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넬라넬라의 고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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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스트라스 산맥을 오르는 험난한 산길.
그 중반에 가파른 암벽을 깎아 세운 요새, 스토니 포트리스.
오크들의 거주지인 그 난공불락의 암석 산성(山?)에서 병사들의 강도 높은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훈련에 참여한 병사들의 맹렬한 기합이 주변을 둘러싼 성벽을 울리며 그 너머에 펼쳐진 카보니 숲의 일대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가파른 암벽을 오르던 산양과 먹이를 찾던 솔개도 어쩌다 가까워진 그 성의 너머에서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라 가던 길을 피할 정도였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한숨을 지으며, 수통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크으으으으… 나이를 먹으니까 더 신 거 같아.”
“불평하지 마라. 저 아래에 있는 녀석들은 그 플러메이드는 고사하고 대장간에서 담금질하다 버리는 물이라도 들이키고 싶을 거다.”
“누가 불평을 했다고 그러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냥 먹기엔 무척이나 신 열매인 플럼(Plum)을 조각내어 물에 담그면 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음료 플러메이드(Plumade)가 된다.
달지 않아서 음료로서 일품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체력의 소모가 많은 오크 병사들에게 이 음료는 가장 흔하면서도 애용하는 대표적인 음료라고 할 수 있었다.
“에휴. 우리 오늘 근무가 경비조여서 정말 다행이다. 훈련조로 들어갔으면 저 연무장에서 반쯤 죽어가며 구르고 있는 게 우리였을 거 아니냐.”
“그러게, 평소 같으면 훈련조 놈들 기본 체력 단련하고 대련하다가 일찍 끝났을 텐데. 솔직히 요새 영주님도 대장님도 바쁘셔서 모의전도 잘 안 했었잖아?”
성벽 위의 경비조 병사들이 불쌍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이들은 연무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마왕 네로멜티아의 휘하에 스토니 포트리스가 합류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들의 영주 베리베리는 처리해야 할 업무가 배 이상 늘어나 집무실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귀족으로서 예의를 중시해 식사만큼은 반드시 식당에서 맞이했던 베리베리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을까.
심지어 영주 다음으로 군대의 실권자인 넬라넬라도 마왕성의 재건 공사로 바빠 스토니 포트리스의 일에는 다소 소홀한 편이었다.
사실상 공병대장이라는 특정 소속의 지휘관 칭호를 가지고 있으나 결국 군 내에서 넬라넬라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이는 없었기에, 정확히 하자면 넬라넬라 그녀가 총사령관인 셈이었다.
다만 오크군이 그다지 대군은 아니었기에 칭호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주 업무인 공병대장으로 불리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영주와 공병대장 양측이 모두 각자의 일로 바빠, 그동안 오크군의 일정은 몹시 단순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크군은 현재 일주일에 세 번 경비 근무를 서고, 두 번 훈련을 받고, 한 번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하루는 마왕성 재건 공사의 건설 인력으로 차출되어 마왕성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훈련과 공사는 힘겨운 일이니 단 하루를 쉬어서는 몸이 남아나질 않는 형편이었고, 그에 따라 오크군의 업무 또한 간편하게 조율되었었다.
경비조에 차출되는 날이면 멀리 나가 수색하는 일은 최대한 지양하고 성벽이나 첨탑에서 가만히 앉아 경계하는 임무만 수행하며 신체의 휴식을 꾀했다.
거기다 훈련도 기강이 느슨해지거나 실력이 녹슬지 않을 정도까지만 가볍게 진행하고 일찍 끝마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까닭에 오늘 훈련 일정이 잡힌 병사들은 전날, 훈련이 일찍 끝나면 데이트를 하겠다는 둥 못 먹어본 것을 먹으러 가겠다는 둥 잔뜩 설렌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간 마왕성의 일정으로 거의 보이지 않았던 넬라넬라가 오늘 갑자기 오크군의 병영을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오크군의 병영을 방문한 넬라넬라는 훈련조 인원들을 소집해 자신이 직접 군사 훈련을 진행하며, 병사들을 미친 듯이 굴리기 시작했다.
혼을 쏙 빼놓는 격렬한 훈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꿀을 많이 빨기는 했지만… 사실 재건 공사 임무를 주기적으로 나가니까 힘들어서 좀 설렁설렁하던 건데…….”
