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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75화 (75/216)

〈 75화 〉 비밀 결사 유토피아 (3)

* * *

유토피아가 만든 드넓은 지하 공간.

은밀한 회동의 장소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로브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서로에게조차 정체를 숨기는 철저한 기밀 유지가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네로멜티아 일행은 협소한 출입구를 따라 한 명씩 들어서면서, 발각되지 않도록 즉시 측면의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우리가 숨죽여 지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길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이야말로 나의 보물고를 모조리 털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렇소!!!”

“유토피아 만세!!!”

“오늘만을 기다려왔다!!!”

아티스의 연설에 저마다 격앙된 환호를 내지르는 조직원들.

이후 아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커다란 자루를 잔뜩 짊어진 고블린이 셋이나 연단으로 올라와 아티스의 옆에 자루를 내려놓았다.

보기만 해도 묵직해 보였던 자루에는 저마다 암호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고, 그것을 보며 묘한 웃음을 띠던 아티스는 ‘LSA’라고 적힌 자루를 열었다.

“오늘의 경매! 그 막을 올릴 영예의 작품은 바로!!”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아티스가 자루에서 꺼낸 것이 군중의 앞에 펼쳐지자, 러스테리아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LSA라는 암호는 다름 아닌 러스테리아의 이니셜이었다.

러스테리아 서비 아브노아(Lusteria servie Avenoah).

자루에서 꺼내진 것은 러스테리아의 그림이었다.

선명한 채색이 돋보이는 유화.

마치 실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

그림 속의 러스테리아는 의복이라고는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철저한 나신이었다.

단지 핑크빛 실크 원단으로 제작된 베개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아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고, 베개의 너머로 도톰하게 밀려 나온 젖가슴의 일부와 둥글고 매끄러운 곡선의 엉덩이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기에 몹시 음란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베개를 끌어안으며 생긴 압박으로 밀려 나온 젖가슴의 살은 보기만 해도 말랑하고 푹신한 감촉이 느껴질 정도였고, 세상 무엇보다도 보드라울 것 같은 피부의 질감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매혹적인 여체의 굴곡이 도드라진 엉덩이의 피부는 질감이 몹시 매끄러울 것 같았고, 탄탄한 엉덩이 살이 당장에라도 탱글탱글하게 흔들릴 듯 건강한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온통 핑크빛으로 도배된 침실에서 베개를 끌어안은 채 부끄러워하는 러스테리아의 모습.

침실의 은은한 빛을 반사하는 뽀얀 피부의 광택조차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의 한 올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함은 물론,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에 반사된 풍경마저 표현된 극히 사실적인 모습이었다.

거기다 그녀의 꼬리가 베개를 한 번 휘감은 모습은 그야말로 보호 본능을 자극할 정도였다.

잔뜩 수줍은 러스테리아의 귀여운 모습에 자신의 신체를 가려주는 유일한 물건인 베개를 의지하는 모습이 꼬리에서부터 표현되어, 한낱 물건 하나 따위에 의지할 정도로 여리고 연약한 소녀의 모습이 완성되었으니 남성들의 심장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조직원들은 그림이 자루에서 꺼내어지자마자 은밀 따위는 진작에 갖다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시작가는 양배추 스무 개!”

“스물다섯!”

“제, 젠장! 시작부터 무리하지 말라구, 친구! 다음 배급 때까지 굶을 셈이야!?”

“난 모른다! 러스테리아님 최고!!!”

낯이 온통 빨개져서 자신의 안면을 힘껏 가린 채 주저앉은 러스테리아.

네로멜티아는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나 있었고, 당장 아티스의 모가지를 비틀겠다는 기세로 기둥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아, 아직 본대에서 소식이 없습니다! 조,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폐하!”

베리베리는 마왕의 등장에 따라 놀란 조직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버릴까 염려되어, 우선 네로멜티아를 붙잡는 일에 주력했다.

도주를 위한 통로가 마련되어 있을 경우 포위진이 마련되지 않은 현재, 하수도 전체를 붕괴시키지 않고서야 놓치는 자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이 그렇게 꼬인다면 유토피아에 관한 수사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 네로멜티아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의 전원을 죽일 기세였는데, 감히 여성의 나체 그림을 공유한 죄는 무겁지만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네로멜티아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베리베리가 네로멜티아를 붙잡고 있던 사이 러스테리아의 부끄러운 그림은 양배추 서른다섯 개에 낙찰되었고, 다음 그림이 꺼내어지고 있었다.

