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킬링 머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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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무런 무장도 보이질 않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건만, 지휘관은 자신의 손이 왜 이토록 떨려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고서 자신들을 조용히 바라볼 뿐인 그녀의 벽안은 보고 있노라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살벌하게 느껴졌다.
아군의 시체들 한가운데에 오연히 서 있는 저 여성이 무슨 일을 벌일지는 몰라도 그것을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일제 사격…….”
모두가 지휘관의 넋이 나간 것 같은 명령에 벙쪄 버렸다.
전방의 상황은 그야말로 의미불명 그 자체이긴 했으나 상대는 무기 하나 들지 않은 여성으로 보였고, 심지어 전사나 군인의 행색조차 아닌 하녀복을 입은 민간인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사격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며 흘린 명령에 즉각 대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 지휘관님…? 저건 그저 평범한…”
“닥치고 쏘란 말이다!! 쏴라!!! 쏴!!!!!”
옆에 서 있던 부관이 지휘관의 상태를 파악하며 조언을 하려 했으나, 이후에 터져 나온 지휘관의 발작적인 명령에 그의 발언은 가차 없이 끊어져 버렸다.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군대의 규율이 있는 법이었고, 심지어 명령을 내린 상급자는 십인장도 백인장도 아닌 지휘관이었다.
결국 전열에서 사격 준비를 하고 있던 사수들은 자신들이 가진 의문을 애써 미루어 두고서 총기를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쭈우우우웅!!! 쭈우우웅!! 쭈우우우우우웅!!!
수십의 마력광선이 일제히 쏟아지며 선보이는 압도적인 화력.
그 맹렬한 화력을 지닌 광선들이 한 점에 퍼부어지면 강철로 이루어진 전차나 암석으로 이루어진 성벽도 녹이고 태워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강한 화력을 지닌 마력광선도 표적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법이었고, 초월적인 감지 센서가 구성된 베아트리스가 지휘관이 필사적으로 외치며 내린 사격 명령을 듣지 못할 리는 없었기에 마력광선들은 그저 허공을 가르며 뻗어 나가다가 서서히 빛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마력을 빛으로 바꿔 쏘아내는 총기의 광선을 베아트리스는 전부 피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 모든 병사들의 총기 각도를 계산하여 사격 선상을 파악해 대처하고 있었고, 그들이 베아트리스를 맞추기 위해 총기를 어떻게 돌리던 미리 그 선상을 계산하여 피해가고 있는 베아트리스를 맞추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때로는 측면으로 한 걸음.
때로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때로는 공중에 떠올라 신체를 회전시키고.
베아트리스는 단 한 번의 광선도 허락하지 않았다.
“후열 사수 교대 준비!!! 포병대!! 포병대 포격 준비!!”
지휘관은 전열의 사수들이 마력 고갈로 사격이 중단될 것에 대비하여 미리 후열에 대기하고 있던 사수들의 교대 준비 명령을 내렸다.
나아가 사수들의 광선을 모조리 피해내는 베아트리스의 움직임을 보고 사수들만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해 포병까지 동원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쩌어어어어어엉!!!
지휘관의 명령은 그가 상대를 제대로 분석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상당히 정확한 것이었다.
적어도 지휘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열의 사수들이 가동하던 마력광선 총기가 하나둘 빛을 잃어 가고, 마지막 광선이 베아트리스를 향해 발사되었던 순간.
베아트리스는 불현듯 제자리에 서서 광선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휴미안 병사들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환호를 했다.
모든 마력광선을 피해내는 베아트리스의 경이로운 신체 능력을 보고서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던 휴미안 병사들은, 그녀가 공격으로 태세를 전환하기 시작하면 어떤 능력을 보일지 두려웠던 것이었다.
광선을 여유롭게 피해낼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속도로 자신들에게 달려들고, 자신들의 사이를 헤집기 시작한다면 대처할 수 있을 자신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들의 총기에 마력이 고갈되어 가면서 그들은 점차 상대의 반격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가고 있었는데 드디어 상대가 마력광선에 명중 당한 것이었다.
휴미안 병사들은 지휘관의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소리를 낼 수는 없었으나, 저마다 자신의 눈을 희망과 환희로 빛내고 있는 것이 속으로는 힘차게 환호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환희가 절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베아트리스에게 명중한 마력광선이 총기의 마력 고갈로 인해 사라진 순간.
광선의 아른거리는 열기와 시커먼 연기에 가려져 있던 베아트리스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베아트리스는 광선을 향해 손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의 살은 타오르며 사라져 있었으나, 그 너머에는 본래 존재해야 할 뼈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이 보일 뿐인 것이었다.
