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대학살이 있으라 (4)
* *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안 그러면 다 죽는다고 이 새끼들아!!!”
눈에 시뻘겋게 선 핏발과 목 위로 도드라지게 올라온 핏대.
모두 지휘관의 절박한 심경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모습들이었다.
주변에서는 대열조차 정비되지 않아 엉망으로 모여 있었던 병사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떠밀려 그제서야 마력석을 장전하려고 포켓에 손을 찔러 넣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베아트리스를 상대하느라 화기의 마력을 모조리 소모해 버린 병사들뿐이었고, 심지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느라 새 마력석을 장전할 틈도 없었던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
“빨리!!! 빨리!!! 지금 요격하지 않으면 난전이란 말이다!!!!!”
지축을 뒤흔드는 웅장한 기세의 돌진.
평균 이백오십 멘톨에 달하는 종족인 오크와 평균 사백 내지는 오백 멘톨에 육박하는 오우거.
그들의 저돌적인 맹진(??)은 가히 천재지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보이고 있었다.
오크와 오우거의 돌진이 만든 대지의 진동 때문인지, 그들에게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인지.
휴미안 병사들의 다리는 나부끼는 갈대처럼 흔들흔들 떨려오고 있었다.
특히 가장 선두에 선 우두머리들.
삼백 멘톨에 다다르는 오크와 육백 멘톨에 육박하는 오우거.
오크와 오우거치고도 상당한 거구를 자랑하는 베리베리와 오운의 기세는 더욱 위압적이었다.
“헤모니겐트를 위하여!!!!!”
“파괴!!! 분쇄!!! 박살!!!!!”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베리베리와 오운의 웅장한 포효에 화답하듯 오크와 오우거들은 더욱 우렁찬 함성을 질러냈다.
맹렬한 돌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저마다 무기를 치켜들어 기세를 드높였다.
단연 장엄하다고 칭송할 수 있을 마왕군의 돌진은 허둥지둥 화기를 정비하고 있었던 휴미안군과 드디어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와직!!! 콰직!!!!
콰드드득!!! 콰득!!! 쿠드드드득!!!
오크군이 돌진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방패를 치켜들어 휴미안 병사들을 들이받았다.
전력으로 돌진하던 오크의 체중이 실린 두껍고 거대한 강철의 방패.
그것에 부딪힌 전방의 휴미안 병사들은 그야말로 핏덩어리의 곤죽이 되었고, 전신이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비산하는 흉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하나의 돌기둥 같았던 우람한 오우거의 팔이 휘둘러지자 휴미안 병사들은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며 줄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형편없는 모양으로 공중을 날았다.
커다란 바위 같은 오우거의 주먹이 연신 주변을 내리찍자 한때는 휴미안이었던 납작한 핏덩어리가 연이어 생겨났다.
쭈우우우웅!
“쿠아아아아아아!!!”
콰드드드드득!!!
다급히 마력석 장전을 완수한 휴미안 병사 하나가 즉시 총기를 들어 전방의 오우거 하나에게 마력광선을 쏘았다.
그러나 한 줄기의 마력광선으로는 칼날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질긴 오우거의 가죽을 뚫을 수 없었고, 오히려 흉포한 오우거의 화만 돋우게 된 셈이 되었다.
뜨거운 마력광선에 노출되어 오우거의 피부에 깊은 화상이 생기긴 했으나, 전력에 이상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에 화가 난 오우거가 박수하듯 양손의 손바닥을 힘껏 부딪쳤고, 그 사이에 끼어 있던 휴미안 병사는 손바닥에 잡힌 모기처럼 빨간 핏물을 뿜으며 납작해졌다.
철컥! 철컥!
“제발… 제바아아알…!!”
포병대의 포수 하나가 자신의 마력포를 필사적으로 만지고 있었다.
포신의 덮개를 열고, 마력석을 보호하는 내부 덮개를 열어 고갈된 마력석의 고정 장치를 다급하게 풀고 있었다.
달달 떨려오는 손을 어떻게든 바로잡으려 애를 쓰고, 어떻게든 신속하게 공격 수단을 되찾으려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었다.
콰직!!!
“커…!! 컥…!”
마력포의 마력석을 장전하는 와중에도 주변 상황을 살피던 포수.
