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비밀 결사 유토피아 (1)
* * *
어떤 집단이든 붕괴의 주요 원인은 내부에 있는 법이다.
더욱이 천 년 전 헤모니겐트의 멸망 역시 내부의 배신자에 의해 벌어진 사태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헤모니겐트의 재건에 있어 가장 크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내부 상황의 철저한 관리라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네로멜티아는 그 일을 처리하고자 크로포드의 집무실로 향한 것이었다.
예전의 낡고 허술한 집무실은 사라졌고, 아직도 임시이긴 했으나 제대로 된 벽돌을 쌓아 지은 크로포드의 집무실.
그 모습에 헤모니겐트의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싶어, 네로멜티아는 잠시 안도감이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주군의 명에 따라 비밀 결사의 조직원 하나를 지정하여 면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재건 중인 헤모니겐트 내부의 비밀 결사에 대한 처분이었다.
비밀리에 결성된 아티스의 사조직 ‘유토피아’.
그들은 목적과 활동은커녕 그 존재조차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가 전무할 정도로 은밀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크로포드가 이 비밀 결사의 정보를 입수한 것만으로도 천운이 따른 성과라 할 정도였다.
물론 모든 기반이 철저하게 확립된 헤모니겐트였다면 이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진 비밀 결사가 제대로 결성될 수 있는 여지조차 없었겠지만, 현재의 헤모니겐트는 말 그대로 폐허에서부터 시작하는 초기의 단계에 지나지 않았기에 허술한 점이 많아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물론 가장 허술한 초기가 무너지기는 가장 쉬운 법이기도 했기에, 더 많은 주의를 요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에드먼드 윌슨. 삼십사 세의 젊은 나이의 데모니안으로, 언더 바르커스에서 양배추 경작을 담당했던 농부였습니다. 그 경험을 인정해 현 마왕성 재건 계획 중, 성 외부의 경작지 개간과 농작물 생산 임무를 부여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조사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우선 그 녀석을 잡아들여라.”
드디어 시작된 본격적인 수사에 크로포드의 눈빛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엇이든 주군의 뜻대로 철저히 수사하고자 각오를 다진 크로포드.
그러나 주군의 반응은 의외로 미적지근했다.
“체포한 뒤, 어떤 식으로 심문하는 게 좋겠습니까.”
“유토피아 때문에 잡았다고 말해준 뒤에, 내버려 뒀다가 세 시간쯤 지나서 풀어주거라.”
“… 주군…?”
“밖에 내보낼 때, 따라 나가서 큰 소리로 ‘유토피아에 대한 혐의가 풀린 게 아니다! 정보원을 풀어 늘 감시하고 있을 테니 각오해라!’라고 외쳐주고. 그것만 하면 될 거다.”
“그, 그건 그야말로… 유토피아의 조직원들에게 수사를 시작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해주는 것 아닙니까…?”
주군은 오히려 수사의 진행에 대해 몹시 대충 처리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대충할 거라면 차라리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해 주고 주군은 아예 신경을 끄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수사 계획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지시.
크로포드는 주군의 계획에 대한 의도를 일말의 실마리조차 알아낼 수 없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예상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혹독한 심문과 고문을 가할지라도 그들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그런 잔혹한 수단을 사용할 일도 아닌 것 같고.”
“… 그렇… 습니까…?”
“잡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체포했던 자가 의심을 받고 수사권 안에 포함되었다는 걸 알면, 주변의 친한 동료들이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즉각적으로 움직이겠지. 그들을 따라가면 유토피아의 본거지와 집회 현장을 포위하여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
“주, 주군…!!!”
“극히 믿을 수 있는 소수를 선별하여, 그 농부와 친했던 이들을 미행해라. 대부분 평범한 이들은 같은 색 끼리 어울리는 법이지. 분명 그 농부와 친했던 이들도 유토피아에 가담해 있을 확률이 높고, 그들이 집회에 이 소식을 전하러 떠나면 근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크로포드는 비로소 자신의 주군이 세운 탁월한 계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일부러 놓아준 뒤, 은신처를 찾아내어 전체를 다 잡아내겠다는 과감한 계략.
자신과는 발상의 규모 자체가 달랐고, 적의 기밀 유지 전략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비범한 계략이었다.
그리고 주군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함과 동시에, 주군의 진의를 깨닫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크로포드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경의를 담아 네로멜티아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그의 충성과 존경이 몹시 고마웠으나, 한 편으로는 부담스러움을 떨치기 힘들었다.
자신의 계획은 그렇게 탁월하거나 기상천외한 종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크로포드가 너무나 정직하고 고지식한 성격이기에 이런 식의 간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미처 생각이 닿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상적인 기사의 모습 그 자체가 현신(??)했다고까지 여겨질 만큼, 기사도에 충실하고 대의에 헌신하는 크로포드.
그로서는 정공법 외의 방법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선보이는 것이 주군이니, 그가 가진 강한 충성심과 맞물려 거의 경배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심계에 담고 계신 주군의 드높은 지혜는 그 어떤 존재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미련한 신하가 주군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시길!”
“아, 음… 어… 그, 그래……. 너도… 노력하면 충분히 잘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심려치 말 거라!”
네로멜티아는 이정도의 계획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오히려 위엄을 세우고 크로포드를 위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계책인데 네가 몰랐을 뿐이라는 것보다는, 크로포드가 생각하는 위대한 마왕의 모습을 유지하며 잘 달래주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모자라서라는 이유보다는 상대가 우월해서라는 이유가 마음이 편한 법이었기에 택한 모습이었다.
