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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81화 (81/216)

〈 81화 〉 고블린의 경제학 (2)

* * *

광장은 무척 어수선해졌다.

어느새 군중 안에서는 아티스의 논리에 동의와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군중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티스에 대한 여론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자신을 낮추고 굽실거리던 이전의 모습과 다르게 자신감을 되찾은 아티스.

베아트리스에 의해 피범벅의 반주검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고문과도 같은 폭력을 당했다면 오히려 트라우마가 남아 성격이 바뀔 정도로 충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전혀 내색 없이 이토록 의기양양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아티스가 걸물(?物)이긴 했다.

“이의 있소!!!”

또다시 베리베리의 반론이 제기되었다.

아티스가 늘어놓은 이야기 자체는 분명 근거가 있고 증명된 사례도 존재했으며, 무엇보다 납득할 만한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베리베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헤모니겐트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아티스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티스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망측한 짓을 저지르다 사로잡히고 나니, 뒤늦게 자신의 교묘한 화술(??)을 이용하여 그럴싸한 이유를 덧붙였을 뿐이었다.

“욕망이라는 것이 발전에 기여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겠네. 그러나 그건 계기일 뿐이지! 과거 헤모니겐트는 둘도 없을 훌륭한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런 망측한 그림을 유포한 적은 없어!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나! 경제가 활성화되면 백성들은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스스로 계기를 만들기 때문이야!!”

베리베리는 자신이 정곡을 짚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았던 아티스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 한 필 얻고 싶다! 수레가 가지고 싶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 아이들의 선물을 주고 싶다! 경제고 화폐고를 떠나서 지금 당장만 해도 헤아릴 수 없는 계기들이 발생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얼마든지 물자가 유동적으로 흘러갈 수 있지. 그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만의 자원 생산을 꾀할 것이고!”

“그, 그러나 이쪽이 훨씬 확실히…”

말을 더듬기 시작한 아티스의 모습은 그가 당혹감에 젖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베리베리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아티스에게서 등을 돌려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랜달! 자네 지난주 케스와 근무 일정을 바꿔주고 뭘 얻었나!”

“케스가 제 망가진 투구를 고쳐 주었습니다!”

“피셔! 자네 어제 못 보던 단창이 있던데 어디서 난 것인가!”

“얼마 전, 대장간의 화덕 수리 일을 도와주고 답례로 얻었습니다!”

베리베리는 보란 듯이 아티스를 향해 호기로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디 항변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 도발적인 시선.

그러나 아티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 뿐, 뚜렷한 변론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간악한 물건이 없어도, 백성들은 열심히 살아가며 발전하고자 하는 계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네. 백성들이 바보로 보이나! 자네가 뭔데 백성들을 그런 무도한 물건을 가지고 계몽하려 드는가!”

“그, 그건…”

“거기다 발전이라는 건 지금 폐하께서 계획하신 대로만 진행되더라도 모두 이상 없이 흘러갈 것이야. 자원이 풍족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히 축적된 물자의 순환이 이루어질 기반을 마련하게 될걸세. 그날이 오면 더욱 자율적이고 원활한 순환을 위해 그대가 언급한 화폐 제도 역시 발의되겠지. 자네가 굳이 힘을 쓰지 않아도 모든 것은 자연히 구축될 수 있다는 말이야!!!”

“크윽…!!”

“애초에 백성들을 그런 망측한 그림이 없으면 열정을 가질 수 없는 바보 천치들로 몰아간 그대의 궁색한 변명이 실책일세!!! 말 해 보게나!! 그런 망측한 그림을 그려야 했던 제대로 된 대의를 말일세!!!”

아티스는 어떻게든 입을 떼고 싶어 부들거렸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의 다물어진 입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무엇 하나 제대로 꺼낼 말이 없었기에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들거리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자네가 말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니 내가 제대로 말해 주지. 자네는 그저 음탕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렸을 뿐이고, 그 때문에 잡혀 왔으니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자신의 행태를 정당화할 셈이었던 게 아닌가!! 참으로 간사하기 짝이 없네!!!”

“아, 아니야!!! 아니야!!!!!”

베리베리에게 제대로 정곡을 찔린 아티스는 군중의 시선을 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

마치 자신의 치부가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는 듯한 수치심.

그리고 아티스는 자신의 생사여탈을 틀어쥐고 있는 가장 드높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네로멜티아의 눈.

그 주변의 측근들 또한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이 아티스를 사로잡았다.

아티스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바닥에 넙죽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저는 그저!! 모든 아름다움의 궁극이자 정점은 여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경제의 발전은 그저 거짓된 이유일 뿐이라는 베리베리 경의 말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참된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다는 의도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런 의도라면 대체 경매는 왜 벌인 것인가!! 그렇게 다른 이들의 고혈을 빨아 비축한 물자는 모두 어디에 있는가!!!”

