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맥켄지 시티 로맨스 (2)
* * *
소의 갈비살에 틈틈이 박힌 지방이 녹아 농후한 육즙과 함께 고기의 윤기를 가득 더하고 있었다.
표면은 바삭하게 구워졌으나 그 표면 위로 흠뻑 배어나오는 지방과 육즙이 맛깔스러운 촉촉함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용암을 가지고 고기를 익히는 일에 사용하다니… 여러모로 놀랍습니다…….”
“으음! 그렇지! 우리 드워프는 남다르지! 실로 호탕한 종족!”
화산도 아닌 데카스트라스 산맥 내부에서 용암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층을 수없이 뚫어 용암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런 굉장한 노력을 들여서 얻어낸 용암을 고기를 굽기 위해 사용하다니 어찌 보면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광산 내에서는 장작으로 사용할 나무를 얻기 힘들어서 그런 거지만…….”
“아아…”
“물론 용암은 넘치도록 흐르고 있는 판국이라 온 도시에 용암을 흘려보내 보급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불이 필요한 대장간부터 평범한 가정집까지 용암이 두루 쓰이고 있으니 그다지 신경 쓸 건 아니야. 국왕 전하께서 지정하신 양만을 살 수 있는 고기가 오히려 더 비싸지 용암은 별거 아니니까 염려하지 말고 먹으라구!”
놀라움과 함께 다소 부담을 느낀 넬라넬라의 안색을 읽은 드워프 상인은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넬라넬라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값비싸고 귀한 것이 아니라면야 마음 편히 먹을 수 있겠다 싶었던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를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지금껏 살아오며 대부분의 물자를 성에 비축해 둔 것을 가져다 쓰거나 직접 얻고 만들어내어 사용한 것이 전부였던 넬라넬라.
당연하게도 그녀는 화폐(??)라는 것을 사용해 본 경험이 전무했기에 음식값으로 지불할 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 내어주는 음식이라면 당연히 값을 지불해야 할 것이니 무일푼인 자신이 이것을 먹어도 괜찮겠느냐는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다.
스토니 포트리스에도 금화나 은화 같은 화폐는 당연히 존재했기에 실제로 그것을 만져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크 영지 내에서는 모든 유통이 배급이나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었기에,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저 천 년 전에 존재했던 옛 유물로서 지식을 위해 보관될 뿐인 골동품에 지나지 않았었다.
대도서관의 장식장에나 보관되고 있는 견학용 골동품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외출에 가져올 리가 없는 것이었다.
“넬라는 걱정같은 거 안 해도 돼. 넬라가 원하면 아예 이 가게 전부를 사줄수도 있으니까.”
꿀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콤한 눈빛을 하고서 넬라넬라를 쓰다듬어 오는 네로멜티아.
값을 치를 수 있는지에 대해 걱정을 했던 넬라넬라에게 더할 나위 없이 안심을 주는 것이었다.
“으하하하핫!! 거참, 분명 데모니안 아가씨인데 호방한 건 드워프 못지 않구만!? 오늘 나를 여러번 웃기는구만 그래! 크흐흐흐. 내가 이 가게를 팔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시려고?”
“너까지 고용하면 되지.”
“크힉!! 으흐하하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어 큰 웃음을 터뜨린 드워프 상인에게 네로멜티아는 농담이긴 했으나 더욱 거창한 말을 꺼내어 그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매사에 단정한 넬라넬라가 그런 사치를 바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농담일 뿐인 것이었고, 실제로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원하기만 한다면 지금 있었던 이야기들을 전부 실현시켜줄 자신이 있었다.
그 증거가 네로멜티아의 디멘셔널 스토리지에서 꺼내어졌다.
짤그랑!
“천 년 전에 사용하던 금화인데 아직도 사용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이 정도면 되겠지? 중요한 건 결국 금이니까.”
“으어어어…!!!”
당장 직면한 놀라운 광경에 드워프 상인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위대한 마법사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디멘셔널 스토리지가 시전된 것은 그에게 있어서 둘째 문제였고, 중요한 것은 그 차원의 공간에서 내어진 금화였다.
