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대학살이 있으라 (1)
* * *
비참하게 산화하는 휴미안 병사들.
그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소리.
그들의 피와 내장이 흩뿌려지고 잘게 갈린 고깃조각이 사방에 비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량 학살이었다.
“허으으으으…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엄마!!! 엄마!!!!”
“이, 이히히히히히… 이히힉… 힉…….”
사슬톱이 한 번 휘둘러지며 생긴 처참한 죽음이 둘.
두 병사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는 동일한 중상을 입었다.
사실상 이것은 사망 선고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으나, 둘의 반응은 상이했다.
자신의 신체가 반으로 절단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머니를 찾는 병사.
이 모든 고통과 공포에서 해방되어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병사가 비참하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어머니가 달려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안아주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발작적으로 엄마를 부르던 병사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에 안겨 고개를 파묻는 환상을 보며 생을 마감했다.
다른 병사는 실성한 듯이 웃으며 자신의 쏟아진 내장을 쓸어 담고 있었다.
막대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그의 신체는 엔도르핀을 미친 듯이 뿜어내는 중이었고, 그 탓에 신체가 양단된 극악한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괜히 좋아진 기분을 떠안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자신의 내장을 쓸어 모아 어떻게든 흉곽의 내부로 밀어 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내장들을 흉곽 안으로 꾹꾹 눌러 넣을 때마다 피로 가득 찬 내장이 압박을 받아 피를 연거푸 토하게 되고 있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우악스러운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웃음이 멎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이 괴물…!! 괴물…!!! 괴물년아아아아아아!!!”
쭈우우우웅!!! 쭈우우웅!!!
“크허…!! 하아아악…!!!”
“케윽…!!!”
극도의 공포에 질린 휴미안 병사 몇은 사수로서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실수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적이 난입했다 하더라도 아군의 한복판이라면 결코 발포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
그나마도 제대로 된 조준도 하지 않고 마구 발사하는 마력광선이었기에 베아트리스가 그것을 손쉽게 피해낸다는 결과는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무차별 난사의 피해는 고스란히 아군들이 떠안게 되었다.
일직선에 닿는 모든 것들을 힘이 닿는 순간까지 꿰뚫고 지나가는 마력광선은 선상의 아군 병사 하나를 꿰뚫고도 그 뒤에 셋이나 되는 병사를 추가로 꿰뚫으며 사라져갔다.
이미 공포에 물들어 마력석이 고갈될 때까지 무차별 난사를 할 지경이었던 병사는 결국 다른 아군의 손에 사살되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런 미쳐가는 병사들이 끊이지 않고 속출한다는 것이었다.
“사격 중지!!! 도망쳐라!!! 이 새끼들아!!! 사격하지 말고 도망치란 말이다!!!! 야!!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면서도 통신 마도구를 부여잡고 악을 쓰는 지휘관.
그는 이미 아군의 한복판에 난입해 버린 하녀에게 뒤늦은 사격을 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짓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그녀의 돌진을 저지하기 위해 내렸었던 탄막 형성의 명령은 그녀의 움직임을 단 한 순간도 늦출 수 없었고, 그녀의 접근을 허용한 이 상황에서는 사격이란 행위가 오히려 아군의 전멸을 앞당길 뿐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공포에 질려 혼란에 빠진 무리를 제정신으로 돌려놓는 건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붓는다 할지라도 연약한 휴미안 하나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써걱!! 지이이이이잉!!! 파지지지지직!!!
닿는 것은 모조리 분쇄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사슬톱.
베아트리스는 아다만티움제 사슬톱만을 이용하는 상황이 아니었고, 매 순간 새로운 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던 그녀의 왼손이 의도적으로 모든 손가락을 붙인 채로 펼쳐지자, 손의 전체를 감싸고도 이백 멘톨은 거뜬히 넘는 길이의 마나 소드가 생성되었다.
방대한 루이나가 고도로 압축된 칠흑의 마나 소드는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양단하는 위용을 보였다.
상황을 분석하거나 계산하는 등의 온갖 정보를 나열하던 마도 문자.
그 복잡한 마도 문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
찬연히 빛을 발하던 눈동자의 중심에 동공이 의도적으로 열리는가 싶더니 그 내부에서 시커먼 광선 한 줄기가 발사되었다.
목화로 짜낸 실과 같이 가늘었던 칠흑의 광선은 지나치는 선상의 모든 존재를 갈라 내었다.
간혹 병사들이 무리 지어 밀집해 있는 위치로 뛰어들었다 생각되면 여지없이 초고압의 전류를 방출했다.
막대한 양의 전류가 대기와 지면을 타고 번져나가며 그에 닿는 모든 생명체를 새까맣게 태워버리고 있었다.
무작위로 발생하는 전류의 물결은 평범한 휴미안의 몸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재해나 다름이 없었다.
콰우우우우우욱!!! 콰드드득!!! 쩌거거거걱!!!
네 개의 추진용 마력 방출로 역시 십분 활용하여 신속하고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마력 방출로에서 흑염과 같은 압축 마력파가 뿜어질 때면 섬광같이 쇄도하는 사슬톱에 여지없이 열댓의 휴미안이 양단되었다.
순수한 신체 완력만으로도 강철을 찢어발길 수 있었던 그녀가 마력 방출로의 추진력에 힘입어 날리는 발차기는 연약한 휴미안 서넛쯤은 우습게 산산조각낼 수 있었다.