이제는 정말 끝났다 싶은 아티스는 자신의 숨겨진 속내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항복의 선언이나 다름없는 아티스의 고백은 베리베리의 기세를 더욱 키워 주었다.

티끌만큼의 부정도 용서하지 않을 셈이었던 베리베리는 더욱 가열하게 그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때, 유토피아의 일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지은 죄가 있어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던 유토피아의 조직원 사이에서 발언을 요청하는 제스처가 취해지자, 의외라는 생각과 함께 흥미가 돋았던 네로멜티아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발언권을 부여해 주었다.

“저는 아티스님 휘하에서 일하는 수행원 아르모라고 합니다. 저…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티스님께서는 얻으신 그림의 대가를 상당수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호오.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말해 주겠느냐?”

네로멜티아는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본격적인 설명을 듣고자 했다.

아무리 죄인의 신분으로 마왕이라는 절대자의 앞에 서 있다 해도, 다른 조직원들에 비해 상당히 떨고 있었던 고블린.

그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그의 심약한 성격을 증명하고 있었고, 그런 이가 위압감을 무릅쓰고 아티스를 변호하려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아티스님은… 배급된 물자 외에 추가적인 물자가 필요해진 이들과 상담하여 물자를 빌려주고 계셨습니다……. 재화라는 건 필요에 따라 돌고 돌아야… 올바른 경제의 순환이 이루어진다면서요……. 그냥 빌려주면 악용하는 이들이 나올 수 있으니… 이자를 받으시긴 했지만… 3푼 정도의 값싼 이자만 받으셨습니다…….”

작은 고블린이 아티스의 변호를 하는 동안, 군중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우물쭈물하던 이들의 용기를 쥐어짠 답변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식구가 늘어서 식량이 추가로 필요해 졌을 때, 아티스님께서 감자 한 포대를 빌려주셨습니다!”

“하수도 정비 공사를 하다 시궁창에 빠져 옷이 못 쓰게 되었는데, 의복 한 벌을 주셔서 다음 배급까지 악취 나는 옷을 입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보관을 잘못해서 감자에 싹이 나 못 먹게 되었을 때, 식량을 이것저것 빌려주셔서 다음 배급 때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군중들 사이에서 그간 아티스가 벌였던 미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티스의 선행이 보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고, 아티스는 그저 머리를 조아린 채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여긴 이들이 그를 위해 증언을 모으고 있었고, 이는 판결에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베리베리 역시 생각하지 못한 모양으로, 그는 다소 머뭇거리며 할 말을 잊기까지 했다.

네로멜티아는 이제는 끝을 볼 때라 싶어, 아티스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나?”

군중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변호의 목소리에 감격한 아티스는 지면을 눈물로 적시며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아티스는 눈물로 아른거리는 눈을 하고서 네로멜티아를 올려보았다.

무언가 결연한 각오를 다진 눈빛을 했던 그의 모습은 어딘가 숭고한 분위기가 있었다.

“죄와 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찮은 변명을 했다가 베리베리경에게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제게 더는 변명할 여지도 자격도 없습니다. 허나! 모든 죄는 단체를 구성하고 모두를 현혹한 제게 있을 뿐이니 유토피아의 다른 이들은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떤 벌이든 저 혼자 받겠습니다!”

“으어어어어! 아티스님!!”

“흑흑흑…! 저희를 위해서 그런…!!”

아티스의 희생정신이 돋보이는 간곡한 청에 유토피아 조직원들 사이에서 감동의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개중에는 오열하며 감격에 몸부림치는 이 또한 적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를 지탄 하던 군중들 또한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아 침묵만이 흘러가고 있었고, 아티스를 가장 많이 지탄 했던 베리베리 역시 조금은 이 분위기에 감동한 모양으로 코가 시큰거리는지 연신 훌쩍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네로멜티아는 뒤를 돌아 자신의 소중한 여성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러스테리아, 베아트리스, 넬라넬라.

그녀들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왕이 어떤 선택을 하든 일말의 고민 없이 따를 그녀들이었으나, 자신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 고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으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야… 용서해 드려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러스테리아였다.

그녀는 의외로 순순하게 아티스를 용서하는 분위기였고, 향후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만 않는다면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야한 그림은 모두가 감상을 마친 뒤이기에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그저 그림일 뿐인데 더 가혹하게 대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장미 꽃잎이 채워진 욕조에서 목욕하는 네로멜티아의 그림을 빼돌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천 번을 죽어도 모자랄 큰 죄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제가 엄격히 교육시켜드린 점도 있고, 주인님께서 괜찮으시다면 한 번 더 기회를 드려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토록 싸늘하고 냉정했던 베아트리스에게서도 의외의 이야기가 나왔다.

분명 그녀의 교육이라는 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죗값을 치렀다는 생각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주인에게 얽힌 일이라면 일말의 타협 없이 단호함만을 보이던 베아트리스가 아티스에게 용서를 입에 담는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외인 것이었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의견보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었기에, 그녀 자신의 성격이 담긴 발언은 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베아트리스 자신과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는 네로멜티아의 나신 그림을 빼돌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저… 역시… 폐하만 괜찮으시다면 용서해 드려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이미 벌을 많이 받으신 것 같기도 하고…….”

