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12화 (112/216)

〈 112화 〉 케르디하크의 분노 (1)

* * *

마왕성의 외성 너머에 나타난 고성, 크림슨 캐슬.

갑작스럽게 출현한 칠흑의 고성을 경계하기 위해 모였던 오크군들은 더 이상 성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마왕성의 외성과 크림슨 캐슬의 사이.

오크의 군대와 망자의 군대 사이.

한 남성을 둘러싸고 있는 네 여성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돼!? 너는 블랙 나이트 단장이라는 녀석이 네 주인 행방도 몰라!?”

“부, 분명 드워프들을 만나러 가신다고…”

“아니! 그런 거 말고! 어디로! 왜! 얼마나! 그걸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워낙 급하게 출발하셔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셨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네로멜티아를 만나지 못하자 카디스텔라는 격하게 짜증을 내며 크로포드를 몰아세우는 중이었고, 크로포드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난처해 말을 더듬거나 흐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 강직하고 차분한 모습만을 보이던 크로포드였기에 그가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에게 얼마나 당혹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크로포드의 옆에 선 러스테리아와 넬라넬라 역시 무척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러스테리아는 행여나 과격한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마음을 졸이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넬라넬라는 자신 역시 마음을 졸이고 있으면서도 러스테리아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넬라넬라가 러스테리아의 뒤에서 그녀의 양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주었고, 러스테리아는 카디스텔라와 크로포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넬라넬라의 품에 등을 붙여 기대왔다.

“그쯤 하시지요. 크로포드님도 카디스텔라님도 마왕군의 직책으로는 동등한 상황입니다. 어느 한 분이 다른 분을 다그치거나 핍박하면 곤란합니다.”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을 것만 같았던 카디스텔라와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던 크로포드의 사이로 베아트리스가 난입하며 중재를 시작했다.

마력을 끌어올려 성을 옮기는 순간까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던 카디스텔라는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기대감에 비례한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 거대한 실망감이 장작이 되어 거센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막아서는 베아트리스가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하! 나는 네로멜티아의 친구고, 이 녀석은 네로멜티아의 기사야. 어딜 봐서 동등하다는 거지?”

“물론 선혈의 여제와 블랙 나이트 단장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같은 마왕군의 간부이시니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부탁드리는 것뿐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자신을 가로막아선 베아트리스에게 기분이 나빠진 카디스텔라는 베아트리스를 무시하고 크로포드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이제는 정말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고, 크로포드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을 하며 물러서려고 했다.

그때 베아트리스의 손이 카디스텔라의 가슴을 짚었고, 그녀의 앞길이 물리적으로 가로막히게 되었다.

완곡한 설득의 말 이후에 나타난 물리력 행사는 차분한 손길 한 번으로 그쳤으나, 그 안에는 단호하고 완강한 제지의 표현이 배어 있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카디스텔라에게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는 것이었다.

“감히 가슴을 만져? 깡통 깡통 해주니까 진짜로 깡통되고 싶냐?”

“후후, 실례. 워낙 아무것도 없어서 가슴인 줄 몰랐습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카디스텔라의 역린을 건드리는 베아트리스.

이쯤 되면 베아트리스는 카디스텔라를 화나게 하는 일에 대해서 전문가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다.

단지 말 한마디만으로 카디스텔라의 이성을 날려버렸다.

단지 가벼운 웃음만으로 카디스텔라의 마음에 기름을 끼얹었다.

단지 가슴이라는 단어 하나로 카디스텔라의 분노에 불을 당겼다.

카디스텔라의 송곳니 끝이 핏빛으로 물들고 진홍빛의 동공이 살벌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너 감히…!!!!”

쿠구구구구구구구!!!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었던 카디스텔라의 외침이 끝을 맺지 못하고 끊겨 버렸다.

하늘에서 들려온 거대한 굉음 때문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고, 대기를 통해 퍼져 나가는 진동이 마왕성 일대와 인근 지역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모두가 거짓말처럼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성들의 살벌한 말다툼에 할 말을 잊은 베리베리.

포근한 넬라넬라의 품에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던 러스테리아.

