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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80화 (80/216)

〈 80화 〉 고블린의 경제학 (1)

* * *

용서를 구하는 일이 유일한 선택지로 보였던 아티스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실존하는 여성들의 나신과 음행의 모습을 그려대고선 대의를 논한다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도 나지 않고 황당함에 얼이 빠질 뿐이다.

“… 다시 한번 말해봐.”

“분명한 결실도 있었나이다! 분명 저의 모든 행동은 헤모니겐트의 발전을 위해서였나이다!”

“응…? 뭐라고?”

“헤모니겐트의 발전입니다!!”

황당하기는 네로멜티아 역시 마찬가지였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혹은 아티스가 말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재차 물어보았으나 아티스의 태도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 네로멜티아는 눈을 질끈 감고서 이마를 짚었다.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고삐 풀린 말이 답이 안 나오는 것처럼 현재의 상황 역시 어디서부터 풀어갈지 막막한 것이었다.

“폐하께서 네놈의 발언을 너그러이 허락하셨건만! 이게 무슨 추태인가 아티스!! 응당 머리를 조아린 채 생사여탈의 모든 것을 폐하께 바쳐야 마땅한 것을!!!”

“나의 친구 베리베리여! 우리가 마주한 시간은 짧았으나, 지난날의 돈독했던 우정을 잊었단 말인가! 조금만 나를 믿어 주게나!!”

서로 다른 가치관에 의해 갈라진 두 친구의 사이에서 절절한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네로멜티아는 그들의 충돌을 막아야만 했다.

네로멜티아는 손을 들어 둘의 대화를 강제로 중단시켰고, 다시 고개를 조아려 부복의 자세를 다하고 있는 아티스에게 다가갔다.

“돌려 말하지 말고 정확히 설명해 봐. 네 그림이 어떻게 헤모니겐트의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지?”

아티스는 마왕의 질문을 듣자 찰나의 순간 화색이 돌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단이 마련된 것에서 희망을 본 것이었고, 제대로 설명할 수만 있다면 상대를 어떻게든 납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야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에, 아티스는 이내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진중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런 낡은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경어체 모두 때려치워! 네 행동에 제대로 된 정당성이 있다면 나는 충분히 용서해 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 평소대로 얘기해. 어울리지도 않는 경어체 듣기 거북하니까.”

사실 네로멜티아는 아티스의 머리를 산산이 날려버리고 싶을 만큼 크게 화가 났었다.

그러나 그동안 붙은 정이라는 것도 눈에 밟혔고, 아티스가 나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날 그가 완수한 업무들은 굳이 평가하자면 상당한 공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가 도주하던 전날 밤의 비밀 통로에서도 기회를 줄까 하여 그를 쫓아다니며 설득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아티스는 베아트리스에게 잘못 걸려 다 죽어가는 반주검의 몰골로 돌아왔었다.

거기서부터 네로멜티아는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숨이 붙어있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게 부서진 그의 처참한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벌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싹 달아날 정도였던 것이다.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음란한 그림이 떠돌았다는 사실보다 주변의 소중한 여성들의 음란한 그림이 떠돌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정말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나, 그가 베아트리스에게 당한 폭행과 고문을 상상해 보면 죗값은 충분히 치르고도 남지 않았나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티스의 말이 합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용서해 줄 의향이 있는 것이었고, 그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죄를 짓는 셈이니 그에 맞는 벌을 줄 생각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아티스의 세치혀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흠흠. 마왕께서는 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것들이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모자람 없이 충분한 자원, 필요한 분야의 인재 양성, 다른 세력에게 지지 않을 군사력, 깊이 있게 발전한 학문, 드높이 발전하는 기술력! 많은 가치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문명은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 무수히 모여 이룩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들입니다.”

지금까지는 충분히 사리에 맞는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으니 네로멜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중 안에서도 아티스의 말을 깊이 이해한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반응을 취하고 있었다.

“현재 헤모니겐트는 언더 바르커스에서 조달하는 식량과 카보니 숲에서 채취하는 자원으로 무리 없는 발전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욕망…?”

“그렇습니다! 모두의 미래에 대한 헌신과 이후 자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터전을 위한다는 숭고한 목적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이 많으나, 그들이 소유할 욕망의 본질은 충족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티스의 일장 연설을 듣던 러스테리아는 이야기 자체는 이해하더라도 본의에 닿을 수 없었기에 베아트리스를 바라보며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베아트리스 역시 본의를 추측할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조용히 고개를 저어줄 뿐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국가가 재건되고 제대로 된 사회 구조가 구축된다면, 그에 따라 경제라는 것이 확립됩니다. 그것을 원활하게 굴릴 수 있도록 화폐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사회의 구성원들은 한 장의 동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한 장의 금화를 위해 위험한 도전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

“그것은 열정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만족시킬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서 그 작고 동그란 쇠붙이 따위에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확실히 이 부분은 네로멜티아 역시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네로멜티아는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이 마음 편히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해왔을 뿐, 그들의 의식이라거나 경제 구조라거나 하는 인문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한 바가 없었던 것이었다.

“벌써 마왕성 일대의 대대적인 지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외성을 세우기 위한 자원 축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발전에 발맞추어 경제라는 내실을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 기초를 닦아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피력하던 아티스는 문득 슬픈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온몸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짓는 아티스의 모습은 자신의 논리를 더욱 확고하게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흉내였으나 그 표현이 너무나도 능숙하여 진정성마저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통탄스럽습니다! 현재의 헤모니겐트는 모든 식량과 물자의 보급을 배급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정된 자원을 모두에게 모자람 없이 나눠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제도이며, 마왕님의 자비로우신 배려가 흠뻑 묻어나는 따뜻한 제도인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내가 열심히 일하든 설렁설렁 일하든 똑같은 양의 자원을 배급받는다면, 열정이 타오를 수 있겠습니까! 자발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화폐라는 것이 중요하고, 나아가 경제의 발전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저 시키는 것만 해낼 뿐인 사회는 이상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현재 넬라넬라는 아티스를 향해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녀와 아티스의 첫 만남은 카보니 숲과 마왕성을 잇는 게이트가 열리고 서로의 지역을 시찰할 때, 지나가듯 마주한 것이 다였다.

