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95화 (95/216)

〈 95화 〉 캐노피 침대와 곰돌이 인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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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니 포트리스의 가장 높은 장소.

커다란 석재를 쌓아 건설한 내성의 최상층은 삼엄한 경비에 둘러싸여 있었고, 오크들의 최중요 인사인 영주 일가가 거주하는 장소였다.

최상층의 복도 가장 안쪽에는 베리베리의 유일한 가족이자 여동생, 넬라넬라가 거주하는 방이 있었다.

넬라넬라는 영주 베리베리의 유일한 혈육이면서도 나이 차이가 상당했기에, 그저 여동생으로서의 대우만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넬라넬라가 아기였을 시절부터 그녀를 소중히 키워 왔기에 베리베리에게 있어서 넬라넬라는 딸이나 손녀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주인 자신의 안위보다 넬라넬라의 안위를 더욱 소중히 했던 베리베리였기에 그녀의 방은 최상층에서도 가장 안전한 장소로 배정되었고, 넬라넬라의 방에 이르기까지 세워진 경비 또한 물 샐 틈 없이 철저했다.

넬라넬라는 현재 자신의 방에서 카보니 숲 일대와 그 주변 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두고 네로멜티아가 언급한 개발 계획에 대해 설계 도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책상 위는 온갖 서류와 지도, 설계도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한편에는 비어버린 찻잔과 차게 식은 티포트가 놓여 있었다.

방의 한 쪽 벽면에는 온갖 종류의 갑옷과 무기들이 가득 장식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넬라넬라가 실제로 사용하는 장비들이었기에 무척이나 섬세한 손길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녀의 방은 무척이나 투박하고 거친 분위기라 여겨지기 쉬웠지만, 전혀 다른 일면이 있어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핑크빛 실크 재질이 아름다운 침대가 방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고, 심지어 이 침대는 캐노피 침대(Canopy Bed)였다.

은은한 핑크빛이 매력적인 반투명 커튼이 주변을 두르고 있었고, 침대의 위로는 동일한 색상의 원단으로 이루어진 천막 지붕까지 있어 동화 속 공주님들이 잠들 것 같은 귀엽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침대의 위에는 여러 종류의 곰돌이 인형이 놓여 있었는데, 각자가 다른 의상을 착용하고 있어 설정이 명확한 것이었다.

연미복을 입은 귀족 곰돌이, 갑옷을 입은 기사 곰돌이, 로브를 입은 마법사 곰돌이, 턱시도를 입은 신사 곰돌이, 앞치마를 두른 요리사 곰돌이 등등.

캐노피 침대는 베리베리가 준비해 준 것이라 치더라도, 그 많은 곰돌이 인형은 오로지 넬라넬라의 취향이었기에 그녀의 소녀적인 취향이 돋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넬라넬라는 자신의 예쁘고 귀여운 침대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답답하고 아릿한 감정.

그것의 정체는 조금 전 목격했던 마왕과 비서의 은밀한 현장을 목격하며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에게 안겨 환희를 맛보고 있었던 러스테리아의 모습에 각별한 감정을 느꼈다.

네로멜티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그녀가 무척 부럽다고 생각했다.

농염한 성교의 현장을 목격하며 자신의 달아오른 신체를 위로했던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왕에게 깊은 애정을 받으며 함께 사랑을 나누는 인물이 자신이었다면.

상상만 해도 더없이 행복해졌고, 황홀감이 머릿속을 물들이는 것이었다.

같은 여성인 마왕에게 이토록 빠져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해 볼 수밖에 없었다.

넬라넬라가 바라보고 있는 침대의 위에는 많은 곰돌이 인형이 있었다.

종류는 다양했으나 결국 남성을 지칭하는 인형들 일색.

여성은 무조건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그녀가 보아왔던 유일한 사랑의 형태였다.

그녀가 그토록 탐독했던 소설들에서도 이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은 작품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렇기에 무척이나 당연한 순리라 여겨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넬라넬라의 연애관에 기준이 되었던 그 소설이라는 것은 오크를 부정했다.

