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97화 (97/216)

〈 97화 〉 깊은 밤의 로맨스 (1)

* * *

전혀 그럴 셈이 아니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콤플렉스까지 털어놓아 버린 넬라넬라.

단순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어느새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버려 무척 당혹스러웠다.

이런 진지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넬라넬라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네로멜티아의 눈치를 보았었다.

언제라도 네로멜티아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이야기를 접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일말의 불편함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경청했고, 심지어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는 듯 드문드문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내기도 했다.

의외로 담담하고 다소 흥미마저 보였던 네로멜티아의 모습에 넬라넬라는 이야기를 마친 후 지나간 상황을 되짚어 보았고, 애초에 네로멜티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대화의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 것이 아닌가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후후후. 오크가 주인공인 소설은 단 한 권도 없었다?”

“…….”

“오크는 언제나 흉측하다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했다?”

“… 네…….”

의미 모를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캐모마일 차를 따라주는 네로멜티아.

이야기가 다소 길었기에 티포트의 차가 다 식어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나, 새롭게 따른 캐모마일 차는 방금 끓인 것처럼 여전히 따뜻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른거리는 증기를 타고 차의 따스한 향기가 안정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오크들이 보관하던 고서들을 필사해서 만든 대도서관. 그 고서들이 어떤 출처를 통해 오크들에게 흘러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특정 가치관이 뚜렷한 이들에게서 전해 받아온 모양이네. 휴미안, 데모니안, 엘프, 천사, 요정, 머메이드……. 피부가 하얀 종족들만이 주인공이 되는 편파적인 역할 배정을 보니 종족 차별이 강하고 말이야.”

“… 그… 렇습니까…?”

“거기다 소설이라는 게, 늘 그렇듯 극적인 장치를 설정하기 위해 악역이라는 걸 세우기 마련이니. 강한 힘을 가진 오크라는 존재는 분명 악역으로서도 매력적이었겠지. 넬라가 본 소설 중에서 마왕을 찬양하는 소설은 있었어?”

“아…….”

“저자가 데모니안이라 적혀 있을지라도 이래서야 신뢰가 안 가는걸? 마왕과 같은 종족인 데모니안들도 용사를 찬양하고 마왕을 지탄한다. 휴미안들의 선전 문구로 딱이잖아? 이런 출처가 수상쩍은 소설들을 그대로 믿고 넬라 너 자신을 깎아내린다면 나는 무척이나 슬플 거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역사, 기술, 문학, 경제, 건축 등의 모든 종류의 책들은 오로지 진실만이 적혀 있었고, 그렇기에 종족에 대한 차별적인 미학(美?)이 있다는 것 또한 의심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본래 글 좀 쓴다는 것들이란 진실 안에 자신의 가치관을 은밀히 녹여내는 것을 좋아하지. 진정한 대문호라 불리는 문학의 명장들은 어떤 이가 읽더라도 인정할 수 있는 글을 쓰지만… 이런 편파적인 글을 쓰는 놈들은 아무리 인기가 좋았다고 해도 그저 삼류야. 잘 쳐줘도 이류지.”

“…….”

“비겁한 자들이지. 존, 제임스, 에밀리, 레아, 메이런… 저자 이름을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지어놓고 차별적인 작품들을 찍어내. 사실은 불순한 사상을 지닌 한 녀석이 쓴 건데 말이야. 마치 절대다수가 이런 사상을 가진 것처럼 현실을 조작하려 들지. 그런 녀석들은 정작 자기 이름은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불쏘시개만 쓰다가 생을 마감한단 말이야? 예술가로서 창피한 인생이지.”

넬라넬라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마음이 무척이나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진실로 믿고서 마음 아파했던 것이 사실은 하잘것없는 거짓에 지나지 않았다니.

다른 이도 아닌 마왕이 하는 이야기이니 더욱 신뢰가 가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지금껏 보고 느낀 네로멜티아의 모습은 더더욱 신뢰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이득을 평가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안전까지 바치며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헌신적인 절대자.

마왕이라는 찬연한 글자 이전에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라는 존재에게 더욱 깊은 신뢰를 느끼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디멘셔널 스토리지에서 낡은 책을 하나 꺼냈다.

페이지를 몇 번 뒤적거리는 듯하더니 목을 가다듬고 내용을 읽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흠흠. 마왕은 오크들의 성을 방문했다가 작업복 차림의 여성을 마주했다.”

“… 그거 백지… 아닙니까…?”

무척 익숙한 상황 설정이라 네로멜티아가 읽던 책의 내용을 엿본 넬라넬라.

단지 문장 한 줄이었을 뿐이지만, 넬라넬라는 그 문장의 내용을 무척 익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실제 네로멜티아와 넬라넬라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네로멜티아의 손에 들린 낡은 책은 실제로는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백지를 한가득 제본해 둔 것에 불과한 것이었고, 소설도 뭣도 아닌 공백만이 가득한 책이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그것이 실제 소설인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읽기 시작했다.