분명 육류라는 식자재는 현재의 테라리스에서 몹시 귀중한 것이었고, 자체적으로 가축을 키우는 맥켄지 시티라 할지라도 상황이 나을 뿐이지 항상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가축의 수가 충분하지 않아 왕국에서 물량에 제한까지 두고 풀어 주는 물품인 만큼, 미트 스틱 하나에 붙는 값만 해도 무려 2실버.
대식가인 드워프들에게 있어서 미트 스틱은 구성된 고기 조각들이 꽤 두툼하다 할지라도 한 끼 식사로는 턱없이 모자란 음식이었다.
그런 것에 무려 은화가 두 닢이나 소비되는 것이니 먹고 싶어도 좀처럼 사먹기가 꺼려지는 값비싼 음식이었던 것이었다.
하루 종일 곡괭이질을 해대야 겨우 은화 한 닢이 될까 말까한 양의 은광석을 캐낼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철이나 구리같은 다른 금속들도 채굴되고, 그것들을 모두 제련해서 판다면 분명 미트 스틱은 못 사먹을 것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생활에 들어가는 돈과 매달 챙겨야 하는 세금까지 계산해 본다면, 웬만해서는 특별히 먹는 만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네로멜티아가 건넨 것은 금화 세 닢.
심지어 현재 사용되는 금화보다도 조금 더 큰 크기를 지닌 머나먼 과거의 금화.
드워프 상인이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이건… 허어어…….”
“왜. 값도 치르지 못할 처지에 주문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 이방인이니까 당연히 돈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 꽤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우리를 불렀나 보네.”
값을 치르지 못할 것 같은 이를 불러다가 비싼 음식을 먹였다면 그에 해당할 이유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신의 몫을 부풀리면 부풀렸지 결코 거저 주는 일 따위는 없기로 유명한 드워프가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선뜻 나서서 음식을 권할리는 없는 것.
모든 드워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드워프는 결코 자신의 것을 그냥 내어 주지 않는 종족이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남게 되는 이유란, ‘다른’ 원하는 것이 있는 경우라고 봐야 했다.
“흐으… 아니… 3골드나 얻어서 좋기는 한데… 으흑… 나, 나도… 예쁜 여자들이랑…!!”
“미안하지만 나는 남성 취향이 아니야.”
“크흑… 맛있게 드십쇼, 손님…!!”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한 뒤 넬라넬라에게로 고개를 돌려버린 네로멜티아에게 빈틈 따위는 전혀 없었고, 나름대로 큰 맘 먹고 흑심을 품어 보려던 드워프 상인은 그대로 자신의 염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드워프 상인은 찬연한 미색이 돋보이는 미녀 둘을 앞에 두고 끝내 미련이 남아 깨끗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 미녀들이 귀한 금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 아까 한 이야기… 흠흠! 나를 고용할 생각이 있다면 기꺼이 따라가겠어!!”
물론 네로멜티아가 그를 고용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맛은 괜찮았지?”
“네. 꽤 야성적인 맛이었습니다만, 잘 녹아내린 지방의 고소한 맛과 풍부한 육즙의 감칠맛이 인상적이었고 바삭한 표면과 부드러운 내부의 식감도 훌륭했습니다.”
“… 상당히 구체적이구나…….”
네로멜티아의 가벼운 질문에 넬라넬라는 유독 진심이 묻어나는 평가를 늘어놓았다.
대충 구운 것 같아 보였음에도 화력과 시간을 절묘하게 맞춰 육류의 본질적인 맛을 극대화 시켰으니 분명 그 드워프 상인의 실력은 장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전혀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식성이 좋은 만큼 음식에 대해서도 소중히 여길 줄 알기에, 소중한 식재료는 최대한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는 주의가 깔려 있었다.
버리는 부위 없이 모두 먹어낼 수 있다면 좋은 것이었고, 거기에 맛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만찬인 셈이었다.
그런 그녀가 맛에 대해 감탄을 했으니 평가가 조금 길고 자세한 것 정도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역시…”
“역시?”