그의 바로 앞에서 휴미안군 사수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클리버(Cleaver)를 치켜든 오크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기를 가로로 들어 방어 자세를 갖췄던 사수.
그러나 오크의 클리버는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총기를 가볍게 반으로 가른 뒤, 그의 머리까지 반으로 쪼개버렸다.
뇌가 반으로 갈라지며 즉사한 상황에서도 그의 신체는 아직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인지, 강하게 조여진 성대를 비집고 허파의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말이나 비명도 아닌 한낱 보잘것없는 바람 소리가 이 휴미안 사수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히, 히이이이이…!!”
휴미안 사수의 머리를 단숨에 쪼개버린 오크가 시선을 돌렸고, 떨리는 손으로 마력포의 마력석을 장전하고 있던 포수를 바라보았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이에서 새로운 적으로 시선을 옮긴 오크는 지체하지 않고 피범벅의 클리버를 치켜든 채 포수에게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철컥!!
“돼, 됐다!!!”
콰아아아아앙!!!
포수는 장전이 완료되자마자 재빨리 포신의 덮개를 닫고 조준 과정을 생략한 뒤, 바로 마력포를 발포하였다.
새로운 마력석이 장전된 마력포는 붉은 마력 구체를 뿜어냈고, 포수에게 달려들던 오크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히, 히이… 꼴 좋다!!!”
거대한 바위도 산산이 부술 수 있는 마력포.
휴미안 포수는 자신이 발포한 마력포의 위력을 똑똑히 알고 있었고, 한 차례의 위기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포수를 표적으로 삼았던 오크는 조준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이었고, 그에 따라 지근거리에서 직격당했으니 상대는 분명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거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키리리리리릭!!
콰욱!!
“커…! 어억…!!”
마력포가 명중해 폭발을 일으키며 생성된 짙은 연기.
그 시커먼 연기의 내부에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왔고, 포수의 흉곽을 대각선으로 쪼개며 깊게 틀어박혔다.
허파가 반으로 찢어짐과 동시에 기도에서 역류하는 피를 뿜으면서도 포수는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서서히 폭발로 인한 연기가 걷히며 드러난 오크의 모습은 실로 건재했다.
오크는 자신의 강철 방패를 치켜들어 폭발을 견뎌낸 것이었다.
비록 강렬한 폭발에 방패가 못 쓸 지경으로 부서지긴 했으나, 나머지 폭발의 여파는 견고한 갑옷과 오크 특유의 질긴 가죽으로 별다른 부상 없이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폭발을 견뎌낸 오크가 연기 속에서 던진 것은 부서진 강철 방패의 조각이었다.
총 세 조각으로 갈라져 부서진 방패의 잔해를 즉시 무기로 사용한 셈이었다.
휴미안 포수는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했더라도, 자신은 오늘 분명 어떻게든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고.
쭈우우우웅!! 쭈우우우웅!! 쭈우우우우우웅!!
“쿠워어어어어어어!!!!!”
콰직!! 콰드드드득!! 콰아아아앙!!! 콰지지직!!!
지성을 가진 종족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했던 오우거.
그들 중에서도 육백 멘톨에 다다르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오우거 치프, 오운.
그는 아군이 위험하지 않도록 그 스스로가 가장 위험한 장소들을 자처해서 돌진하고 있었다.
그가 주로 목표로 삼는 것은 마력석의 장전을 마치고 대형을 구축하기 시작한 휴미안 병사 무리였다.
발포할 수 있는 이들끼리 모여서 어떻게든 반격의 기반을 마련하려던 것을 철저히 분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준비된 자신들의 화기를 필사적으로 쏘아댔고, 오운은 마력광선과 마력포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체구에 걸맞은 그의 근육과 가죽은 무척이나 단단하고 질긴 것이었기에, 너무 많이 피격당하지만 않는다면 그의 신체는 일부 화상을 입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런 복잡한 난전 안에서 어떠한 지시 없이 각자가 대형을 구축하기란 좀처럼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저항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오운을 발견한 뒤 방아쇠를 한두 번 당기는 정도에서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우거 치프의 접근을 허용한 까마귀 무리에게는 기억할 가치도 없을 정도의 보잘것없는 죽음뿐이었다.