이니셜 ‘BMD’.

베아트리스 더 매직 돌(Beatrice the Magic Doll).

“다음 작품은 그대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화제작! 차갑고 도도한 메이드의 은밀한 주방!”

“와아아아아아아!!! 은밀한 메이드 시리즈다!!!!!”

“이게 뜨다니!! 진정 현실인가!!!”

“크으으으!! 평소 메이드님이 보이는 차가운 모습과의 갭이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아티스가 제목을 이야기하며 자랑스럽게 내어놓은 것은 베아트리스의 그림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폭발적인 분위기가 장내를 휩쓸었고, 시작가가 설정되기도 전에 저마다의 가격을 외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였다.

심지어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는 그림인 듯, 조직원 사이에서의 유명세는 이루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베아트리스가 그녀의 앞치마 하나만을 두른 채, 나신이 되어있는 그림.

그녀가 평소 착용하던 앞치마는 가슴의 아래부터 하복부까지만 닿아 있는 극히 짧은 형태였고, 사실상 앞치마로서의 기능은 고사하고 무언가 가릴 만큼의 면적도 나오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었다.

말 그대로 네로멜티아의 취향에 의해 액세서리로서 존재할 뿐인 존재.

그림 속 베아트리스는 생크림을 신체 여기저기에 묻히고 있었다.

도톰하게 발기한 젖꼭지에 생크림을 발라 양손으로 자위하고 있는 음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출된 젖꼭지를 한 손으로는 꼬집어 잡아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빙글빙글 돌리며 문지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젖꼭지 자위를 내려다보며 낯을 붉힌 채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베아트리스의 음란한 표정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잔뜩 흥분한 그녀의 모습은 하반신에서도 묘사되었다.

그녀의 보일 듯 말 듯 드러난 음부에서 반짝이는 애액이 끈적하게 허벅지를 적시며 흘러나오고 있는 모습이 표현된 것이었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던 애액은 길게 늘어져 지면을 적시고 있었고, 애액이 흘러내려 흠뻑 젖은 허벅지는 방금까지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수분을 머금은 피부의 광택이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그림의 음란한 묘사는 배경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는데, 후방으로 언뜻 보이는 주방 밖 식당의 풍경에서 네로멜티아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주인이 식사를 하는 와중에 주방에 숨어서 은밀히 자위를 즐기는 음탕한 메이드의 모습인 셈이었다.

“당장 죽여도 될 것 같습니다.”

“조,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베아트리스님! 본대가 지금 포위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베리베리님이나 눈 깔고 가만히 계십시오. 저 그림에 조금이라도 시선이 가시면 베리베리님도 죽여버릴 겁니다.”

“크흑…!!”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과 상반되게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던 베아트리스는 자신을 말리는 베리베리에게 폭언을 쏟을 정도로 격분한 상태였다.

그녀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베리베리는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림의 모델이 살기를 품고 있던 가운데, 경매의 현장에서는 그녀의 그림이 당근 세 자루에 낙찰되었다.

식량 배급 사정으로 볼 때, 그림을 구매한 조직원은 이전부터 식사를 줄이고 당근을 모은 모양이었고 다음 배급까지 굶는 건 확정처럼 보였다.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인내로 굶주림과 싸우며 당근을 모았는지는 그의 퀭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베아트리스의 은밀한 메이드 시리즈를 구입했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조직원.

“흐… 흐흐… 이로써 컬렉션의 자리가 한 칸 더 채워졌다…….”

“또 저 녀석이냐고!”

“어이, 내버려 둬. 저 자식은 은밀한 메이드 시리즈 모으는 데 목숨을 건 놈이라구.”

“에잉, 쯧쯧. 저러다 굶어 죽지, 굶어 죽어.”

광기마저 느껴지는 구매자의 눈빛.

그는 연단의 앞에서 그림을 받아들자마자 그것을 깨끗한 천으로 감싼 뒤,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군중들 속으로 되돌아갔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그림에 뺨을 문지르며 끌어안는 구매자의 징그러운 모습에 소름이 끼쳐, 진심 어린 경멸의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이를 갈고 있던 자신의 주인을 달래어 오는 베아트리스.

