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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38화 (138/216)

〈 138화 〉 에스테로난의 영주와 드래곤 로드

* * *

고급스러운 사치품으로 가득한 응접실.

황금빛의 물건들로 가득한 눈부신 방.

그 가운데에 휴미안 영주와 드래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예를 잔뜩 얻을 수 있다는 자네의 말을 믿고 북부 전초기지 출병 명령서를 써서 자네에게 건넸건만……. 세 시간 만에 패배의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패배가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물러났을 뿐이라고 했잖나!!”

“그대가 물러났을 정도라면 북부 전초기지는 사실상 괴멸이라고 봐야겠군. 진정 마왕이라도 부활한 것인가.”

케르디하크가 단호하게 내뱉는 주장은 에스테로난 공왕에게 한낱 패배자의 변명으로 들릴 뿐이었다.

마왕 살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던 전설의 드래곤이기에 북부 전초기지의 전 병력을 믿고 맡긴 것이었고, 그 병력들이 괴멸했을 확률이 높은 현재로서는 극히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염이 심해져 에스테로난 외부로 나가는 일조차 위협이 되는 현실에 이르러서 북부 전초기지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일조차 벅찰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자본과 병력을 투입해 북부 전초기지를 지켜온 상황이었다.

혹여 마왕이 부활한다면 시간을 벌어주며 그 소식을 서둘러 전달할 수단이 필요했기에 에스테로난 공왕도 그 기지를 유지하려 갖은 애를 써 온 것이었다.

이렇게 쉽게 잃어버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병력을 철수시켰을 것이었다.

“마왕의 부활은 아니라고 했잖나! 아까도 말했지만 단지 과거 마왕군의 간부 떨거지들이 몇 마리 모여 살 길을 도모하려던 것뿐이었다.”

“그건 자네의 말일 뿐이지. 드래곤이 패퇴(??)했다는데 마왕이 나섰다고 생각되는 건 당연하지 않나.”

“너는 지금 내 말을 무시하고 있다! 내 분명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건만!!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격렬하게 화를 내던 케르디하크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공왕의 눈을 보았다.

위압의 기세를 가지고 주변의 대기마저 짓누르는 푸른빛 눈동자.

아스타리스 대륙에 남은 모든 휴미안을 통치하는 지배자.

레드문으로 이주한 휴미안의 왕만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인자.

도시가 가문의 이름을 따서 지었을 정도로 머나먼 세월부터 대대로 에스테로난을 지배해온 찬란한 에스테로난 공작가의 가주.

공왕, 매버릭 듀크 에스테로난.

만인의 위에 군림하며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가 발산하는 살기는 드래곤의 심장마저 섬뜩하게 만들 정도였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나, 드래곤.”

그 살벌한 기세에 케르디하크는 드래곤으로서의 위세를 잊을 정도였고, 여유를 잃어버려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분명 자신이 짓밟으면 단숨에 절명해 버릴 하찮은 휴미안인데도, 그 기세는 감히 무시할 수 없을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었다.

에스테로난 공왕은 나직하지만 야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노성을 하고서, 케르디하크를 재차 압박했다.

“그 전초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아는가. 그걸 지금 송두리째 잃어버렸는데 장난이라고?”

케르디하크는 한 걸음 물러나려다 순간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이를 꽉 물었다.

이런 실태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드래곤이 떨고 있다니!

뒤늦게 현실을 자각한 케르디하크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기세를 끌어올려 에스테로난 공왕의 기세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감히 휴미안 주제에 태고의 관리자인 드래곤을 억압하려 들다니.

에스테로난 공왕을 노려보는 케르디하크의 눈빛은 조금만 더 건방을 떤다면 그대로 씹어 삼켜 주겠노라는 경고가 내포되어 있었다.

잠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던 케르디하크가 눈빛에 살기를 담아 맞서기 시작하자, 에스테로난 공왕은 언제 살기를 발산했냐는 듯 너무나도 손쉽게 기세를 풀어 버렸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나 또한 잃은 것이 많으니, 자네와 농을 주고 받으려던 건 아닐세. 그렇다고 자네를 힐난할 마음도 없네. 자네가 ‘여의치 않아 물러섰다는데’ 우리라고 별 수가 있었겠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 그래. 이해해 주니 고맙군.”

공왕이 먼저 기세를 접고 물러나자, 케르디하크 역시 기세를 수그러뜨렸다.

내심 석연치 않은 점은 있으나, 상대가 양보하고 먼저 물러섰는데 척을 지겠다고 마음 먹은 상대가 아니고서야 자신도 계속 적의를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마왕은 부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몇 개월 전에 파견한 마왕 사살대는 임무에 성공했다는 의미겠군.”

