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죽음의 성, 망자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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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외벽 너머에 나타난 칠흑의 고성(古?).
흉포한 야성이 느껴지는 가고일 석상과 음습하고 소름 끼치는 해골 석상이 성을 호위하고 침입자를 감시하는 듯 보였고, 한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석상들임에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이빨을 드러낼 것처럼 그 기세가 살벌했다.
성의 외벽을 둘러싼 담쟁이덩굴은 석재를 깎아 만든 장식이었고, 상상을 뛰어넘는 기술로 제작된 예술품이었으나 화려하다는 감상을 주기는커녕 고성을 거대한 묘지와 같이 음산하게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석재로 이루어진 성은 태양이 머무르는 한낮의 시간임에도 밤의 시간이 정체되어있는 것처럼 싸늘하고 스산해 보였다.
포근한 휴식의 밤도 아니었고, 온갖 망령이 활개칠 것 같은 섬뜩한 밤이었다.
소름 끼치는 쇳소리의 비명을 지르며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는 망자들이 희생자를 기다리는 거대한 무덤을 보는 듯, 미지의 두려움이 이성을 압도하게 이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괴이한 형태와 음습한 분위기에도 이 건축물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고성이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언뜻 유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상당히 오래된 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 하나 무너진 부분 없이 건재할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었고, 성의 형태 또한 어느 국가의 황제가 사용하는 성처럼 어느 것 하나 사소한 부분 없이 무척이나 고풍스럽게 건축되어 있던 탓이었다.
성벽에 양각된 장미 문양은 달콤한 장미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었고 여신의 신전을 가져다 놓은 듯 우아한 형태의 발코니와 창문은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원뿔형의 지붕과 경계를 위한 외벽, 해자를 건너기 위한 거대한 성문 같은 실용을 위한 필수 구성 요소들은 어느 성에서나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것들이었으나, 이마저도 거침없는 물결무늬가 양각되어 있거나 비늘잎을 모방한 금속판이 덧대어져 있는 등 일말의 소홀함 없이 귀족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본능을 자극하는 두려움과 경의를 사로잡는 웅장한 위용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현재 모습을 드러낸 고성인 것이었다.
“이, 이건…….”
“아! 오셨구나!!”
일생에서 목견한 바가 전혀 없었던 압도적인 장관에 말을 잊을 정도였던 넬라넬라.
그러나 그녀의 옆에 서 있었던 러스테리아는 오히려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러스테리아는 이 고성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기에 익숙한 것이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성의 주인이었기에 오히려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고성의 이름은 크림슨 캐슬(Crimson Castle)이었다.
끄그그그그그극…!!
쿠우우우웅!!!
육중한 쇠사슬이 풀어지며 성문이 열렸고, 살벌한 스파이크 트랩(Spike Trap)이 가득 도사리고 있었던 깊고 넓은 해자에 성문이 길게 덮이며 다리가 만들어졌다.
성문이 내려앉아 지면에 닿으며 난 소리는 굉음이라 표현해야 할 정도로 강렬했고, 한 줄기의 벽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거기다 주변 일대의 지면이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대지에 가해졌고, 그에 따라 새벽 호수의 운무와 같은 짙고 거센 흙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오로지 칠흑의 금속으로만 이루어진 이 성문이 얼마나 육중하고 무거운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정밀한 박자로 일정하게 들려오는 발소리.
거세게 피어오른 흙먼지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는 분명 성의 내부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어느덧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왕성의 주민들이 공포심을 억누르고서 몰려들고 있었다.
몰려든 주민들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날을 세운 본능이 경고를 하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이 발소리는 군대의 행진이었다.
성 내부에서부터 강대한 군세가 행군을 하는 것이었다.
“진형을 갖춰라! 포위진이다!”
어느새 나타난 베리베리와 오크군이 일사불란하게 포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크림슨 캐슬의 성문을 둥글게 에워싸는 포위진.
하나의 문을 통해 군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줄을 지어 나올 수밖에 없기에 다수의 병력을 이용해 포위한다면, 성에서 나오는 이들은 혼자서 수십의 오크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신속하게 최적의 명령을 내리는 베리베리.
짧고 간단한 명령에도 물 샐 틈 없이 정확한 진형을 구축하는 오크군.
전장의 오크가 보이는 위용은 칠흑의 고성이 드러낸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울 정도로 강성한 것이었다.
“으… 으와아아아아…!!!”
“어, 언데드다!!! 망자들이야!!!”
짙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하며 드러난 성문의 내부.
깊은 어둠이 자리한 암흑의 공간에서 시퍼런 안광들이 섬뜩한 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문을 타고 해자를 건너 밖으로 나서기 시작한 군대.
그들에게는 살도 없었고 피도 없었다.
