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맥켄지 시티 로맨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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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베르그릭(Dvergrik).
드워프들이 세운 국가의 이름이요, 그 유래는 정확하지 않았다.
아득히 먼 옛날의 초대 국왕 ‘드베르 그리카(Devert Gryka)’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말도 있었고, 드워프를 지칭하는 단어로써 지금은 사장된 고대어인 ‘드베르그(Dvergr)’를 따서 지었다는 말도 있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드베르그릭이라는 왕국이 오로지 드워프만을 위한, 드워프들의 단일 종족 국가라는 것이었다.
페어리나 엘프, 드라이어드, 레프라혼 등의 다른 요정족들은 작게는 그저 무리를 짓는 정도, 크게는 부족을 이루는 정도로 모여 살아간다.
반면 드워프들은 자아가 강하고 과시욕이 넘치는 종족이었기에, 자신들이 흔한 요정족 중 하나로서 남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를 세웠고, 모두가 하나되어 왕국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데에 힘썼다.
아이러니한 점은 드워프라는 종족이 요정족 중에서도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탐욕스러운 존재들이었다는 점이다.
이기심 많은 드워프들이 어떻게 하나로 똘똘 뭉쳐 강성한 국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는 테라리스 역사상의 저명한 여러 학자들도 명확히 밝히지 못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드베르그릭은 특정한 영토를 지닌 국가가 아니었다.
아스타리스 대륙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광산들을 국토라고 주장하는 나라가 드베르그릭이었다.
뚜렷이 구분된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뿔뿔이 흩어진 영토.
그것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벅찬 일일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광산과 떼어 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지하 종족인 드워프들의 특성상 그들의 도시와 영토는 광산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아스타리스 대륙 곳곳에 존재하는 드워프 광산들이 모두 드베르그릭의 영토가 된 것이었다.
오로지 광산에서만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드워프들이었기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드베르그릭의 특징은 드워프들을 가시밭길로 떠미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광산이라는 것은 이권이 오가는 맛 좋은 먹이였고, 하물며 드워프들의 보물까지 잠들어 있다면야 이종족의 약탈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작정하고서 약탈을 꾀하는 도적 무리를 온전히 막아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때로는 자신들의 광산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는 드워프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드워프들은 최후의 보루를 준비해 두고 자신들의 목숨을 보장해야만 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들이 안심하고 피난 갈 장소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곳이 바로 맥켄지 광산.
드베르그릭이 소유한 많은 광산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며,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진 도시.
맥켄지 광산 내부의 도시는 해당 광산의 이름을 따 맥켄지 시티라 칭해지며, 드베르그릭의 수도라고 불리는 장소였다.
“어때. 여기까지는 이해됐어?”
“… 제가 공부했던 역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들도 있어서 조금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이해했습니다.”
떠들썩한 거리의 한복판.
맥켄지 시티는 드워프라는 종족 특유의 호탕한 활기를 띠고 있었다.
거리마다 투박하면서도 흥겨운 음악들이 넘실거렸고,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은 듯한 웃음들이 뒤를 따랐다.
장식용 돌같은 사소하고 별 볼 일 없는 물건을 사는 일에도 격렬한 흥정이 오가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드워프들은 세상이 떠나가라 웃으며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 시끌벅적한 거리를 유유히 거닐고 있었던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
네로멜티아는 동행(?行)인 넬라넬라에게 현재 위치한 맥켄지 시티에 대해 알려 주려다 보니 드베르그릭의 역사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꽤 복잡한 이야기가 된 것에 네로멜티아는 뒤늦게 설명을 정리했고, 넬라넬라 역시 너무 방대한 지식을 한 번에 들은 탓에 수용량의 한계가 온 듯 보였다.
어떻게든 이야기 전부를 이해했지만 더 들었다가는 분명 잊어버리고 말 정도의 한계선.
네로멜티아는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넬라넬라를 즐겁게 해 줄 셈이었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이어간 설명이 너무 길어졌다는 것을 인지하자 조금 초조해졌다.
‘으으… 넬라가 분위기도 못 읽는 지루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자신에 대한 넬라넬라의 호감이 와르르 무너지면 어쩌나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넬라넬라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불안한 감정을 딛고 무리하게 꾸민 가짜 미소였기에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려오고 있었고,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네로멜티아는 어떻게든 여유로운 모습을 부여잡기 위해 자꾸 기어 나오려 하는 내면의 감정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반면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의 미소에서 전혀 어색한 점을 찾지 못했기에, 오히려 자신을 책망하며 네로멜티아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으으… 머리가 나빠서 이야기도 잘 못 따라오는 멍청한 여자라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마왕의 측근들은 대개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들이었기에 드베르그릭의 역사에 대해 모를 인물이 없을 것이었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측근들이라 할지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근육바보 오운이야 당연히 제쳐놓고서라도, 자신의 오빠 베리베리나 고블린 킹 아티스 또한 지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식인들이었기에 당연히 드베르그릭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이들이 드베르그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둘 다 뛰어난 지성(??)을 지닌 존재들이었기에, 단 한 번의 설명만 들어도 사소한 점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모조리 암기해버릴 것이 뻔했다.