광장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아티스의 참혹한 몰골이 계속 신경 쓰였던 넬라넬라는 순순히 용서의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자신의 나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드러났다는 사실에 수치심으로 몸부림을 치긴 했으나, 그의 피범벅 반주검의 모습을 보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군인으로서의 교육을 많이 받았던 넬라넬라는 격렬한 훈련을 하다가 옷이 찢어진 적도 적지 않았기에, 여성으로서의 인식이 많이 무뎌져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왕의 나신을 그린 죄는 죽어 마땅한 사유라고 생각은 했으나, 당사자인 마왕만 괜찮다면 죽을죄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각양각색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타로 카드를 빼돌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좋아. 그럼 판결을 내리지.”

피해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네로멜티아는 군중과 아티스의 앞에 가서 섰다.

모두가 마왕의 판결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그저 아티스를 욕하고 그에게 침을 뱉기만 했던 군중들은 어느새 재판의 흥미진진한 진행에 빠져들어, 그 결과를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티스에게 호감을 가진 인물, 측은지심을 가진 인물, 여전히 혐오를 가진 인물 등 백성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방향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었기에 결과는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아티스의 죄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단지 피해자들이 그를 용서했기에 내린 결과임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실존 여성들의 모습으로 이런 부적절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다시 한번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을 시에는 용서 없이 처벌할 것임을 밝힌다. 이상!”

군중의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하며 분위기가 가열하고 있었고, 그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그 요란한 광장의 가운데에서 네로멜티아는 아티스를 향해 몸을 숙였다.

여전히 머리를 지면에 처박고 조아리고 있는 아티스.

그는 판결에 감동해서 끅끅대며 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네로멜티아가 아티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이 음흉한 녀석아. 동정표 사려고 죄를 대신 받겠다는 둥, 조직원들은 용서해 달라는 둥 운운한 거 다 알아.”

“…!!!”

“그래도 피해자들이 용서하기도 했겠다, 죽일 죄는 아닌 것 같아서 넘어가 주는 거야. 베아트리스에게 크게 당한 일도 있고 하니까.”

네로멜티아의 이야기에 정곡을 찔린 듯, 몸을 움찔 떨어대는 아티스.

그는 순수한 의도로 자신의 희생을 입에 담은 것이 아니었다.

여론을 유리하게 만든다면 아무래도 판결이 부드러워질까 싶어 의도한 하나의 연출이었던 셈이었다.

네로멜티아는 그의 속내를 간단하게 간파했고, 아티스는 심장이 움켜쥐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취미 활동도 중요한 거니까. 유토피아는 해체하지 않을 거고 야한 그림도 그냥 그려. 단지 실존 인물을 가지고 그리는 짓만큼은 하지 마라?”

“네, 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의외로 부드러운 네로멜티아의 조건에 아티스는 더 바랄 것이 없어 바닥에 머리를 찧을 정도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보면 마왕의 허가 아래 당당하게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아티스는 이게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쾌재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때, 네로멜티아가 아티스의 턱에 손가락을 대고 그의 고개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아티스는 네로멜티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이 되었는데, 그의 의문이 담긴 눈빛이 공포로 물들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남자랑 얽히는 그림 그리면 죽여버릴 거야.”

마왕의 소름 끼치는 살기가 아티스의 눈을 통해 그의 심장을 조였다.

심장에 서리가 앉는 듯 오한이 마구 치밀어 올랐고, 아티스는 떨려오는 신체를 주체하지 못했다.

죽음을 목도한다 할지라도 이보다 두렵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내 네로멜티아는 싱긋 웃으며 살기를 풀었고, 아티스의 어깨를 다독여준 뒤 사랑하는 미녀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마왕이 물러나자 유토피아의 단원들은 자신을 희생하고자 한 아티스에게 감격하여, 그를 에워싸 끌어안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티스는 넋이 나가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했고, 단지 한 가지의 사실만을 되뇌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자랑 얽히는 그림은 그리지 말아야지…….’

물론 실제 여성을 그리지 않겠다고 되뇌지는 않았다.

크로포드와 베리베리는 자신들의 주군이 의외로 아티스를 쉽게 용서하자 의문을 가지기도 했으나, 이내 자애로운 마왕의 모습을 떠올리며 쉽게 이해하고 웃음을 지었다.

마왕의 위엄을 훼손한 대죄를 저지른 아티스임에도 너무나 쉽게 용서해 버린 자애로운 마왕.

자신들이 섬기는 주군은 이토록 자애롭고 선한 여신이었던 것이다.

물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의 러스테리아, 베아트리스, 넬라넬라가 네로멜티아에게 안긴 채, 함께 사랑을 나누는 그림을 빼돌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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