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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22화 (122/216)

〈 122화 〉 광산의 도적들 (4)

* * *

전혀 예상치 못한 네로멜티아의 명령에 휴미안 병사들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무장 해제를 위해 장비를 내려놓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모든 의복을 벗으라는 건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휴미안 병사들은 이내 네로멜티아의 명령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뒤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 역시 노예사냥으로 이종족을 사로잡을 때면 이러한 명령을 항상 해왔던 것이었다.

사로잡은 이종족 노예들에게 수치를 주며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고, 사로잡은 것이 여성이라면 본진으로 끌고 가는 동안 끊임없이 강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가장 유력한 이유는 노예의 반항을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의복의 안에 작은 암기를 숨겨 뒀다가 기회를 엿보고 반격할 수도 있고, 독약을 숨겨 두었다가 자살을 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앙!!!

“히이이이이익!!!”

순간 휴미안 병사들의 가운데에서 또다시 강렬한 폭발이 발생했다.

그에 따라 휴미안 병사 하나가 상반신 전체를 잃고 그 자리에서 절명해 버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네로멜티아가 손을 쓴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했기에, 휴미안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폭발에 기겁하여 눈을 돌리면서도 네로멜티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감히 짐을 앞에 두고 수작 부리지 마라. 무언가 몰래 감추려고 든다면 바로 죽여버리겠다. 궁금하면 시험해 봐도 좋다.”

“흐이이이…!!”

지금 절명한 병사는 발칙하게도 통신 기능이 부여된 마도구를 자신의 입안에 집어넣어 몰래 챙기려다가 네로멜티아에게 발각된 것이었다.

아무리 휴미안 병사들 몇이 죽었다 할지라도 삼백에 가까운 수가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 은밀히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목숨을 걸었던 휴미안 병사.

그는 그 안일하고 무모한 판단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밟은 것이었다.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 한 변수라고 한다면 네로멜티아의 초월적인 능력이었다.

딱히 어떠한 강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본인의 능력 자체가 인류의 상식을 벗어나 있는 강대한 마왕.

12신들조차 두려워하며 그녀를 말살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존재.

홀로 12신들과 맞서며 그들을 억누르던 루이나의 여신.

고작 삼백에 이르는 정도인 휴미안들의 행동거지를 감시하는 건 별다른 마법이나 권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눈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짐은 분명 모든 장비와 모든 의복이라고 말했다만?”

“…!!”

“그 정화의 마도구도 당연히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나.”

벌벌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모든 의복을 벗어버린 휴미안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가 된 휴미안들에게는 일말의 수치심조차 없었다.

모든 정신과 마음속에 공포라는 감정이 꽉 들어차서 수치심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으니 갸륵히 여겨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듯, 최대한 바른 모습으로 기립 자세를 취하기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들려온 네로멜티아의 명령은 휴미안들이 기겁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생명을 좀먹는 오염이 만연한 세계, 테라리스.

그 곳의 한복판에서 정화의 마도구를 벗는다는 것은 중독 자살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가, 감히 미천한 존재가… 무, 무례를 무릅쓰고 간청드리나이다…!!”

죽음의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던 휴미안 병사들 중 하나가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애써 질질 끌고 나와 바닥에 엎드리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깊이 조아려 이마를 지면에 박은 채, 지극한 예를 다하며 나선 휴미안 하나.

네로멜티아는 침묵으로서 휴미안의 발언을 인정해 주었다.

그녀가 그 간청을 듣기 싫었더라면 폭발이라는 이름의 거절을 보여 주었을 것이기에, 휴미안은 턱이 달달 떨리면서도 다급히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프리마 벤투스(Prima Ventus)를 벗으면 저희 같은 미천한 존재들은 단번에 죽고 맙니다! 제, 제발…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을 테니… 이것 만은…!!”

“너희는 그 마스크를 프리마 벤투스라고 부르나? 태초의 바람이라니 이름은 그럴싸하구나.”

고개를 조아린 휴미안의 절절한 애원에도 네로멜티아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음성이 무척이나 냉랭해진 모습이었다.

이름이 그럴싸하다는 표현은 문장 그대로 칭찬이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비아냥이나 빈정거림의 표현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휴미안은 더욱 고개를 깊이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기만 했다면 아예 고개를 땅속 깊숙이 처박아버릴 기세였다.

