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블러디 프라이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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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바라보는 원의 진형을 유지하던 경장보병대의 눈앞에 나타난 갑옷의 여성.
그녀는 육중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거대한 카이트 실드와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있었다.
신장은 평범한 휴미안보다 더욱 큰 이백 멘톨에 달하고 있었으며, 그 큰 신장에 걸맞게 늠름히 벌어진 어깨를 지니고 있어 그녀가 얼마나 신체를 철저히 단련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녀가 착용한 풀 플레이트 아머는 슬쩍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두꺼웠다.
본래 전신의 모든 부분을 보호하는 풀 플레이트 아머의 특징상 금속판을 다량 투입해 제조하고, 그 금속판의 양에 따라 무게는 고스란히 증가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풀 플레이트 아머는 견고하면서도 얇은 철판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에 따른 모자란 방어 능력은 상대의 공격이 주는 충격을 흘릴 수 있도록 갑옷의 형태에 절묘한 굴곡을 주는 방식으로 커버하는 것이었다.
방어를 위한답시고 두꺼운 철판을 사용했다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본전도 못 찾는 셈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녀가 착용한 풀 플레이트 아머는 화포의 포탄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웠다.
거대한 신전의 돌기둥에 깔려도 무사할 정도로 두꺼웠다.
휴미안 장정 열 명이 달라붙어 낑낑대며 들어야 겨우 옮길 수 있을 것 같았고, 운송을 한다면 마차를 쓰더라도 말 네 필 정도는 붙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이백 멘톨에 달하는 신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여성의 몸으로 저런 육중한 쇳덩어리를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왼손에 들고 있는 카이트 실드는 더욱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본래 카이트 실드라면 아무리 커봐야 머리 아래부터 무릎까지의 범위를 막아주는 정도가 평범한 크기였다.
그러나 그녀가 들고 있는 카이트 실드는 그녀가 고개를 조금 숙인다면 그녀의 전신을 다 가려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심지어 그 두께는 십 멘톨에 달하고 있어 공성 무기인 발리스타를 직격으로 얻어맞고도 버틸 수 있을 철벽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무식한 규모의 쇳덩이를 그녀는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철벽같은 방패에 걸맞게 그녀의 바스타드 소드 또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녀의 체격에 비교하여 본다면 분명 그것은 바스타드 소드가 맞는 것이었으나, 평범한 휴미안들이 들기에 그것은 양손 대검인 클레이모어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손으로 드는 물체는 길면 길수록 무게 중심이 끝으로 쏠려 들기가 버겁다.
똑같은 무게라 할지라도 구형의 포탄이 강철 장대보다 들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였다.
투 핸드 소드나 다름이 없는 거대한 대검을 다른 한 손에 철벽같은 방패를 쥐고서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 경악스러웠다.
놀라움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이치였고, 경장보병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투박한 그레이트 헬름의 틈으로 보이는 갈색 눈동자와 녹색의 피부.
그녀는 오크군의 공병대장이자 최강의 검, 넬라넬라였다.
“너희는 무슨 권리로 타인의 몸을 허락하고 허락받는 거지? 사로잡은 여성들을 유린할 생각에 더러운 음심을 보이는 모습이 역겨웠다.”
“넌… 오크로구나……. 보나 마나 숲이 되살아난 걸 보고 달려온 걸 테지. 하찮은 너희들은 정화 마법도 쓸 수 없을 테니 이 깨끗한 숲이 탐났을 거야. 그런데 네깟 것들이 발견한 숲을 우리 휴미안이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실로 어이가 없구나!”
넬라넬라의 질문은 상대에 대한 모진 지탄이었다.
그러나 보병대장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오히려 오크를 비하하는 공격적인 말로 넬라넬라를 자극했다.
“그건 유언이라고 봐도 되겠나.”