러스테리아의 부드러운 신체를 품으며 잠시 설렌 마음을 가졌던 넬라넬라.

당장에라도 카디스텔라가 달려들까 봐 당혹감에 젖어 있었던 크로포드.

카디스텔라를 약 올리기 위해 조소를 머금었던 베아트리스.

분노를 터뜨리며 폭발하는 중이었던 카디스텔라.

모든 이들이 진동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우!!

찬연한 태양을 가리는 탁하고 두꺼운 분진층만이 보였던 하늘.

그 시커먼 분진층을 뚫고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지상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푸른 빛의 거체를 지닌 존재였다.

푸른빛의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파충류의 모습.

하나의 작은 성과 같은 크기의 거체와 그에 걸맞게 크고 길었던 피막 날개.

엘크(Elk)와 닮은 왕관 같은 뿔을 가졌고, 비늘과 같은 색상의 푸른빛을 발하던 눈은 동공이 세로로 길게 뻗어 있었다.

12신들과 동등한 권능을 가졌다 일컬어지던 드래곤이라는 존재였다.

“이 작고 더러운 것들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었구나.”

“케, 케르디하크(Kerdihak)!!”

하늘을 무겁게 울리는 진동의 음성.

드래곤은 입을 벌리지 않고도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통해 현재의 음성이 드래곤의 실제 성대를 통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드래곤이 마력을 이용하여 생성한 만들어진 음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로포드는 드래곤의 이름을 다급히 외치며 자신의 검을 챙겨 들었다.

이 푸른빛의 드래곤은 그에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천 년 전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의 죽음.

마왕성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오르던 파멸의 날.

그 모든 불행에 일조(一?)했었던 간악한 드래곤이 바로 케르디하크였다.

네로멜티아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유지하던 마력 장벽을 이 푸른 드래곤이 휴미안군에 가세하여 공격하지만 않았어도 네로멜티아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로 인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다른 마왕군 간부가 네로멜티아에게 가세하여 유리해졌을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떠나서 이 간악한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네로멜티아의 심장에 성검 셀레스티아(Celestia)가 박히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감히 네가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내가 널 용서할 것 같은가!!!”

“호오, 크로포드 단장 아니신가. 천 년 만인가, 반갑군.”

“당장 내려와라!!!”

크로포드는 그가 평소 보인 적이 없었던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 케르디하크에게 겨누어진 코르니움의 검은 당장에라도 적의 목을 베어버릴 기세가 담겨 있었다.

카디스텔라의 짜증을 받으며 당황하던 유순한 모습은 사라졌고, 욕설만 입에 담지 않았다 뿐이지 당장에라도 피를 보고 싶어하는 살벌한 기세만이 남은 것이었다.

그러나 케르디하크는 그 모습을 여유롭게 비웃었다.

“이거야 원. 천 년 전에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 아닌가. 분명 천 년 전에는 마왕년이 죽든 말든 꼬리를 말고 피난을 했었던가? 후후후후.”

“닥쳐라!!!!!”

드래곤의 모습이기에 표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케르디하크가 이 순간 진득한 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현실이었다.

그는 명백한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상대의 분노를 지켜보며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크로포드의 고통을 기분 좋은 쾌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크로포드는 피를 토할 것 같은 고함을 지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감히 주군에게 죽음을 몰고 오고, 죄 없는 헤모니겐트에 파멸을 몰고 온 드래곤.

지하 세계에서 천 년을 기다리며 쌓여온 원한이 이 순간 이성의 속박을 풀고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기 도마뱀.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먼 하늘에서 조롱과 조소를 날려대는 케르디하크에게 던져진 차분한 한마디.

케르디하크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새로운 상대를 노려봤다.

그는 명백히 노기를 터뜨리고 있었다.

표정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드래곤의 안면으로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유롭게 크로포드를 조롱하던 케르디하크의 감정을 단숨에 뒤흔들며 주도권을 가져온 이는 카디스텔라였다.

“도마뱀이라고 했나?”

“비늘 달리고 혓바닥 갈라졌으면 도마뱀이지. 뭔가 바라는 호칭이라도 있나?”