“후후… 후… 저는 괜찮습니다……. 주인님, 고정하시죠.”

“베아트리스?”

“지금껏 시리즈로 제작되었다면… 제 그림은 이미 저들 전원이 몇 번이고 감상한 후일 테죠. 거기서 한 번쯤 더 늘어난다고 달라질 건 없습니다. 어차피 저들은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만큼 벌을 줄 테니… 어디까지 가나 느긋이 지켜보시죠.”

마치 서리가 맺히는 듯 차가운 베아트리스의 눈빛은 살을 에는 느낌의 살기가 진득하게 감돌고 있었다.

살벌한 메이드의 눈빛을 마주한 그녀의 주인은 메이드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양인지, 역시나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베리베리는 본대의 소식이 도착하지 않더라도, 그녀들을 가로막는 짓은 더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문득 연단을 바라본 베리베리는 불길한 이니셜을 발견하게 되었다.

‘NN’.

“근래, 우리 마왕성에 새로운 미녀가 등장했다! 그게 누구인가!!”

“넬라넬라!!!”

“우오오오오오!!! 기다렸다고!!!!!”

아티스는 NN이라 적힌 자루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그 상자를 열자, 내부에서 작은 타로 카드 세트가 꺼내어졌다.

평범한 타로 카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카드의 주인공이 넬라넬라라는 점이었다.

NN은 넬라넬라(Nellanella)의 이니셜이었다.

아티스는 카드를 한 장 한 장 펼쳐 보이며 구매자들을 향해 상품을 소개했다.

‘The Star’는 은하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밤하늘을 날고 있는 넬라넬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나신이었다.

‘Death’는 넬라넬라가 대낫을 들고 웃는 그림이었다.

물론 나신이었다.

‘The Empress’는 왕관을 착용한 채, 위엄이 넘치는 왕좌에 앉아 미소 짓는 넬라넬라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나신이었다.

‘Strength’는 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는 넬라넬라의 모습에 그녀의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구도의 그림이었다.

물론 나신이었다.

‘Judgement’는 참수용 대형 도끼를 들어 올린 채,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넬라넬라의 모습이었다.

물론 나신이었다.

한 장 한 장 자세하게 카드를 펼쳐 조직원들의 앞에 타로 카드를 소개하는 아티스.

그 작은 감상회에 환호를 지르던 군중의 모습은 전부 사라졌고, 가끔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뿐 적막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아티스가 펼치는 카드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거나 귀여운 넬라넬라의 모습만이 가득했고, 한 인물을 이처럼 다양한 시점으로 묘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될 정도였다.

물론 모두 나신이었다.

“… 저… 저는 괜찮습니다……. 여… 성이기 전에… 군인이니… 이까짓 수치 따위…….”

애써 태연한 척 이야기하는 넬라넬라.

그러나 그녀의 낯은 연녹색 피부의 너머로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만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신체는 거센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듯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숨이 멎을 정도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으나, 작전에 방해가 될까 싶어 어떻게든 여유로운 척 견뎌내는 모습.

그러나 그림의 모델 본인보다 더욱 인내심의 한계가 온 인물이 있었다.

“죽여버리겠다!!! 아티스 이노오오오오오옴!!!!!”

부우우우우우웅!!!

여태 다른 인물들에게는 조금만 참으라고 인내를 종용했던 베리베리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여동생의 나신이 담긴 작품에는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었다.

자신이 넬라넬라를 어떻게 키웠는지 과거의 추억들이 모두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고, 베리베리는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넬라넬라는 자신의 손녀뻘일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던 그에게는 소중한 딸이나 손녀와 다름이 없었고, 모든 사랑과 열성을 다하여 소중히 그녀를 키웠었다.

베리베리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분노를 담은 배틀 액스를 연단을 향해 집어 던졌고,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배틀 액스는 연단의 바위를 산산이 박살냈다.

콰아아아아앙!!! 쿠르르르르르…!!

“크읏…!! 베리베리 경!!”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이 철천지원수 놈아!!!!!”

오십 세의 노쇠한 고블린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민첩한 반응을 보이며 몸을 날린 아티스는 연단의 아래에 무사히 착지한 뒤, 당혹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베리베리를 바라보았다.

