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작은 문틈 너머로 (1)
* * *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풍성했던 저녁 만찬.
오크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식사를 마친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는 스토니 포트리스의 첨탑 위에 올라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기대고.
아무리 눈치 없는 이가 보더라도 두 여성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진한 애정이 오가고 있었다.
넬라넬라는 저녁 만찬 당시 네로멜티아에게 카보니 숲과 주변 일대의 개발에 대해 구상된 계획을 들었고, 만찬이 끝난 뒤 그 계획의 구체적인 진행 방안을 설계하겠다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상황이었다.
본래라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온갖 서류와 싸우며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간.
그러나 넬라넬라는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첨탑 위의 두 여성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꺄악!”
갑작스럽게 자신을 안아 드는 네로멜티아의 손길에 놀란 듯, 짧은 비명을 질렀던 러스테리아.
그녀는 이내 황홀한 듯 미소 지으며 주인의 품에 고개를 파묻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인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러스테리아를 두 팔로 안아 든 네로멜티아는 유유히 공중으로 떠올랐고, 창문을 통해 내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 창문은 손님용 객실들이 구성된 전용층의 창문이었고, 넬라넬라는 두 여성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잠시의 갈등이 지속되며 상기되는 안면.
힘껏 쥐어진 주먹이 바르르 떨려왔다.
흔들리는 시선이 내면의 불안감을 선명하게 흩뿌리고 있었다.
‘안 되는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는 자기 억제.
진탕하는 감정을 다스리고 평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옭아매려 애를 썼으나, 한 번 날뛰기 시작한 감정은 좀처럼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성과 감성이 치열하게 서로 맞서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내면에 일기 시작한 파문은 거센 파도가 되어 이성의 철벽을 맹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차 한 잔 비울 정도의 짧은 시간, 넬라넬라의 흔들리던 시선이 가라앉아 고요함을 되찾았다.
흐려졌던 눈빛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혼란스럽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고요해졌다.
먼 바다에서부터 몰아쳐 다가오는 태풍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어수선한 바람은 점차 기세를 더해가며, 몸을 가누기 힘든 강풍으로 변해간다.
한계를 모르고 휘몰아치는 강풍은 어느새 폭풍이 되어 거스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구분 없이 부숴버린다.
맹렬한 폭풍이 끝을 모르고 휘몰아치며 하나의 태풍을 만들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재앙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태풍의 흉포한 기세가 절정에 달할 즈음, 고요는 한순간에 찾아온다.
그것이 태풍의 눈이다.
넬라넬라의 심경은 태풍의 눈에 들어선 것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이상할 정도로 안정된 순간.
모든 속박과 관념을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진실해진 넬라넬라는 마왕이 향한 귀빈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틀린 선택일지언정 넬라넬라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아릿한 고통을 안겨 오는 원인 모를 감정.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극히 이성적인 상황에서 내린 결단이었고, 넬라넬라는 스스로가 내린 선택을 일말의 의심 없이 믿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태풍의 눈이 지나가면 잔혹한 폭풍은 다시 한번 몰아친다.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였다.
어느새 육백 멘톨에 달하는 거대한 파인트리 원목의 문 앞에 다다른 넬라넬라.
일말의 갈등 없이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며 귀빈실의 앞에 이른 넬라넬라는, 더없이 고요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이 점차 고동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문을 열면 돌이킬 수 없다.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 내면의 깊은 밑바닥에서 날 선 경고가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파인트리 원목의 문은 다가갈수록 기분 좋은 향기를 전해오고 있었지만, 그 너머에 펼쳐진 은밀한 진실은 그녀에게 어떤 결과를 내어줄지 모르는 혼돈과 같은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경첩의 마찰음이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면서, 그 육중한 귀빈실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햐읏…!! 하읏…!! 흐으으읏…!!!”
귀빈실의 문이 미세하게 비집어 열리며 작은 틈이 만들어졌다.
그로 인해 생긴 문틈은 손가락조차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것이었으나, 그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달뜬 교성을 듣기에는 너무나도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귀빈실의 중앙에는 거대한 침대가 존재했고, 그 침대의 중심에는 익숙한 두 여성이 서로의 신체를 맞대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매혹적인 여체.
허락된 자만이 눈에 담을 수 있는 베일의 너머.
넬라넬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없이 흐트러진 러스테리아의 모습이었다.