케르디하크의 만들어진 음성과 함께, 드래곤의 거대한 성대를 통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분명히 알아들었으면서도 되묻는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 있으면 다시 한번 지껄여 보라는 위협인 것이었다.

그러나 카디스텔라는 오히려 케르디하크의 속을 더 심하게 긁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상당한 여유가 감돌고 있었고, 일말의 위기감도 보이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일부러 상대의 화를 부추기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찮은 시체년 주제에…!!”

“하찮은 도마뱀.”

“다시 한번 지껄이면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라, 어디서 도마뱀이 울고 있네? 피이~ 피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케르디하크를 철저하게 놀려대는 카디스텔라.

심지어 그녀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노기가 가득한 케르디하크의 고함에도 오히려 귀여운 도마뱀 소리를 흉내내며 약을 바짝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내지 마, 크로포드. 저딴 자식 손에 놀아나지 말라고.”

“아, 아…! 알겠습니다…!”

카디스텔라는 상대를 조롱하는 웃음을 유지하고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한 채, 조용히 속삭였다.

케르디하크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전한 카디스텔라의 조언은 크로포드의 흐트러진 정신을 바짝 일깨워 주었다.

카디스텔라는 크로포드를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가 간악한 드래곤의 갈라진 혓바닥에 놀아나는 모습이 싫었고, 선량한 크로포드를 가지고 놀며 즐거워하는 드래곤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다.

크로포드 역시 케르디하크에게 들리지 않도록 은밀히 대답을 전했고, 그의 선명한 음성은 분노하던 조금 전 상황과 달리 평소의 총기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이 더러운 망자년이 감히 누구를 조롱해!!!!!”

“이봐!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크으으으…!!!”

여유 있게 실실 웃던 카디스텔라는 케르디하크가 분노에 치를 떨며 길길이 날뛰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가볍게 화제를 돌려버렸다.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카디스텔라의 태도에 케르디하크는 불이라도 뿜을 것처럼 이를 갈다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리고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는 실제로 유쾌한 기분이기에 흘리는 웃음이 아니었고, 상대를 조롱하기에 앞서 자신의 여유로운 모습을 되찾기 위해 흘리는 만들어진 웃음이었다.

“후후후. 하찮은 너희들이…”

“보나 마나 카디스텔라님 때문이죠.”

의미심장하게 말을 시작하려던 케르디하크.

그의 말을 처음부터 자르고 나타난 이는 헤스티니아였다.

갑자기 뒤에서 불쑥 나타난 헤스티니아에게 모두가 적잖이 놀랐으나 카디스텔라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던 것이 있었는지 뜨끔하는 모습마저 보이던 카디스텔라의 앞으로 헤스티니아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헤, 헤스티니아…”

“이런 거대한 고성을 이동시키려면 얼마나 큰 마력이 소모될까요? 이렇게 큰 마법을 사용했는데 마력의 파장이 달까지 전해지지 않았겠어요?”

“그치만…”

“그치만 같은 건 없어요. 달에 사는 도마뱀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시 중이었을 텐데 이런 큰 마법을 사용하시다니, 도마뱀은 자명종이라도 울린 느낌이었을 걸요?”

평소 보이던 드세고 오만한 모습은 사라지고 여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카디스텔라.

평소 보이던 느긋하고 나긋한 모습은 사라지고 설교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헤스티니아.

이 이색적인 모습에 모두가 놀랍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러스테리아는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고, 그 진중한 넬라넬라조차 애써 케르디하크에게 고정하던 시선을 자꾸 두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크로포드와 베리베리는 그나마 케르디하크에게 전의를 가지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문제는 베아트리스에게도 있었다.

하던 말을 잘리고 무시까지 당하고 있는 케르디하크에게 베아트리스가 피식 비웃음을 날린 것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케르디하크에게는 견디기 힘든 모욕으로 다가왔다.

쿠오오오오오오!!!!!

푸른 드래곤의 포효가 마왕성 일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흉곽을 넘어 심장까지 전해지는 그 거대한 울부짖음은 생물들이 기본적으로 지닌 원초적 공포를 자극했다.

드래곤 피어(Dragon Fear)라고 불리는 권능의 포효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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