“내가 마왕성을 습격했을 때, 네로멜티아 그 가증스러운 마왕년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리기까지 했으나 마왕년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지. 자신의 유일한 거점이 위기에 처했는데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고? 그 호전적이고 포악하기 그지없는 데모니안이? 그건 그년의 성격을 봐서라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마왕성의 재건은 소드 마스터 크로포드, 퍼스트 블러드 카디스텔라. 그리고… 파멸의 바르커스가 주도한 것이라고 봐도 좋겠지.”

“파멸의 바르커스? 과거 잠적해 버린 헤모니겐트의 수호룡 말인가?”

“나를 막기 위해 마왕군 간부 전원이 몰려 들었었어. 마왕성의 남겨진 폐허나 지켜 보겠답시고 전력으로 방어 마법을 시전하던 꼴이 우습더군. 심지어 텔레포테이션을 저지하지 못할 정도로 수준 낮은 모습을 보였어. 텔레포테이션은 마력 결계만 쳐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것인데! 현재 모습을 드러낸 마왕군은 이렇게 능력이 모자라다. 그럼 카보니 숲을 습격한 휴미안 대군은 누가 막아냈겠나.”

“과거 육백 년 전에 바르커스라는 드래곤이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려던 우리들에게 맞서려다가 패퇴하고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었지.”

“그래, 수호룡이랍시고 틈을 엿보다가 패망한 마왕군의 잔재가 모습을 드러내니 그들이라도 지켜보려고 발악을 한 것이 틀림없다.”

에스테로난 공왕은 케르디하크의 추측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정보는 그가 본 사실을 기반하여 계산된 것이나,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케르디하크의 앞에서 이야기 했다간 그가 길길이 날뛸 것이기에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사실.

케르디하크는 바르커스에게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긴 드래곤의 삶 속에서 단 한 번도 바르커스를 이기지 못했던 케르디하크.

권력욕과 과시욕에 찌든 이 오만한 드래곤이 드래곤 로드의 자리를 탐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나, 원래 드래곤 로드였던 바르커스가 너무나 강대했던 탓에 그 자리를 빼앗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휴미안과 12신들을 끌어들여 헤모니겐트의 멸망을 불러오고, 수호룡이었던 바르커스를 도망치게 만든 것이었다.

케르디하크가 혼자서 맞설 수 없는 강대한 드래곤인 바르커스.

그렇다면 바르커스가 마왕성을 홀로 지키고 카보니 숲을 마왕군의 간부들이 지키는 것이 더욱 맞는 선택이 아닐까.

그렇게 되었다면 케르디하크는 무사히 복귀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자신과 이렇게 여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케르디하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왕군은 케르디하크를 막아내는 일에 심히 고전했고, 바르커스가 마왕군에 합류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력 배치가 말이 되질 않았다.

“듣자 하니 서큐버스와 마녀도 있었다고 말한 것 같은데…”

에스테로난 공왕은 자신의 의문은 홀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당장 필요한 대화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케르디하크를 상대했다던 카디스텔라와 크로포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나머지 전력에 대해 추가의 정보를 듣고자 한 것이었다.

케르디하크가 언급한 정보라고는 전투에 나서지 않고 방어 마법만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뿐이었기에, 그녀들이 마왕군 간부로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스테로난 공왕의 진중한 분위기와 달리 케르디하크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서큐버스는 논외다. 마왕과의 계약으로 마력은 어느 정도 높게 사 줄 만하겠지만 한낱 음마 따위가 큰일을 벌일 배짱은 없겠지. 천 년 전 네로멜티아의 심장에 성검이 박히던 날에도 눈물범벅의 형편없는 꼴을 하고서 숨어버린 년이 지금이라고 무얼 할 수 있겠나. 그리고 영생의 마녀는…”

코웃음치던 조금 전 모습과 달리 잠시 말문을 닫고 생각에 잠긴 케르디하크.

잠시 후,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돌아와 말을 이었으나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돌려진 것을 보면 뭔가 숨기고 있는 내막이 있는 듯 보였다.

“그건 영원한 방관자다. 제 한 목숨 건사하고자 어둠 속에 녹아들어 허상과 붙어먹는 년. 한낱 어스름의 그림자 따위가 뭘 할 수 있겠나. 그저 한 손 거들어 뒤치다꺼리나 해 주는 정도였겠지. 그건 직접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전혀 무해한… 그림자 같은 것이다.”

케르디하크는 무해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잠시 뜸을 들였다.