“호오, 그런가? 그대들은 훈련을 설렁설렁해왔다 이거로군?”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연무장을 내려다보며 남 일 구경하듯 하던 경비조 병사 둘.
그런 그들의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와,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음성은 몹시 점잖고 고풍스러우며 동시에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여, 영주님!!!”
“내 분명 훈련 일정을 느슨하게 하라고 지시하기는 했지만, 그대들에게는 설렁설렁해도 될 정도로 보잘것없었던 모양이로군. 내 사과하겠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마침 잘 되었구만! 저 아래에서 내 여동생이 그대들에게 걸맞는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니, 좋은 기회 아닌가? 이쪽 경비는 내가 경비대장에게 친히 지시를 내려둘 테니 걱정말고 훈련에 참여하게나.”
늘 자신의 집무실에 틀어 박혀있던 영주 베리베리가 자신들의 뒤에 서서, 모든 대화를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비조의 두 병사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르고서 아찔하다는 표정으로 성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낯빛이 까맣게 죽어 있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인자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건넸으나 영주는 분명 자신들을 질책하며 벌을 내린 것이었다.
아무리 느슨한 훈련이라도 대충 임해서는 안 된다는 군인으로서의 철칙.
그것을 어긴 것은 자신들이기에 더는 변명하지 못하고 성벽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것밖에 못 하나! 분대장! 마왕 폐하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적은 어떤 자들인가! 다수의 승냥이 떼 인가!”
“하나의 강자입니다!”
“그렇다! 나 하나조차도 무릎 꿇리지 못한다면 마왕 폐하께 위해를 가할 만큼의 강자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그분을 보호할 수 있겠나! 다음 분대 준비!!”
엄격한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병사들을 호령하는 넬라넬라는 단신(??)으로 오크군을 분대 단위로 상대하고 있었다.
오로지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만으로 무장한 그녀를 온갖 병기를 쥐고 에워싼 오크군이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 샐 틈 없이 그녀를 에워싸고는 있었으나, 넬라넬라의 검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한 명씩 철저히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대개 대련이나 모의전은 서로가 다치지 않도록 목재로 제작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현재 넬라넬라는 실전 감각을 키울 수 있게 하겠다며 금속으로 이루어진 실제 무기를 들고 모의전을 지시한 것이었다.
넬라넬라가 가진 이백 멘톨의 키는 데모니안들에게는 상당한 체격이었다.
상당한 장신 축에 속하는 네로멜티아가 백팔십 멘톨 정도이니 평범한 데모니안들은 넬라넬라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이백오십 멘톨 정도의 신장을 가진 오크들 사이에서 그녀는 작은 체격에 속했고, 이는 달리 말하자면 그녀보다 거대한 오크 병사들이 덩치로 찍어 누르기에는 무척이나 유리한 여건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목재로 이루어진 무기였다면 제대로 힘을 싣는 순간 무기가 부서져 버리기 십상이었으나, 현재 사용하는 무기들은 실제 실전에서 사용하는 금속 무기들이어서 그들이 십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모의전에서는 넬라넬라를 힘으로 압도하는 오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역량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넬라넬라의 민첩하고 유연한 움직임은 그들의 무기를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넬라넬라의 고도로 숙련된 전투 기술은 눈으로도 따라가기 벅찬 것이었다.
넬라넬라의 철저히 단련된 힘은 간혹 무기를 맞부딪치는 순간이 오더라도, 오히려 거구의 오크 병사들이 뒤로 나자빠지게 만들었다.
단련된 근육의 크기나 더욱 거대한 기골을 볼 때, 넬라넬라와 맞부딪치면 이기는 것은 오크 병사들이어야만 했다.
기술이나 경험에 관련된 경우는 자신들이 모자랄 수 있는 일이었으나, 신체 조건이 이토록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완력에서까지 밀린다는 건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떤 방법을 모색해도 그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까아아아앙!!!
“이대로 포기하면 오합지졸이 될 뿐이다!! 그러길 바라나!!!”
“아닙니다!!!”
“힘으로 안 된다면 기술로 승부해라! 기술로도 안 된다면 전략으로 승부해라! 오크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력화되어 드러누워 버린 분대원들을 순식간에 다시 일으켜 세운 넬라넬라.
그녀의 호령에 오크 병사들은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고 그녀에게 맞서는 것이었다.