“갓 목욕을 마치고 들어선 여성의 모습은 무척이나 찬연한 미색을 담고 있었다.”

“으읏…”

“태양에 잎사귀를 펼치는 야생화를 본뜬 것만 같은 싱그러움이 그녀의 피부에 가득했고, 매력적인 입술을 살짝 비집고 나온 송곳니는 앙증맞고 귀여웠다.”

열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넬라넬라를 바라보며 문장을 만들어 내는 네로멜티아.

녹색의 피부와 도드라지는 아래 송곳니를 시적으로 표현해가며 찬양하는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한 네로멜티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몹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넬라넬라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하며 소설의 문구를 만들어 내었다.

“어느 깊은 밤, 마왕은 창문을 넘어 아름다운 소녀의 방에 들어왔다. 갸름한 뺨과 긴 속눈썹. 티 없이 매끄러운 피부와 청초한 갈색 눈동자. 부끄럽다는 듯 상기된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읏…!”

순간 네로멜티아는 문장을 마치며 넬라넬라를 살짝 밀었다.

침대 위에 몸을 눕히게 된 넬라넬라는 자신이 들고 있던 티컵이 엎질러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모습에 안심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가 자신의 위에 몸을 포개며 다가오자 또다시 긴장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캐모마일 향기가 느껴지는 달콤한 입술. 마왕은 소녀에게 물었다.”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움직이지 못하게 두 팔을 붙잡은 채로 눈을 가까이 마주했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에서 네로멜티아의 작은 음성은 감미로운 속삭임이 되어 넬라넬라의 귓가를 간질었다.

“넬라넬라, 입을 맞춰도 될까?”

그리고 네로멜티아는 침묵했다.

넬라넬라는 이 순간에 만들어지던 소설의 펜대가 자신에게 넘겨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한마디가 소설을 이어갈 중요한 페이지가 되는 것이었다.

선홍빛의 고결한 눈동자가 보석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과 맞닿은 상대의 가슴은 무척 부드럽고 기분 좋은 감촉을 전하고 있었다.

양손을 구속하던 상대의 손은 어느새 자신의 손과 마주해 있었고, 기분 좋게 자신의 손을 어루만져 오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에서 달콤한 욕망이 느껴지고 있었다.

넬라넬라는 수줍지만 분명한 음성으로 펜대를 잡았다.

“네.”

그 짧은 한마디를 기다렸다는 듯, 네로멜티아의 입술은 넬라넬라의 입술과 포개어졌다.

가벼운 마주침으로 시작된 키스는 점차 농밀한 형태로 변화해 갔고, 넬라넬라는 처음으로 맛보는 키스의 감미로움에 잔뜩 매료되기 시작했다.

툭 툭 툭

“하아… 흣…”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농밀한 키스에 푹 빠져들었던 넬라넬라는 자신의 젖가슴을 감싸던 전투복의 압박감이 사라짐에 따라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더욱 깊어지는 키스의 기세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복이 풀어 헤쳐지고 있는 것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넬라넬라의 혀에 얽혀오기 시작한 네로멜티아의 혀.

서로 깊숙이 얽히며 뒤섞이는 키스는 끈적하면서도 황홀한 느낌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불길이 번지는 듯, 뜨거운 열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넬라넬라는 그것이 욕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읏…!”

어느새 활짝 펼쳐진 전투복 상의.

질기고 거친 전투복에 가려져 있던 넬라넬라의 젖가슴이 환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네로멜티아의 손가락은 애태울 목적으로 주변을 스치기 시작했다.

“무척 부드럽고… 야해…….”

“폐… 폐하…….”

넬라넬라의 쇄골을 스치며 내려간 네로멜티아의 손가락은 젖가슴의 위를 간질이다가 옆가슴의 둥근 라인을 타고 밑가슴까지 내려갔다.

가볍게 스치는 손가락의 감촉은 오히려 무척이나 설레고 자극적이었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정욕의 불길이 자극을 받아 더욱 크게 타오르기 시작하며 호흡마저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읏…!”

부드러운 옆가슴을 슬슬 어루만지다 이어진 윗가슴에 가벼운 입맞춤.

민감해지기 시작한 넬라넬라의 신체는 그 작은 감각만으로도 신음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자갈 위에 굴러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자신의 튼튼한 신체가 이토록 작은 감촉에 반응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넬라넬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네로멜티아의 입맞춤은 한 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이어지며 점점 더 애를 태우는 것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여체.

본래라면 이런 짧은 시간 만에 신체가 달아오르고 민감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넬라넬라의 신체는 성교에 이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타오르는 욕정을 해소하지 못해 무척 벅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빈실의 앞에서 자신의 신체를 어루만지며 스스로를 위로했었고, 절정에 이르지 못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도망쳐 왔기 때문이었다.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 지금껏 꺼지지 않은 셈이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은은히 타오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이것 역시 알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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