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케르디하크의 분노 (4)
* * *
엘크의 뿔과 같은 왕관 모양의 뿔.
그 중심을 향해 격렬하게 타오르는 전광이 집중되며 기세를 키우고 있었다.
이미 한낮이라 태양으로 인해 밝은 시간대였음에도 주변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등불을 켠 것처럼 전류의 백색광에 물들어 더욱 환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목격할 수 없을 방대한 벼락.
오로지 파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태어난 뇌정벽력(雪???)이 마왕군을 향해 쏟아졌다.
콰르르르르르릉!!!!!
쿠구구구구구!!!
눈부신 전광이 한순간 번쩍이나 싶더니 수십 줄기의 벼락이 일제히 폭사 되었다.
생명체라는 것은 벼락이 나아가는 과정을 목격할 수 없다.
그저 한순간 번쩍이는 섬광을 겨우 눈에 담을 뿐일 것이었다.
그들이 벼락의 움직임을 눈으로 받아들이고, 그 강대한 파괴의 손길을 피할 수 있을 확률은 한없이 무(無)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마왕성의 현실은 그러한 상식을 깨버렸다.
마왕성 일대를 무작위로 폭격하는 수십 줄기의 벼락이 도중에 가로막힌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었다.
자줏빛으로 물든 마법진은 시계태엽이 돌아가듯 구성 술식을 어지러이 회전시키며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 크고 작은 마법진이 수십이었고, 그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마력 장벽을 만들어 마왕성의 모든 것을 지킨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는 그녀의 호전적인 진홍빛 안광을 빛내며 러스테리아를 칭찬했다.
“잘했어! 러스테리아!”
“흐아윽…!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해요…!!”
루이나 특유의 칠흑 같은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던 마력 장벽.
그것은 러스테리아가 급히 발동한 방어 마법이었다.
러스테리아의 보랏빛 눈동자에 새겨진 육망성의 마법진은 이 순간 찬연한 빛을 보이며 반짝이고 있었다.
동공 안에 은하계가 수놓아진 듯 무수한 빛이 흘러가거나 점멸하고 있었고, 그 위에 선명한 육망성은 충만한 마력이 흐르며 보랏빛의 선명한 안광을 만들고 있었다.
케르디하크의 뿔에서 전류가 포착되자마자 발동했던 러스테리아의 권능.
그녀의 눈에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되며, 그녀의 모든 능력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전류가 대기를 타고 뻗어 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을 손에 넣었다.
전류의 이동을 발견하고 그것이 목표에 닿기 전에 수십 개의 마법진 발동을 성공시켜 거대한 마력 장벽을 생성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를 손에 넣었다.
육망성의 마법진을 발동한 러스테리아는 폭우 속에서 빗방울들을 모조리 피하며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초월적인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면 마력의 소모가 너무나 극심하다는 것.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 아, 앞으로… 몇 번이나 받아낼 수 있을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창조주가 직접 탄생시킨 절대자들이었다.
그 태생에 걸맞게 드래곤들은 각자의 고유 권능이 존재했고, 그 권능은 12신들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강대한 힘이었다.
그리고 케르디하크의 경우에는 끝없이 방출되는 벼락의 힘이었다.
케르디하크는 자신이 지혜라는 이명으로 불리기를 바랐다.
이는 평생의 숙원이었으나 다른 이들은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뿐이었다.
그 현실이 진저리나게 싫었던 케르디하크는 수많은 세월을 들여 마법을 익히고 마도학을 연구했다.
그럼에도 그가 급하거나 진심일 땐, 마법보다는 벼락이 먼저 나가는 것이었다.
그만큼 케르디하크의 고유 권능인 벼락의 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최강 무력(?力)인 셈이었다.
그런 것을 러스테리아는 마력 장벽을 통해 고스란히 받아낸 것이었다.
닿기만 한다면 천년 화산의 암벽도 만년설의 빙하도, 모든 것을 박살낼 자신이 있었던 케르디하크의 최고 전력.
너무나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유했기에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가장 상책이었으나, 그랬다가는 마왕성의 모든 것이 불타고 파괴될 위기였었다.
그렇기에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그것을 받아낸 것이었다.
“그 눈은 쓰지 마! 남은 마력으로 마력 장벽을 유지하는 것만 생각해!”
“흐읏…! 알겠습니다!”
카디스텔라는 러스테리아의 역할을 아예 방어전으로 지정해 주었다.
사실 러스테리아의 마력은 무척이나 방대했다.