오크군은 자긍심이 강한 집단이었고, 넬라넬라의 말은 긍지 높은 그들의 의욕에 불을 지피는 연설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넬라넬라의 호령은 그들의 전의를 향상시키기 위한 말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넬라넬라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오크의 신체 조건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 그다지 강한 입장은 아니었다.
트롤은 오크보다 거대하면서도 막강한 재생력을 갖추고 있어, 그 질긴 숨통을 완벽히 끊지 않는 이상 끝도 없이 되살아난다.
오우거는 신장만 따져도 오크의 두 배에 달하며 전체적인 체격의 부피로 따지자면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거구를 지녔고, 그에 따라 오우거의 괴력을 오크가 감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니마(Anima)들은 짐승의 힘을 보유한 수인(?人)이었기에 각자의 특기 분야가 분명하고, 야성을 기반으로 한 신체 능력이 월등했다.
그 밖에 엘프나 드워프, 정령 등 대부분이 녹록지 않은 존재들뿐이고 거인족이나, 뱀파이어 같은 강대한 일족들은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오크들은 무예와 전략, 기술 등의 인위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며 집단의 힘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전날 있었던 일은 넬라넬라에게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크로포드와의 결투에서 자신의 검이 너무나도 쉽게 양단된 사건.
솔직히 마왕이라는 네로멜티아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데모니안이고, 헤모니겐트의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존재이니 넬라넬라가 패배한다고 해서 이상하거나 기분 나쁠 일은 없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이기고자 싸운 것은 아니었고, 그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상대를 향해 정당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순수한 검술로서는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계산해서, 그의 검술을 무력화하기 위해 거대한 카이트 실드를 준비하기까지 했다.
그에 따라 결투 중반까지는 크로포드의 공격이 일일이 무력화되었으니 넬라넬라는 자신이 크로포드를 이기지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자신의 계산이 적중하기는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크로포드가 결투의 시작부터 마나 소드라는 것을 사용했다면, 넬라넬라는 순식간에 무장해제 되어 결과를 승복해야만 했을 것이었다.
그가 넬라넬라의 방패 전략에 그토록 악전고투한 것도, 되도록 넬라넬라가 다치지 않도록 마나 소드를 금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갑옷이나 방패조차 챙기지 않을 정도로 결투를 피하고 싶어 했던 크로포드는 그저 넬라넬라가 다칠까 걱정이 되었을 뿐인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그 모든 사실들이 충격적이고 비통했다.
오크군 최강의 검이라는 자신도 마나 소드 앞에서는 무기와 장비를 잃고 손을 놔야만 하는 현실.
듣자 하니 마나 소드는 소드 마스터라는 크로포드 뿐만 아니라 숙련된 상위 블랙 나이트들은 다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 했다.
현재는 블랙 나이트의 수준이 천 년 전만 못해, 마나 소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단원들이 더 많았으나 중요한 것은 마나 소드 앞에서 평범한 무기는 속수무책이라는 현실이었다.
심지어 헤모니겐트가 멸망하던 천 년 전의 휴미안 공습 때, 크로포드는 자신이 무척이나 무력했었다고 회고했다.
피난민의 보호를 위해 싸웠기에 제대로 적과 전투를 벌이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으나, 전과(戰?)는 베아트리스가 더 압도적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보면 더더욱 참담한 현실인 것이었다.
전날 압도적인 무위를 드러내었던 크로포드조차 그 전쟁에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멸망의 불길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크로포드의 일격조차 어쩌지 못해 무기를 잃을 정도라면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크로포드보다 더욱 큰 전과를 세운 베아트리스도 전쟁의 판도를 뒤집지 못하고 마왕성의 지하에 틀어박혀 잠들었는데, 크로포드의 일검도 막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마왕을 지키고 백성을 지킬 수 있을지 실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최강의 검이라는 자가 이토록 무력한데, 적어도 군대 단위의 집단전투에서까지 무력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마왕성의 재건 공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니, 넬라넬라 역시 혹독한 훈련을 지속해서 그 일에 차질을 빚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느슨한 훈련 일정으로 해이해진 이들이 있다면, 오늘 하루의 훈련으로라도 최대한 기강을 잡고 싶었던 것이었다.
적은 훈련으로도 그들이 착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넬라넬라의 의도대로 오크군의 전의와 사기는 점차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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