물론 다소 부담스럽고 얼떨떨한 감정을 지우기 힘들어 어설픈 연기가 튀어나왔지만, 경의가 가득한 크로포드의 눈에 주군의 허술함 따위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우선 준비할 것은 유토피아의 근거지를 포위할 인원 확보다. 단, 인원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세력인 오크로만 한정한다. 기존부터 이 마왕성에 함께하던 이들은 미안하지만, 설령 블랙 나이트라 할지라도 믿을 수 없다. 오크들은 집단 전투와 전략적 활동에 능하니 포위전 역시 실수 없이 해낼 테지. 베리베리 벡 베그리트 남작에게 작전을 은밀히 준비하라고 일러라.”
“네! 받들겠습니다, 주군!”
“그리고 아티스의 업무 일정을 전부 비워야 한다. 그래야 그가 당장 오늘 밤 집회를 계획할 수 있겠지. 이 계획은 시간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유토피아가 눈치챌 가능성이 높아지는 계획이니,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정직한 너는 아티스를 만나 거짓을 말하기에 허술함이 있을 테니, 이 지시는 베아트리스에게 내가 직접 전달하겠다.”
“크읏… 소신이 미천하여…!!”
“아니다.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자책하지 말 거라. 너는 아티스의 업무를 대신 맡아 전부 처리해야만 한다. 별거 아니라는 듯 신속하게. 아티스가 보기에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를 짊어지고 있던 네가 갑자기 자신의 일까지 떠맡아 주겠다고 나선다면 의심하지 않겠느냐. 별 거 아니니 동료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모습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이 목숨을 다하여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드디어 자신의 본격적인 역할이 배정되었다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크로포드.
네로멜티아는 그런 단순한 모습을 보이는 그가 문득 귀엽게 느껴졌다.
외모는 권속의 계약 탓에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왕인 자신보다 이백 년이나 더 오래 살아온 존재.
더군다나 그의 집무 능력은 네로멜티아가 마음 놓고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정도로 탁월했다.
오히려 지혜롭고 유능한 편에 속하는 인재이며 헤모니겐트의 소드 마스터라고 불릴 정도의 검 실력마저 갖췄고, 정의롭고 선한 성격에 외모마저 출중하니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인재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유능하면서도 대단한 존재가 네로멜티아의 계획을 듣기만 하면 영웅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열망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다.
평소의 크로포드가 보이는 우월한 모습과 상반된 순진한 면모가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티스는 명석하고 지혜로운 자이니 그의 의심을 사지 않게 잘 부탁한다.”
“모든 것은 주군의 뜻대로!”
중요한 역할을 임명받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되찾은 크로포드는 눈빛에 활기가 가득했다.
물론 다른 의도가 있었기에 유토피아의 수사 계획에서 그를 떨어뜨려 놓을 셈으로 지시한 업무였으나, 크로포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네로멜티아의 예측이 맞다면 유토피아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크로포드가 아티스를 죽이려 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네로멜티아는 굳이 자신의 진의를 크로포드에게 알려줄 마음이 없었다.
네로멜티아는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리면 될 뿐인 상황이 되었으니, 크로포드에게 작별의 손짓을 남기고 집무실을 나섰다.
이제는 공식적인 정무(??)를 처리하는 일뿐이었다.
우선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을 넬라넬라와 베아트리스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면서 바라본 마왕성 재건 공사현장.
현장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활기차게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힘이 따르지 않아 공사의 업무를 맡지 못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만의 업무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을 것이었다.
보기에 그저 흐뭇할 뿐인, 밝은 미래가 엿보이는 광경.
그러나 저들 안에도 유토피아에 가담하여 활동하고 있을 조직원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착잡해졌다.
“오호호호호! 마왕님께서 귀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봤는데, 제가 가까스로 늦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온 유쾌한 음성에 네로멜티아는 몸을 돌렸다.
빼어난 품위를 가진 고블린 킹, 아티스가 너스레를 떨며 네로멜티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보기에 사람 좋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아티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루이나의 여신께 경의를 바칩니다.”
“그래, 그간 무탈했는가?”
“늘그막에 무탈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저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면 무탈한 셈이지요! 오호호호!”
못 보던 사이 아티스의 의복이 상당히 고급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전에도 예를 갖춘 귀족적인 의복을 착용했었지만, 그것은 폐허를 뒤져 찾아낸 다 삭아 바스러져 가던 누더기를 모양새 있게 갖추었을 뿐이었다.
이후 언더 바르커스의 데모니안들이 제작한 새 의복을 착용해서 제대로 된 구색을 갖추었으나, 그 역시 소박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품위라는 것을 의도하여 착용했으나, 그것을 구성한 의복의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던 것.
그러나 현재 그의 의복은 고풍스럽다는 느낌이 확연할 정도였고, 언더 바르커스에서도 얻기 힘든 고급스러운 원단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물자가 모자란 현재의 헤모니겐트는 모든 생필품 보급을 배급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아티스가 이런 고급 의복을 얻어낼 수 있을 기회는 아예 없다 생각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보기에도 안색이 좋아 보이는구나.”
“오호호호! 모두가 저를 아끼고 사랑해 준 덕분이지요! 이럴 게 아니라, 저의 거처에 가셔서 차 한잔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미흡하나마 향이 좋은 차가 있습니다.”
“아니다. 지금은 업무가 밀려 있으니, 나중에 방문하도록 하지.”
가볍게 대화를 중단한 네로멜티아는 고개를 돌려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의 뒤로 아티스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올리고 있었으나, 네로멜티아는 아티스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하는 입장에서 상대와의 긴 대화는 좋지 않았기에, 다소 냉정하게 보이더라도 자리를 벗어난 것.
그렇기에 슬며시 고개를 든 아티스가 네로멜티아를 바라보는 모습 또한 볼 수 없었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늙은 고블린의 눈빛은 마왕의 뒷모습에 은밀히 닿아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