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휴미안 습격
* * *
“선뜻 먼저 존함을 밝혀 주셨건만… 경황이 없어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태고의 숲 1차 파견 조사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넴베르그 위크하트(Nemberg Weakhart)’입니다!”
“조사대의 기술 지원 및 골든윙 조종수 ‘베르코(Berco)’입니다.”
숨이 넘어갈 듯 놀란 넴베르그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소개를 시작한 건 십 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정신이 들자마자 넴베르그가 숨을 고르며 자각한 것은, 무려 신화로 일컫는 존재인 마왕이 자신을 먼저 소개했음에도 자신은 자기 이름 몇 자조차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왕이 은혜로이 내려준 술과 고기를 다 먹고 나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데다 오히려 질문이나 건네고 있었으니, 당장에라도 마왕이 진노하여 불벼락을 내린다 할지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것이었다.
“미천한 것이 배우지 못하여 큰 결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런 사소한 예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괘념치 말 거라.”
“그, 그러나…!!”
넴베르그는 점차 마왕의 진노를 걱정하는 듯 고개를 숙였고, 머지않아 바닥에 넙죽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기까지 했다.
지면에 이마를 처박고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자꾸 겁을 집어먹어 도통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넴베르그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 이마를 짚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때 베르코가 바닥과 하나가 되는 중이었던 넴베르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직이 말했다.
“이봐, 리더. 나 역시 너와 같은 어린 드워프라 세상 물정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본 마왕님은 결코 이런 일로 노하실 분이 아닌 거 같아. 오히려 더 큰 죄도 기꺼이 용서해 주실 인자한 분이시지. 그보다 마왕님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이야기를 빨리 들려 드리는 게 더 올바른 자세 아닐까?”
‘그래! 말 잘했다, 베르코!’
무척이나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말로 넴베르그를 안심시키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베르코의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속으로 환호했다.
상당히 겁에 질려 있었던 넴베르그는 베르코의 몇 마디 말에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고, 신체의 떨림 역시 멎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네로멜티아는 자꾸 기겁하며 말문을 닫는 넴베르그를 내버려 두고 그나마 말이 통하는 모습을 보였던 베르코와 대화를 해도 상관이 없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명색이 조사대의 리더라고 앉아있는 넴베르그를 내버려 두고 다른 대원을 대표로 삼아 대화를 주도한다면 리더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넴베르그의 위신을 배려해서 기다려 준 것이었는데, 대화 진행에 상당히 차질을 빚고 있어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려고 하던 차에 베르코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주니 무척이나 달가웠던 것이었다.
베르코가 다독여주고 넴베르그는 이성을 찾고.
대원들은 이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저들도 참 고생이구나 싶어 내심 안쓰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이제 이 말이 지겨우시겠지만…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이제부터 마왕님의 말씀을 모두 경청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우선, 현재 드워프들의 생활은 어떻지? 지금처럼 휴미안들에게 압박을 받고 있나?”
대화를 무척이나 기다렸던 네로멜티아는 넴베르그의 예의가 가득한 말을 대충 흘려넘기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런 겁쟁이에게 생각할 틈을 주었다간 또 자신만의 걱정에 빠져 벌벌 떨어댈 테니 틈을 주지 않으려는 셈이었던 것이다.
“드워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식량뿐이고 은신에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휴미안들은 이 근방에 드워프들이 거주하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래, 그럼 태고의 숲을 찾은 이유도 식량 문제 때문이겠군.”
“그렇습니다. 사실 광산 내부에도 농작물 재배 시설이 있어서 굶지는 않는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어서 항상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태고의 숲이 푸른빛을 되찾았으니, 휴미안들이 발견하기 전에 먼저 점령하고 빨리 감추려고 했습니다.”
네로멜티아는 헤스티니아와의 대화에서 유추한 정보들이 모두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한가지 의외였던 건 드워프들의 식량이 모자라다는 사실 정도였다.
언더 바르커스의 데모니안들도 모자람이 없이 유지하던 식량 재배를 드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드워프들이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낀 것이었다.
“리겐하르트 영감은 살아있나?”
“…!!!”
넴베르그는 또다시 경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을 쩍 벌리고 눈을 크게 뜬 모습이 적잖게 우스꽝스러웠으나 네로멜티아는 전혀 우습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시작이네.’
조금은 대화가 수월하게 이루어지나 싶었는데 또 이 모양이었다.
