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아티스의 재판
* * *
유독 길었던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아왔다.
잠에서 깨어난 헤모니겐트의 주민들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마왕성의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각자에게 부여되던 하루치의 일과 계획이 아니었다.
벌거벗은 남성들이 광장의 한복판에 줄을 지어 서 있는 광경과 세워진 통나무에 매달린 상처투성이의 반주검 고블린 아티스였다.
“이 자들은 감히 위대하신 마왕 폐하와 러스테리아 비서관님, 폐하의 측근 베아트리스님, 그리고 오크군의 영예로운 공병대장 넬라넬라에게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불충하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은 역도(??)들이다!”
분기탱천한 베리베리의 노성(??)이 광장을 넘어 마왕성 전체를 울릴 듯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는 헤모니겐트의 주민들에게 지난날의 사건을 간략히 공고(??)할 뿐이었으나, 안면에 핏줄이 가득 세워질 정도로 진노하고 있던 탓에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피를 토하는 듯 비절(??)하고 위태로웠다.
“여기 매달린 죄인 ‘아티스 T. 페인터’는 고블린 킹이자 마왕군의 간부라는 직책을 망각하고! 앞서 언급한 분들의 저속한 그림을 그려 팔았다!”
단지 저속한 그림이라 뭉뚱그려 표현했을 뿐이지만, 광장에 모인 주민들은 베리베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경악했고, 어떤 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저도 모르게 죄인들을 향해서 욕설을 내뱉는 이도 있었고, 격분하여 바닥에 침을 뱉는 이도 존재했다.
개중에는 은근한 눈치로 네로멜티아와 주변의 측근 여성들을 살피며 음흉한 욕망이 엿보이는 눈빛을 보이던 불충한 이들도 있었으나, 그 기색을 알아차린 주변 주민들이 살기를 띠며 노려보자 즉시 눈을 내리깔고 죽은 듯 침묵해야만 했다.
“앞에 나체로 늘어선 자들은 죄인 아티스가 비밀리에 조직한 사조직 ‘유토피아’의 단원들로서! 아티스가 생산한 그림을 거래하며 그에게 동조한 자들이다!”
베리베리의 간략한 공고에도 군중은 그들이 어떠한 벌을 받고 있는지 너무나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여성의 나신을 그린 그림을 공유했던 자들에게 그림의 모델이 된 여성들이 느꼈을 수치심과 동일한 형태의 수치심을 주기 위해 그들을 나체로 광장에 세워둔 것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일벌백계이며, 성스러운 헤모니겐트의 아래에 다시는 이런 불한당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처벌은 이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며! 죄인들의 향후 처분은 모두 마왕 폐하께서 결정하실 것이다!”
군중에게 정해진 내용을 모두 전달한 베리베리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마왕군 간부가 모인 위치에 가서 섰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가장 앞에 오연히 서 있었던 네로멜티아가 교대하여 앞으로 나왔다.
감정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담담했던 네로멜티아는 군중의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 수치를 당하고 있던 유토피아의 조직원들에게 다가갔다.
“많은 이들 앞에서 벗겨진 기분이 어떠한가.”
마왕의 한 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딱히 누군가의 설명이 없더라도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조직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작 처형을 당했어도 할 말이 없었을 상황임에도 그들이 여전하게 살아 숨 쉴 수 있는 건, 오로지 마왕의 자비로 이루어진 일인 것이었다.
베리베리가 지휘하던 오크군이 그들을 죽이지 않고 생포한 건 처형하기 전에 잔혹한 고문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고 겁을 집어먹었었다.
그러나 마왕은 그들을 임시 감옥에 가두어 두었을 뿐, 그들의 신변에 일말의 상처조차 입히지 않았다.
군중의 앞에서 벌거벗겨지는 형벌은 그들의 예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대로 공개 처형을 당하더라도 편히 죽을 수 있다는 자비에 감사할 뿐이었다.
“너는 어떠한가. 베아트리스와 단둘이 긴 밤을 함께 했었지?”
다른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나체의 형벌을 받고 있었던 아티스.
죽어가고 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처절한 부상을 당한 그는 광장의 중심에 세워진 통나무에 양 손이 묶인 채로 매달려 축 늘어져 있었다.
성한 구석은 전혀 없었으며, 너덜거리는 반시체나 다름이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피멍이 전신에 새겨져 이따금 피가 배어 나올 정도였고, 호흡은 간헐적으로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얼굴은 철저히 망가져 두 배는 부어올라 있었고 그에 따라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으며 피를 질질 흘리던 그의 벌어진 입에서는 치아가 모조리 뽑혀나간 잇몸만이 보이고 있었다.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아티스의 몰골에 군중의 일부는 고개를 돌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 에아… 흐이흐임… 응컥…!! 어흐… 앙호하이이아…….”
추욱 늘어져 매달려 있을 뿐이었던 아티스는 네로멜티아의 질문에 더듬더듬 간신히 대답을 했다.
