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광산의 도적들 (2)
* * *
일제히 사격의 자세를 갖춘 휴미안군은 이례적인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이 병사로서의 임무를 부여받은 이래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위협이 그들의 위기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휴미안이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감정.
그것은 공포였다.
콰아아아앙!!!
상대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다면 가차 없이 발포할 예정이었던 휴미안군의 한가운데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본래 적과 대치상황에서는 적에게서 시선을 떼면 안 되는 법이지만, 생명체로서의 본능이 그들의 시선을 강제로 이끌었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문제의 폭발은 한 휴미안 병사에게 가해져 있었고, 휴미안 병사는 머리가 깨끗하게 날아간 채 쓰러지고 있었다.
본래 목 위에 자리해야 할 머리는 사라졌고 시커먼 연기와 함께 인간의 살이 타는 냄새가 가득 퍼져나갔다.
휴미안들은 정황상 현재 대치하고 있는 데모니안 여성이 폭발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후후.”
콰아아아아앙!!!
또 한 차례의 폭발이 휴미안군 가운데에서 발생했다.
이번에는 두 명의 휴미안 병사가 즉사하며 그 너덜너덜한 시신이 지면에 쓰러졌다.
한 명은 복부가 터져나가며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널브러졌고, 상반신의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내장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또 다른 한 명은 가슴이 터져나갔는데 폭발의 범위에 머리까지 휘말려버려 턱이 뽑혀 날아갔고, 본래 그 내부에 있어야 할 혀가 길게 내밀어진 채 쓰러졌다.
데모니안 여성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리자 벌어진 두 차례의 폭발이었다.
여성이 바라보는 위치마다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상황이었다.
“일제 사격!! 쏴라!!!”
쭈우우웅!! 쭈우우웅! 쭈우우우웅!!!
전방에 포진하고 있던 병사 마흔 명이 쏟아내는 마력광선의 집중포화.
거대한 그리즐리 베어나 강대한 저항력을 지닌 그리폰조차 꿰뚫고 불살라 버릴 수 있는 강력한 광선의 세례.
마흔 개의 마력광선이 쏟아내는 열기는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를 만들었고 지면이 새빨갛게 물들어 녹아내리도록 강렬한 열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네로멜티아를 휘감아 그녀의 형체를 가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발아래에 지면이 녹아 생성된 용암이 질척하게 끓어오르며 시커먼 연기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지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면을 녹여 용암을 생성할 정도의 화력을 지닌 마력광선의 포화는 막대한 열기를 주변에 흩뿌리기 시작했고, 그 주변 일대까지 발화 현상을 일으키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시커먼 연기는 더욱 기세를 높이고 있었고 주변 일대를 자욱하게 뒤덮을 정도로 맹렬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먼 곳에 누군가가 이 모습을 지켜본다면 산불이 난 것이 아닌가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고, 꽤 여유로운 거리를 두고 있었던 휴미안 병사들조차 매캐한 연기에 휩싸여 간헐적으로 기침을 하는 상황이었다.
딸깍!! 딸깍! 딸깍!
백인장의 명령과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긴장감에 떠밀려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휴미안 병사들은 자신의 총기에 충전된 마력을 모두 소모하고 나서도 몇 번이나 다시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보였다.
단 한 줌의 마력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쏟아붓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반사적인 행동이었고, 이는 그들이 네로멜티아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해치웠나…?”
콰아아아아아아앙!!!
누군가 긴장의 끈을 놓은 채 무심코 흘린 한마디는 그의 일생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또다시 발생한 폭발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폭발에 직격당한 병사는 아예 상반신 전체가 사라진 상황이었고, 더 나아가 주변의 다른 병사들까지 휘말린 상황이었다.
가까이에 있었던 병사들은 신체의 절반이 날아가거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등 즉사를 피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차라리 운이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어설프게 떨어져 있던 병사들은 팔 한 짝이나 다리 한 짝이 떨어지고 안면의 절반이 날아가는 등의 고통스러운 피해를 입었던 것이었다.
죽음에 이르지도 못하고 죽음의 문턱에 발만 걸친 대가를 맹렬한 고통으로 톡톡히 치르는 것이었다.
“끄하아아아아악!!!!”
“크허어어어어…!!”
“히갸아아아악!!!!!”
신체가 훼손되거나 절단된 고통에 몸부림치며 지면에 엎어진 병사들.
당연히 그들 주변의 병사들이 도와주어야 마땅한 상황이었으나, 주변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기에 즉각적으로 대처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폭발에 휘말려 신체가 훼손될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의 주변 병사들은 막강한 폭발에서 비롯된 열기에 화상을 입거나, 폭발에서 튄 무언가의 파편이 눈에 박혀 실명하는 등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것이었다.
폭심(?心)의 완전한 바깥에 존재했던 병사들은 그나마 멀쩡했으나, 대기를 통해 전해진 충격파를 견디지 못해 일시적으로 청각을 잃고 정신까지 흐트러진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병사들은 공포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점차 걷혀가는 열기와 연기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 선홍빛의 광채.
몸서리쳐질 정도로 두려운 안광.
