀 고치지 않은 채 기름만 덕지덕지 칠해둔 부분이 무척 모순된 모습이었다.
무엇이라 뚜렷하게 정의할 수 없는 드워프들만의 특색이 확고히 녹아 있는 느낌이었다.
“으하하하하하!!! 네로멜티아!!!!!”
“리겐하르트!!! 아직 정정하네!!!”
네로멜티아가 문을 열자마자 가게 밖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녀를 반겼다.
가게의 내부는 손님용 원탁이 열댓정도 놓여 있었고, 주방의 앞을 빙 둘러 에워싼 카운터가 존재했다.
카운터는 네로멜티아의 허리 아래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낮았는데, 키가 작은 종족인 드워프에게 맞춰진 크기로 보였다.
그리고 그 카운터의 너머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 드워프 하나가 네로멜티아를 힘껏 반기는 것이었다.
“멜키스 놈에게 이야기는 다 들었다! 열 번 만에 간신히 부활했으면 바로 찾아 왔어야지!! 섭섭하잖나!!!”
“나도 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후후후. 그 꼬장꼬장한 성격도 여전하잖아?”
“크허허허허! 너야말로 여전하구만 나한테 그런 말 할 처지냐! 뒤에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는 누구신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는 리겐하르트.
카운터에서 네로멜티아의 앞까지 달려온 리겐하르트는 자신의 묵직한 팔꿈치로 네로멜티아의 허벅지를 은근히 찔러대며 넬라넬라에 대해 물어오는 것이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오크군 공병대장 넬라넬라라고 합니다. 현재 폐하의 휘하에서 마왕성의 재건을 맡고 있습니다.”
“오! 훌륭한 일을 하시는구먼! 그래! 해머를 드는 일이라면 우리 모두 동지 아니겠소!? 으허허허허!! 환영하오!!”
짜악!!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넬라넬라의 직책과 부여받은 임무에 대해 들은 리겐하르트는 급히 화색이 돌았고, 넬라넬라에게 동료 의식을 불태우며 그녀의 등을 한 번 때렸다.
리겐하르트의 시점에서는 그다지 세게 때린 것도 아니었고 순수한 반가움의 표시일 뿐이었으나, 강철의 라운드 실드를 보는 것 같이 두껍고 큼지막한 그의 손이 넬라넬라의 맨살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야!!! 조심하지 못해!!?”
“뭐가 어때서!! 이 아가씨도 적잖이 튼튼해 보이는구먼!! 이 늙어빠진 노인네보다 갑절은 힘이 세겠어!!”
듣는 귀가 아찔해질 정도로 요란하게 울려 퍼진 타격음에 네로멜티아가 기겁하며 리겐하르트를 밀어내고 질책을 가했다.
그러나 리겐하르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 뿐이었다.
강하고 튼튼한 신체를 가진 오크였기에 실제로 리겐하르트의 손바닥이 그리 아프지 않았기도 했고, 자신에게 전해지는 요란하면서도 정겨운 환대가 싫지 않았는지 넬라넬라는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네로멜티아를 안심시켰다.
“폐하.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넬라! 조금이라도 아팠으면 얘기해! 저 수염 죄다 뽑아서 카펫을 짜버릴 거니까!”
“크핫!!! 크하하하하하하!!!! 그거 참 거칠거칠하고 뻣뻣한 카펫이 되겠어!!!”
“웃지마!! 진짜로 할 거니까!!! 내 여자니까 소중하게 대하라고!!!”
“으읏…!”
“크하하하하하하!!!!”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적인 관계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내뱉는 네로멜티아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부끄러움에 안면이 화악 달아오른 넬라넬라.
그녀들의 모습이 리겐하르트에게는 퍽 귀엽게 느껴졌는지 그는 더욱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리고 이내 웃음이 조금 잦아들자 리겐하르트는 너무 웃어서 살짝 새어 나온 눈물을 훔치며 넬라넬라에게 정식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리겐하르트 아르비미르(Rigenhardt Arvimir)라고 하오! 드워프 놈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명장이라 알려져 있고, 대장장이라 자칭하는 놈들은 죄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어떠신가? 이 노인네가 대단하지 않소?”
“후후. 정말 대단하십니다. 드워프 최고의 명장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으흐하하하하하!!! 이 아가씨는 누구와는 다르게 솔직하시구먼!!! 마음에 들어!!! 껄껄껄껄!!!!”
“… 넬라. 이 녀석은 한 번 받아 주면 끝을 모르고 자기 자랑을 늘어 놓으니까 억지로 기분 맞춰줄 필요 없어. 정말이지 겸손이라는 걸 모른다니까?”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빙자한 자화자찬을 늘어 놓는 리겐하르트.
그러나 넬라넬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의 말에 감탄을 해 주었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까지 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넬라넬라의 모습은 무척 예스럽고 단정한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그런 넬라넬라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으나, 하필이면 그녀의 아름다운 경의가 리겐하르트를 향하고 있던 탓에 의미 모를 불만이 조금 차올랐다.