마왕군 간부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자기 자신이 초라해 보였던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가 자신에게 실망할까 겁이 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사실 대략적으로 요약했다고는 하나 한 국가의 건국사를 단 한 번 들은 것만으로 모두 외워버린 넬라넬라는 상당히 총명하고 이해가 높은 편이었으나, 하필이면 비교 대상이 마왕군의 간부들었기에 자신의 능력이 전혀 와닿지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지능에 무력감을 느끼던 넬라넬라는 조금 시무룩한 기색을 보였고, 그것을 자신에 대한 따분함으로 잘못 해석한 네로멜티아는 평소와 다르게 들뜬 음성으로 아무말이나 꺼내놓고 보는 허술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ㅂ, 봐…!! 저기서 수염 액세서리를 팔고 있어…!! 넬라도 하나 쓸… 아, 아니…!!”
“… 네, 멋지네요…….”
“넬라…!! 저 옷… 으윽! 이것도 아니잖아…”
“… 네, 멋지네요…….”
수염도 안 나는 여성에게 수염 액세서리를 들이대려 하다가 아차 싶어서 말을 돌린 것이 하필이면 이백 멘톨의 넬라넬라에게는 턱도 없이 모자란 사이즈의 드워프 전용 드레스여서 아찔함을 느끼던 네로멜티아.
평소의 강직한 군인의 말투는 새까맣게 잊은 데다 모든 대답이 똑같은 말뿐인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을 보이던 넬라넬라..
혼란이 평행선을 그리는 난장판이 두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이를 잠재운 것은 이름 모를 드워프 상인이었다.
“오! 거기 데모니안하고 오크! 잠깐 이리로 와 봐!!”
순간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던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는 지금껏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자각하여 다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나답지 않게 흥분했어… 차분한 모습이 제일인데…….’
‘폐하의 말씀에 건성으로 대답하다니… 넬라넬라 너 제정신이야…!?’
자신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이종족 여성 둘이 입을 꾹 다물고서 눈을 질끈 감기까지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자 드워프 상인은 그 모습이 썩 재미있는 듯, 유쾌하게 웃으며 재차 그녀들을 불렀다.
“크하하하핫!! 그게 뭐야!! 날 웃겨도 깎아줄 셈은 없으니까 어서 오기나 하라고!!”
자신의 들끓는 마음을 애써 잠재우고 여유를 되찾은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를 이끌고 드워프 상인의 앞에 다가갔다.
상인의 앞에는 고기 조각들이 줄을 지어 꽂혀있는 쇠꼬챙이들이 쌓여 있었다.
음식을 파는 건가 싶었으나 쇠꼬챙이에 꽂힌 고기 조각들이 전부 날것이라는 것을 보면 그것 또한 의아해지는 광경이었다.
넬라넬라는 드워프들이 날고기를 좋아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으나, 네로멜티아는 이것이 어떤 음식인지 알고 있는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상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거로 하나씩 주겠어? 소금은 더 치지 말고 미디움으로 부탁해.”
“오! 미트 스틱 먹을 줄 아네!? 처음 보는 이방인인데, 드워프 음식 먹어본 적 있어?”
“예전에 맥켄지 시티는 자주 와봤지. 네가 태어나기도 전일걸?”
“우와! 데모니안들도 오래 산다는 얘기는 들어 봤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하네!!”
드워프 상인은 네로멜티아가 고른 미트 스틱 두 개를 챙기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놀라서 눈을 크게 치켜뜨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고, 드워프 상인은 신기한 감상을 감추지 못하고 네로멜티아를 몇 번씩 되돌아보고 나서야 조리를 시작했다.
드워프 상인의 뒤에는 거대한 화덕이 있었고, 그 내부에 미트 스틱을 넣어 굽는 듯 보였다.
문제는 화덕 내부에 있는 것이 숯이나 장작 같은 것이 아니라 용암이라는 것이었다.
화덕의 시커먼 금속 문을 열자마자 이글거리는 열기가 매장 밖까지 뿜어져 나왔다.
그 맹렬한 열기에 넬라넬라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라서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앞을 가리기까지 했다.
“으하하핫!! 겁도 많으셔라!! 열기 차단 마법이 설계되어 있으니까 혹시나 데이지는 않을까 염려 안 해도 된다고!! 아무래도 용암이다 보니 조금 뜨겁긴 하겠지만… 읏쌰!!!”
드워프 상인은 용암의 온도를 눈대중으로 재다가 미트 스틱을 화덕 안으로 잠시 밀어 넣었다가 바로 꺼냈다.
물 한 모금 넘길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날고기였던 미트 스틱은 바삭하게 구워진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자! 비프 립스 미트 스틱(Beef Ribs Meat Stick)! 두 개 나왔습니다!”
바삭하게 구워진 고기의 표면으로 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기름.
겉과 달리 부드럽게 익은 내부에는 고소한 육즙이 꽉 들어차 있어 터질 듯한 탄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 어떤 요리들보다도 고기와 맥주를 가장 좋아했던 드워프들은 고기를 최대한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했다.
드워프의 역사만큼이나 그들의 고기 조리법 또한 오래도록 발전해 왔으며, 드워프 개개인이 각자 자신만의 조리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극히 흔한 것이었다.
가벼운 고기 꼬치에 불과하지만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드워프들의 사랑을 받아온 유서 깊은 전통 요리.
그것이 미트 스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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