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 * *
비좁은 통로로 진입한 네로멜티아는 자세를 낮춰 거의 기다시피 전진하고 있었다.
고블린의 작은 신장에 맞춰 설계된 비밀 통로였기에, 데모니안이었던 네로멜티아로서는 이동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르고 있었다.
그나마 강한 신체 능력을 소유한 마왕이었기에 추격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일 뿐, 자신의 영역에서 재빠른 몸놀림까지 보이는 아티스를 따라잡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읏!!”
특히 좁아지는 구간이 나타나 신체가 끼어버려 추격의 정체를 맞이한 건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누구나 눈길을 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고 탐스러운 그녀의 가슴이 통로가 좁아질 때마다 번번이 협소한 공간에 끼어 진행에 차질을 빚었고, 그때마다 신체를 이리저리 비틀어 걸리적거리는 통로를 허물어뜨리는 방법으로 공간을 넓혀야만 진행이 가능했다.
마음 같아서는 진작에 주변 공간 전체를 박살내며 편히 나아가고 싶었으나, 자칫 잘못했다가 마왕성 일대의 지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수도가 위치한 장소는 대부분 거주지였고, 지상에서 단잠에 빠져 있을 주민들이 휘말리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일렉트릭 에어리어(Electric Area)!”
아티스의 플랫 캡에 휘날리는 실밥까지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네로멜티아는 지체 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이전 언더 바르커스에 처음 방문했을 때, 입구에 가득했던 갯강구들을 몰살시킨 마법.
부여된 마력이 다 할 때까지 뻗어 나가는 전류의 물결이 비좁은 통로를 통해 아티스에게 나아가고 있었다.
쩡!!
아무리 재빠른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섬전이나 다를 바 없는 전류의 파도를 따돌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작은 파쇄음이 들렸을 뿐, 아티스는 일말의 타격조차 받지 않은 채 꺾인 통로 너머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이어서 아티스의 흔적을 따라가던 네로멜티아는 통로의 지면에 떨어진 작은 보석의 파편들을 발견했다.
“또 디스펠 매직의 마도구인가……. 크으으… 도대체 몇 개나 챙겨둔 거지?”
마왕성의 폐허를 떠돌며 얻은 것이라고 밝혀진 마도구.
과거 마왕성의 함락 당시 휴미안군은 마왕성의 모든 것을 철저히 약탈했을 것이었다.
심지어 그 이후로 천 년이나 지났기에, 약탈당하지 않은 채 남겨진 운 좋은 마도구들도 풍화되어 손상된 것이 대부분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티스는 사용 가능한 마도구를 여럿 소유하고 있었다.
마왕성의 폐허에 남겨진 과거의 쓸만한 마도구는 전부 아티스의 손에 발굴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네로멜티아가 추격을 진행하며 사정거리에 진입할 때마다 사용한 마법이 지금껏 총 세 번.
유토피아의 은거지에서 발동한 마도구까지 합치면 총 네 개의 마도구가 소비된 셈이었다.
아티스가 소유한 목걸이, 반지, 팔찌 등의 액세서리들이 그때마다 하나씩 깨져나갔다.
이쯤 되면 그가 착용한 액세서리는 모두 디스펠 매직의 가호를 담고 있는 마도구가 아닌가 의심해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더욱 강대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마도구에 부여된 디스펠 매직 따위는 간단하게 부숴버린 채, 아티스를 직접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서야 연약한 고블린인 아티스가 단숨에 죽어버릴 수도 있기에 선택지에서는 단호하게 제외되었다.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상황인 셈이었다.
“언제까지 도망갈 셈이냐!!! 마왕성을 떠나기라도 할 셈이야!!? 그럼 정말로 죽는다!!!”
아티스의 모습이 멀리서 다시 나타나자 네로멜티아는 답답한 나머지 음성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티스가 이대로 마왕과 척을 진 채 도주한다면, 마왕성에 발을 붙일 곳이 전무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마왕성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고, 일개 고블린 혼자서 멸망한 아스타리스 대륙을 떠돈다는 건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잡혀서 당장 죽느냐 떠돌다 객사하겠느냐를 택하는 거라면,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 한 점의 작품이라도 더 남기고 죽는 것!! 그것이 저의 숙명입니다!!!”
“안 죽일 테니까 좀 멈춰 봐!!!”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저는 지고한 마왕님께 불경을 저지른 대역죄인입니다!!!”
“그걸 아는 놈이 이런 짓을 벌였냐!!! 답답하다 진짜!!!!!”
서로 티격태격하며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추격전.
조금 닿을 듯하면 길이 꺾이거나 좁아져 거리가 다시 벌려지기 일쑤였다.
“길을 잘못 들었구나, 아티스!”
네로멜티아는 아티스의 전방이 막다른 길이라는 걸 발견했다.
다른 샛길도 없어 보였고, 이대로 아티스의 도주가 벽에 막힌다면 그를 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티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통로의 끝까지 달려갔다.
아티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호호호! 설마요!”
파파파파팍!
맨손으로 벽을 파기 시작한 아티스.
흙으로 이루어진 그 벽은 아티스의 작은 손에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벽의 너머에 존재했던 또 다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벽 자체도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니었고, 고블린은 땅을 잘 파는 종족이었기에 지름 일백 멘톨 정도 되었던 그 흙벽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벽 너머에 나타난 새로운 통로로 아티스가 몸을 날렸다.
“안타깝지만 작별입니다!!”
“크으으으읏!! 너 끝까지!!!”
벽을 허물긴 했으나 벽을 구성하고 있던 흙무더기는 그대로 통로에 쌓인 채였기에 생성된 구멍은 상당히 비좁았다.
아티스도 꾸물꾸물 기다시피 해서 통과해야 할 정도였기에, 네로멜티아가 통과하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협소한 구멍이었다.
