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킬링 머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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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무언과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었던 베아트리스가 갑자기 말을 하자 휴미안 병사들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보고 듣는 것을 못 하거나 정신이 나간 줄 알고 있었던 여성이 사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현실에 이후의 일이 두려워진 것이었다.
고급스러운 의상을 입은 데다가 외모 또한 역사서에까지 기록될 듯 절세의 미녀다 보니 주인이 되는 사람은 분명 엄청나게 지체 높은 권력자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그런 이의 하녀에게 무례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나아가 그 주인에게 하녀를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주인의 귀에 이런 좋지 못한 이야기가 흘러든다면 자신들은 처벌을 피하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해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휴미안들에게 권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베아트리스의 주인은 분명 지체 높은 권력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소속이 마왕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마왕의 여자였다.
“아, 아가씨…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였… 습니까…?”
“에, 에이… 말씀을 좀 하시지…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지금까지 베아트리스를 대상으로 저속한 음담패설을 주고받던 선발대의 휴미안 병사들은 사태를 최대한 무마하기 위해, 속으로는 잔뜩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어가기 위해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하는 특정한 미래가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 비교한다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걱정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신들은 변한 게 없군요. 불타는 마왕성에서 아버지의 명을 받아 피난민을 구할 때도 당신들은 지금과 같이 더럽고 추악한 모습만을 보였습니다.”
“… 에? 천 년 전…?”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 아가씨?”
베아트리스를 지체 높은 권력자의 하녀이자 휴미안이라고 착각했던 병사들은 베아트리스의 이야기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고작 백 년 남짓 살아가는 휴미안이 천 년 전이라니.
심지어 눈앞의 여성은 천 년 전에 있었던 헤모니겐트 공습에 대한 역사를 언급하는 듯 보였고, 마치 자신이 그 역사적인 전쟁을 직접 겪어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휴미안의 짧은 생명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힘없고 무고한 이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바라보게 하면서 아내를 강간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의 눈을 뽑고 사지를 자르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들의 어머니를 강간했습니다. 그저 재미 삼아서 딸과 아버지가 성교를 나누게 강요했습니다.”
“진짜 미친 건가 본데?”
“아, 괜히 겁먹었잖아! 이미 제정신이 아니구만!”
차분한 음성으로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참상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한 베아트리스.
그녀의 음성은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사무적으로 보였으나 그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는 겨울 설원에 몰아치는 북풍보다도 맹렬한 것이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그녀의 음성은 인형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을 분노의 감정을 담고 있었고, 이는 분명 살을 에는 냉혹한 설풍과 닮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차분했던 베아트리스의 모습에 휴미안 병사들은 그녀의 싸늘한 감정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베아트리스가 미친 휴미안 여성이라고 생각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그들의 태평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야, 어차피 미친년인 거 같은데 지휘관한테 잘 얘기해서 우리 본부에 데려다 놓고 기를까?”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 휴미안이잖아! 범죄라고!”
“아니, 잘 생각해 봐!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만 하는 년인데 우리가 몰래 키운다고 누가 알기나 하겠어? 애들 입단속만 철저히 시키면 외부에서는…”
퍽!!!
성노예가 아예 씨가 말라버렸고 삼 년 전부터는 성노예가 잡히지도 않았던 본부의 상황.
성교의 오랜 부재로 인해 성욕이 끓어올랐던 휴미안 병사 하나가 위험한 발언을 하며 선을 넘기 시작했다.
이종족 여성에게는 그 어떠한 가학적 행동을 해도 오히려 그것이 잔혹하면 잔혹할수록 영웅담이 되는 시대이지만, 동족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엄격히 금지된 사회가 휴미안들의 세계였다.
그러나 이미 성욕의 노예가 되어 욕정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휴미안 병사에게는 사회가 규정한 법칙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과격하고 위험한 판단을 하려던 동료를 나무라던 다른 휴미안 병사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베아트리스의 찬연한 미색을 끈적한 시선으로 관찰하며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지휘관에게 몰려가 저 여성을 사로잡아 본부에서 기르자고 설득할 기세였던 휴미안 병사.
그는 그 추잡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은밀한 계획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뭐, 뭐야!!!”
“우아아아아아악!!!!”
순간 휴미안 병사 하나의 머리가 날아갔다.
눈앞의 여성을 사로잡아 본부에서 기르자고 주장했던 병사였다.
순식간에 머리가 산산조각나며 사라졌고, 사방에 두개골 파편과 뇌수가 비산하는 잔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동료의 죽음에 휴미안 병사들은 혼비백산하며 물러섰다.
