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킬링 머신 (4)
* * *
걸어 다니는 강철의 성채.
거대한 금속의 괴물.
재앙의 기계 장치.
수많은 이명을 지닌 파괴자가 휴미안군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휴미안이 창조한 파멸의 힘.
아스타리스 대륙의 잔혹한 정복자들의 모든 마도 기술이 융합된 최악의 산물.
최종병기라 일컬어지는 마도 거병이었다.
우우우우웅… 쿵!!!
두 개의 관절을 지닌 거대한 다리 네 개를 움직이며 전진하는 마도 거병.
다리의 움직임은 결코 신속하다고 볼 수 없었으나, 워낙 크기가 거대한 기계였기에 백 년 묵은 나무 한두 그루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보폭을 지녀 상당히 빠른 전진을 보이고 있었다.
육중한 거체가 움직이고 지면에 발을 디딜 때마다 지축이 흔들렸다.
위로 길쭉한 타원형의 거대한 몸체를 지닌 마도 거병.
불그스름한 빛이 감도는 회색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마도 거병의 신체는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금속의 빛이었다.
이는 휴미안들이 창조한 합금으로 제작되었다는 증거가 되었고, 범상치 않은 경도(??)를 자랑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이었다.
거체의 곳곳에 공격을 위한 포신이 장착되어 있었고, 외부에는 대규모 전술 마법을 위한 마력 회로들이 새겨져 있었다.
정면의 정 중앙에는 둥글게 움푹 파인 부분이 존재했는데, 그 중앙에 붉은색의 거대한 구체가 박혀 있었다.
하단에는 사방으로 하나씩 뻗은 네 개의 다리가 존재했는데, 각각 무릎과 발목에 해당하는 관절이 있어 평탄하지 않은 지면에서도 나아갈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추면서도 마도 거병의 육중한 거체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을 만한 각도를 구현한 것이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거대했던 이 금속의 기계는 걸어 다니는 강철의 성채라는 이명이 생긴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흐하하하하!! 마왕도 견뎌내지 못한 최강의 병기다!!! 너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나!!”
다급히 후방으로 물러난 휴미안군의 지휘관은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높였다.
여전히 그에게서는 긴장과 위기감으로 인해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으나, 이토록 거대하고 웅장한 마도 거병이 패배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자신이 생긴 것이었다.
그가 언급한 마왕에 얽힌 일화는 어떻게 보면 사실이었다.
수천의 마도 거병이 쏟아내던 마력광선포에 네로멜티아의 마력 장벽이 붕괴해 버렸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 년 전의 휴미안 공습 당시의 내막을 알고 있었던 베아트리스는 지휘관의 발언에 무척 심기가 불편해졌다.
마왕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르고 있는 지휘관은 마도 거병의 힘으로 마왕을 제압했었던 것이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마도 거병이 용사 일행을 지원하며 함께 전투에 임했었을 거라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천 년 전의 구형도 마왕을 무찌를 정도의 위용을 보였는데, 네가 마왕보다 강하지 않은 이상 이 마도 거병에 거스를 수 있을 방법은 없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자비를 베풀어 줄 수도 있다!!!”
순간 베아트리스의 푸른 눈동자가 강하게 빛을 발했다.
타오르는 듯 강해진 푸른 안광이 먼 후방의 지휘관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순간, 지휘관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던 모든 휴미안이 느꼈다.
저 무시무시한 하녀가 지금 움직이려 하고 있다고.
“마도 거병 HAK357! 공격하라!!!”
우우우우우우웅…!!
지휘관의 명령을 받은 전방의 마도 거병 한 기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금속의 내부에서 무언가 맹렬히 회전하는 듯한 굉음이 발생했고, 마도 거병의 거체 곳곳에서 강렬한 붉은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괴의 성질을 지닌 루이나와는 상반된 마나 비타나(Vitana)였고, 현재 베아트리스의 신체를 감싸 휘몰아치는 검은 마력과 상극에 위치한 것이었다.
즈우우우우웅!!!
쿠구구구구구구!!!
순간 마도 거병의 거체 중앙에 위치한 붉은 구체가 강렬한 빛을 발했고, 거대한 구체의 크기와 동일한 크기의 마력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산사태가 난 것 같은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었고, 마도 거병 전방의 지면에 작렬한 마력광선은 순식간에 앞으로 쇄도하며 베아트리스를 향해 뻗어 나갔다.
