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착각이 불러오는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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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를 끌어안은 채 지하실을 나와서 식당으로 향했다.
헤스티니아가 러스테리아를 위해 쿠키를 준비하겠다고 했으니, 지하실에 함께 내려가지 않은 이들은 모두 식당에 있을 것이라 추측한 것이었다.
“아웅!”
“어머, 우리 비서관님 정말 잘 드시네요! 귀여워라!”
식당에 들어선 네로멜티아가 목격한 것은 양 볼을 부풀리고서 쿠키를 오물오물 먹고 있는 러스테리아였다.
주인이 자신을 두고 갔다며 토라졌었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쿠키의 달콤한 맛에 흠뻑 빠져들어 행복해하는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헤스티니아는 그런 러스테리아가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새로운 과자를 내어 주면서 두 손을 포개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둔 채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러스테리아의 옆에 조용히 서서 차를 따라주며 마왕 직속 하녀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간식을 먹는 러스테리아의 모습이 그녀에게도 귀엽게 보였는지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러스 잘 있었구나, 대견한 걸?”
“으우… 주인님, 또 저를 아이 취급 하시네요…….”
도착하자마자 러스테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한 네로멜티아.
그저 기다렸을 뿐인데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마냥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얌전히 기다리는 일 조차 잘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기에, 러스테리아는 다소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네로멜티아는 단순히 러스테리아가 귀여워서 그런 취급을 할 뿐이지, 별다른 악의는 없었다.
“의외로 일찍 오셨군요. 지하실에서의 업무를 끝내고 오실 계획이 아니셨습니까?”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딱히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들 잘 하겠더라고. 베리베리는 휴미안에 대해 상당히 분노하고 있는 분위기였고, 일단 카디스텔라도 있으니 말이야.”
평소에는 인자하고 품위가 넘치는 귀족이었던 베리베리가 그토록 진한 분노를 가지게 될 줄은 전혀 몰랐었다.
지하실에서의 베리베리는 분명 마왕에게 지극한 예를 다 하며 정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에는 진득한 독기와 뜨거운 분노가 가득해 있었다.
마왕과 소중한 여동생이 자리하고 있기에 감정을 숨기는 분위기였으나 그 감정을 읽은 네로멜티아가 눈치껏 넬라넬라를 데리고 나가 주었으니 무척 기뻤을 것이고, 중요한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베리베리는 잔혹한 고문관이 되었을 것이 뻔해 보였다.
그리고 카디스텔라야 워낙 그 성정이 유명하니 포로들의 고통에 찬 비명과 울부짖음은 듣지 않아도 귓가에 선한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님께서는 주인님께서 복귀하시자마자 안기고 입맞추고 할 거 다 하시는 것을 보니 주인님과의 시간을 우선으로 삼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뭐라더라. 연소가 덜 됐다고 했던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고작 도마뱀 한 마리를 상대하셨을 뿐이시니……. 심지어 주인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염두하여 적당히 봐주다가 놓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 어, 음……. 내 계획 말이구나… 그랬구나…….”
네로멜티아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간부들끼리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나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간혹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에 대한 착각.
그저 단순한 계획 몇 가지를 구상할 뿐인데 주변에서 과장되게 확대 해석하여 이리저리 상황을 끼워 맞추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그 결말은 언제나 ‘지고의 혜안을 지니신 마왕님’이라는 결과 뿐이었다.
“설마 케르디하크의 습격마저 주인님께서 의도하신 계획의 일부였다니 무척 놀랐습니다. 저희가 주인님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크로포드님께 미리 에고 돌의 개발에 관한 것을 언급하셨다는 대목에서는 감정 센서가 흐트러질 정도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직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치챈 저는 참 모자란 종입니다.”
“아니야, 베아트리스. 너는 언제나 나를 감탄하게 하는 대단한 인재인 걸? 이번 전쟁에서도 네 주도 하에 최적의 전략을 구성했다고 들었어. 내가 없는 동안 잘 대처해 줘서 고마워.”
“주인님의 아득한 지략에 작은 끄트머리를 겨우 쥐었을 뿐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의 전략에 깊이 감탄하고 있었다.
러스테리아가 간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좀 길어지긴 하지만, 단순히 블루베리 파르페의 레시피를 얘기하는 시간 동안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그 전략은 운에 맞기는 부분이 거의 없었고, 모든 정황을 분석한 베아트리스의 철저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도 그 탁월한 지략에 높은 지분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주도한 것은 베아트리스였고 그녀는 분명 경탄할 만한 인재임이 틀림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네로멜티아의 위치였다.