꿈에 나올까 두려운 선홍빛 눈동자가 소름 끼치는 빛을 내며 자신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가! 루케! 무슨 일이야!!”
“히, 히익… 흐이이익…!!”
“정신 차려라!! 그러고도 지휘관인가!! 정신 차려!!!”
반쯤 실성해 버린 백인장에게 달려온 두 사람은 어떻게든 백인장의 정신을 되돌리고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외부에서 활동하는 휴미안이라면 누구든 쓰고 있었던 진녹색의 마스크.
안면 전체를 감싸는 형태에 시야 확보를 위한 유리판과 정화 마법진이 새겨진 원통형의 부품이 장착된 마도구.
테라리스에 만연한 오염으로부터 그들의 호흡기를 지키는 정화 마도구는 모든 휴미안들에게 필수였고, 백인장 또한 이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병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백인장의 정화 마도구는 진녹색이 아닌 붉은색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인장에게 달려온 다른 휴미안 두 명 또한 붉은색의 정화 마도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휴미안군 대열의 중반과 후반을 맡고 있었던 다른 백인장 두 명이 전방에서 일어난 소란에 놀라 달려온 것이었다.
“아, 악마!!! 악마아아아아!!!”
정신을 놓아버린 백인장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용히 혼절해 버리던가, 넋을 놓고 주저앉아 버리던가.
혹은 발작을 하며 공포에 몸부림을 치던가.
거의 미쳐버린 상태였던 백인장에게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거라 판단한 다른 백인장들.
그 두 명의 백인장은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상황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저건…?”
“이봐! 명령이다! 똑바로 대답해! 저년에게 우리 군이 당한 건가!! 병사!! 대답해라!!!”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용암과 희미하게 깔린 연기.
그 중심에 오연히 선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데모니안 여성.
주변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병사들은 전방의 데모니안 여성을 향해 집중포화를 쏟아부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데모니안 여성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끓어오르고 있는 질척한 용암을 멀쩡하게 딛고 서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모습에 백인장들은 일생의 위기가 닥쳐왔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압도적인 광경을 앞에 두고 정신이 점차 혼미해져 가던 백인장과 달리, 주변에서 넋을 잃은 채 몸을 떨고 있던 병사 하나를 붙잡고 다그치던 또 다른 백인장.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미쳐가는 백인장과 정신을 놓기 시작한 백인장 대신 지휘권을 이행했다.
“뭣들 하나!!! 당장 교대해서 재사격하라!!! 교대사격이다!! 마력석의 교환이 필요한 사수는 물러나고, 준비된 사수부터 즉각 발포한다!!!”
“네, 네!!”
“아, 알겠습니다!!!”
백인장의 불같은 호령이 떨어지자 이내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후열에 머무르고 있었던 병사들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잡아끌며 전방으로 나와 사격 대열을 갖추고, 이미 사격을 끝낸 병사들은 후방으로 물러나며 화기의 고갈된 마력석을 꺼내기 시작했다.
병사들 몇이 사격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백인장은 확실하게 명령을 전달했다.
“발포하라!!!”
딸깍! 딸깍!
우렁한 호령이 무색할 만큼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방아쇠를 당기는 작은 소리만이 허무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당황한 병사들은 방아쇠를 몇 번이나 당겨보았지만, 그들의 화기는 주인의 의지를 철저하고 부정하고 있었다.
당황한 백인장이 마구 흔들리는 시선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며 재차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뭣들 하는 거냐!!! 총기의 관리도 똑바로 못한단 말…!!”
백인장의 불호령은 끝을 맺지 못했다.
당연히 병사들의 관리 소홀인 줄 알았던 현재의 상황.
그러나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백인장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고, 현재 직면한 사태가 병사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모든 병사들의 총기가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총기가 활성화되면 새겨진 마력 회로에 마력이 주입되며 회로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현재 그 어떤 총기도 마력 회로에 빛이 나는 총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백인장은 자연스럽게 전방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연기 속에서 타오르던 선홍빛의 안광은 더욱 선명한 기세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인장은 자신의 총기를 내려다보며 그것을 활성화 시키려고 시도해 보았다.
분명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력 또한 모자람이 없었던 자신의 총기조차 묵묵부답이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몸을 떨기 시작한 백인장은 시커먼 연기 속에서 빛나는 선홍빛 안광을 바라보며 미지의 힘을 느꼈다.
원리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저 정체 모를 데모니안이 원인인 것이었다.
“그까짓 장난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가. 어떻게든 부딪쳐라. 너희의 적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 않나.”
그녀가 사용한 것은 천 년 전 헤모니겐트의 멸망 당시 용사 일행의 현자 라미드에게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마력을 이용하여 상대의 술식 자체를 파훼하는 기술.
술식을 통해 물리력을 발생시키지 않고, 순수한 마력 그 자체만을 이용하여 마력 회로의 붕괴를 초래하는 권능.
마력 간섭을 뛰어넘는 술식 파괴의 기술.
‘침묵의 손길(Silent Touch)’이라 불리는 네로멜티아만의 독자적인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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