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푸른 드래곤 사냥 (2)
* * *
이미 드높은 상공에 자리하고 있었던 케르디하크.
그는 자신보다 더욱 높은 상공에서 자신을 향해 낙하하고 있는 크로포드가 언제부터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자신이 생성한 전류 빙정 무리가 카디스텔라의 좌표 폭발 마법과 만나 거센 운무를 만들어 낸 순간.
카디스텔라와 크로포드의 모습은 운무에 가려져 일순간 사라졌었고, 그 운무를 뚫고 급속도로 비행해 다가오는 카디스텔라에게 정신이 팔려 크로포드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그 순간.
카디스텔라는 운무를 헤치고 케르디하크에게 나아가기 전, 크로포드를 더 높은 상공으로 띄우고 날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급속도로 비행하며 다가오는 카디스텔라에게 신경을 쓰느라 케르디하크의 시야에 사각이 생긴 사이, 더욱 높은 위치까지 떠오른 크로포드는 카디스텔라가 케르디하크의 앱솔루트 실드를 부수고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동안 급속도로 낙하하며 참격을 준비한 것이었다.
“플래쉬 무…”
콰아아아앙!!!
“어디 가니?”
제5위계 이동 마법 플래쉬 무브를 시전하여 빠르게 벗어나려던 케르디하크는 자신의 눈을 강타한 폭발의 충격에 마법의 술식이 끊겨 버렸다.
이미 카디스텔라의 손톱에 휘저어져 한 차례 파괴되었었던 케르디하크의 안구가 카디스텔라의 좌표 폭발 마법에 강타당해 다시 한번 파괴되었다.
머리 깊숙하게 날붙이가 찔러오는 듯 강렬한 고통이 케르디하크의 정신을 일순간 끊어지게 만들었고, 이미 끊긴 술식은 처음부터 다시 시전하지 않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어딜 감히!!!”
꽈르르르르릉!!!
마법을 시전하기에 시간이 모자랐던 케르디하크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능을 사용했다.
무한히 발산할 수 있는 초고압의 뇌전이라면 크로포드에게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있을뿐더러 준비 과정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즉각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케르디하크는 자신의 왕관 모양의 뿔에 전력(?力)을 일으켰고, 맹렬히 타오르는 벼락의 무리를 크로포드에게 전력(?力)으로 방출했다.
분명 크로포드의 마나 소드는 두려운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참격으로 견고한 드래곤의 비늘을 가르고 거대한 드래곤의 팔을 깨끗하게 잘라버릴 정도의 절삭력을 지녔으니, 닿기만 한다면 드래곤의 두꺼운 목도 무사하지 못할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검이라는 것은 근접 무기였기에, 자신에게 크로포드가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크로포드가 자신에게 접근하기 전에 뇌전을 방출했으니, 그가 뇌전에 직격당하지 않으려면 마나 소드를 거두고 자리를 피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케르디하크가 찰나의 순간에 내린 판단은 무척이나 상식적인 것이었고, 틀리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상대는 소드 마스터였고, 그 드높고 찬연한 칭호는 상식이 통하는 자에게는 내려지지 않는 법이었다.
“흐아아아압!!!”
쐐애애애애애액!!!
케르디하크의 뿔에서 번쩍이는 뇌광을 목격한 크로포드는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본래 낙하하는 속도를 이용해서 케르디하크의 거체를 양단해버릴 심산이었으나, 그가 뇌전을 방출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타격이 갈 수밖에 없으니 더욱 빠른 공격 수단을 택한 것이었다.
크로포드와 케르디하크와의 사이에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존재했다.
그 사이에 거대한 첨탑 두 채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고작 백몇십 멘톨에 그치는 코르니움 롱 소드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크로포드는 검을 휘둘렀다.
케르디하크는 크로포드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을 리가 없으니 분명 자신의 뇌전을 막기 위한 기술 정도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크로포드의 검에서 고도로 압축된 루이나의 맹렬한 검은빛을 목격하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신체를 급히 측면으로 틀었다.
케르디하크의 이 반사적 회피는 그의 일생에 손꼽을 탁월한 선택이었다.
쓰걱!!
“크헉…!!!”
쩌저저저저저적!!!
크로포드의 마나 소드에서 발산된 검은빛은 인지하기도 힘든 순간에 케르디하크의 측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케르디하크는 자신이 방출한 초고압의 뇌전이 깨끗하게 양단되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경이를 목격했으나 결코 그것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너무나도 작은 소음이었으나 이만큼 소름 끼치는 소리도 없을 절삭음(??音).