그나마도 그 금속의 무언가를 뒤덮고 있었던 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력광선을 받아내며 타올라 사라졌던 살.
그것이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며 상처를 지우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당황한 휴미안 사수들이 직면한 현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녀의 상처는 완벽하게 아물어 버렸다.
이것이 지휘관 스스로가 자신의 명령이 정확했다는 확신에 접어든 이유였다.
애초에 마력광선만으로 저 하녀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여유롭게 광선들을 피해내던 정체불명의 하녀가 굳이 한 줄기의 광선만이 남은 상황에서 그것에 노출이 된 상황은 그저 하나의 경우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머리를 가진 저 벽안의 여성은 일부러 광선을 맞아준 것이었다.
이런 하찮은 공격으로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며 이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언을 한 것이었다.
베아트리스의 행동에 의미를 깨달은 지휘관은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
“뭣들 하나!!! 사수 교대!!! 명령 기다리지 말고 즉각 사격하라!!! 포병대 일제 포격!!! 쏴라!!! 퍼부으란 말이다!!!!!”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다그치는 지휘관.
말 그대로 악을 쓰는 지휘관의 다급한 명령에 떠밀려 사수들과 포수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발동시켰다.
또다시 쏟아지는 마력광선의 세례.
추가로 퍼부어지는 마력포의 폭격.
선상에 닿는 모든 것을 태우고 녹이는 마력광선이 베아트리스의 주변 일대를 휘저었다.
비스듬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붉은 마력 구체가 지면에 닿을 때마다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지면이 새빨갛게 물들며 녹아들고 맹렬한 화염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강렬한 폭발이 주변 일대에 작렬하며 지면의 흙과 모래가 공중에 솟구쳐오르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휴미안 병사들이 퍼붓는 필사의 폭격이 주변을 뒤덮은 까닭에 베아트리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주변 일대를 폭격으로 뒤덮어버리는 상황에서 표적의 위치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석의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 될 뿐인 것이었다.
쾅!! 콰아아앙!!! 쿠우우우웅!!!! 쿠콰아아아앙!!!!
쭈우우우웅!!! 쭈우우웅!!! 쭈우우우우우우웅!!!!
타오를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대지.
오로지 흙과 모래뿐이었던 대지에 화염이 타오를 정도로 폭격은 자비 없이 쏟아졌다.
성벽을 무너뜨리는 정도가 아니라 작은 성채 하나쯤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의 폭격이 쏟아진 것이었다.
휴미안 사수들은 몇 번이나 열을 바꿔 교대하고 새 마력석을 장전하며 끊임없이 마력광선을 쏟아냈다.
휴미안 포수들은 전열 후열 상관없이 포병대 전체가 마력석의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포격을 진행하였다.
“그만! 중지! 중지하라!”
머지않아 마력포의 마력이 모조리 바닥났을 즈음, 지휘관은 모든 공격을 중단시켰다.
질척이는 용암의 위로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주변 일대를 가득 뒤덮고 있는 상황.
말 그대로 불지옥과도 같은 모습의 광경이었다.
베아트리스가 서 있던 장소의 일대는 하나의 용암지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휘관님.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조용!!!”
아무래도 이 상황은 너무했다 싶었던 부관이 의문을 던지려고 했으나, 지휘관은 단호하게 그의 발언을 저지했다.
지휘관은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은 지휘관이 이토록 호흡이 거칠어진 건 오로지 심리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아으으으…”
결코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이 지휘관의 망막에 맺혔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끝을 모르고 타오르는 화염을 뚫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성의 모습.
어두운 빛의 불투명한 기운이 여성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가 착용한 하녀복은 찢어지거나 타버린 흔적이 전혀 없었고, 흐트러진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타오르는 화염을 등진 채, 휴미안군을 향해 걸어오던 벽안의 하녀.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하나의 작은 등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내부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화염이 쏟아내는 강렬한 빛의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푸른 안광은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미안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화염 지대의 눈부신 빛보다도 그녀의 눈에서 번뜩이는 푸른 안광이 훨씬 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무, 물러나라…!!! 마도 거병을 앞세우고 우리는 후방으로 물러난다!!! 서둘러라!!!!”
기겁한 지휘관이 가장 먼저 병사들 사이를 헤치고 후방으로 도망가며 남긴 명령이었다.
휴미안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몸을 피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하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완전하게 상황이 파악된 휴미안 병사들은 대열을 무너뜨려 가며 허둥지둥 후방으로 물러났다.
거의 도망치듯 물러나는 휴미안 병사들을 헤치고 거대한 다리를 움직이며 마도 거병이 앞으로 나섰다.
과거 천 년 전, 네로멜티아의 마력 장벽을 붕괴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던 휴미안의 최종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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