“폐하께서는 역시 마왕이시구나 하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뭇 진지해진 모습의 넬라넬라는 말하기를 조금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곧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소금을 치지 말라고 하신 부분 말입니다. 그 고기는 최소한의 향신료와 소금을 쳐서 숙성해 둔 것이었습니다. 그걸 미리 알고 계셨기에 소금을 치지 말라고 요청하신 것 같습니다.”
“으응. 그랬지. 드워프들은 노동을 많이 하다 보니 많이 짜게 먹거든. 그만큼 소금 소비도 많아서 소금 광산까지 운영할 지경이고…….”
“천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맥켄지 시티에 자주 방문하셨었다는 말씀이 와닿을 만큼 익숙한 모습이셨습니다. 고작 팔십오 년의 짧은 시간을 살아온 제게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차마 와닿지 않을 정도로… 긴 세월을 살아오셨음이 느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에게 잠시나마 거리감을 느꼈다.
백 년도 채 살지 못한 젊은 오크가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마왕의 시간을 가늠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었다.
이는 네로멜티아가 매일같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일생을 들려준다 하더라도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동화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감상을 느끼게 될 뿐일 것이었다.
의심은 없고 믿음은 확고하나 결국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감상.
그 수천 년의 시간을 함께 걸어온 이들은 분명 존재했다.
크로포드와 러스테리아, 카디스텔라, 베아트리스, 헤스티니아.
자신이 모르는 더 많은 이들도 있을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넬라넬라는 자신만이 마왕의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었다.
“문득 느껴졌습니다. 폐하께서 보내오신 아득한 시간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보잘것없구나 하고……. 그야… 천 년 전의 드베르그릭 전통 요리 같은 걸 제가 알 턱이 없잖습니까. 천 년 전의 골든 팰러스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졌을 뿐이었다는 사실은 고사하고 골든 팰러스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드워프를 직접 만나본 것도 오늘이 처음입니다.”
“…….”
“폐하께서 당연하게 아시는 일들을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폐하께서는 지금 저와 이렇게 피부를 맞대고서 따뜻한 말씀을 나누어 주시지만, 결국 살아가는 세계가 다른 분이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득히 먼 정점에 위치한 절대자에게서 느끼는 거리감은 넬라넬라를 자기 비하의 아슬아슬한 선 끝에까지 밀어붙인 듯 보였다.
물론 아무 사이도 아닌 사무적 관계에서야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느낄 일이 없는 것이겠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은 욕망이 그녀를 몰아붙인 듯 보였다.
그러나 현재 넬라넬라의 안색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넬라넬라의 감정은 지극히 정리되어 있었고, 그녀의 내면은 일말의 풍파없이 고요했다.
그녀 나름대로 자신만을 위해 내려진 빛을 본 것이었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고 느꼈습니다. 크로포드님만큼 검에 능숙하지도 않고, 러스테리아님같은 대마법사도 아니고, 카디스텔라님 같은 권세도 없고, 베아트리스님만큼 강하지도 않고, 헤스티니아님 만큼…….”
더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넬라넬라는 도중에 말을 끊었다.
그저 모든 생각과 마음을 정리한 자신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폐하의 곁을 지키는 여러 절대적인 존재들 사이에 저를 나란히 세워 주시고, 그들과 동등한 애정을 쏟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넬라넬라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를 바라보며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에게서 드러난 순백의 미소는 맥켄지 광산 전체를 밝히는 인공 태양따위보다 더욱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애로운 폐하를 진심으로 사모합니다. 이 생명을 넘어 영혼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모합니다.”
넬라넬라는 조용히 네로멜티아의 품에 안겨 들었다.
네로멜티아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꾹 참아냈고, 그저 조용히 연인을 안아줄 뿐이었다.
긴 적막이 찾아왔다.
맥켄지 시티의 인적 없는 골목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낄 뿐이었다.
오로지 침묵만이 흐르는 상황에서도 서로 맞닿은 온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 말없이 주고받는 교감의 대화에서는 진심만이 오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