그러나 치아가 모조리 뽑히고 입이 부어오른 데다가 턱의 관절 역시 박살나 있었기에, 그의 말은 차라리 짐승의 울음소리라 해야 더 가까울 정도였다.
벌어진 그의 입에서 끈적한 피가 줄줄 늘어지며 지면에 붉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앱솔루트 힐링(Apsolute Healing).”
네로멜티아의 손에서 한 차례 빛이 쏟아져 아티스의 신체에 흡수되었다.
흡수된 빛은 아티스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으며, 그의 신체가 격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대상자의 신체에 완벽한 재생을 부여하는 제8위계의 회복 마법.
앱솔루트 힐링의 능력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회복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창조의 영역에 발을 걸친 마나의 권능이었다.
아티스의 전신이 뒤틀리며 어긋나거나 부러진 뼈들이 제 위치를 찾아갔고 본래의 온전한 형태로 복구되고 있었다.
피범벅이나 다름없었던 상처투성이의 전신도 모든 부상이 아물어 깨끗해졌다.
두 배는 부어올라 있었던 그의 얼굴 역시 노쇠한 고블린 특유의 마르고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장 압권이었던 건, 모조리 뽑혀나가 손실되었던 그의 치아가 잇몸 안쪽에서부터 새롭게 돋아난 것이다.
오히려 누렇게 변색 되거나 까만 충치가 존재 했었던 과거의 구강 상태보다 더욱 깨끗하고 건강하게 변화한 것이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 갓 나온 영구치가 생겨난 상황이었다.
빠각!!!
네로멜티아는 아티스의 완전 회복을 확인하자마자, 그가 매달려 있는 통나무의 꼭대기를 노려보았다.
지켜보던 군중은 마왕이 통나무의 끝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으나, 그녀가 시선을 맞춘 통나무의 상단이 산산이 부서져 파괴되는 것을 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날카로운 목재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그와 동시에 아티스의 양손을 묶은 채 그를 매달고 있었던 밧줄 역시 끊어져 버렸다.
털퍽!
아티스를 매달고 있었던 밧줄이 갑작스럽게 끊어지자, 그는 마치 실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지면에 맥없이 처박혀 버렸다.
상당한 높이에서 떨어진 셈이었으나 낙하의 충격은 무게에 비례하여 작을 수밖에 없었고, 유독 가벼운 체구를 지닌 고블린의 특성상 어딘가 다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아티스는 지면에 처박히고 나서도 자신의 신체에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경악할 뿐이었다.
그가 내려다본 자신의 신체는 피부의 표면에 말라붙은 피가 범벅이 되어 지저분해져 있을 뿐, 티끌만큼의 상처도 없이 건강하다는 현실을 맞이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고질병이었던 요통마저 사라져 이전보다 더욱 활기가 넘칠 지경이었다.
아티스는 지면에 고개를 처박고 마왕에게 진심으로 부복(??)했다.
“천 번을 죽어도 여한이 없을 대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루이나의 여신을 경배하나이다!”
네로멜티아는 눈을 감고 한숨을 지었다.
이 일을 어디서부터 처리하면 좋을지 감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목을 날려도 시원치 않을 죄를 저지른 아티스였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그간 쌓인 정도 많았고 그가 쌓아온 공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었기에 내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대의를 중시해 공적인 선택을 내린다할지라도 갈등을 피할 수는 없었다.
베리베리가 언급한 대로 일벌백계를 보여주어야 향후 똑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었지만, 죄를 저지르면 그간 쌓은 공과 관계없이 처형당한다는 전례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 식이라면 모두가 마왕에게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살벌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마왕의 곁에 다가가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마왕성은 유능한 인재를 발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백성들에게 죄인이 누군가를 살해한 것도 아닌데 목숨까지 빼앗는 마왕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상대를 위협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을 한마디.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상당히 진심이었고, 좋은 의견이 있다면 한 번 제시해 보라는 의미가 깔린 허심탄회한 말이었다.
이는 아티스에게 있어 ‘자신의 죄는 자신이 씻어라.’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마왕의 작은 종이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죄인의 신분으로 감히 할 말이 없어야 할 것이나! 저의 과오에 대한 작은 변명을 아뢸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저, 저런 발칙한 자를 보았나!!!!!”
평소의 아티스는 마왕을 마주하고서도 여유로운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던 존재였다.
그 대범한 노신사가 현재 지극한 예를 다하여 자신을 하찮은 위치에 두면서까지 마왕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었다.
반면 아티스의 그런 절절한 모습에도 베리베리는 안면에 핏대를 가득 세운 채 분노에 치를 떨었다.
당장에라도 아티스의 머리를 쪼개버릴 듯 배틀 액스를 쥔 채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러나 그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연히 마왕의 허가가 떨어졌기에 베리베리는 자신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었다.
“소신이 마왕께 행한 불충은 모두 헤모니겐트의 발전을 위해서였사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