네로멜티아는 베르코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그는 작은 마도 기계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어 네로멜티아의 구원 요청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한숨을 지으며 자신이 직접 넴베르그를 안심시키기로 결심했다.
“저기, 넴베르그… 나도 오래 살아왔으니까 당연히…”
“휴미안 습격입니다!!!”
명색이 마왕이라는 존재이니 그만큼 오래 살았고, 당연히 드워프 영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설명하려던 찰나였다.
네로멜티아의 차분한 설명은 베르코의 다급한 외침에 맥없이 끊겨 버렸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대화를 다시 이어갈 수가 없었다.
베르코가 전한 소식은 급히 대처해야 할 최고의 중대사였던 것이다.
“어디냐!!”
“매, 맥켄지 광산입니다!!! 어, 어떻게…!!”
네로멜티아의 다급한 질문에 베르코는 해당 위치를 말하면서도 사색이 되어 당황하고 있었다.
그저 의문을 보이며 머리를 굴릴 뿐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문제를 알았다는 듯, 네로멜티아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저희의 추격을 시작하면서 본대와 연락을 했나 봅니다!!”
“자세히 설명해!!”
“사실 맥켄지 광산 근처에서 종종 형제들이 사로잡힌 적이 있었는데… 오늘 다수의 드워프들이 나타난 걸 보고 위치를 특정한 것 같습니다!!”
“은신에는 문제없다고 했잖아!!!”
“부, 분명 이전까지는 휴미안들이 맥켄지 광산을 특정해서 조사하는 일은 벌이지 않았는데…!!”
네로멜티아는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했으니,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여기고 베르코에게 다가갔다.
베르코가 들여다보고 있었던 마도 기계의 화면은 그가 조종하는 골든윙들의 화면을 순서대로 출력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명백한 휴미안 군대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수백에 이르는 휴미안의 군대가 스캐빈저를 타고 몰려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사로잡은 드워프를 운송할 철창이 실린 마도 공학 차량도 존재했다.
그들이 질주하며 만드는 흙먼지가 일대를 뒤덮는 모래폭풍처럼 거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잉 지잉 지잉 지잉
“잠깐! 방금 전 화면 돌려!”
“에…? 네, 네!!”
버튼을 누르며 여러 개의 골든윙 화면을 차례대로 출력하던 중, 네로멜티아는 하나의 화면에 주목하고 다급히 화면을 돌리도록 지시했다.
갑작스러운 마왕의 지시에 당황한 베르코는 뒤늦게 반응하며 화면을 돌렸다.
그것은 온통 검은색만 출력될 뿐인 화면.
“이, 이건… 사흘 전부터 검은 화면만 출력되길래 망가졌다고 생각해서 방치하던…”
“이 골든윙을 휴미안이 주웠고, 화면이 보이지 않게 처리해서 너희의 흔적을 추적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떠냐.”
“…!! 그, 그럼…!!!”
“너희를 추격하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이미 맥켄지 광산에 대한 대략적인 위치까지 추정한 뒤였다는 거지.”
네로멜티아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골든윙 하나를 어디서 탈취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맥켄지 광산에서 나오면서부터 일정 주기로 골든윙을 두고 갔을 것이고, 그중 하나가 휴미안들에게 발견된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 첨단 기술로 이루어진 초소형 비행 골렘을 본 휴미안들은 드워프들이 제작한 마도구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을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 드워프들이 종종 사로잡혔던 장소를 떠올리고 드워프들의 거주지가 멀지 않은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우선 이동한다. 레비테이션!”
“우오오오오!!!”
“으어!! 으어어어어!!!”
네로멜티아가 사용한 공중 부양마법 레비테이션(Levitation)에 드워프 조사대 모두가 아무렇게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한 번도 비행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드워프들은 저마다 처음 느끼는 아찔한 감각에 당황하여 팔다리를 휘저으며 비명을 질렀으나, 네로멜티아는 그들에게 적응할 시간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맥켄지 광산이 존재하는 남쪽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드워프들이 멀미를 하든 말든 그들을 이끌고 고속 비행을 하기 바빴다.
그나마 그들이 고속 비행으로 인해 질식할 것을 염려하여 배리어 마법을 하나씩 둘러 준 것은 네로멜티아가 무척 자애로운 마왕이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네로멜티아는 베르코를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서 그의 손목에 부착된 마도 기계의 화면을 살피며 비행하고 있었다.
화면 속의 휴미안군은 시시각각 맥켄지 광산의 근처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