더없이 사랑하는 주인의 품에 안겨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채, 주인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는 순종적이면서도 음란한 서큐버스의 모습.
정숙하면서도 저속한 이중적인 면모의 음마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네로멜티아의 손가락은 러스테리아의 다리 사이, 은밀한 장소에 들어서 있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애액으로 질척해진 음부가 사랑하는 주인의 손가락을 탐욕스럽게 빨아대고 있었다.
마치 막대 사탕을 빠는 어린아이의 입술처럼 꼭 다물어진 그녀의 음부는 손가락이 빠져나갈 때마다 아쉽다는 듯, 손가락을 강하게 조여 물고서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빠져나가는 손가락을 붙잡고 늘어지듯, 음부가 도톰하게 당겨지며 손가락을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음탕한 물소리가 귀빈실의 내부를 가득 울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러스테리아가 얼마나 깊은 쾌락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쯀걱!! 찔걱!! 찔꺽!!!
“응흐으으으으…!!!”
질 내를 깊숙이 문지르는 네로멜티아의 손가락이 모양을 바꿀 때마다, 질척한 애액의 상스러운 물소리가 음색을 달리했고 서큐버스의 음탕한 교성도 매 순간 변화하고 있었다.
러스테리아는 네로멜티아의 손길에 연주되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있었다.
음탕하고 저속한 음률을 형편없이 흘려대는 매혹적인 악기.
한 치의 거짓 없이 진실한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노래하는 사랑스러운 악기.
그리고 침대 위에서 진행되던 연주회는 이중주가 되었다.
“하으으… 흐으으으응…!!!”
“응큭…!! 흐읏…!!!”
마왕과 음마의 상스럽게 벌려진 다리 사이 은밀한 입구가 서로 맞닿았다.
서로의 음부를 밀착한 채, 끈적한 움직임을 보이며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자극적으로.
손가락으로 음부를 자극할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미지근한 움직임이었으나, 러스테리아는 오히려 더 큰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여유를 잃는 법이 없었던 태연자약한 마왕 네로멜티아도 교성을 참기 버거운지, 그녀의 선홍빛 입술을 비집고 열기가 가득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저 러스테리아의 질내를 손가락으로 쑤시고 문질러 댈 뿐이었던 네로멜티아였으나, 그녀의 음부는 성감에 이성이 마비되어 가는 러스테리아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이는 그녀들의 성교가 단순히 신체와 신체가 맞닿으며 벌이는 야릇한 놀이 따위의 사소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흐끅… 하읏…!! 하으으으응…!!!”
“큭…!! 읏… 흐읏…! 하아아아…”
그녀들의 맞닿은 음부는 아주 조금씩 문질러지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인데도 그녀들은 견디기 버거울 정도의 성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허리가 살짝 비틀어지며 보이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마치 감전이 된 것처럼 그 매혹적인 신체를 떨어대며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쾌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오롯이 모든 신경을 서로에게 접촉한 음부의 감각에 쏟으며, 작은 움직임에도 뜨거운 교성을 흘리는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이 예상하던 모습을 훨씬 상회하는 음란한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그녀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대의 한계는 그저 로맨스 소설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성교라는 행위 자체를 로맨스 소설에서밖에 접한 적이 없었고, 로맨스 소설에서의 성교라고 해봐야 대충 문장 몇 줄로 생략하는 것이 다였기에 그녀의 성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소설 자체도 음란하고 퇴폐적인 소설은 애초에 베리베리가 넬라넬라의 손에 닿지 않도록 따로 엄중히 보관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여과 없이 진실된 성교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경험이 없고 순수한 만큼 성에 대해 면역이 없었던 넬라넬라는 지금 이 순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녀의 심장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고동을 보이고 있었고, 마구 요동치는 심경을 잠재우는 일 또한 몹시 버거워졌다.
호흡이 가빠지며 뜨거워지기 시작한 신체의 감각이 몹시 어색하고 이질적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 깊은 곳에서부터 발생한, 미약하면서도 확고한 존재감을 지닌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아른거리는 듯 미세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애달프면서도 짜릿한 감각.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그 감각은 묘하게 설레는 느낌이었다.
넬라넬라는 떨려오는 자신의 신체를 감싸 안은 채 주저앉았다.
그러나 다리의 힘마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상황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침대 위의 광경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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