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대학살이 있으라 (2)
* * *
드높은 상공에서 발생한 강렬한 폭음.
그것이 지면에 도달하기도 전에 먼저 도착한 것은 베아트리스였다.
파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마도 거병 하나의 중심부를 뚫고, 그것을 관통한 채로 지나가 지면에 착지한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는 마도 거병에 접근한 순간 크게 회전하며 오른손의 아다만티움제 사슬톱으로 단단한 합금갑(???)의 표면을 갈라버렸고, 마도 거병의 내부에 진입하자마자 연이어 다시 한번 회전하여 그 내부를 왼손에 발동한 오백 멘톨의 거대한 마나 소드로 가르며 꿰뚫었다.
신체를 두 번 회전시키며 마도 거병의 내부를 철저히 분쇄한 베아트리스는 또다시 한번 회전하여 사슬톱으로 마도 거병의 합금갑 등판을 가르고 빠져나와 비로소 지면에 착지한 것이었다.
마도 거병의 합금 표면을 가르는 두 번의 공격과 그 내부를 분쇄하는 한 번의 공격이 연달아 쏟아졌으나, 휴미안군은 그것을 단 한 번의 굉음으로만 인식했을 정도로 그 연속된 참격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심지어 휴미안군은 베아트리스가 상공에서 낙하하던 순간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놓쳐 버리기까지 했다.
그녀의 마력 방출로가 가동되어 가속도가 붙으며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휴미안들의 눈에는 그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마도 거병이 파괴되는 동시에 강대한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대지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쿠르르르르릉!!
베아트리스가 낙하 중에 음속을 돌파하며 발생한 대기의 폭발.
그것의 뇌성과도 같은 진동이 베아트리스가 지면에 착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뒤늦게 전해지고 있었다.
긴박하고 공포스러운 이 상황에서 휴미안들은 깊게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분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상황을 파악하는 일 또한 여의치 않았으나, 이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휴미안들은 과정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도 결과만큼은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현재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동시에 철저히 파괴되어 지면에 쓰러지고 있는 마도 거병이 베아트리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는 현실.
마도 거병의 대열 한가운데에 착지한 베아트리스는 더 이상 휴미안 병사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앞서 행해진 집중 사격에서 무기의 마력석이 고갈되었고, 지금까지 그것을 장전할 시간조차 여의치 않았던 것이었다.
그나마 마력석의 마력이 조금 남아있었던 병사들조차 베아트리스가 자신들의 가운데에 난입해 학살을 벌이는 순간 마구잡이로 난사를 벌여 더 이상 마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베아트리스가 마도 거병을 상대하는 사이 새 마력석으로 장전한다면 다시 발포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죽음의 공포에 몸이 마비된 휴미안 병사들에게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나 다름이 없었다.
카앙!! 카앙!!
음속을 돌파하는 터무니없는 속도로 날아와 마도 거병 한 기를 순식간에 고철덩어리로 만든 베아트리스의 압도적인 무력.
후방의 마도 거병들이 전방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거의 일천에 가까웠던 휴미안군의 수를 반절까지 줄여버린 베아트리스의 섬뜩한 살상력.
지휘관은 더 이상 명령을 한답시고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명령을 하던 죽음과 동의어나 다름없을 저 정체불명의 하녀에게는 하등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현재도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고 조종대가 마도 거병을 움직이고는 있었으나, 섬광이나 마찬가지인 베아트리스의 움직임 앞에서는 조준조차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마도 거병 한 기를 분쇄하고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지면에 착지한 베아트리스는 또다시 모습을 감췄고, 그 순간 주변의 마도 거병 두 기의 다리가 하나씩 절단되었다.
다리를 하나씩 잃은 두 마도 거병은 무게 중심이 기울어져 나머지 다리들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휘어버렸고 이내 지면에 쓰러져 버렸다.
키이이이이이잉!!! 쿠슉!!
키이이이이이이잉!!! 쿠슉!!
지면에 몸을 눕힌 마도 거병들은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손쉽게 파괴되었다.
아다만티움제 사슬톱으로 합금갑을 가르고 그 내부에 오백 멘톨의 마나 소드를 쑤셔 휘저으면 가볍게 정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휴미안들의 상식으로는 마도 거병의 합금갑을 갈라내는 일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비현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휴미안이 개발한 합금은 무려 드래곤인 케르디하크와 함께 연구하여 만들어낸 걸작이었고, 이것의 성능은 케르디하크가 보증하는 것이었다.
케르디하크와 휴미안의 합작이었던 이 합금은 케르디하크가 자신의 벼락조차 견뎌낸다고 부연 설명을 해가며 자신 있게 선보인 세기의 개발품이었다.
드래곤이 쏘아내는 벼락을 수십 번이나 맞아야 겨우 녹기 시작하며, 드래곤이 시전하는 제8위계의 파괴 마법을 무려 여덟 번이나 버티는 강대한 합금인 것이었다.