진노한 오크 로드의 분노는 삽시간에 군중을 공포로 물들였지만, 아티스는 그 무시무시한 베리베리에게 신경을 쏟을 틈이 없었다.

베리베리의 뒤로 세상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 마왕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는 그림 그리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이었나, 아티스?”

눈빛만으로 상대의 심장을 멎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압도적인 살기.

마왕은 입이 찢어질 듯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그녀의 안면에 도사린 감정은 유쾌 따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진노한 마왕의 등장에 유토피아의 조직원들은 저마다 혼비백산하여 도주를 시도했다.

“패럴라이즈(Paralyze).”

상대를 마비시키는 마법이 마왕의 손에서 시전되었고, 도주라는 헛된 꿈을 꾸었던 조직원들은 신체가 석상같이 굳은 채 지면에 처박혀 쓰러졌다.

이렇게 간단히 조직원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네로멜티아는 베리베리가 자신을 막아서기도 했고, 어차피 일이 벌어진 거 오크군의 임무 수행 능력도 지켜보기 위해 인내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베리베리의 분노로 발각되기도 했겠다, 즉각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보, 보고드립니다! 현재 ‘Point A’의 포위가 완료되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정찰대원의 보고를 통해, 오크군의 본대가 작전대로 현장을 포위했음이 알려졌다.

Point A는 유토피아의 거점을 뜻하는 임시 암호였고, 이들이 군사 임무 수행에 얼마나 전문적으로 숙련되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했다.

오크군의 작전 수행은 완벽했고, 이 짧은 시간 동안 복잡한 하수도의 포위 작전을 완료한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철저한 전략 훈련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오호호호호. 마왕님께서 부재하신 동안, 순진한 크로포드 경의 이목 정도는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너무 안일했던 모양입니다.”

마왕의 마비 마법이 공간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가운데, 여전히 자리에 서서 여유로운 대화마저 가능한 아티스.

아티스의 목걸이에 장착된 보석 하나가 깨져 있었고, 그 조각들이 지면에 흩어져 있었다.

“호오. 디스펠 매직(Dispel Magic)의 가호가 담긴 마도구였나.”

“그렇습니다! 과거 폐허를 전전하며 쓸만한 것을 탐색하다 얻은 보물 중 하나이지요! 이렇게 망가져 버려 슬픕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보던 아티스는 불현듯 몸을 날려, 부서진 연단의 잔해 너머로 사라졌다.

네로멜티아는 즉시 몸을 날려 연단의 잔해를 딛고 아티스의 행적을 쫓았다.

연단의 후방에 위치한 벽면에는 작은 통로가 존재해 있었고 아티스는 그곳으로 빠져나간 듯 보였다.

“칫.”

혀를 한 번 찬 네로멜티아는 신경질적으로 후방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일대를 휩쓸며 지나갔다.

“좋은 기회다! 녀석들의 마비를 풀어두었으니, 너희 오크군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보여주거라!!”

얼떨떨한 모습으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조직원들.

그들은 마비되었던 자신들의 신체가 자유를 되찾은 것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었다.

애써 사로잡은 자신들의 포승줄이나 다름없었던 마비 마법을 마왕이 손수 제거한 것에 대해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왕은 어영부영하는 조직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도망쳐라. 다 죽여버린다.”

강대한 루이나가 마왕의 신체에서 발산되었고, 눈에 보일 정도로 휘몰아치는 시커먼 마력의 폭풍에 겁을 집어먹은 조직원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주를 꾀하기 시작했다.

그저 하나의 드넓은 공간일 뿐이라 여겨졌던 유토피아의 거점은 벽면이나 지면 곳곳에 숨겨진 통로가 존재했고, 조직원들은 순식간에 저마다 고른 비밀 통로로 도주했다.

어차피 오크군의 임무 수행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기다렸던 시간이니만큼, 그들에게 활약할 기회를 제공한 네로멜티아.

그리고 네로멜티아는 다시금 등을 돌려 부서진 연단 너머의 벽에 자리한 비밀 통로를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통로고 지반이고 할 것 없이 다 부숴버리며 빠르게 전진하고 싶었으나, 네로멜티아는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았다.

그랬다간 마왕성을 지탱하는 지반이 무너져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었기에 귀찮더라도 자신이 직접 통로로 들어가 추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네로멜티아는 도주한 아티스를 사로잡기 위해 고블린의 비밀 통로로 진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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