이후 있었던 연회에서 자신의 오빠 베리베리와 마음이 잘 통하는 모습을 보여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광경을 보았고, 그저 ‘말을 잘하는 노인이구나.’ 하는 인상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녀가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아티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린 순간은 전날 밤 하수도에서의 만남이 유일했다.

자신의 나신이 그려진 타로 카드를 들고서 조직원들의 앞에 선보이고 있었던 모습.

넬라넬라의 마음속 아티스는 음흉하고 파렴치한 변태 노인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아티스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달리 생각하는 중이었고, 이야기의 내용 자체에는 순수하게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행보를 보였건 간에 그가 가진 지식은 진짜였고, 현재의 논리 역시 헤모니겐트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자가 아니라면 떠올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의 헤모니겐트는 다시 말하지만 배급제. 어느날 갑자기 화폐를 떡하니 찍어낸다 하더라도, 화폐가 제 기능을 할 리 만무합니다. 그저 반짝이고 예쁜 쇠붙이 정도로 굴러다닐 것이고, 여전히 백성들은 배급된 자원을 받아가며 생활하겠지요. 화폐라는 것에 자신들의 이상과 꿈을 담을 수 없어, 열정도 타오르지 않는 겁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서 바들바들 떨어대며 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아티스.

그의 연설은 어느덧 본론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 역시 내용의 본질에 다가감에 따라 더욱 절절한 피력을 위해 격정적인 모습마저 보여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인류의 욕망 중 가장 근본적이며 기본이 되는 욕망!!! 식욕! 갈증! 수면! 안락! 그 많은 원초적 욕망 중 성욕을 자극할 수 있는 매혹적인 인물화! 타오르는 리비도(Libido)! 거부할 수 없는 패션(Passion)! 저의 그림은 백성들에게 강한 열정을 가져왔습니다!”

“이의 있소!!!”

아티스의 격정적인 연설을 끊고 베리베리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손가락을 세워 아티스를 가리키며 앞으로 나선 채 이의를 제기한 베리베리.

네로멜티아는 아티스의 이야기를 마저 듣기 위해 이번에도 베리베리를 제지하려 했으나, 그의 음성에 배어 있는 노기와 달리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이성적이었기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모든 논리는 반론과 부딪쳐 그것을 이겨내야만 근거를 인정받는 것이다.

“화폐에 대한 욕망이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발전성을 가져온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그러나 욕망의 자극이 무조건 향상성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매일 밤 잠에 들며 채우는 수면욕이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말이네!”

결국 어떤 욕망을 자극하건 열정과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없다면 향상성의 발로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원론적인 의견이었다.

베리베리의 날카로운 지적은 그 역시 누구 못지않은 학문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며, 지금껏 아티스가 제시한 논리에 대해 가장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반론을 들은 아티스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베리베리 경은 지닌바 학식과 심계가 무척 깊군요. 이 작은 노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오호호호호호. 그러나, 베리베리 경이 지적한 사항까지도 이미 근거가 나와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네로멜티아와 대화를 시작했을 때, 머리를 조아린 채 온갖 경어를 입에 담으며 자신을 낮췄던 아티스는 어디로 갔는지 그의 모습은 한없이 의기양양했다.

물론 네로멜티아는 이것이 아티스의 본모습이니 오히려 힘 앞에 굴복해 자신을 낮추는 모습보다 더욱 보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의 그림은 배급받는 식량과 물자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열정을 심어주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토피아라는 단체가 설립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제게 가담했습니다! 그 이후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르모! 그대는 원하는 그림을 위해 무엇을 내어놓았나!”

“저는 제가 개인적으로 당근을 키워 두 자루를 내놓았습니다!”

“케니스! 그대는 원하는 그림을 위해 무엇을 내어놓았나!”

“저는 밤마다 하수도에 들어가 쥐를 잡았고, 쥐의 가죽을 모아 숄(Shawl)을 제작해 내놓았습니다!”

“아르나디! 그대는 원하는 그림을 위해 무엇을 내어놓았나!”

“저는 양배추의 할당량을 마련하기 위해 돌을 깎아 장식품을 만들어 다른 이들과 교환하였습니다!”

아티스가 제시했던 온갖 논리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사회학, 경제학, 인문학, 철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근거로 제시된 아티스의 논리들은 조직원들의 증언이 모여 하나로 이어진 것이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 같았던 것들이 하나로 이어져 부정할 수 없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이들은 배급받는 자원을 넘어, 그들 스스로가 새로운 가치를 마련하려 자발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자원을 채취했고, 어떤 이들은 자신만의 상품을 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물물교환이라는 경제의 기본적인 체제를 이루었고, 어떤 이들은 저축의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심지어는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의 자원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구매해 서로서로 공유하는 공동 투자의 개념마저 이루어냈습니다!”

아티스의 말과 조직원들의 증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판가름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아티스의 논리가 사실 여부를 떠나 신빙성이 높았고, 사용된 도구가 도덕적이지 못할지언정 그의 논리 자체는 근거가 타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벌인 범죄에 대해 노기를 감출 수 없었던 베리베리조차 더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티스의 조용한 한마디가 광장을 울렸다.

“인류의 발전은 언제나 욕망으로부터 발생하는 법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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