케르디하크는 카디스텔라에게 당하지 않은 멀쩡한 눈으로 측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날개 하나가 깨끗하게 잘려 자신의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섬뜩한 장면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긴박한 전투를 위해 날개를 사용하지 않고, 마력의 힘으로 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의 신체가 곤두박질칠 염려는 없었으나 거대한 드래곤의 신체 일부가 이토록 맥없이 잘려 나갈 수 있다는 현실에 소름이 끼쳐 몸이 마구 떨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머나먼 지상에서 암석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발생하자, 케르디하크는 자신의 안구가 터져 나가고 자신의 날개가 잘려나가며 발생한 타오르는 고통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급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플래쉬 무브!!!”
마왕성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의 대지.
지상으로 고개를 돌렸던 케르디하크는 그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한 대지가 길게 갈라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득히 먼 상공에 자리한 케르디하크조차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길고 거대한 참격의 흔적이었다.
휴미안이 건축한 작은 성채 정도는 가볍게 양단하고도 남을 정도의 범위가 길게 갈라졌고, 대지의 깊은 지점까지 참격이 나아간 까닭에 그 틈의 끝이 육안으로 식별이 안 될 정도였던 것이다.
순간 크로포드의 참격을 자신이 피해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해진 케르디하크는 다급히 이동 마법을 사용하여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크로포드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 자신은 그의 낙하 궤도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스슥!!
“어디 가냐니까?”
쩌걱!!
캬아아아악!!
플래쉬 무브는 단지 당장 직면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고, 케르디하크는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자마자 제대로 된 전이 마법을 사용할 심산이었다.
적어도 당장 급속도로 쇄도해오는 마나 소드에게서 안전해져야 전이 마법을 사용할 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아예 다른 지역까지 이동할 수 있는 전이 마법은 시전에 나름대로 시간이 필요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안전을 확보하며 시간을 벌어야만 했고, 적들과 거리를 두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플래쉬 무브가 마쳐지고 이동이 끝난 순간, 케르디하크의 귓가에는 기다렸다는 듯 카디스텔라의 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기겁한 케르디하크가 급히 팔을 휘두르며 곧 다가올 적의 공격에 어떻게든 대처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보잘것없는 시도의 의지 선에서 끝이 나버렸다.
그가 휘두르려던 한쪽 팔이 잘려나갔고, 감각의 절단과 함께 강렬한 통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카디스텔라는 케르디하크가 시전한 플래쉬 무브의 도착 지점을 예상하고 먼저 다가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에 타는 듯 뜨겁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이었으나 케르디하크는 그저 평범한 비명만 지르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틈을 만들기 위해 그가 내지른 포효는 고통의 비명이 아닌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권능이었던 것이다.
생명체들에게 원초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권능의 포효, 드래곤 피어(Dragon Fear)였다.
콰우우우우우우!!!!!
주변 일대의 대기를 울리며 퍼져 나가는 강렬한 진동.
뇌성벽력의 위세보다 더욱 웅장한 태고의 권능.
최상위 포식자의 포효는 아예 카디스텔라를 향해 일직선으로 질러진 상황이었다.
“시끄러워.”
카가가가가각!!!!
키야아아아아아아악!!!!!
그러나 카디스텔라는 귀가 따갑다는 듯 무덤덤한 모습으로 블러드 네일을 휘두를 뿐이었다.
단지 귀가 조금 따가워 짜증 난다는 일상적인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짜증이 난 카디스텔라가 가볍게 휘두른 블러드 네일은 케르디하크에게 일생 잊을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측면의 상반신 전체에 해당하는 범위 만큼의 가죽을 한꺼번에 벗겨낸 것이었다.
생선의 껍질을 벗기듯이.
과일의 껍질을 벗기듯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케르디하크의 거체에서 거대한 면적의 가죽이 벗겨져 나온 것이었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벗겨진 가죽이라 그 표면에는 매끄럽고 견고한 드래곤의 비늘들이 상하거나 손실된 것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테, 텔레포테이션!!!”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케르디하크는 남은 팔 하나와 남은 날개 하나를 이용해 자신의 심장과 머리를 감싸고, 어떻게든 전이 마법을 성공시키려고 했다.
팔이나 날개를 떼어 주더라도 정신이 흐트러질 정도의 치명상만 피한다면 술식을 완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카디스텔라는 추가 공격을 하지 않았고, 다급하게 술식을 작동시키던 케르디하크는 비로소 전이 마법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환희에 몸이 떨려오는 순간.
제8위계의 공간 전이 마법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의 시전에 성공한 케르디하크의 모습이 사라지려던 순간이었다.