에스테로난 공왕은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한 인물은 아니었고, 그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직접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넌 알 거 없다. 애초에 위기가 닥칠 것 같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년이니 고려할 가치도 없어. 넌 꿈에 나타난 괴물이 두려워 밤을 설치는 겁쟁이인가?”

에스테로난 공왕은 케르디하크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굳이 숨기려 하는 것을 캐내어 상대를 자극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상대는 자신과 동등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동맹이라 할지라도 드래곤.

그를 자극해서 좋을 일은 티끌만큼도 없는 것이었다.

에스테로난이라는 도시는 신왕 오드볼그를 등에 업고 찬연한 마도 기술로 무장한 최고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토록 강대한 에스테로난이 드래곤 하나에게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드래곤과 전쟁이라도 벌이는 날에는 에스테로난 역시 압도적인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기에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는 것이 합당한 것이었다.

“그건 단지 악몽이야. 아무리 두려운 악몽일지라도 현실에 해를 끼칠 순 없다. 한낱 허상이니까.”

“… 그래. 넘어가도록 하지. 보잘것없는 염려로 귀를 어지럽혀 미안하네. 지혜의 드래곤이여.”

“용서하지! 백 년 남짓 겨우 사는 휴미안들에게 미지의 공포란 떼어낼 수 없는 족쇄 같은 거니까.”

케르디하크가 듣기 좋아하는 ‘지혜’라는 이명을 붙여주며 살살 달래주는 에스테로난 공왕.

그의 의도는 너무나 잘 먹혀들었고, 다소 불쾌하고 착잡해 보였던 케르디하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유쾌한 음성을 하고서 우쭐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스테로난 공왕은 미소 짓는 얼굴과 다르게 속으로 폭언을 쏟아 붓고 있었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도마뱀 새끼. 별 것 아니라면 오만한 네놈이 언급이나 했겠나. 분명 뭔가가 있다!’

애초에 케르디하크는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고 과시를 사랑하는 존재였기에,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용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이토록 노골적으로 감추는 것이 있다면, 그건 분명 보통 일이 아닌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케르디하크를 더 추궁한다고 해서 그가 순순히 실토를 할 존재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의 화만 돋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했기에 애써 눈 감고 넘어가 줄 뿐인 것이었다.

“어쨌든 너는 내가 전하는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

“바르커스까지 합류했는데도 말인가?”

케르디하크는 응접실을 나서며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단단히 못을 박았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면 알아서 다 해결해 주겠다는 선심 쓰는 듯한 말이었으나, 그의 말투는 내가 처리할 몫이니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는 경고와 같이 들리는 것이었다.

에스테로난 공왕은 그에게 동맹으로서 반박의 말을 하기 보다는 넌지시 아픈 구석을 찔렀다.

케르디하크는 에스테로난 공왕의 의도대로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내 조금은 씁쓸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었다.

“… 그렇게 된다면 연합을 요청하도록 하지. 그러니 괜히 신들에게 보고를 올리는 짓은 하지 말도록 해. 마왕이 부활한 것도 아닌데 너희의 신들을 귀찮게 하진 않겠지?”

“그래. 자네의 말을 따르도록 하지.”

역시 파멸의 바르커스라는 위명 앞에서는 그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오만도 기를 펴지 못하겠는지, 조금은 숙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신들의 개입을 저지하는 발언을 이어붙여, 그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심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에스테로난 공왕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응접실을 나서는 케르디하크의 등 뒤에 긍정의 답을 전했다.

“내 궁금한 것이 있는데…….”

미련 없이 응접실을 나설 것 같았던 케르디하크가 불현듯 멈춰서서 에스테로난 공왕에게 질문을 하려고 했다.

무려 지혜를 자칭하는 드래곤인 케르디하크가 한낱 휴미안에게 질문이라니, 이는 에스테로난 공왕에게 있어서 오늘 있었던 대화 중 가장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을 생각해 보면 실상 그가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지한 점을 드러내면서까지 질문을 하진 않을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이길래 그 ‘케르디하크’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무, 무엇인가?”

케르디하크의 역정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기로 맞서던 에스테로난의 지배자가 오늘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케르디하크는 조심스럽고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블루베리 파르페가 뭔가…….”

에스테로난 공왕은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고 새하얀 백지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 드래곤은 무엇을 논하고 싶은 것일까.

테라리스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파르페라니.

심지어 그냥 파르페도 아니고 블루베리 파르페라는 정확한 표현을 하고서.

“먹고… 갈 텐가…?”

에스테로난 공왕은 조용히 하녀를 불러 블루베리 파르페 두 개를 내오라 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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