“더러운 녹색 괴물 주제에 고상한 척하지 마라! 너야말로 괜찮겠나! 무식하게 힘만 믿고 우리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근처에 우리의 본대가 있다! 온갖 마도 화기로 무장한 사격대와 포병대가 있고, 마도 거병이 이십 기나 있지! 우리가 연락만 넣으면 그 병력들이 순식간에 도착할 것이다!!”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보병대장은 오히려 넬라넬라를 자극했다.
그 이해하지 못할 언동이 휴미안군 본대를 앞세운 허세로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내 밝혀졌다.
넬라넬라는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보병대장을 바라보았고, 보병대장은 상대가 자신의 의도대로 겁을 먹고 있는 것이라 착각했다.
“너희를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호의를 베풀도록 하겠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다면, 우리도 너희를 최대한 배려하도록 하지. 에스테로난에 도착할 때까지 너희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깨끗한 물과 음식도 주겠다. 오크같은 힘이 센 종족은 부르는 게 값이니 분명 대우도 괜찮을 것이다. 너희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이 숲은 우리 휴미안의 것이고, 우리에게서 도망쳐 오염된 황무지를 전전하느니 에스테로난의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게 훨씬 이득일 텐데!”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한 보병대장은 최대한 상대를 구슬릴 수 있도록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좋은 조건들을 제시했다.
끌려간 노예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그의 손을 떠난 일이니 알 바가 아니었고, 그저 당장 듣기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상대의 자발적인 굴복.
불리한 조건에 있는 자신들이 전투에 임하지 않아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였다.
그러나 넬라넬라는 그런 달갑지도 않은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았다.
철컥
파스스! 파스스!! 파스스스!!
넬라넬라가 조용히 방패를 내세워 전투 자세를 갖추자 주변에서 오크 병사들이 줄을 지어 일어섰다.
그저 수풀만이 무성하게 보였던 주변에서 은신하고 있었던 오크 병사들.
그들은 흙을 파내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를 나뭇잎으로 덮어 은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반을 다지고 바위를 깎으며 건물을 세우던 오크 공병대에게 은신을 위한 구덩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며 은밀하게 침투하고 있던 경장보병대가 이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오크 공병대의 은폐 전술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오크 병사들은 모두 스피어(Spear)와 타워 실드(Tower Shield)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스피어는 익히 쓰이는 형태보다 짧은 길이를 지니고 있었기에 공격권(???)은 평범한 스피어보다 짧을 것으로 예상되는 단창(??)이었다.
그러나 짧은 만큼 기민하고 자유로운 공격이 가능한 것이기에 접근한다면 무척 성가신 무기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경장보병대가 착용한 레더 아머는 무두질된 가죽 특유의 질긴 재질로 인해 참격이나 타격만큼은 아주 미약하나마 피해를 줄여줄 수 있었으나, 창 특유의 찌르는 자격(??)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창 치고는 비교적 짧은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창 특유의 길고 넓은 공격 범위라는 장점이 퇴색되어 경장보병대의 롱 소드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반격할 수 있을 듯 보였으나, 문제는 다른 손에 들린 타워 실드였다.
그것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닌 대방패였고, 주로 철저한 방어나 진형 구축을 위해 쓰이는 것이었다.
롱 소드는 결국 베거나 찌르는 용도의 검이었기에 타격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타워 실드는 조금만 각도를 틀어도 대부분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낼 수 있는 넓은 면적을 지닌 방패였다.
가뜩이나 오크에게 힘에서 밀리는 휴미안이 롱소드 한 자루를 쥐고서 타워 실드를 쳐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오크 병사들은 타워 실드를 앞세워 휴미안들을 둘러싸 거대한 원형의 벽을 만들었다.
“나야말로 호의를 베풀어 본대에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
“… 큭…!!”
보병대장은 후회하게 될 거란 말이 치밀어 올랐으나 그것을 내뱉지는 않았다.
굳이 자신을 유리하게 해 주겠다는데 감정에 치우쳐서 그것을 마다하는 건 바보짓이었기 때문이다.
보병대장은 통신 마도구를 꺼내어 본대의 지휘관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했다.
