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러스테리아의 한가한 오후 (2)
* * *
재건을 위한 지반 공사가 한창인 마왕성.
그 중심의 광장 인근에 설립 예정인 공무 단지 지역에 한 오크 여성이 엄격한 자세로 인부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한 번의 정성이 천 년을 간다!”
“한 번의 정성이 천 년을 간다!”
“한 번의 태만이 붕괴를 부른다!”
“한 번의 태만이 붕괴를 부른다!”
근엄한 오크 지휘관의 일갈과도 같은 구호에 모든 오크 공병들이 같은 구호를 일사불란하게 따라 외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오크 공병대가 아닌 다른 종족의 인부들은 분위기에 떠밀려 얼떨떨한 모습으로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었으나, 오크 공병대와 함께 일한 지 어느 정도 오래되어 익숙해진 이들은 오크 공병대와 다름없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감화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과시하며 모든 인력을 하나로 모으는 오크 지휘관.
마왕성 재건 공사의 지휘권을 일임받은 넬라넬라였다.
“벽돌 한 장에 백성의 안전도 한 장!!!”
“벽돌 한 장에 백성의 안전도 한 장!!!!!”
“거기 아직 지반이 무르다!!! 더 확실하게 다져라!!! 건물을 무너뜨리고 싶은가!!!”
“알겠습니다, 대장님!!”
“우와…….”
가히 전투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맹렬한 공사 현장.
손수 함께 노동을 하며 우렁차게 호령하는 넬라넬라의 모습은 전장에 나선 한 명의 맹장(??)이라 할만했다.
평소 점잖은 그녀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현재의 모습에 러스테리아는 그저 넋이 나가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만 휴식!! 눈치 보지 말고 땅에 누워서 쉬어라!! 휴식도 철저히 해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넬라넬라는 모두에게 달가운 지시를 하달했다.
자신의 신체 만한 석재자루를 세 개나 짊어지고 나르던 넬라넬라는 정확한 시각에 휴식을 알렸고, 그 순간 모든 인부들이 그 자리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식에 들어갔다.
넬라넬라 역시 휴식에 들어갈 셈으로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으려는 데, 문득 익숙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러스테리아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평소의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온 넬라넬라.
그러나 러스테리아는 무서울 정도로 전투적이었던 넬라넬라의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 주눅이 든 상태였다.
러스테리아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사이, 넬라넬라는 자신의 의복을 내려다보고서 급히 자리를 뜨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 모습이 말이 아닐 텐데……. 잠시 저기 있는 지휘 막사에서 기다리시면 금방 씻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자신의 신체를 씻으러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넬라넬라는 자신의 몰골이 엉망진창으로 말이 아니기에 러스테리아가 당황하고 있다 착각한 모양이었고, 러스테리아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정정하려 했으나 상대가 이미 떠나버린 뒤였기에 그녀의 말대로 조용히 막사에 가서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작고 아담하며, 허름한 재질로 이루어진 막사.
내부에는 상당한 양의 설계도가 쌓여 있었으나, 결코 지저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류별로 날짜별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평소 친한 이들에게는 활기차고 스스럼이 없으나 공무를 볼 때는 철저하고 단정한 그녀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러스테리아는 막사 안의 의자 하나에 힘없이 앉아, 조금 전 넬라넬라의 용맹한 모습을 상기했다.
제9위계의 마법 사용자인 자신에 비한다면 넬라넬라는 상당히 약한 존재였다.
이천이백 년을 살아온 자신에 비한다면 팔십오 세의 넬라넬라는 어린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마왕성의 재건 현장을 지휘하는 넬라넬라의 모습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빛나 보였다.
무엇 하나 허술하지 않은 명령에서 해박한 건축 현장의 지식이 엿보일 때면 그녀가 진정 멋있게 느껴졌다.
손수 자재를 나르고 해머를 휘두르며 현장을 진두지휘하던 그녀의 맹렬한 기세는 러스테리아를 겁먹게 하고 주눅 들게 할 정도였다.
러스테리아는 넬라넬라의 모습을 동경하게 되었고, 이 감정은 과거 그녀가 베아트리스에게 가지던 감정과 동일한 것이었다.
자신도 멋지게 활약해서 주인의 당당한 측근이 되고 싶었다.
주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유능한 하인이 되고 싶었다.
주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하며 편히 지내라 말해 주었지만, 이것은 러스테리아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막대 사탕을 빨며 산책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의미 모를 죄책감이 들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크림슨 캐슬과 카보니 숲을 발견하기 전, 잠들 시간도 없이 바삐 일하던 그때가 마음은 더 편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이 있으셨군요.”
페퍼민트의 상쾌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차가 내어져 있었다.