마력광선이 지나간 궤적에는 지면을 반으로 가를 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고 긴 구덩이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마력광선이라는 이름보다는 포(?)라는 단어를 붙여서 마력광선포라고 지칭해야 할 정도의 규모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휴미안들은 이것을 마력광선포라고 부르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측면으로 빠르게 이동해 그 거대한 마력광선포를 피해냈다.
쿠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앙!!!
베아트리스가 회피함에 따라 지면을 넘어 허공을 가르며 사라진 마력광선포.
그것은 베아트리스의 후방에 위치한 상당히 먼 거리의 카보니 숲을 파괴할 정도로 대단한 위용을 보였다.
마력광선은 멀리 뻗어 나갈수록 점점 흩어지며 힘이 줄어드는 성질을 지녔었다.
그럼에도 아득히 먼 거리에 위치해 있어 손가락 하나 정도로 작게 보이던 카보니 숲에까지 그 여파가 닿은 것이었다.
수십 그루의 나무가 파괴되고 광선에 닿은 바위가 폭발하여 돌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아찔한 광경을 펼쳐냈다.
생명이 가득한 숲.
마왕의 이름 아래 약속된 생명의 땅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카보니 숲에 파괴의 여파가 닿은 것을 보자 베아트리스의 안면에는 혐오의 눈빛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정말이지 휴미안의 손에 닿는 것은… 모조리 망가지는군요.”
철컥!
순간 베아트리스의 오른손이 반으로 갈라졌다.
둘로 갈라진 오른손이 각자 반대 방향으로 젖혀졌고, 그 내부에서 길고 복잡한 구조의 금속 장치들이 뻗어 나왔다.
철컥! 철컥! 철컥!!
길고 복잡한 구조를 가졌으나 상당히 견고해 보였던 금속 장치를 중심으로 하나씩 정체를 알 수 없는 부품들이 조립되거나 금속 장치의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떠한 장치의 뼈대에 불과해 보였던 것이 하나씩 부품을 조립해 나가며 뚜렷한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이었다.
입에 머금은 차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는데 걸리는 시간 정도.
그 짧은 시간 만에 기계 장치는 완성형의 모습을 보였다.
철컹!!
마지막으로 덮개에 해당하는 부품이 씌워지자, 금속 부품들이 가늘게 공명하며 발생한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하나의 사슬톱이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그 사슬톱은 베아트리스의 사라진 오른손 대신 팔에 부착되어 있었다.
베아트리스의 팔길이보다도 더욱 길었던 톱날의 테두리에는 작고 날카로운 칼날이 줄을 지어 붙어있는 사슬이 둘러져 있었다.
마치 포악한 악어의 이빨을 보는 것 같은 그 톱날은 자신의 예리함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번뜩이고 있었다.
사슬톱의 동체는 총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나누어진 동체를 서로 이어주는 파이프와 측면의 배기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체와 톱날의 중앙을 덮는 핸드 가드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중앙에는 붉은빛의 구체형 마력석이 박혀 있었고 바깥 부분에는 구부러진 간이 손잡이 하나가 달려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순간 핸드 가드의 중앙에 박힌 마력석이 환하게 빛을 발했다.
그리고 톱날의 테두리에 둘러진 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슬에 줄을 지어 붙어있었던 칼날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둘러지기 시작하며 그 궤적에 불투명하고 매끄러운 모양의 잔상을 생성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쏴, 쏴라!!! 가진 건 죄다 퍼부으란 말이야!!!”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돌진하기 시작한 베아트리스.
단지 두 개의 다리로 전진하는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고, 휴미안들이 자랑하는 기동형 탑승 차량 ‘스캐빈저’와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투웅!!
투두두두두두두두!!! 투두두두두두두두!!!
즈우우웅!! 즈우우웅!! 즈우우우웅!!
마도 거병 HAK357에게 구성된 모든 종류의 공격 수단들이 베아트리스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소 둥그스름한 원뿔 모양의 나선회전탄을 쏘아대는 포신.
작은 마력탄을 연속으로 빠르게 쏘아대는 포신.
가늘지만 강력한 절삭력을 지닌 붉은 마력광선을 쏘아대는 포신.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콰아아아앙!!!
