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마왕의 연인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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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비워진 위를 채워줄 한 끼의 식사.
저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이들이 하루를 시작할 활기를 얻기 위해 찾아오는 장소.
아침 식사가 준비된 마왕성의 식당은 저마다의 떠들썩한 분위기로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날마다 레시피를 바꾸는 다채로운 음식들은 같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일이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날마다 메뉴를 기대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맛있는 한 때가 언제나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
식당은 폐허뿐인 마왕성에 몇 없는 행복이었고, 많은 주민들은 식당을 찾을 때마다 저절로 웃음을 짓게 되었다.
이미 식량 배급의 장이나 노동자를 위한 혜택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고, 식당은 마왕성 주민들의 행복과 즐거움을 책임지며 삶의 질을 높이는 장소가 된 것이었다.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돌무더기를 캐고 나르는 힘겨운 노동을 하는데, 물자가 여유롭지 않아 여흥이나 유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왕성.
기껏해야 쉬는 날에 서로가 모여 술이나 퍼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그런 모자라고 부족한 생활에서, 하루 세 번 맞이하는 식사가 행복을 안겨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는 베아트리스가 메이드로서의 임무만을 수행하다가, 네로멜티아의 은근한 추천에 식당과 식자재 관리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루어진 성과였다.
주인의 곁에 머무르며 주인에게만 봉사하는 것은 하녀로서의 크나큰 기쁨이었으나, 주인이 지시한 업무를 잘 이행하여 주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안겨주는 것은 마왕군 간부로서의 기쁨이었다.
이미 주인은 베아트리스가 이뤄낸 성과인 식당에 대해서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자신의 거처에서만 식사를 해도 괜찮을 마왕이라는 존재가 굳이 다른 주민들이 모두 모인 식당에 찾아와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베아트리스는 반드시 식당을 지키고 싶었다.
자신이 노력을 쏟았고, 주인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장소.
오백 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벽돌 식당은 베아트리스의 영토였고, 화강암을 사용해 깨끗하게 지어진 지름 이천 멘톨 정도의 주방은 베아트리스의 전쟁터였다.
이 장소에서 그녀는 마왕이라는 절대 군주에게 영지를 하사받은 영주였고, 군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충성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노력한 대로 결실을 거두는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도해야 할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맞서야 할 강대한 적이 이 순간 성문을 열고 영지에 입성한 것이다.
“어머! 여기도 썩 괜찮아졌네요?”
식당의 문 한 쌍을 활짝 열고서 들어선 여성.
여성은 식당의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고, 무척 놀랍다는 듯이 가슴 앞에 두 손을 포갰다.
“전에는 대충 쌓은 벽돌에 흙바닥이라 영 아니었는데… 베아트리스님 호출에 와보긴 했는데, 앞으로는 저도 종종 들러야겠는걸요?”
확실히 이전에는 폐허의 다 삭아가는 벽돌들을 주워다 대충 벽을 쌓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생활에 밀접한 장소들은 반드시 청결해야 한다는 마왕의 지시에 식당은 새로 캔 석재로 새롭게 제작한 벽돌에 의해 재탄생되었고, 더욱 깨끗해야 하는 주방은 아예 화강암을 원석 그대로 잘라서 석회를 발라 끼우는 식으로 바닥과 벽을 만든 것이었다.
네로멜티아의 지시에서 시작한 일이었으나, 베아트리스의 철저한 설계와 함께 필요한 원자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보한 크로포드의 수완 그리고 넬라넬라와 오크 공병대의 건축 기술이 모두 집대성된 결정체였던 것이었다.
마왕의 지시에 간부가 셋이나 움직였으니, 아무리 임시 건물이라도 철저히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 헤스티니아님!”
“어머, 즈베드!”
“헤스티니아님! 식당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비틀러! 자기도 있었네? 반가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베아트리스에게 다가가며 감상을 이야기하던 헤스티니아.
주변에서 종족을 불문하고 남성들 여럿이 반가움을 내비쳐오자, 헤스티니아는 그들의 호의를 하나하나 다 받아주며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헤스티니아의 눈빛 한 번에 남성들은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황홀해했고, 헤스티니아의 인사 한 번에 잔뜩 흥분해서 반쯤 함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식당에서는 정숙하시길 바랍니다.”