‘그냥 내 부활을 감추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었다고…….’
마왕이라는 위치와 상급자의 자존심이 진실을 말하게 두지는 않았다.
마왕군 간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심오한 계획따위는 없고, 단순한 목적을 지닌 계획들 뿐이었다는 네로멜티아만이 아는 진실.
물론 이 대화를 지켜보며 연신 피식대는 헤스티니아의 웃음을 보면 그녀 역시 내막을 대충 아는 듯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네로멜티아만이 아는 진실.
지난번 크로포드도 그랬고, 더욱 아득히 먼 과거인 천 년 전의 헤모니겐트에서도 그랬지만 네로멜티아의 주변 인물들은 충성이 너무 강해 과도한 착각을 하곤 했다.
테라리스에 마왕과 지혜를 겨룰 인물 따위는 없다!
그런 주변의 분위기가 때로는 네로멜티아에게 강한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주변 인물들의 환상을 깨고 실망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기에 네로멜티아는 오늘도 그럴 듯하게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내 계획을 잘 따라와 준 것 만으로도 나는 기뻐!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풋.”
그럴싸하게 넘어가는 일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던 네로멜티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스티니아가 웃음을 참지 못해 작은 소리를 냈고, 네로멜티아는 은근한 불만을 담은 시선으로 헤스티니아를 쏘아 보았다.
헤스티니아가 자신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네로멜티아 본인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제발 티 내지 말고 넘어가라는 힐난의 눈총이었던 셈이었다.
“쿠후후후… 그렇죠… 마왕님의 드높은 혜안을 따라가신 것만 해도… 베아트리스님께서는 큰 일을 하신 거랍니다…? 풉…!”
거의 끅끅대며 웃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헤스티니아.
본래라면 눈치가 상당히 빠른 베아트리스였으나 그녀는 경애하는 주인의 칭찬에 감격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 헤스티니아와 네로멜티아 사이에 오가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에 대한 과도한 충성이 눈을 가려 헤스티니아의 웃음에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지극한 존경의 시선으로 우러러보는 넬라넬라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눈을 빛내는 러스테리아 역시 헤스티니아가 보이는 웃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찬란한 금빛으로 치장된 사치스러운 방.
역사적인 보물로 취급되는 명화들이 걸려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그림들을 담은 액자까지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사치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 했다.
탁자 위의 새하얀 찻잔은 빛이 은은하게 투과될 정도의 높은 기술로 제작된 최고급품이었고, 그 위에 황금 재질의 테두리가 둘러져 장식되어 있기까지 했다.
벽면의 태피스트리는 오로지 황금실을 이용해서만 짜여진 원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위로 머나먼 과거에 소실된 세계수가 오색이 찬연한 요정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창문, 탁자, 의자, 카펫, 장식용 검과 갑옷, 샹들리에.
모든 것들이 황금빛으로 도배되어 있었던 사치의 방.
휴미안들의 마지막 도시, 에스테로난의 지배자가 이용하는 응접실이었다.
“그래, 그럼 된통 당하신 모양이로군.”
“누가 당했다는 것인가! 그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잠시 물러났을 뿐!!”
푸른 빛의 긴 머리에 왕관을 쓰고, 금실로 자수가 놓인 학자 로브를 입은 인물.
그의 머리 위에 씌워진 황금의 왕관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과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고, 이는 지혜의 과실을 뜻하는 문양이었다.
그의 머리색과 동일한 푸른 색의 학자 로브 위에는 뱀과 사슴의 자수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이는 모두 지혜를 뜻하거나 학자의 고고함을 의미하는 짐승들이었다.
차려 입은 의복만으로도 그의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조금 마른 신체를 지닌 푸른 머리의 손님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을 상대하면서도 연장자에 대한 예우를 전혀 갖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응접실의 주인인 중년 남성은 날카로운 눈매에 매부리코를 하고 있었다.
금발의 긴 머리는 뒤로 넘겨 묶었고, 가늘게 자란 수염은 날카롭게 말려있었다.
황금으로 도배가 된 응접실을 가진 것 치고, 의외로 그가 허리에 차고 있었던 레이피어만큼은 황금이 일절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것은 신들의 대륙 오드볼리스에서만 채굴할 수 있다 알려진 미스트릴(Mithtrill)로 제조된 무기였고, 이는 그가 천 년이나 지속된 휴미안의 평화 속에서도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푸른 머리의 청년은 인간의 모습으로 화한 드래곤, 케르디하크.
금발의 중년은 에스테로난의 영주인 ‘매버릭 듀크 에스테로난(Maverick duke Esteronan)’ 공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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