“테라리스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것이 너희 휴미안 아니던가. 전부 너희가 자초한 일인데 너희는 자기 자신들만을 생각해서 정화의 마도구를 착용하고 다녔지. 태초의 바람? 그 생기가 넘치고 깨끗했던 태초의 바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모두 너희들 때문이지.”

“… 크윽…….”

“너희가 뿌린 씨앗의 결실을 너희가 책임지고 거둘 때다. 당장 그 마스크를 벗어라.”

휴미안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제는 정말로 프리마 벤투스를 벗어야만 했다.

앞서 나선 용기 있는 휴미안의 애원에도 네로멜티아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싸늘하고 냉혹한 반응만이 되돌아 왔을 뿐이었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었다.

등 뒤에 천 길 낭떠러지와 눈앞까지 다가온 사신의 낫.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죽음뿐이겠지만, 대부분은 그나마 절벽을 택할 것이 뻔한 이치였다.

어떻게 잘 떨어지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허무맹랑한 기대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잘 버티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흑흑… 으흑… 커으으으윽…!!”

“끄륵…! 켁…!!!”

“히이이이익… 히이이이이익…”

휴미안 병사들은 저마다 착용하고 있던 안면의 생명줄을 벗기 시작했다.

프리마 벤투스를 벗는 병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처절한 숨소리와 고통에 찬 신음이 주변을 점차 뒤덮어가기 시작했다.

입과 코를 틀어막고 어떻게든 오염 물질을 걸러 보려고 발버둥 치는 휴미안.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물 콧물을 쏟고 침을 질질 흘려대는 휴미안.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아 쇳소리만 한가득 내며 경련하는 휴미안.

비참하고 처절한 죽음의 시작이었다.

“제, 제발…!! 케륵…!!”

휴미안군의 가장 앞에 나서서 모두의 목숨을 애원했던 휴미안 병사가 다시 한번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프리마 벤투스가 제거됨에 따라 호흡 장애를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바닥을 기어 네로멜티아에게 다가가며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밟은 휴미안의 애원을 내려다보는 네로멜티아의 시선에는 일말의 온기조차 없었고, 피부에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갑기 그지없었다.

“짐은 자비롭다. 그렇기에 네놈이 아직 살아있는 것이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모두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용기가 가상했기에, 죽이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다.”

“크르륵… 카륵…!!”

“그러나 그것뿐이다. 너희는 다른 종족을 사냥할 때,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의 애원을 들어준 적이 있나? 단언컨대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뻔한 일이지.”

눈이 망가진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휴미안 병사.

그것은 죽음이 가까워지며 겪는 극심한 공포의 감정에서 비롯된 눈물이기도 했으나, 오염 물질이 가득한 공기가 민감한 안구의 표면에 맞닿으며 강제적으로 분비되는 눈물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기에 사실상 휴미안 병사의 시야에는 무엇 하나 명확하게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희뿌옇게 보이고 있었고, 그나마도 눈을 뜨고 있는 일조차 힘들 지경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오염에 익숙한 이들이었다면 이 정도로 극심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겠지만, 워낙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아온 것이 휴미안이다보니 더욱 극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볼썽사납게 뭘 하는 거냐. 지금까지도 숨어 살아가고 있는 다른 종족들은 어떻게든 이 오염된 공기와 맞서며 꿋꿋이 살아가고 있을 텐데, 너희는 고작 차 한잔할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구나.”

“히이이이익!!!”

콰아아아아아앙!!!

바닥에 나뒹굴며 몸부림치던 휴미안 병사 하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지면에 내려두었던 프리마 벤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네로멜티아의 선홍빛 안광이 번뜩였고, 휴미안 병사는 그토록 바라던 깨끗한 공기를 맛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폭사(?死)해 버렸다.

그나마 이른 죽음을 맞이했으니 다른 이들에 비하면 행복한 결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른 휴미안들은 생명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한 탓에, 네로멜티아의 폭발이 두려워 프리마 벤투스에 손도 뻗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 뻔한 상황인데도 어떻게든 희망을 가지고서 프리마 벤투스에 손을 뻗지 않는 휴미안들을 보고 네로멜티아는 잔혹한 조소를 떠올렸다.