오운이 휘두르는 주먹에 상반신 전체의 뼈가 으스러지며 죽음을 맞이한 시체가 지면을 굴렀다.
오운의 거대한 손아귀에 잡혀 으스러져 죽은 시체의 입에서는 그의 내장이 토해졌다.
오운의 거구를 날리는 돌진에 치여 전신의 뼈가 박살나 죽은 시체는 신체가 조각조각 분리되어 공중을 날았다.
오운이 집어 던진 휴미안 병사의 시체에 부딪혀 죽은 시체는 참혹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던져진 시체와 하나가 되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히, 히이이이이…!!!”
“저, 저건 안 돼…!!”
“도망쳐!!!”
또 한 무리의 휴미안 병사들을 전멸시킨 오운이 거센 포효를 내지르자 그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던 휴미안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무기를 집어 던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거대한 괴물.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티끌만 한 저항의 의지조차 모조리 상실한 채, 허둥지둥 등을 돌려 달아나는 이들은 좋은 표적에 불과했다.
등을 돌려 도망치는 휴미안 병사들은 모조리 오크와 오우거에 의해 가볍게 참살되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주에 성공한 이들은 결단코 단 한 명조차 없었다.
“좋은 휴미안은!!!”
콰지지지직!!!
“오로지!!!”
콰아아아아앙!!!
“죽은 휴미안뿐이다!!!!!”
콰지지직!! 콰지직!!! 콰지지지지직!!!!
비명을 지르는 듯 아가리를 쩍 벌린 해골.
그 살벌한 문양이 양각된 거대한 배틀 액스는 한낱 휴미안 따위가 들기에는 장정 다섯이 붙어도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베리베리는 그런 거대한 배틀 액스를 한 손으로 휘두르고 있었으며, 다른 한 손에는 그의 체격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강철의 타워 실드를 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베리베리는 그 거대하기 짝이 없는 배틀 액스를 자유자재로 가볍게 휘두르는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볍게 휘두르고 있다 해서 그것이 실제로 가벼운 것은 아니었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휴미안 병사들이 그 거대한 배틀 액스에 부딪혀 단숨에 절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전방을 향해 달리면서 배틀 액스를 마구 휘둘러대는 베리베리.
두려움에 몸이 굳어 있었던 휴미안은 머리부터 가랑이 끝까지 신체가 반으로 양단되었다.
베리베리를 향해 총기를 조준했던 휴미안은 베리베리가 아무렇게나 휘두른 배틀 액스의 측면에 부딪혀 피범벅의 고깃덩어리가 된 채 공중을 날았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휴미안은 어떻게든 살겠다고 두 팔로 바닥을 기다가 얼마 못 가서 숨이 끊어졌다.
용기를 내어 베리베리의 등에 올라타 단검을 내리찍은 휴미안은 베리베리가 반사적으로 머리를 휘두르자 그의 강철 투구에 안면이 함몰되어 즉사했다.
그가 휘두른 단검은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목덜미의 틈을 노렸으나, 연약한 휴미안의 신체로 휘두른 단검 따위는 삼백 멘톨에 달하는 거대한 오크의 가죽을 뚫어내지 못했다.
“모두 죽여라!!! 하나도 남김없이 으깨버려라!!! 사지를 잘라 피를 뿌려라!!! 이 더러운 약탈자들의 시체는 폐하께서 이룩하실 생명의 땅에 소중한 거름이 될 것이다!!!!!”
베리베리가 돌진한 궤적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확연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쇠비린내가 진동하는 붉은 길.
피와 내장, 산산조각난 육편들이 흩뿌려져 만들어진 시체의 길.
한 차례의 긴 돌진을 통해 시뻘건 죽음의 길을 만든 베리베리는 아군을 향해 전의가 끓어오르는 호령을 내질렀다.
그의 우렁찬 호령에 오크와 오우거는 일방적인 살상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베리베리는 피범벅의 배틀 액스를 다시 치켜들었다.
그의 배틀 액스에 양각된 해골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해골의 쩍 벌어진 아가리에 휴미안의 살점이 틀어박혀 있어 더욱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베리베리는 다시 한번 돌진을 감행하며 포효했다.
“헤모니겐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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