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러스테리아의 구직 활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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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공사 현장에 붙어서 열정적으로 지휘하던 넬라넬라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러스테리아가 따라 걷고 있었고, 언제나 헤실헤실하게 웃던 러스테리아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두 여성의 모습에 백성들은 마치 해괴한 것을 보는 듯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마왕성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라도 생긴 것인가 싶어 수군거리는 이들도 존재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나서까지도 공사 현장을 떠나는 일이 없었던 넬라넬라가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각에 밖을 거닐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와 같이 생각해 보자면 다른 공사 현장을 지휘하러 이동하는 게 아닌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 러스테리아가 붙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평소의 나긋하고 천진한 모습이 사라진, 진중하고 결연한 모습의 러스테리아.
휴미안이라도 쳐들어온 것이 아니고서야 저 두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일 리 없다며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떠는 이들마저 속출하고 있었다.
“여기는…….”
“철도 시설입니다. 과거의 마왕성도 광활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향후 마왕성은 더욱 큰 면적을 계산에 두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이 철도는 광산에서 암석이나 광석을 나를 때 사용하는 수레를 위한 것입니다만, 철도는 그대로 두고 수레 대신 더욱 커다란 탈 것을 올린다면 다수의 탑승자를 이동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시험 중이었습니다. 물론 대량의 물자 역시 운송할 수 있겠죠. 다목적 운송 시설인 셈입니다.”
러스테리아가 넬라넬라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장소는 아직 정비가 마쳐지지 않은 마왕성 폐허 지역의 한구석 공터였다.
그곳에는 광산에서나 볼 법한 철도가 깔려 있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던 까닭에 탈 것이 원형으로 돌게 되어있는 구조이긴 했으나, 나름대로 직선 코스와 곡선 코스가 모두 포함된 최적의 시험 장소였다.
“저는 러스테리아님이 태고의 숲에서 헤스티니아님의 결계를 해제하셨던 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말 인상 깊었거든요. 인지를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 그런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려 보이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헤헤…….”
“광산에서 쓰는 수레, 광차(?)라고 하죠. 광차는 탑승자가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게 설계가 됩니다만, 제가 염두에 둔 것은 그것보다도 더 큰 규모입니다. 다수의 인원이나 다량의 자원을 한꺼번에 먼 거리까지 나를 수 있는 수레. … 수레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겠군요. 이건…”
“철도를 타고 다니는 말 없는 마차?”
뭐라 불러야 하는지부터 난관에 부딪힐 정도로 생소한 존재.
대충 임시로 아무렇게나 부르고 싶은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난해한 문제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발명품의 이름이 아닌, 러스테리아의 활약과 그로 인한 성과이니 넬라넬라는 어떻게든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 말이 없는 마차라고도 볼 수 있으니, 우선 그냥 차라고 하겠습니다. 우선 규모가 큰 만큼 탑승한 인력만으로 이동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그래서 러스테리아님의 마법을 빌리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럼 마력 차네요? 음, 아니면 마법 차?”
“이름은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지으시면 될 듯합니다. 우선 이 차… 음. 마력 차가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게 손을 써 주실 수 있으십니까?”
“흐응… 가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마력 효율을 늘리는 게 문제일 거 같고… 정해진 길로만 움직이니 조향(??) 장치는 괜찮겠지만, 유사시에 정지할 수 있도록…….”
순식간에 마력 차의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한 러스테리아는 누가 말을 걸어도 모를 정도였다.
혼잣말을 열심히 중얼거리다가 넬라넬라가 임시로 만들어 둔 커다란 수레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가녀린 손으로 밀어 봤다가 바퀴를 매만져 보는 등 열심히 관찰을 했다.
넬라넬라가 곧 마력 차가 될 커다란 수레의 본체는 일반적인 광차의 네 배는 될 법한 거대한 크기였고, 타기 쉽게 문까지 달려있었다.
작은 나무집 한 채가 바퀴를 달고 이동하는 것 같은 거대한 크기.
러스테리아는 고심하다가 넬라넬라를 향해 이야기했다.
“우선 크기부터 줄이죠. 하나의 큰 마력 차를 만드는 것 보다, 작은 차 여러 대가 한 줄로 이어진 상태로, 가장 앞의 차가 나머지 차들을 끌어가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거 같아요.”
“아! 그럼 무게가 분산되어 줄어드니 바퀴의 부담도 줄어들고, 그에 따라 마찰력도 줄겠군요!”
“그리고 쓸데없이 차지하는 공간도 줄어드는 거죠!”
“지시하신 구조대로 금방 만들어 보겠습니다!”
넬라넬라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잠깐 선보이고 맡긴 것뿐인데도, 관찰 몇 번에 실마리를 찾아 난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러스테리아가 무척이나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며칠을 고민해도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를 단지 마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개량마저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고위계의 마법 사용자이니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식의 양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러스테리아는 지혜로운 존재였다.
넬라넬라는 기쁜 마음으로 톱과 해머를 들었다.
그리고 러스테리아가 지시하는 구조대로 마력 차를 제작하기 위해, 열심히 목재를 썰고 못을 박아댔다.
신명나게 연장을 휘두르는 넬라넬라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해머를 두 번 휘두르면 못이 하나씩 박혔고, 톱으로 목재를 써는 일은 그야말로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 해내는 것이었다.