“어허, 도마뱀은 꼬리를 남겨 놓고 가야지?”
쩌걱!!!
고오오오오오…
카디스텔라는 케르디하크의 거대한 꼬리를 잘라내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드래곤이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몸통보다 더 긴 길이를 가진 드래곤의 꼬리.
케르디하크의 모습이 사라지며 그가 내지르던 고통에 찬 비명 역시 힘없이 사라졌으나, 그의 길고 거대한 꼬리는 여전히 전장에 남아 피를 뿌리며 펄떡대고 있었다.
“일부러 공격하지 않으셨군요.”
“응. 그런 셈이지.”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던 드래곤의 꼬리는 그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도 지면에 추락하지 않았다.
카디스텔라의 옆에서 둥실둥실 떠 있는 크로포드처럼 꼬리 역시 공중에 둥실둥실 떠 있는 모습이었다.
꼬리뿐만이 아니라 케르디하크에게서 떨어져 나온 신체 일부는 모두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었는데, 보물같이 귀중한 자원이었던 드래곤의 신체가 추락해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카디스텔라가 하나하나 공중 부양 마법을 걸어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카디스텔라가 케르디하크의 가죽을 벗겨낸 것 역시, 드래곤의 가죽과 비늘을 가지고 싶다는 그녀의 충동적인 욕구 때문이었다.
물론 마왕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원수에게 잔혹한 고문을 하고 싶었던 이유도 상당히 크기는 했다.
“지금 케르디하크를 죽이면 12신들의 경계를 사게 돼. 이 도마뱀이 살아 돌아가면 네로멜티아가 부활에 실패했다는 거짓 정보도 흘릴 수 있고, 무엇보다 이딴 도마뱀 하나 끝을 내지 못하고 놓쳤다는 사실이 마왕의 부재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겠지. 네로멜티아가 진심이면 전기 뿜는 도마뱀 따위는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부위 별로 해체할 수 있을 테니까.”
“카디스텔라님도 그건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놓아준 거야. 마왕군 간부들이 나서서 마왕성을 재건하고는 있지만, 케르디하크를 압살할 정도로 강한 간부는 없다. 별일 아니니 신경 끄고 계속 방심해라. 이런 의미지. 그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도마뱀이 자기가 형편없이 당했다고 떠벌릴 리가 없잖아?”
크로포드는 이 다급한 전투의 순간에서 이토록 치밀한 계산을 가지고 행동한 카디스텔라에게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증오스러운 원수를 양단할 생각이 가득했었는데, 카디스텔라는 상대를 계획에 이용할 생각으로 적당히 상대하다가 보내줬다는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 아예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은폐할 수도 있지. 텔레포테이션 같은 건, 마력 결계 하나 구성하면 막을 수 있는 건데 그냥 놓아 줬잖아? 오만한 케르디하크는 혼자서 둘을 상대했기에 힘들었던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운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겠지. 텔레포테이션의 방해도 못 하는 하찮은 것들에게 시기가 맞지 않아서 당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거야. 다음에 다시 전투를 벌이더라도 텔레포테이션만 성공하면 언제든 자신은 안전하게 전장을 이탈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생겼을 거고.”
“우리를 보는 시점에 여유가 생긴다는 이야기군요. 그게 곧 방심으로 이어질 테고.”
크로포드는 카디스텔라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하여 마왕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강대한 힘을 과시해서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그러나 상대가 위기를 느껴서 필사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여유가 생기면 딴생각을 품게 되지. 결국 자기 힘으로 마왕성을 함락하지 못하면 자존심이 용서치 않을 테니까, 12신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케르디하크가 알아서 정보를 차단해 줄 거야.”
“아아! 12신들이 개입해서 마왕성이 멸망하면 케르디하크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군요!”
“맞아. 자기 손으로 나를 찢어발기고 싶다면 12신들에게 마왕성의 재건 정보가 닿아서는 안 되는 상황인 거지.”
카디스텔라는 수확한 전리품과 크로포드를 이끌고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척 즐겁고 유쾌하다는 듯 그녀의 미소는 깊고 진득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천 년의 긴 세월을 고성에 갇혀 살다가 비로소 세상에 나와 맛본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그녀에게 찬연한 환희를 맛보여주고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성취감도 즐거움에 한몫을 하고 있었으나, 선혈의 여제를 진실로 미소 짓게 하는 건 전투에서 비롯된 쾌감이었다.
상대의 신체를 찢어발기고, 그 피를 마시는 가학적 쾌락.
달아오른 신체의 열기에 들뜬 카디스텔라는 벌써부터 다음이 기다려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