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마왕의 연인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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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니 포트리스에서의 아침.
내성에 위치한 식당에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가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 가장 드높은 존재인 마왕은 상석에 앉아야 했으나,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와 나란히 앉는 것을 택했다.
식사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는 따뜻한 로즈티를 즐기고 있었다.
“으으응… 주인니이임… 너무해요…….”
“일어났어, 러스?”
방금 일어난 것 같은 러스테리아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식당에 나타났다.
목 뒤로 머리를 둥글게 말아 정리했던 평소의 모습 대신, 편하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난 러스테리아.
잠에서 깨자마자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고, 이런 상황에서 용케 옷은 챙겨 입었구나 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에 취해 있는 모습이었다.
네로멜티아의 우측 자리는 이미 넬라넬라가 앉아 있었기에, 러스테리아는 네로멜티아의 좌측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네로멜티아는 디멘셔널 스토리지에서 빗을 하나 꺼냈고, 러스테리아의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는 러스테리아는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이 보였고, 마왕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 있는 현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잠결에 정신이 몽롱해서 그럴 뿐이었고, 러스테리아가 정신을 차렸다면 무척이나 황송해했을 것이었다.
“깼는데… 저는 혼자구… 주인님은 없으시구…….”
“미안해, 러스. 어제 늦게 자서 피곤했을 텐데 푹 자라고 그런 거야.”
마왕이 자신의 머리를 정리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잠에 취해 어리광을 부리는 러스테리아.
네로멜티아는 이런 허술하고 귀여운 러스테리아가 마냥 사랑스러워, 다정하게 사과를 하면서도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넬라넬라에게는 마왕이 머리를 정리해 주는 상황에서도 덤덤하게 졸린 눈이나 비비고 있는 러스테리아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물론 러스테리아는 잠결에 몽롱해서 그럴 뿐이었지만.
“러스테리아님께는 폐하께서 머리를 정리해 주시는 일이 일상이시군요. 역시… 정실이라… 해야 할까요…….”
“흐에아…?”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가 마왕의 정실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사실 누가 정실이라고 정해진 바는 딱히 없었으나 아무래도 평소에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 사이에서 애정이 오가는 모습들이 여럿 보이는 바가 있다 보니, 주변에서는 공공연히 러스테리아를 마왕의 정실이라 여기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 주변의 인물들 중에는 넬라넬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지고의 존재가 머리를 정리해 주는 상황을 자신이 맞이한다면 너무나도 황송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러스테리아는 마치 이것이 일상인 것처럼 태평하게 앉아 있으니 러스테리아 마왕 정실설은 더욱 확고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넬라넬라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낼 뿐인 러스테리아의 모습을 보자면, 그저 잠결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었다.
“자, 끝났다. 누가 이렇게 예쁘지?”
“우으으응… 헤헤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정리된 러스테리아를 보며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러스테리아는 자꾸만 잠이 몰려와 몽롱한 정신에도 주인의 따뜻한 손길에는 무척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으며 반응을 보여오고 있었다.
“하음… 주인님 새벽에도 없으시던데… 다른 데서 주무신 거예요…?”
“아아… 그… 그렇지 뭐…!!”
“어디서 주무셨어요?”
무언가를 의도한 분위기는 절대 아닌데, 러스테리아의 질문이 무척 날카롭고 예리했다.
러스테리아는 그저 궁금해서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는 것뿐이지만, 네로멜티아에게는 대답하기 무척 껄끄럽고 불편한 질문인 것이었다.
멀쩡한 귀빈실을 놔두고 넬라넬라의 방에서 자고 왔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애매한 상황인 것이었다.
‘너와 섹스하고 나서 넬라랑 또 섹스하고 왔어. 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겠지…?’
마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딱히 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추궁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런 얘기가 언급되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시선을 돌리고 못 들은 척해볼까 했으나, 러스테리아의 눈빛이 점차 살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에 회피라는 방법을 택할 수도 없었다.
