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마왕의 연인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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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의 재건이라는 중대한 목표를 앞에 두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던 헤모니겐트의 주민들.
마왕과 국가와 이웃을 위해 땀을 흘리던 헌신적인 노동자들이 각자의 분주한 임무를 진행하며 달아오른 신체를 이끌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각자의 식사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섰으나, 그들의 시선은 준비된 음식들에 가 있지 않았다.
으레 식당에 들어서면 목적은 오로지 식사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마련된 음식을 살피며 마음속으로 저마다 음식에 대한 평가를 하기 마련.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광경에 시선이 사로잡혀 자신들이 배급받을 음식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어서 드시지요.”
“…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딱히 여러분에게 죄를 묻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마련한 음식이니 식기 전에 드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싸늘한 냉기가 주변의 체감온도를 내릴 정도였던 베아트리스.
그녀가 서른 명 남짓한 남성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식사를 재촉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을 위해 마련된 음식이 무척 괴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길고 시커먼 생선이 통째로 꽂혀 구워진 생선 파이.
생선을 손질 없이 그대로 꽂아 구웠기에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었고, 그 길고 시커먼 생선은 본래의 번드르르한 모습까지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태고의 숲 냇가에서 채취해 온 블랙 일(Eel)이라는 생선이었다.
거기다 마늘과 생강을 껍질도 벗기지 않고 조리한 통구이도 있었다.
마늘 특유의 퀴퀴하고 알싸한 향기가 주변 일대에 가득 퍼지고 있었다.
생강 역시 특유의 톡 쏘는 자극적인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는데, 마늘보다 더욱 고역이었던 건 바짝 태워버려 탄내마저 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예 비린내를 풍기며 징그러운 외형을 지닌 음식도 있었다.
음식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고, 차라리 동물의 사체 일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알맞을 정도였다.
도축된 빅 보어의 고기를 식사에 사용하고 남은 것.
바로 빅 보어의 생간이었다.
접시에 피가 흥건하게 고일 정도의 생간은 불과 맞닿은 적이 전혀 없는 완벽한 날것으로 보였고, 피비린내와 함께 내장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취향에 따라 생고기나 생간을 먹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현재 접시에 올려진 빅 보어의 생간은 한 점이라도 먹었다간 건강이 크게 상할 것으로 보였다.
생간의 외부로 꾸물거리는 기생충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식량이 귀중한 현재의 시대에서는 당연히 짐승의 내장도 소중한 식재료였으나, 이렇게 기생충이 득시글거리는 내장을 익히지도 않고 먹는다는 건 상식 밖의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우욱…!!”
“왜 그러십니까. 아직 맛도 보질 않으셨으니 입맛에 맞지 않으시는 건 아닐 테고. 여러분들이 밤마다 수고가 많으시니, 제가 직접 나서서 채취해 온 진귀한 식재료들인데 음식 투정부터 하시는 겁니까? 무례하시군요.”
누군가 앞에 놓인 음식에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을 해버렸다.
블랙 일 생선 파이의 비린내 때문인지.
마늘과 생강의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기 때문인지.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핏덩어리 내장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를 몰라도 일부 특정할 수 있는 조건은 명확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아, 넬라넬라님!”
이제 막 식당에 들어선 넬라넬라가 먼저 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러스테리아에게 다가가 상황을 물었다.
죽을상을 하고서 고개만 숙이고 죄인 같이 용서를 비는 서른 남짓한 남성들.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베아트리스.
보나마나 남성들이 무언가 잘못한 모양이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기에 러스테리아에게 질문한 것이었다.
“그게요. 베아트리스님이 저분들을 모아서 ‘정력에 좋은 재료들이 들어왔는데 보양식으로 드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셨거든요. 그래서 저분들이 환호를 하고 좋아하셨는데 보시다시피…….”
“… 아…….”
그다지 길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넬라넬라는 사건의 모든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베아트리스가 고블린 소년 하나에게 특정 남성들이 겪고 있는 피로의 원인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넬라넬라 역시 신용하는 오크 한 명에게서 사태의 내막을 전해 들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파악한 넬라넬라는 헤스티니아에게 항의하고, 그녀와 밤마다 난교를 벌이면서 업무에 지장을 초래했던 부하들을 모아 제대로 교육할 생각이었는데 베아트리스가 합의를 보았다고 하니 그냥 넘어갔던 것이었다.
그래도 부하들에게는 엄한 교육을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현재 그녀보다 먼저 베아트리스가 선수를 친 것이다.
자세히 보니 베아트리스의 특별한 보양식을 대접받고 있는 남성들 중에는 넬라넬라의 휘하에 있던 오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자진해서 진실을 고하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보양식에 정신 못 차리고 침이나 흘리고 있었다면, 당해도 싼 것이었다.
“저거 먹고 진짜로 아프시면 어쩌죠?”
“후. 러스테리아님. 저들은 상관하지 마시고 함께 식사나 하시겠습니까?”
유순하고 순진한 러스테리아는 저런 괴상한 음식들을 먹고 남성들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던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가 더 이상 마음 쓰지 않도록, 그녀를 이끌고 다소 먼 자리에 가서 앉혔다.
“우으으응…….”
“보십시오, 러스테리아님. 오늘은 블랙베리 프루트 펀치가 나왔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잘 보이지 않는 먼 위치로 이동했음에도 남성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러스테리아.
다른 이들은 음식을 직접 줄을 서서 배급받아야 하지만 간부급들은 식당의 관리 인원들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에는 음식들이 곧바로 올려졌고, 순식간에 모든 식사 준비가 마쳐진 것이었다.