네로멜티아는 급히 그 흙무더기를 꾹꾹 누르고 밀쳐대며 구멍을 넓히려 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아티스는 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승리의 미소를 지은 채 마왕을 돌아보며 달리는 아티스.
그 짜증을 유발하는 기분 나쁜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모든 걸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말로 잘 달래서 데려가려고 이런 흙구덩이에 뛰어든 건데……. 이젠 됐다.”
네로멜티아는 아티스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과 소중한 이들의 저속한 그림을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한 일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 정도였으나, 그렇다고 누군가의 생명을 해하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었다.
그렇기에 굳이 그의 뒤를 몸소 쫓으며 설득을 한 것이었다.
굳이 치명적이지 않은 마법만을 골라 사용한 것 역시, 그를 힘으로 단숨에 사로잡기보다는 여의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 아티스가 스스로의 의지로 투항하길 바랐던 것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투항한 아티스가 진솔하게 귀를 기울이면, 그대로 잘 타일러 현재 사건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협소한 흙투성이의 공간과 끝이 없는 기나긴 추격, 그리고 기분 나쁘게 의기양양한 아티스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네로멜티아의 인내를 바닥나게 했다.
“플래쉬 무브.”
스팡!!!
“크억!!”
시전자를 섬광과 같은 속도로 이동시키는 제5위계 마법, 플래쉬 무브(Flash Move).
네로멜티아는 순식간에 아티스의 등 뒤까지 따라붙었고,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협소한 공간에서 워낙 순식간에 전진한 터라, 통로 내부의 대기가 굉음을 내며 뒤늦게 밀려와 불어닥쳤다.
발목을 잡힌 아티스는 소스라치게 놀라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경악하며 동그랗게 뜨인 그의 눈은 거세게 밀려오는 돌풍에도 감기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떠질 뿐이었다.
“진심 그 손가락 다 분질러 놓고 싶은데 참고 있거든. 우선 얘기 좀 하자.”
고작 제5위계 마법에도 경악하는 주제에 아티스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네로멜티아가 차분하게 대화를 유도하는 동안, 그는 그녀의 손에 잡혔던 자신의 부츠를 벗어버렸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 마냥, 그는 자신의 부츠 한 짝만을 남겨둔 채 다시 도망치려고 드는 것이었다.
“유토피아여 영원ㅎ…!”
퍼석!!! 쿠르르르르…!
뭔가를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도망치려던 모양이었으나, 통로의 천장이 무너지며 흙무더기에 깔려 버렸다.
갑작스러운 통로의 붕괴에 네로멜티아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무너진 천장의 구멍으로부터 여성의 하얀 팔 하나가 뻗어져 나와 아티스의 목을 틀어쥐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내막을 알 수 있게 되어 그녀의 표정에는 점차 동정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길게 이어진 교차 매듭이 인상적인 하얀 블라우스 소매.
그 매듭의 끝을 마무리하는 손목의 리본.
그 팔의 주인은 다름 아닌 베아트리스였다.
“히이이이이익!!!!!”
목이 잡힌 채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던 흙무더기를 털어내 시야를 확보한 아티스.
그는 자신의 목을 틀어쥔 손의 주인을 바라보며 공포에 물든 비명을 질렀다.
천장 너머의 다른 공간에서 팔을 뻗어 지면을 부순 채, 아티스를 사로잡은 베아트리스.
비밀 통로의 천장 위에는 또 다른 통로가 존재하고 있었고, 베아트리스는 그 통로를 통해 아티스의 위치를 감지하다가 지면을 꿰뚫고 그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온통 어둠뿐인 칠흑의 공간에서 베아트리스의 시퍼런 안광만이 싸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주인님의 자비를 이용해 이런 불충을 저지르다니. 주인님의 고귀한 신체가 흙투성이지 않습니까.”
“허으으으으으…!!!”
“당신은 교육이 필요합니다.”
베아트리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티스를 들어 올렸다.
아티스의 목을 틀어쥔 손은 그를 어두컴컴한 칠흑의 공간으로 끌고 갔고, 아티스는 그녀의 손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구멍의 양옆을 붙잡고 필사의 저항을 해보았으나 긴 손톱자국만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귀가 찌릿할 정도의 처참한 비명이 비밀 통로에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노쇠한 고블린이 내지르는 비명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격렬한 필사의 비명.
절규에 가까운 그의 비명은 단지 듣기만 해도 베아트리스의 교육이라는 게 얼마나 끔찍한 과정을 내포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근래 베아트리스는 네로멜티아 자신에게 흐트러진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고, 그녀의 에고에 생성된 감정이 더욱 진화하면서 주변 인물들을 다소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까지 보여왔기에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본래 그녀의 무미건조한 성격은 때론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자비가 없었다.
규정을 어긴 자에게는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의 처벌을 가하는 공포의 상징이었고, 적들에게는 살상 병기라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존재였었다.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킬링 머신’ 이었을까.
“그러게… 좀 서라니까…….”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의 교육이 끝나면 다 죽어가는 채로 만나게 될 아티스를 기다리며 목욕이나 하기로 했다.
더는 이 비좁은 흙구덩이에 처박혀있고 싶지 않았던 네로멜티아는 흙투성이로 더러워지기도 했겠다, 이참에 러스테리아를 데리고 언더 바르커스의 온천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목욕과 함께 부수적으로 따라올 좋은 일을 떠올리게 되자, 네로멜티아는 조금도 기다리고 싶지 않아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즉시 지상으로 사라졌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암흑의 공간에 살상 기계와 단둘이 남겨진 한 고블린의 끔찍한 비명은 지옥의 바닥에서 유황불에 타오르는 죄인들의 비참한 울부짖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