그렇기에 소설이라는 창작물 안에서조차 부정당하는 오크가 현실의 이들에게 긍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미 오크들 사이에서의 미적 기준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오크들 사이에서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어 봤자, 세상의 기준에서는 괴물 종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마왕은 자신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을 긍정했다.

그 아름다운 선홍빛 눈동자를 빛내며 열렬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처음에는 그저 인자하신 지배자께서 신하들을 소중히 여기시는구나 싶어 있는 그대로 믿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저 신하들을 귀여워하는 입장에서 흘린 사소한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폐하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싶어, 자신의 감정을 더욱 단속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마왕의 애정 공세는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마왕이 진정 자신을 원했다면, 그저 명령하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왕은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을 생각해서 한발 물러선 채로 애정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런 행동에서 따뜻한 배려와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

마왕이라는 지고의 존재가 한발 물러서서 자신의 안색을 살펴 가며 애정을 드러낼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넬라넬라는 결국 이러한 모습에 설레는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바깥 세계에서는 흉물 취급을 받는다는 녹색의 피부와 큰 체격을 지닌 오크.

그런 자신을 순수하게 좋아하고 소중하게 보듬어 주는 모습에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비로소 이해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마왕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자신의 소녀적인 취향이 묻어나는 침대와 인형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크게 상처를 받았지만, 아직도 넬라넬라는 로맨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주인공을 소중히 여기며 열렬히 사랑하는 멋진 왕자님의 등장, 그런 고전적인 내용을 가장 좋아했다.

지금은 그 왕자님이 여성일 뿐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렇게 감성적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되뇌기 시작했다.

마왕의 곁에는 이미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라는 아름다운 미녀들이 존재했다.

마왕 본인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미색을 지니고 있었다.

미의 여신 에슈타르(Eshtar)와 견주어도 오히려 여신을 압도할 것만 같은 미녀들이 서로 어울려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 상상으로라도 자신을 끼워 넣을 자신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네로멜티아가 전해 오는 애정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그 애정을 받아들인다면, 먼저 총애를 받고 있었던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에게 무척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두 여성이 자신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 전 엿본 은밀한 밤놀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정도로 마왕의 애정을 바라고 있었으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으면 자신의 불경한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하기로 마음먹었고, 자신의 멋대로 날뛰는 감정도 어떻게든 추스르자고 생각했다.

애초에 군인의 몸으로 마왕 폐하와의 로맨스를 바라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자신을 몰아세웠다.

저 핑크빛 일색인 침대와 귀여운 곰돌이 인형들이 자신의 허술한 내면을 대변한다고 여겼다.

저 창문에서 나풀대는 핑크빛 커튼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드러내는 귀엽고 예쁜 커튼.

나풀대는 모습 너머로 마왕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하는 꿈 같은 생각이나 하게 만드는 물건.

우아한 미소를 머금고서 자신을 바라보는 마왕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창문을 열고 은은한 달빛이 반사되며 나타나는 아름다운 빛과 함께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낸 마왕.

찬연하게 빛나는 루이나의 여신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오고 있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에게 이런 상상이나 하게 만드는 하찮은 천조각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상상으로 그려낸 마왕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고, 이런 꿈만 같은 이야기를 상상해 내는 건 모두 자신의 약해빠진 취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넬라 안녕? 뭐 하고 있었어?”

“하읏…!!!”

넬라넬라는 순간 상상으로 그려낸 줄 알았던 마왕이 실제로 말을 걸어와 소스라치게 놀라 버렸다.

창문을 통해 넬라넬라의 방에 들어선 네로멜티아의 모습은 현실이었고, 자신은 그런 마왕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싶어, 넬라넬라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공병대장 넬라넬라. 지고하신 마왕 폐하를…!!”

순간 네로멜티아의 손가락이 넬라넬라의 입술에 닿았다.

말을 아끼라는 명백한 표현이었기에, 넬라넬라는 인사를 마치지 못한 채 숨죽여 네로멜티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찬연한 루비와 같이 빛나는 선홍빛의 눈동자가 지그시 넬라넬라의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발색의 스칼렛 컬러 너머로 깊이를 알 수 없을 심연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한없이 빠져들고, 내면을 파악하기에는 너무나도 깊은 눈동자.

네로멜티아는 싱긋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나 보고 싶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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