우우우우웅

네로멜티아가 허공에 손가락을 한 번 휘젓자, 휴미안들이 내려놓은 모든 장비와 의복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네로멜티아의 후방을 향해 둥실둥실 떠올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더는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그들의 모든 것을 미리 압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중에 떠올라서 멀어져 가던 프리마 벤투스 중 하나가 한 명의 휴미안 병사 앞에 떨어지는 예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휴미안군의 가장 앞에 서서 모두의 목숨을 구걸했던 휴미안 병사.

지면에 고개를 처박고 필사의 애원을 보였던 휴미안.

그 휴미안 병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자신의 희미한 시선을 힘겹게 올려 네로멜티아를 바라보았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최대한 안력을 높여 네로멜티아를 살폈다.

그의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는 네로멜티아의 모습이 선명하게 맺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의 입 모양만큼은 구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써라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네로멜티아의 매끄러운 입술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선홍빛의 부드러운 입술을 작게 달싹이며 전한 윤허의 말은 벼락이 내려친 듯한 충격을 주어 그의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바짝 일깨웠다.

“하아아악…!! 하아아아악…!!!”

허겁지겁 달려가서 프리마 벤투스를 착용한 휴미안 병사는 그간 온전히 이루지 못했던 호흡을 격렬하게 내쉬기 시작했다.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고, 이미 눈물 범벅인 충혈된 눈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이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호흡이라는 것이 이토록 소중한 것일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오염된 공기가 두려워 항상 프리마 벤투스를 착용하지만 그 두려움은 어디까지나 경험의 부재 위에서 이루어진 막연한 공포일 뿐이었고, 한 번 죽음의 맛을 경험해 본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소중함이 더없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당장에 쓸어버려야 마땅한 너희들이나, 짐은 너의 용기를 가상하게 여겨 또 하나의 자비를 베풀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아아아!!!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후후후후.”

무척 유쾌하다는 듯 웃음을 보이는 네로멜티아.

그녀가 허공에 손가락을 휘젓자 지면에 납작 엎드려 있던 휴미안 병사가 저절로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네로멜티아는 그를 강제로 일으켜 세운 뒤,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프리마 벤투스를 착용하며 호흡에 여유가 생기고 점차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한 휴미안 병사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참상을 비로소 목격하게 되었다.

삼백에 이르는 휴미안들이 발버둥 치며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었다.

“네 이름은 뭐지?”

“… 저, 저는 멜릭 호스크라고 합니다……. 시, 십인장의 직책을…”

“그래, 멜릭.”

어느새 네로멜티아의 음성은 멜릭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청각 자체를 어루만지는 듯 네로멜티아의 음성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고, 마음의 깊은 밑바닥까지 전해지는 강렬한 권능이 깃들어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재앙이 속삭이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태풍, 지진, 분화, 혹한.

그 어떤 재앙과도 견줄 수 없을 초월적인 힘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불현듯 멜릭은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존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왕이었다.

“네게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 흐으으으…….”

“지금부터 너희 모두를 해방해 줄 테니. 네가 앞장서서 저들을 너희의 안전한 본거지까지 인도하면 되는 것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뿐이라니, 이보다 쉬운 일이 있겠느냐.”

부들부들 떨리는 신체에 어떻게든 힘을 끌어내어 고개를 돌리려고 애를 쓰던 멜릭.

그러나 그의 고개는 그의 의지를 벗어나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모든 신체 부위가 통제를 벗어나 있었고, 정중한 기립 자세를 취한 채 모두가 죽어가는 참상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굳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시선만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편이었기에, 그는 최대한 시선을 돌려 네로멜티아의 모습을 살피려고 했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시야의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보이는 네로멜티아의 선홍빛 안광은 그야말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쥔 죽음과도 같아 보였다.

“짐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금제이고 속박이니라. 너는 본거지에 도착하여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그 정화 마도구를 벗을 수도 없을 것이고, 남에게 내어 주지도 못할 것이다. 너의 동료들을 인도하는 것은 오로지 네게만 부여된 임무인 셈이지.”

네로멜티아는 비로소 멜릭의 신체를 놓아 주었다.

그를 속박하던 마력을 거두어들였고, 멜릭은 갑작스럽게 자유를 찾은 상황에 대한 반동으로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러버렸다.

그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쓰러졌으나, 여전히 그의 귓가에는 마왕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다.

“도중에 포기하여 짐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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