허름한 지휘 막사의 출입구에 천을 드리워놓고 대화를 나누던 두 여성.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고민을 모두 넬라넬라에게 털어놓았다.
자신만의 업무를 찾던 러스테리아가 넬라넬라를 찾아온 이유는 넬라넬라가 마왕성의 재건 계획을 맡은 지휘관이기 때문이었다.
향후 마왕성의 지리적 설계를 맡는 것 또한 넬라넬라의 업무였고, 그녀라면 마왕성에 어떠한 것들이 필요할지 잘 알고 있을 테니 혹여 인재가 없는 빈틈이 있는지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어떤 것들이 건축되고 설계되는지 아는 이라면 중요한 분야의 업무가 무엇이 있는지도 파악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었다.
“주인님 곁에 유능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러스테리아님은 비서관이시잖습니까. 그럼 폐하를 보필하시면서 곁을 지키기만 하셔도 중요한 업무를 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게 조금이라도 업무 분담을 해 주시면 좋을 텐데……. 주인님은 혼자서 정무를 보시고, 저는 그냥 곁에 있기만 해도 좋다고 하셔요. 차라도 끓여올까 싶으면 주방 업무를 보시던 베아트리스님이 시간에 맞춰서 칼같이 차를 가져오시고… 서류 작업이라도 좀 도와드리려고 하면 주인님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크로포드님이랑 아티스님하고만 의논을 하시고…….”
불과 오늘에서야 자각한 일이긴 하지만, 내심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만이 쌓인 모양이었다.
넬라넬라는 왠지 러스테리아의 모습이 자신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러스테리아는 지금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도움이 되고 싶은 데, 기대어주질 않으니 못마땅해서 부리는 투정.
마치 자신과 오빠를 보는 것 같았다.
언제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밤을 지새는 날이 많을 정도로 힘겨운 영주의 삶을 보내고 있던 베리베리.
그러나 그는 결코 넬라넬라에게 의무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넬라넬라는 베리베리의 과중한 업무를 함께 짊어질 수 있도록, 지식을 쌓고 무력을 갈고 닦는 등의 노력을 해 왔으나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넬라넬라는 공병대장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주로 정무를 위한 서류 작업을 통해 전체적인 영지의 흐름을 관리하는 영주의 특성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현장에 직접 나가 관리하는 직책은 베리베리도 부정하지 못하고 일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넬라넬라의 예상은 들어맞았고 넬라넬라가 현장에 나가 직접 지휘하며 세운 업적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베리베리는 그녀에게 비로소 공병대장이라는 직책을 부여하고, 그녀가 함께 영지를 운영하는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이었다.
“차가 식겠습니다. 천천히 말씀하셔도 괜찮으니, 여유를 가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치만 넬라넬라님은 바쁘신 거 아닌가요?”
“어차피 업무 지시는 끝마친 상태고, 나머지는 부장들에게 지시를 넣어 두기만 하면 알아서 잘 진행될 겁니다. 지금은 러스테리아님의 고민을 함께 나눌 생각이니, 여유있게 천천히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혹시라도 바쁜 넬라넬라가 시간이 다 되어 도중에 떠날까봐 조바심이 났던 러스테리아는 급하게 이야기 하느라 차를 마실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였고, 넬라넬라는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넬라넬라 자신이 오빠와 겪은 일이 떠오르니 남일 같지 않아서 더욱 그녀를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오늘 하루 만큼은 그녀를 위해 사용해야겠다 생각한 것이었다.
현재 러스테리아가 겪는 문제는 결국, 자신이 그러했듯 상대의 지나친 배려가 원인이었다.
물론 이 생각을 입 밖에 내거나 러스테리아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넬라넬라는 네로멜티아가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러스테리아를 어떤 이유에서 내버려 두고 있는지 상당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내심 웃음이 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의 오빠 베리베리처럼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가 행복했으면 싶어서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카보니 숲이 합류하기 전에는 러스테리아 또한 잠들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오빠처럼 아예 어려운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는 입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짚어 줄 필요가 있겠다 싶어, 넬라넬라는 러스테리아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폐하께서는 그간 러스테리아님이 비서관의 업무로 수고가 많으셨으니까, 휴가를 조금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버려 두시는 건 아닐까요?”
“모두가 바쁘게 일하는 동안, 저만 놀고 있을 수는 없어요! 저도 일할 거에요!”
러스테리아의 태도는 몹시 단호했다.
그녀는 사랑해 마지 않는 주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주인이 업무를 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찾아보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러스테리아가 겪고 있는 고민은 넬라넬라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러스테리아에게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어,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럼, 바로 나가서 찾아 볼까요? 생각하는 바가 몇 가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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