구형의 방어 마법을 시전하고 마력 방출로를 이용한 돌진을 감행하면 마치 자이언트 필드 바이슨의 맹렬한 돌진에 받힌 것처럼 돌진 선상의 모든 휴미안들이 피범벅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지면에 처박히거나 처참히 날아가 나뒹구는 것이었다.
우우우우웅… 쿵!!! 우우우우웅… 쿵!!!
모두가 기다려 마지않은 마도 거병의 전기(??)가 드디어 전선에 도착했다.
애초에 최후방에 위치해 있었던 마도 거병 열아홉 기가 도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폭이 넓은 마도 거병이라 할지라도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반절의 병사들이 살아남은 시점에서 마도 거병들이 제 위치에 도착했으니, 이 전황의 참혹함을 떠올려 본다면 그나마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몰아치기 시작한 죽음의 물결에 노출되었던 지휘관은 털끝만큼도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즉각 사살이다!! 전탄을 모두 퍼부어라!!! 마력광선포를 중심으로 대규모 폭격을 진행한다!!!”
“지, 지휘관님!!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아군이 있습니다!!!”
“닥쳐라!!!! 이래 봬도 상당히 많이 빠져나온 거다!!! 지금까지도 퇴각을 못해서 발이 묶여 있는 놈들이라면 기다려 줘 봤자 무리야!!! 당장 쏴라!!! 이건 명령이야!!!!!”
아직 아군들이 일부 남아서 교전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무차별 전탄 폭격을 명령한 지휘관.
그의 명령은 결코 비정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절박한 생존 본능에 진실한 모습이었다.
지금이라도 폭격을 가해서 저 괴물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전멸.
다리가 풀리거나 부상을 당했거나, 반격이라는 이름의 틀려먹은 수단을 택한 이들은 구하려고 기다려 봐야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이미 죽을 예정인 이들을 무시하고 폭격한다면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방도가 마련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참혹한 선택에 마도 거병 조종대의 대장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자신들의 손으로 아군을 사살할 수 없어 재고를 조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이미 답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재차 떨어진 지휘관의 발작적인 명령으로 등이 떠밀려 마도 거병을 움직이게 되었다.
즈우우우우웅!!!
마도 거병 열아홉 전기가 동시에 마력을 모으는 장관.
마도 거병의 모든 조작과 관리를 맡고 있었던 조종대장의 눈으로도 처음 보는 웅장한 광경이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의 복무 기간 동안 마도 거병을 통해 전투에 임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와 조종 대원 전체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무리 없이 작전에 임할 수는 있었으나, 실제로 적을 향해 공격을 가하는 경험은 처음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첫 전투에서 마도 거병 열아홉 기의 마력광선포 일제 사격을 진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었다.
그만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이례적인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 쿠구구구구!!! 쿠구구구구구구구!!!!!
일제히 쏟아지며 베아트리스를 향해 나아가는 마력광선포.
지면을 깊게 가르며 쇄도하는 거대한 마력광선이 베아트리스를 향해 열아홉이나 뻗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단지 공중으로 거센 도약을 했을 뿐이었다.
오로지 각력만으로 뛰어오른 그녀는 아득히 먼 상공으로 날아올라 모습마저 희미해졌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베아트리스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오로지 휴미안 병사들의 죽음뿐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한 차례의 강대한 공격이 지나간 자리.
마도 거병 최강의 무기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
공격이 닿기도 전에 목표를 잃어버린 마도 거병들은 이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전탄 폭격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단지 지역 근방의 지형을 바꿔버릴 정도의 강대한 공격이 지나가고, 밀려났던 대기가 거세게 몰아쳐 돌아오며 생긴 바람 소리만이 비참하게 죽은 자들을 애도하듯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저, 전탄 폭격…….”
“네…?”
“저, 전탄 폭격하라고 했잖아!!! 왜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하늘을 보란 말이다!!!!”
아득히 먼 상공까지 날아올라 모습을 감춰 버렸었던 베아트리스.
그녀가 압도적인 속도로 낙하하며 마도 거병의 전열(戰?)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투우웅!! 투웅!! 투우우웅!!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뒤늦게 목표를 포착한 마도 거병 조종대는 발포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쏟아 부었다.
폭발하는 포탄을 발사하는 포신.
맹렬한 연사 속도로 마력탄을 퍼붓는 포신.
내부의 폭발을 통해 거대한 강철 포탄을 쏘아 올리는 포신.
모든 공격 수단들이 베아트리스를 향해 사용되었다.
우우우우웅… 슈콰아아앙!!!
그러나 모든 휴미안군의 염원을 담은 맹렬한 전탄 폭격은 베아트리스에게 단 한 발도 닿지 못했다.
그녀의 마력 방출로에 강대한 마력이 모였다가 방출된 것이었다.
가뜩이나 압도적인 속도로 낙하 중이었던 베아트리스.
중력의 가속도에 마력 방출로로 인한 추진력이 더해지자 그 속도는 말 그대로 한순간의 섬광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대기의 저항이 가져오는 압력을 버티기 위해 방어 마법을 시전한 베아트리스.
사랑하는 주인이 선물해 준 소중한 의상이 찢어져 버릴까 염려되어 시전한 것일 뿐이었지만, 이는 그녀가 보이고 있는 속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력 방출로를 이용해 추진력을 더한지 불과 일 초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음속을 돌파해 버렸고, 강렬한 굉음을 동반한 대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급격히 응축된 대기의 수분으로 인해 원형의 증기가 발생했다.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내리꽂히는 그녀의 비행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그녀를 격추시킬 만큼의 강대한 무기조차 없었다.
휴미안군은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죽음을 허망하게 맞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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