“폐하께서는 저와 함께 카보니 숲 개발 계획의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으응, 마, 맞아. 아무래도 그때 떠오르는 게 있어서!”
의도치 않게 날카로운 질문을 무심코 던져오는 러스테리아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건 넬라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려 마왕의 정실 앞에서 마왕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고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약간의 착각이 있기는 했으나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의 이야기에 입을 맞춰 주었고, 네로멜티아 또한 넬라넬라의 이야기를 잘 받아서 달갑게 반응했다.
“그럼 넬라넬라님 방에서 주무신 건가요?”
“…….”
“…….”
분명 러스테리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눈빛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하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내막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날카로워 말문이 막혔다.
마치 다 알고 있으니 알아서 자백하라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의도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러스테리아의 일상적인 질문이 너무 예리한 나머지 베여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러스테리아님, 잠시 주방에 오셔서 간을 보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불현듯 주방에서 나온 이는 베아트리스였다.
오크 요리사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지며 함께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던 그녀가 주방에서 나와 러스테리아를 호출한 것이었다.
“에에… 베아트리스님의 요리는 언제나 완벽한걸요?”
“아닙니다. 러스테리아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척이나 단호한 기세의 베아트리스는 러스테리아의 손목을 낚아채 주방으로 끌고 갔다.
몹시 당황해서 얼떨떨한 모습까지 보이는 러스테리아였으나 베아트리스의 기세가 너무나 강경한 까닭에 그저 나풀나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러스테리아가 사라지고 정적이 자리한 식당.
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것 같이 피곤해졌으나,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주방으로 끌려간 러스테리아는 맛있는 요리가 가득 준비되고 있는 광경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허브와 채소들이 잘게 썰려 뒤섞인 샐러드.
그 위로 러스테리아가 좋아하는 마요네즈가 얹어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구워지는 빅 보어 등심 스테이크.
향긋한 장작불의 훈연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입히며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감자나 당근같이 든든한 작물들이 듬뿍 들어간 스튜.
빅 보어의 넓적다리 살 역시 듬뿍 들어가서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의 향기를 하나씩 느끼며 식사 시간을 기대하기 시작한 러스테리아.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그대로 주방을 지나쳐 러스테리아를 뒷문으로 끌고 나갔기에, 행복한 감상은 끝을 맺어야만 했다.
자신에게 요리의 간을 보아 달라는 요청을 하고 끌고 간 베아트리스가 그대로 주방을 지나치자, 러스테리아는 베아트리스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뒷문을 통해 내성의 외부로 나간 베아트리스는 러스테리아를 식재료 창고로 끌고 들어갔다.
여러 가지 식재료 창고들 중, 감자를 보관하는 창고에 들어간 두 여성.
베아트리스는 단 둘뿐인 창고에서 깊은 한숨을 짓고 말했다.
“러스테리아님. 주인님께서는 넬라넬라님과 함께 밤을 보내신 겁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아앗! 그런 거였나요!? 전혀 몰랐는데…….”
베아트리스가 밝히는 진실에 러스테리아는 무척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러스테리아는 진심으로 놀란 것이었다.
그 모습에 의미 모를 안도감을 느꼈던 베아트리스는 가벼운 한숨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후……. 어쨌든 굳이 어젯밤 있었던 이야기를 계속 물어보실 필요는 없으신 겁니다.”
“알겠어요!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베아트리스는 그다지 은밀한 것은 아니었던 사건의 내막을 밝히면서, 러스테리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걱정이 조금 들었었다.
그러나 러스테리아는 활발함을 잃지 않았고, 질투나 섭섭함 같은 어두운 감정들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름대로 안도한 베아트리스는 더 이상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해, 러스테리아를 창고에서 데리고 나갔다.
“오신 김에 디저트의 신작이 있는데, 살짝만 맛보고 식당으로 돌아가시지요.”
“와아아아아! 베아트리스님의 신작!! 너무 기대돼요!!”
“아직 식사 전이시니 한 조각만 맛보시는 겁니다.”
베아트리스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러스테리아를 다시 주방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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