네로멜티아 자신도 스스로의 감정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넬라넬라에 대한 독점욕이었다.
“그러는 네로멜티아 너는 어떠냐!”
“나야 당연히 테라리스 사상 최강의 마왕이지!”
“너도 똑같구만!! 남 말 하고 앉았어!!”
리겐하르트의 자화자찬에 빈정댔던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리겐하르트와 쏙 빼닮은 자화자찬을 똑같이 늘어놓았다.
단순히 이 순간만을 본다면 퍽 우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으나, 문제는 리겐하르트나 네로멜티아가 늘어놓은 자화자찬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리겐하르트는 그가 스스로를 소개한 내용 그대로 드워프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며 드워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고,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 또한 모두 사실이었다.
네로멜티아가 스스로를 칭한 내용 그대로 그녀는 테라리스 역사상 최강의 권능을 가진 마왕이었다.
이런 전설적인 인물들 사이에 껴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넬라넬라는 그들의 드높은 위명과 다르게 소박하기 짝이 없는 현재의 말다툼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후후후. 두 분께서는 사이가 무척 좋으신 것 같습니다.”
“으흠!”
“… 뭐… 그렇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가장 나이가 어린 넬라넬라가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들 사이에서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미소에 단정하고 예스러운 말투.
가볍게 정곡을 찌른 넬라넬라의 한마디가 조금 쑥스러웠던 두 사람은 시선을 돌리며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나저나 재주도 좋다! 어디서 이런 참한 아가씨를 데려왔어! 이 멸망한 세상에서 너도 참 대단하구나!”
“후후. 우리 넬라가 많이 예쁘고 귀엽지. 부러워해도 좋아!”
“뭐… 이 나이 먹고 부럽지는 않고, 그저 헤모니겐트의 레이디 킬러가 건재하구나 싶어 놀라워서 그런다 이 녀석아.”
“미안한데 그런 민감한 얘기는 좀 조심해 줄래?”
리겐하르트가 꾸밈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넬라넬라를 칭찬하자 네로멜티아는 곧장 의기양양해져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리겐하르트가 ‘레이디 킬러’라는 네로멜티아의 별명을 언급하자 네로멜티아의 안색은 차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이내 리겐하르트의 면전에 고개를 들이민 네로멜티아는 냉랭한 눈빛으로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었다.
넬라넬라에게 감추고 싶은 별명이었기에 리겐하르트의 입단속을 시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네로멜티아의 은폐를 위한 행동이 하등 쓸모가 없는 일이란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주변 간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바가 있어 ‘레이디 킬러’라는 별명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리겐하르트에게 절실한 경고를 하고 있었던 네로멜티아는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넬라넬라의 따뜻한 미소를 보지 못했다.
“어흠! 우선 자리에 앉도록 하지. 저기 중앙에 큰 테이블로 가서 앉아 있으면, 술과 음식을 내어 오겠다.”
“많이 성대하게 준비했나 봐? 저렇게 큰 테이블을 쓸 생각인 걸 보면?”
“당연하지! 천 년 만에 만나는 소중한 벗을 두고 아낄 것이 뭐가 있겠나! 그리고 덩치 큰 손님도 하나 오기로 했으니 그만큼 큰 자리가 필요하기도 하고.”
“응? 덩치 큰 손님?”
주점 중앙에 유독 커다란 테이블 하나를 가리키며 자리를 안내한 리겐하르트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카운터 뒤에 자리한 주방으로 향했다.
네로멜티아는 자신과 티격태격 하면서도 성대한 환영 연회를 준비하려 하는 리겐하르트에게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그를 놀렸다.
그러나 리겐하르트는 일말의 쑥스러움 없이 너무나도 당당한 기세를 보이며 네로멜티아의 짓궂은 놀림을 가볍게 흘려버렸다.
그의 태도는 부끄러움 없이 당당했으며, 거짓 없이 솔직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노장의 기백.
오히려 안색이 달라진 것은 네로멜티아였고, 이 사적인 환영 연회에 또 다른 참가자가 있다는 것이 궁금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리겐하르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충 손을 휘적거리며 귀찮다는 듯 주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지금은 알 거 없다! 그 녀석이 누구인지는 직접 보고 확인해!”
주인은 주방으로 사라졌고, 텅 빈 주점에는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적막이 찾아오자 비로소 주점의 내부에 현장감이 느껴졌다.
주점의 중앙에 놓인 벽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이따금씩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랜턴들과 벽난로의 장작불이 만든 따스한 빛은 은은하게 일렁이면서도 넓은 주점의 내부를 화사하게 밝히고 있었다.
카운터 너머의 주방에서는 식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도 하고, 불길이 화르륵 하며 타오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와 정겨움을 주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머뭇거리는 넬라넬라를 이끌고 데려와 먼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넬라넬라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네로멜티아는 일렁이는 벽난로의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지러이 흔들리는 장작불 너머로 지나간 기억들이 문득 아른거렸다.
흘러가는 기억들은 아련했으나 그 순간마다 느낀 감정들은 어제와 같이 확연했다.
네로멜티아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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