머리가 사라져 죽음을 맞이한 휴미안 병사의 시신은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는 듯, 우뚝 서서 흔들거리다가 뒤늦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에 휴미안 병사들은 잔혹하게 살해된 동료의 시신을 보며 몸을 떨다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리고서 전방에 마주한 여성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여성을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오연히 서 있던 하녀, 베아트리스.
그녀는 현재 그들이 직면한 죽음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숨기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어깨에 자리한 소매의 고정끈.
목의 하얀 칼라 바로 아래부터 손목에 이르기까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끊임없이 교차된 두 줄의 고정끈 사이로 무언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서 튀어나온 것은 마도 병기에 익숙한 휴미안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무기였다.
어깨에 사각형의 작은 구멍이 생기며 그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어떠한 장치.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마력광선의 화기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심지어 그것은 조금 전까지 마력을 이용한 무언가를 사출했었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아른거리는 열기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소, 속였구나…!!!”
“네, 네년은 누구냐!!!”
“휴미안이 아니다!!!”
기겁을 하며 자신들의 총기를 챙기기 시작한 휴미안 병사들.
그들은 급히 대응사격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등에 걸려 있었던 총기를 분주히 끌어당겨 챙겼고, 총기 내부의 마력석을 가동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고, 그들의 목숨은 끝을 맞이해야만 했다.
퍽!!! 퍽!! 퍽!!! 퍽!!! 퍽!!!
베아트리스의 어깨에 걸린 화기가 연달아 시커먼 구체를 사출했다.
루이나가 가득 응집되어 구현된 강력한 마력탄이었다.
그것은 휴미안의 마력광선과 달리 목표에 닿는 순간 강한 물리력을 행사하며 목표를 철저하게 분쇄하고 있었다.
자신의 총기를 들고 상대를 조준하기는커녕 미처 가동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휴미안 병사들.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휴미안 병사들의 최후는 무척이나 허망한 것이었다.
채 삼 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순간에 선발대의 전원이 죽음을 맞이한 상황.
주변은 싸늘할 정도로 고요했고, 그 피비린내가 번져나가는 참상의 가운데에서 베아트리스의 미소만이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분명 냉소였다.
더럽고 추악한 존재를 짓밟고서 흘리는 조소와 조롱의 미소였다.
경멸과 멸시의 감정을 딛고서 비로소 느끼는 차가운 기쁨이었다.
“벌레는 구제해야 합니다. 그게 좋은 일입니다.”
쓰러진 휴미안의 시신들은 그녀에게 혐오의 감정을 심어주고 있었으나, 동시에 그녀의 차가운 분노를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온화한 광경이기도 했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들을 앞에 두고 베아트리스는 평온하기만 했다.
오히려 그녀의 감정은 이전보다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았으며, 그녀의 기색에는 일말의 동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요란한 소리가 나며 휴미안군의 본대가 도착하고 있었다.
수많은 발걸음과 수송 차량 그리고 거대한 마도 거병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대지를 가늘게 떨도록 만들고 있었다.
마치 개선의 행진인 것처럼 의기양양한 행군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군은 점차 불안한 목소리로 가득 차오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선발대의 위치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들이 목격한 것은 동료 병사들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모조리 죽임당한 동료 병사들의 모습에 본대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 본대의 행렬을 가로질러 뚫고 나온 지휘관이 행군을 중단시켰다.
“멈춰라!! 정지!! 정지!! 정지하라!!!”
지휘관 역시 선발대의 최후를 뒤에서나마 지켜본 상황이었다.
단 하나의 병사조차 살아남지 못하고 피범벅의 시체가 되어 지면에 누워 버린 모습.
그 가운데에 오연히 서서 자신들을 말없이 바라보는 하녀 하나.
지휘관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름이 자신을 엄습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누, 누구냐!! 네년의 짓이냐!!!”
다급하게 터져 나오는 지휘관의 질문.
그러나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휴미안의 군대를 바라보고는 있으되, 아무런 말도 입에 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조용하게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냐고 묻지 않나!!! 답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 전열 사격 준비!!!”
철컥!!
지휘관의 단호한 기세에 전열의 사수들은 자신들의 총기를 절도있게 챙겨 가동했고, 일제히 전방의 하녀를 향해 겨누었다.
그들의 총기에 장착된 마력석과 마력 회로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사격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위기를 자각한 이라면 누구나 당혹감에 젖어들 법한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러나 전방의 정체 모를 하녀는 오히려 휴미안군을 향해 조용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위기를 마주하고서도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다.
위기인 줄 모를 정도로 순진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경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
그것도 아니라면 직면한 상황이 전혀 위기가 아닌 경우였다.
지휘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녀에게서 맨 마지막의 경우를 느끼고 있었다.
지휘관의 전신을 엄습하던 소름은 더욱 기세를 높여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섬뜩한 감각을 전달하고 있었다.
오히려 휴미안군의 지휘관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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