심지어 닿는 순간 강렬한 폭발을 만들어내는 포탄마저 퍼붓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공격들이 베아트리스를 향해 쏟아졌고, 폭발을 일으키는 종류의 포탄은 베아트리스가 전진하는 방향의 예상 지점에 미리 떨어져 화염과 충격파의 마수를 뻗고 있었다.
그러나 강철도 꿰뚫는 나선회전탄도, 그리즐리 베어도 벌집으로 만드는 마력탄 세례도, 두꺼운 성벽도 가르는 붉은 마력광선도 베아트리스를 감싸고 있는 검은빛의 마력을 뚫을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공격을 피해내는 베아트리스였으나, 빠른 돌진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간혹 어떤 공격은 그냥 맞아내면서 돌진을 하는 것이었다.
휴미안군의 지휘관은 베아트리스가 일부의 공격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욱 당황하여 허둥대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스는 그 모든 공격을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무시하며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포탄이 일으키는 폭발을 뚫고서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고, 속도조차 늦춰지지 않는 것이었다.
“마, 마력광선포는 아직 멀었나!! 다른 공격은 안 먹힌다!! 큰 공격을 맞혀야 돼!!!”
“아, 아직 충전중입니다!! 제시간에 맞출 수 없습니다!!!”
“어, 어떻게든 하란 말이다!!! 벌써 다가왔잖나!!!”
“디펜시브 에어리어(Defensive Area)를 발동하겠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해보라는 지휘관의 다급한 외침에 마도 거병을 원격 조종하고 있던 조종수들의 대장은 시간을 벌기 위해 방어 마력장을 발동시켰다.
마도 거병이 쏘아대는 모든 공격들은 어느 것 하나 치명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자신들에게 맹렬히 돌진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하녀에게는 치명적이라는 말이 결코 통용되지 않았고, 사소한 가랑비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마도 거병 조종대의 대장 역시 지휘관의 발언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던 중이었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저 무시무시한 하녀에게 결코 타격을 줄 수 없었고, 오로지 마력광선포만이 희망으로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강대한 위력만큼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는 것이 마력광선포이기에 발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충전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하녀는 눈앞까지 쇄도한 상황이었고, 충전 시간이 여의치 않았던 조종대장은 벽이라도 쌓아 하녀의 돌진을 조금이라도 늦출 셈이었다.
즈쿠우우우우웅!!!
거대한 돔 형태의 주황색 방어 마력장이 발동되었다.
거대한 건축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방어 마력장이 지면에 닿자마자 거대한 굉음을 내며 토사의 파도를 만들었다.
마도 거병의 거체를 전부 다 감쌀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지닌 디펜시브 에어리어는 마도 거병에게 각인되어 있었던 대규모 전술 마법중 하나였다.
우우우우우웅!!!
마도 거병은 효과를 보지 못하는 공격들을 전부 중단한 상태였다.
이미 마력광선포 외의 약한 공격들은 아무리 퍼부어도 효과가 없다는 게 입증된 상황이니 마력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 마력 충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마도 거병은 모든 마력 회로를 가동시켜 마력광선포를 위한 마력 충전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이 방법이라면 마력광선포를 한 번은 더 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방어 마력장이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어준다면 마력광선포의 충전은 손쉽게 완료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휘관의 희망은 가차 없이 부서졌다.
우우우우우우웅!!!
콰드드드드득…!!! 꽈차아아아아아앙!!!!!
강하게 토사를 흩뿌리며 베아트리스를 막아선 거대한 방어 마력장.
베아트리스는 안면에 실낱같은 변화조차 주지 않았고, 그저 무정하게 사슬톱을 휘둘렀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사슬톱이 마력장에 부딪쳤을 때, 눈부신 불꽃이 요란하게 피어나며 방어 마력장의 견고함을 대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순간이었고, 사슬톱의 접촉을 허용한 마력장은 그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간단하게 부서져 버렸다.
마치 도자기가 깨지는 듯 산산조각 나버린 마력장은 이내 그 모습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수십 발의 포탄 세례에도 결코 흠집조차 나지 않던 디펜시브 에어리어가 단 한 번의 접촉으로 박살나는 순간을 목격한 휴미안군.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일시에 호흡조차 멎을 정도로 경악했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이 모든 광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마력장이 깨지자마자 공중으로 높이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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