러스테리아는 자신이 설명하는 족족 순식간에 그것이 완성되니 무척이나 즐거웠다.
잠깐 설명하고 맡긴 것뿐인데도, 연장질 몇 번에 구조를 잡고 안정성까지 따져가며 작품을 완성하는 넬라넬라가 무척이나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설명이 다소 부족해도 마력 차의 완벽한 형태를 만들어가는 넬라넬라에게, 대체 저런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과 제작에 조예가 깊은 오크들 중에서도 공병대의 대장을 맡고 있으니 무엇이든 훌륭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바였으나, 그녀의 위치나 직책을 떠나서 그녀의 능숙한 연장질과 섬세한 설계는 대장장이의 신 코스타르(Kosthar)가 현신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넬라넬라가 가장 먼저 제작한 1호차에 러스테리아가 고심을 거듭하며 하나씩 마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러스테리아가 마법 부여에 힘을 쏟고 있는 동안, 넬라넬라는 1호차의 뒤로 이어져 따라갈 2호차, 3호차, 4호차 등의 여러 가지 차를 연이어 제작했다.
연장을 두드리는 소리와 마법이 시전되는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날이 저물 무렵에서야 모든 작업이 마무리가 되었다.
태양이 뉘엿뉘엿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시간.
완성된 마력 차를 바라보며 두 여성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의 마주치는 눈빛은 서로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었고, 자랑스러운 성과에 대한 성취감이 배어 있었다.
러스테리아와 넬라넬라는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치며, 서로의 노고를 칭찬했다.
“이제는 마력 열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후후후. 이름은 ‘슈거 파우더 초콜릿 케이크 호’ 라고 할 거예요!”
“후훗. 몹시 귀여운 이름이군요.”
“제가 좋아하는 케이크예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팔짱을 낀 채, 마력 열차를 바라보던 러스테리아.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빛나며 마력으로 인한 안광이 번뜩이자, 그녀의 마력에 반응한 마력 열차 슈거 파우더 초콜릿 케이크 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리기 시작했다.
마력 열차에 부여된 다수의 마법진에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고, 힘찬 마력 구동음을 내며 바퀴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거덕! 철거덕! 철거덕!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 마력 열차는 점차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이내 말이 달리는 것 이상의 속도를 내기 시작하며 타원형의 철도를 맹렬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러스테리아와 넬라넬라의 합작은 성공으로 끝나는 듯 보였고, 두 사람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마왕성 지역 어디든 철도만 깔면 순식간에 갈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 무엇이든 싣기만 하면 운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거 많이 많이 만들어요! 마왕성 전체에 철도를 까는 거예요!”
“어머나, 재미있는 걸 만드셨네요?”
기뻐하는 두 사람 사이에 낯익은 여성 하나가 끼어들었다.
놀란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농염한 매력이 돋보이는 한 여성.
자이언트 레이븐의 깃털 장식이 인상적인 검은색 프로파일 햇을 착용한 고풍스러운 여성.
검은색 오픈 숄더 드레스의 깊게 파인 네크라인 위로 넘실대는 거대한 젖가슴.
두 사람은 이 거대한 젖가슴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헤, 헤스티니아님!?”
“운송용 마력 구동 열차인가요? 흐음…….”
헤스티니아는 새끼 설산 백조의 솜털이 장식된 자신의 검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두 여성의 합작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몹시 애석하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두 여성은 헤스티니아의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에 대해 깊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적중하는 것이었다.
“이미 우리 연구소에서… 마력 구동 차는 시제품까지 나와 있어요. 운송용, 탑승용. 그리고 일반 차와 열차. 철도는 필요 없는 걸로. 철도 위를 달리는 건 소음도 너무 심하고, 아무래도 바퀴든 철도든 마모되기 마련이니까 관리하기도 힘들구요. 그래서 지면 위를 오십 멘톨 정도 떠다니는 차들을 만들었죠.”
넬라넬라는 지금까지 쏟은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이런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가 생각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러스테리아는 죽을 듯이 침울해져 있었다.
심지어는 볼을 부풀리고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화가 나 있기까지 한 것 같았다.
그녀의 낯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고, 눈망울은 그렁그렁한 것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기세였다.
“… 그렇… 겠죠……. 9위계는… 10위계를… 넘어설 수… 없겠죠…….”
“에에! 아니에요! 러스테리아님은 충분히 잘 만드셨어요!”
“우응… 흑…! 흐에에에엥…!!”
“자자, 뚝! 괜찮아요! 이것도 매우 훌륭한걸요! 초콜릿 드릴까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한 러스테리아.
그녀의 모습에 몹시 당황한 헤스티니아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모습으로 러스테리아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넬라넬라는 자신이 느낀 실망감 따위는 현재 러스테리아가 느끼고 있는 상실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러스테리아의 눈물은 결국 헤스티니아가 러스테리아와 넬라넬라를 자신의 거처에 초대해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해 주고 나서야 비로소 그쳤다.
솔직히 달콤한 베리가 잔뜩 올려진 생크림 케이크와 애플파이가 아니었다면 러스테리아의 눈물은 더 오래도록 흘렀을 것이었다.
넬라넬라는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며, 내일은 기필코 러스테리아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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