그리고 넬라넬라는 차려진 음식들 중 러스테리아가 가장 좋아할 음식 하나를 골라 그것을 이용해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효과는 무척 탁월했고, 러스테리아는 모든 근심을 잊은 채 그녀 특유의 보랏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행복한 탄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하우웅…! 이거 엄청 달아요! 넬라넬라님도 드셔보세요!”
“후후. 알겠습니다.”
넬라넬라는 팔십오 년밖에 살지 않은 자신이 이천 년 이상 살아온 연장자에게 귀엽다는 감상을 가질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오물거리는 러스테리아의 뺨.
그 도톰하게 부푼 보드라운 볼살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여웠다.
네로멜티아와 비견될 정도의 큰 가슴은 무척이나 농염하고 매혹적인 여성의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으나, 그런 색기 넘치는 야릇한 신체에도 러스테리아에게는 그것을 웃도는 귀여움이 있었다.
‘폐하께서도 이런 감상이셨겠지…….’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가 네로멜티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봐도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쓰다듬거나 끌어안고 싶을 정도인데, 기본적으로 여성을 좋아하는 네로멜티아라면 무척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다 보니 넬라넬라는 한 가지의 근심이 다시 떠올랐다.
“러스테리아님.”
“우응. 부르셨나요?”
한창 맛있는 식사를 즐기다 넬라넬라의 부름에 반응한 러스테리아는 음식에 정신이 팔렸을지언정 상대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았고, 음식을 급하게 다 넘긴 뒤 대화의 자세를 갖춘 후에 대답했다.
무척 진중한 모습이었던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가 경청할 자세를 마치자마자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는 얼마 전에… 폐하와… 밤을 보냈습니다…….”
“스토니 포트리스에서 말씀이시죠? 그거라면 이미 알고 있어요. 베아트리스님이 다 얘기해 주셨거든요.”
넬라넬라가 무척이나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러스테리아.
넬라넬라는 혹시 상대가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싶어 재차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 그냥 잔 것이 아니라…! 그… 저기… 함께 성교를…….”
“그것도 들어서 알고 있는걸요?”
넬라넬라는 어느 정도 큰 반발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스테리아의 반응은 여전히 담담했고, 오히려 그게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분위기마저 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이 바람 한 점 없는 평화가 당혹스러웠던 넬라넬라는 조심스럽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제가… 밉지는 않으십니까…?”
넬라넬라가 밝힌 지난 밤의 내막을 천연스레 받아들이던 러스테리아는 여전히 화를 내지 않았다.
이쯤 되면 넬라넬라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무척이나 정확하게 직설적으로 상황을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넬라넬라가 걱정했던 바와 전혀 딴판으로 러스테리아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나긋한 목소리를 들려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주인님은 미인들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니까, 그런 게 불편하면 주인님의 곁에 머물기 힘들 거예요. 천 년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저도 얼마 전에는 베아트리스님께 질투가 났었거든요? 그때 오운님께서 상담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주인님께 큰 무례를 저지를 뻔했어요. 그러니까 넬라넬라님의 말씀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 그렇다면…”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감히 질투라는 건 할 수 없어요. 주인님께서 얼마나 되는 여성들과 얼마나 사랑을 나누시든 주인님께서는 최고로 대단하시고 최고로 아름다우시니까 당연한 거예요. 저는 오운님의 말씀대로, 주인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거예요.”
넬라넬라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런 사랑의 형태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이들과 사랑을 나누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명확한 의지.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일말의 거리낌 없이 순수하게 그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심지어 그 선택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감정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의 걱정 따위는 하잘것없이 사소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피식 웃어 버렸다.
마왕의 연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고, 마왕의 연인이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는 것이었다.
러스테리아가 느끼고 있는 행복의 형태를 진심으로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넬라넬라님을 미워할 리가 없잖아요. 오히려 주인님을 함께 모실 수 있는 분이 생겨서 행복한걸요? 그러니까 넬라넬라님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러스테리아님…….”
생긋 웃으며 따뜻한 호의를 내비치는 러스테리아에게 넬라넬라는 무척이나 감격했다.
찔끔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러스테리아에게서는 따스한 자애가 넘쳐나는 것이었다.
마왕의 사랑을 함께 나누게 된 자신에게 오히려 애정을 가득 전하는 러스테리아의 모습에서 넬라넬라는 자신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녀는 귀엽고 순진무구했으나 사랑에 관해서는 아득히 선배였다.
쿠구구구구구우우우우우우웅!!!!!
콰르르르르르르르!!!!!
순식간에 식당을 뒤흔든 무지막지한 굉음.
그저 건물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지반 전체가 뒤흔들리는 규모였다.
식당뿐만이 아니라 마왕성 일대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으며, 식탁 위에 놓인 접시와 그릇이 요동쳤고 바닥에 엎어지기까지 했다.
강렬하게 몰아친 대지진에 헤모니겐트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혼비백산하며 바닥을 설설 기어 안전한 장소를 찾았고, 네로멜티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올리기까지 했다.
철저한 군사 훈련을 받은 이들은 그나마 용맹하게 자신들의 무기를 쥐고 버티는 모습을 보였으나, 창밖을 살피며 동태를 살필 뿐 외부로 나가서 상황을 파악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러스테리아와 넬라넬라만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급히 식당 밖으로 달려나갔을 뿐이었다.
용감하게 달려나간 두 여성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의 등장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황량한 폐허만이 존재했던 마왕성의 외벽 너머로,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의문의 거대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었다.
상당히 먼 거리에 나타난 건축물임에도 마치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처럼 외관을 선명하게 살필 수 있을 정도였다.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압도당할 정도로 웅장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하나의 고성(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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