“어어…? 어어어… 이, 이럴 리가…….”
지휘관은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다.
혹여 난처한 일이 있어 신호를 받지 못하고 있나 싶었던 보병대장은 통신이 가능한 지휘 계통의 인물들 전원에게 차례대로 신호를 보냈다.
지휘관 휘하의 부관.
마도 거병 조종대의 대장.
사격대의 대장.
포병대의 대장.
수송대의 대장.
선발대의 통신병.
자신이 본대에 남겨둔 경장보병대의 부장.
본대 휘하의 백인장들.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닿질 않는 것이었다.
보병대장은 아연실색하여 통신 마도구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본대가 지원을 와주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도움도 되지 않는 레더 아머에 롱 소드 한 자루만 쥐고 철저하게 무장한 오크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들은 완벽히 포위되어있는 위기 상황이었기에 싸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판단이었고, 어떻게든 포위를 뚫어 도망갈 수 있다 해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본대의 지원이 없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인 것이었다.
“호의는 여기까지다. 너희는 유린당한 희생자들을 만나 용서를 빌 자격도 없는 쓰레기들이니, 저승에 가거든 부디 화염지옥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영원히 불타길 바란다.”
쿠우우우웅!!
차분하고 담담한 음성으로 전해지는 비정한 저주.
이야기를 끝낸 넬라넬라는 지면을 힘껏 박차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백 멘톨의 철저히 단련된 신체와 그 위에 장비된 각종 쇳덩어리.
포탄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육중한 풀 플레이트 아머.
공성용 발리스타도 견딜 수 있을 철벽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카이트 실드.
투 핸드 소드나 다를 바 없는 상식 밖의 길이를 지닌 바스타드 소드.
이 모든 요소들이 낳은 육중함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넬라넬라의 맹진(??)은 주변 일대의 대지를 살벌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물 샐 틈 없이 주변을 포위한 오크군의 기세에 눌려 몸이 굳은 까닭에 넬라넬라의 돌진을 제때 대처하지 못한 휴미안 병사 하나.
방패와 사람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넬라넬라의 거대한 방패에 들이받힌 휴미안 병사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피범벅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하늘을 날았고, 팔과 다리가 한 짝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보병대장은 그 참혹한 광경을 눈에 담고 경악했으나 곧 넬라넬라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음을 깨달아 급히 측면으로 몸을 날렸다.
부우우우웅!!
“크하아아악…!!”
방패의 측면으로 피한다고 몸을 날린 상황에서 추가로 날아든 바스타드 소드.
넬라넬라의 거대한 방패에 가려져 있었기에 보병대장은 미처 바스타드 소드를 인지할 수 없었고, 방패의 돌진을 피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목전까지 들이닥친 바스타드 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병대장은 공중에서 다급히 신체를 회전시켰고, 왼쪽 어깨가 스치긴 했으나 다행히 그 섬뜩한 대검을 피해낼 수 있었다.
바닥을 굴러 착지를 마친 보병대장은 불에 덴 듯이 밀려드는 통증에 절창(??)이 남은 자신의 왼쪽 어깨를 붙들고 신음을 흘렸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보병대장을 지나쳐 간 넬라넬라는 보병대원 둘을 더 치어 죽이고 나서야 돌진을 멈췄다.
어쨌든 그녀의 위압적인 돌진은 멈췄고, 넬라넬라는 경장보병대의 한복판에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넬라넬라를 에워싸 죽이고 나서 대장을 잃은 오크군을 침착하게 상대해야겠다고 생각한 보병대장.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이 터무니없고 안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음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푸우욱!!
주변을 포위한 채 타워 실드를 들어 원형의 벽을 만들고 있었던 오크군.
그들의 견고한 방패 진형의 사이에서 무언가 쏜살같이 날아와 보병대장의 허벅지에 깊숙이 박혔다.
그것은 팔의 반만 한 짧은 길이의 볼트(Bolt)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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