베아트리스의 차가운 한마디가 떠들썩한 식당의 중심을 갈라버렸다.
크지도 않은 사무적이고 나직한 한마디에 식당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어 버렸고, 헤스티니아의 등장에 잔뜩 흥분했던 남성들도 저마다의 식기를 붙들고서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양손과 입은 식사에 열중하는 모습이었으나, 그들의 눈은 이따금 베아트리스의 모습을 곁눈질하기에 바빴다.
냉혹하고 무시무시한 마왕군 간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아앙, 베아트리스님! 아침부터 너무 무섭잖아요?”
“조용히 따라오십시오. 다른 분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말입니다.”
“어머, 차가워라… 후후후. 그래도 이게 베아트리스님의 매력이죠?”
햇빛이 부서지는 맑고 아름다운 바다를 연상케 했던 베아트리스의 벽안(??).
푸른색이 찬연한 그녀의 보석은 지금 이 순간 헤븐리 필러(Heavenly Pillar)의 만년설처럼 차가운 냉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조용히 뒤를 돌아 주방으로 향했고 헤스티니아는 일단 베아트리스의 말을 따르는 분위기였으나, 베아트리스를 따라 주방으로 가기 전에 뒤를 바라보며 고혹적인 미소를 날리는 것으로 남성들의 심장에 불을 당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식당의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네로멜티아.
마왕은 자신의 비서관과 공병대장을 앉혀두고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웃음 한 번에 저 많은 남성들의 정신을 모조리 빼앗아버리는 매혹이라니… 마치 전설에 나오는 서큐버스 같습니다.”
넬라넬라는 남성들을 간단히 매료시켜버리는 헤스티니아의 모습에 경이로워하고 있었다.
분명 헤스티니아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인이었고, 그녀 특유의 경박한 농담만 제외한다면 누구나 반할 수 있을 만큼의 매력을 지녔었다.
그러나 헤스티니아의 미소 한 번, 손짓 한 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성들을 보고 있자면 다소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헤스티니아에게 저토록 매료된다면, 사랑과 미의 여신이라는 ‘에슈타르(Eshtar)’를 넘어설 정도의 미색을 지닌 네로멜티아나 러스테리아, 베아트리스에게는 말 그대로 숨이 넘어가야 맞는 것이 아닐까.
넬라넬라는 그렇기에 서큐버스를 떠올린 것이었다.
한 마디의 속삭임, 한 번의 몸짓, 한 순간의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매료시키는 유혹의 악마.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매혹을 위해 존재하며, 때로는 그 매혹을 위해 모습조차 바꿔낼 수 있는 음마(??).
서큐버스가 아니고서야 남성들의 마음을 저렇게 마음대로 뒤흔들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참 의문에 빠져 있던 넬라넬라에게 네로멜티아는 눈을 마주쳐왔다.
이쪽을 좀 보라는 명백한 사인.
“진짜 서큐버스는 여기 있는데.”
“앙냥냠냠!”
네로멜티아의 눈짓과 은근한 한마디에 러스테리아를 바라본 넬라넬라는 기습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헤스티니아의 고혹적인 모습을 보며 서큐버스의 현신이 아닐까 하는 경이를 느끼고 난 후에 목격한 진짜 서큐버스.
마왕이 직접 계약하여 지옥에서 올라온 순혈 태생의 진실한 서큐버스.
러스테리아는 스튜의 감자를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밀어 넣고 행복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양 볼이 터질 듯 빵빵해진 것이 다람쥐 같은 설치류를 보는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뭔가 지저분하고 추하게 느껴질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러스테리아의 모습은 마냥 귀엽고 깜찍하게만 보였다.
넬라넬라는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같은 것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러스테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을 기세로 손을 뻗었다가, 아차 싶어서 급하게 손을 되돌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무의식이 행하다 미수로 끝난 손을 누군가 본 것은 아닌지 주변을 살피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네로멜티아도 짐짓 못 본 척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배려했다.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곁에 머무르고 있는 두 여성이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한 식사를 즐기는 러스테리아와 부끄러움에 발그레해진 넬라넬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배어 나오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스치듯 주방을 바라본 네로멜티아의 짧은 시선.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스친 시선은 걱정스러운 감정을 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부디 별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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