드래곤인 케르디하크가 전력을 다해 공격해도 버텨내는 합금을 단 한 번에 갈라버리는 사슬톱이란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지휘관은 더 이상 반격의 의지를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지휘관님!!”
“…….”
“이이익!! 이럴 때가 아닙니다!!!”
퍼억!
조종대장은 다급히 지휘관을 붙들고 흔들었으나 지휘관은 넋을 잃은 채 말을 잊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지휘관의 명령이 필요했던 조종대장은 지휘관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조종대장의 주먹이 세차게 관자놀이를 가격하자 지휘관은 뒤로 풀썩 쓰러졌고, 비로소 조금 정신이 드는 모습이었다.
“마도 거병으로도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차라리 마도 거병 전기를 오토 모드로 전환해 두고 후퇴를 합시다!! 그래도 마도 거병이니까 시간은 벌 수 있습니다!!”
“그깟 시간 벌이…”
“그깟이 아닙니다! 우리가 후방에 대기시켜 놓은 라이노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속도를 내서 전장을 이탈할 수 있고! 달리는 라이노에서 사격을 하면 반격과 후퇴가 동시에 가능합니다! 사격과 포격으로 버티면서 모든 라이노가 사방으로 흩어진다면 일부는 사망하더라도! 추격을 받지 않은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습니다!!”
생존에 필사적이었던 조종대장은 나름대로의 방책을 생각해 둔 상황이었다.
라이노(Rhino)는 휴미안 병사들이 이용하는 수송용 탑승 차량의 이름이었다.
상당히 큰 차체를 가졌고 강한 힘으로 많은 인원을 수송할 수 있었으며, 힘이 강한 만큼 속도를 내는 일에도 거침이 없는 편이었다.
아예 기동성을 위해 개발된 스캐빈저보다는 느릴지라도 다리로 도망치는 것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남은 마도 거병이 몇 기지?”
“총 16…”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총 14기입니다…….”
대화하는 도중에도 두 기의 마도 거병이 폭발을 일으키며 산화했다.
마도 거병이 파괴되는 순간 내부의 연료 저장고에 불이 붙어 폭발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했다간 마도 거병과 휴미안 병사들은 차 한 잔 마실 시간보다도 빠르게 모조리 전멸할 판이었다.
지휘관은 애써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부로 모든 마도 거병은 오토 모드로 전환한다! 적을 사살하라는 명령만 부여한다! 나머지 병사들은 마도 거병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후방에 대기 중인 라이노를 향해 전력으로 달린다!! 살고 싶으면 뛰어!!!”
지휘관의 단호한 명령이 넋을 놓고 몸을 떨어대고 있었던 병사들의 정신을 깨웠다.
얼이 빠져 있었던 터라 지휘관의 명령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병사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단지 몇 가지의 단어나 짧은 문장을 겨우 이해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앙!!!
“히, 히이이… 히이이이이익!!!”
“흐아아아아아아악!!!!”
그들이 넋이 나가 지휘관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지 못했던 시간.
그 짧은 순간에도 마도 거병 한 기가 자비 없이 폭발해 파괴되었다.
베아트리스는 몇 번의 파괴 과정 끝에 마도 거병 내부의 연료 저장고 위치를 파악했고, 합금갑을 가르고 내부를 파괴하는 일련의 과정 없이 합금갑의 표면에 사슬톱을 찔러 넣는 방식으로 연료 저장고를 즉각 파괴하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사슬톱이 합금갑과 연료 저장고의 금속판을 가르는 순간 발생한 불꽃은 연료액과 닿을 수밖에 없었고, 불이 붙은 연료액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더는 두 번을 공격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단 한 번의 사슬톱만으로 마도 거병 내부에 폭발을 일으켜 딱히 보호 수단도 없는 연약한 내부를 의도된 폭발로 박살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휴미안군의 최종 병기가 더욱 간단하게 파괴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베아트리스의 일방적 파괴 행위는 두 배 이상 빨라진 셈이었고, 휴미안 병사들에게 더는 시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화마에 휩싸여 기능을 정지하는 마도 거병.
‘걸어 다니는 강철의 성채’라 일컬어지던 최종 병기가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은 휴미안들의 흐릿해진 정신을 바로잡기에 충분한 충격이었고, 휴미안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어떻게든 그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후방.
라이노.
그리고 달린다.
이 정도만 이해하더라도 휴미안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일 여건은 충분히 갖춰지는 셈이었다.
그나마도 못 알아들은 휴미안 병사들도 아군들이 달리는 방향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기에 그다지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이 순간에도 마도 거병들이 내부에서부터 불을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저 마도 거병들이 전멸하는 순간이야말로 휴미안 사냥의 진정한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천 년의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을 사냥하기만 했었던 잔혹한 정복자들은 비로소 위치가 뒤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휴미안이 사냥당할 차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