오로지 덜그럭거리는 앙상한 뼈만이 존재했고, 그 공허함을 갑옷을 둘러 대신 채웠을 뿐이었다.
외견은 낡았으나 상당한 견고함이 느껴지는 하프 아머.
그리고 그들은 검과 방패를 쥐고 있었다.
아직 적과 마주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철저히 방패를 앞세우고 검을 치켜들어 갖춘 대비의 자세는 모든 병사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로지 뼈만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 모든 금속 장비들에게서 티끌만큼의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사바톤의 금속음은 무척이나 정밀한 박자로 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언데드, 스켈레톤.
모든 것이 썩어 없어져 가련한 뼛조각으로 생명의 미련을 이어가는 망자들.
눈 앞에 펼쳐진 생명들을 모조리 찾아 씹어 삼킬 죽은 자들의 군대.
쿵!!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순간 망자의 군대가 행군을 멈췄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발을 구른 순간, 그들의 대열 사이에서 멋스러운 검은빛 정장을 차려입은 스켈레톤 하나가 걸어 나왔다.
현재의 섬뜩한 군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스켈레톤.
그 역시 똑같은 스켈레톤이었음에도 그의 태도가 무척 예스럽고 정중했기에 공포는커녕 일말의 위협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다 그 정장의 스켈레톤은 이지적인 음성으로 대화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여전히 적의를 담고 있는 베리베리의 단호한 음성이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다소 호의적인 대화를 시도하였음에도 베리베리는 여전히 경계를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기습에 대비하여 자신의 배틀 액스를 더욱 강하게 쥐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베리베리의 단호한 태도에 정장의 스켈레톤은 안광이 조금 미약해졌다.
그저 뼈만이 존재하는 신체였기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이전보다 더욱 부드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상대의 적의를 걷어내기 위한 온화함의 표현이었다.
“제 이름은 휠러 케니스턴(Wheeler Keniston). 망자들의 드높은 지배자, 선혈의 여제님을 모시는 집사장입니다.”
둥! 둥! 둥! 둥! 둥!
순간 스켈레톤의 군대 후방에서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전쟁을 선언하는 소리와 무척이나 닮았고, 혹은 개선을 이르는 소리와도 흡사한 것이었다.
크고 웅장한 북소리가 신체의 고동보다도 더 큰 흔들림을 전해오며 듣는 이의 감각을 사로잡는 느낌이었다.
“선혈의 여제,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Cardistella moon Night)님의 행차이십니다!”
순간 스켈레톤 군대의 중앙이 길게 갈라지며 양측의 병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아무도 명령을 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우렁차게 호령한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시에 갈라진 군대의 대열.
양측으로 갈라진 망자의 군대가 인위적으로 만든 길을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하나씩 스켈레톤 병사들을 지나치며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한 여성.
성스러운 미스트릴을 보는 듯 아름답게 반짝이는 은발을 바탕으로 피를 연상케 하는 진홍빛 적발이 조금 섞여 있었다.
칠흑과 같이 검은 오프 더 숄더 드레스는 타이트한 형태를 지녔고 네크라인이 깊게 파여 있었으며 소매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노출되는 피부의 면적이 의외로 넓었다.
네크라인 중앙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여덟 가닥의 끈은 목의 감싸고 있던 초커와 이어지거나 어깨를 넓게 감싸고 있었으며, 끈들을 가로질러 이어진 다른 끈들이 존재했기에 아름답게 잘 짜여진 거미줄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진홍빛 루비가 중앙에 박혀 있었던 초커는 어두운 색상 일색인 의복에 선명한 인상을 남겨주는 매력적인 장신구였다.
거기다 네크라인과 스커트의 밑단 그리고 측면의 갈라진 틈 사이까지, 은빛 실로 수놓아진 장미 줄기 문양이 존재해 고풍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길고 타이트한 스커트의 우측은 둔부의 측면이 일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트여있었고 길고 매끄러운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구조였다.
깊게 벌어진 스커트가 더욱 벌어지며 은밀한 부위까지 드러나는 일은 막을 수 있도록 은빛의 가느다란 사슬이 스커트의 벌어진 틈 양측을 엮어 내려가며 고정하고 있었다.
깊고 어두운 밤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아름다움.
우아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은 달과 별이 빛나는 포근한 안식의 시간과 칠흑 같은 어둠을 통해 미지의 공포가 도사리는 두려움의 시간이 동시에 구현된 것 같았다.
감히 단정 지어 형용할 수 없었고, 오로지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라는 그녀의 드높은 이름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는 망자들을 헤치고 앞에 다다르자마자 마왕성을 향해 말했다.
“마왕의 벗이 찾아왔노라. 어서 마왕에게로 안내하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