그녀의 태생에 얽힌 재능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으나, 마왕과 맺은 권속의 계약 덕에 그녀의 능력은 더욱 월등해진 것이었다.
역대 마왕 중 최강이라 칭송받는 네로멜티아의 권속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러스테리아는 케르디하크가 방출한 수십 줄기의 벼락을 마력 장벽 하나로 모조리 막아내고서도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마력조차 소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육망성의 마법진은 달랐다.
단지 십 초 정도를 유지했을 뿐인데 마력이 절반이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는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 상황이었기에, 이미 발동한 마력 장벽을 유지하는 데에만 힘을 쓰고 최대한 마력을 온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크하하하!! 이걸 막아낼 줄이야! 음락(??)밖에 모르는 서큐버스 치고는 제법이잖…”
콰아아아아아!!!
한차례 거대한 전류를 쏟아낸 케르디하크가 다소 힘겨워하는 러스테리아를 보며 오만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힘이 가로막혔음에도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찮은 벌레들은 반응조차 못 하고 불타 사라지는 자신의 권능을 제대로 반응하여 막아낸 서큐버스에게 의외라는 듯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저 마왕의 뒤만 따라다닐 뿐인 애완동물 따위로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상당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자 흥미가 돋은 것이었다.
그러나 케르디하크의 감탄은 그저 약을 먹고도 죽지 않는 쥐새끼를 보는 정도의 감상일 뿐이었고, 러스테리아를 한없이 내려다보는 오만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디스텔라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학…!! 이 망할 시체년이!!!”
“도마뱀 주제에 사람을 함부로 내려다보면 안 되지.”
“이년!!!”
지쳐서 숨을 할딱이는 러스테리아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케르디하크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카디스텔라의 공격이 쇄도한 것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생성된 진홍빛 마력이 거대한 다섯 개의 손톱을 생성했고, 그것은 방심하고 있었던 케르디하크의 안면을 거세게 훑고 지나간 것이었다.
케르디하크는 급히 몸을 비틀어 그 갑작스러운 기습을 피해냈으나, 워낙에 거대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보니 완벽하게 피해낼 수는 없었다.
케르디하크의 안면에 가로로 새겨진 평행선 세 줄이 선명하게 남겨진 것이었다.
그 세 줄기의 상처에서 푸른빛의 진득한 혈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벌레가 있다는 것에 격분한 케르디하크는 카디스텔라를 향해 강한 욕설을 내뱉었으나, 카디스텔라는 그와 똑같은 위치에 떠올라 있는 상태로 오연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케르디하크는 이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디스텔라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마법의 기본인 비행 정도는 당연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오히려 비행을 못 하는 것이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러나 하찮은 버러지가 비행을 하든 말든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떠올라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카디스텔라는 자신과 똑같은 높이에 떠올라서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은 오로지 드래곤이어야 했고,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작은 존재가 자신과 같은 하늘을 누빈다는 건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었다.
평소라면 카디스텔라의 비행 한 번이 이토록 그를 분노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디스텔라의 공격을 허용해 피를 본 드래곤으로서는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기에, 극도로 감정적이 되어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을 가지고도 격분하게 된 것이었다.
천 년 전 네로멜티아의 공격을 받은 이래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던 통증이라는 존재가 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었다.
파지지지지지직!!!
“너는 재가 될 것이다!!!”
케르디하크의 뿔에 또다시 방대한 전류가 흘러 모이기 시작했다.
무수한 스파크를 만들며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백색광이 눈부시게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에 눈이 멀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케르디하크는 영악한 드래곤이었고, 어떤 공격이 최적의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카디스텔라에게 공격을 퍼붓는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일대일의 개인 전투는 카디스텔라가 바라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케르디하크의 시선이 카디스텔라에게로 집중된다면 마왕성은 그만큼 안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케르디하크는 오히려 카디스텔라를 공격하면서도 그녀의 후방에 마왕성을 두려고 한 것이었다.
전류의 진행 방향이 카디스텔라와 마왕성을 동일 선상으로 둘 수 있게끔 계산한 것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적어도 마왕성을 지키는 마력 장벽은 더욱 위태해질 테고, 러스테리아의 보유 마력량에 따라 마력 장벽이 깨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초조해지는 것은 카디스텔라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케르디하크는 다른 한 존재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인물이었기에 그 위협을 다소 잊고 있었던 존재.
지면을 박차고 드높은 하늘까지 뛰어오르고 있었던 크로포드였다.
“목을 날려주마,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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