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마녀의 오두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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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 진행된 헤스티니아와의 대화에서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로 그녀는 드워프들의 행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도상으로 본다면 근방이긴 하지만 이동 시에는 다소의 거리가 존재하는 장소.
네로멜티아 역시 그 장소를 드워프들의 거주지로 가장 유력하게 꼽고 있었으나, 헤스티니아가 확실하게 그녀의 예측을 보증한 것으로 확증을 얻은 셈이었다.
천 년 전 그 이상의 오랜 세월부터 아스타리스 대륙 최대 규모의 광산지대라 꼽히던 광산.
광활한 데카스트라스 산맥 상부에 위치한 거대하고도 은밀한 지하 세계.
드워프들의 도시, 맥켄지 광산(Mackenzie Mine).
워낙에 광활한 데카스트라스 산맥인 데다, 맥켄지 광산 역시 광활하기는 이를 데 없어 하나의 국가 수도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거기다 소중한 광석과 금은보화를 캐낼 수 있는 광산은 드워프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자 삶의 터전이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광산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했고, 광산의 위치나 입구를 숨기는 습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광산으로 꼽히던 맥켄지 광산이었기에 드워프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종족 역시 드워프들의 인도가 없다면 입구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숨겨져 있었으며,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모든 기술을 집약해 숨긴 그 장소는 압도적 마도 기술력을 지닌 휴미안이나 강대한 권능을 지닌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근거에 의해 세워진 네로멜티아의 예측은 확실히 현장을 살피고 있었던 헤스티니아의 보증에 의해 확실시되었다.
두 번째는 현재 테라리스에 만연해 있는 오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제시한 몇 가지의 방법은 효과만 입증된다면 상당히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네로멜티아의 정화 계획과 함께 맞물린다면 상당히 빠른 진척을 보일 수 있을 것이었다.
이에 관련된 이야기로는 그녀가 지닌 생물학과 환경학, 화학, 마도 공학 등의 각종 분야의 조예가 깊은 지식이 총동원되었고, 그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해진 덕에 계획 설계에 상당한 진척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우선 오염 제거에 도움이 되는 키메라를 제작하겠다는 결론을 지었고, 네로멜티아는 그 계획을 제일의 목표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세 번째는 곧 재건될 마왕성과 그 외부의 거주지에 대한 안정적 보호였다.
헤스티니아의 특기인 차원 조작을 이용한 결계를 구성한다면 설사 적습이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전투 없이 상대를 속여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었다.
네로멜티아 역시 차원을 다루는 힘에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헤스티니아만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헤스티니아가 그녀의 능력으로 부딪쳐온다면 얼마든지 파훼할 자신이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네로멜티아가 가진 힘으로 찍어 누르는 일일 뿐이었고, 헤스티니아가 작정하고 차원 너머에 숨으려 든다면 네로멜티아 역시 그녀를 찾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애초에 헤스티니아 정도로 자유롭게 차원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은 설령 12신이라 할지라도 넘볼 수 없을 정도였고, 이미 하나의 절대적인 권능이라 인정해야 할 수준이었다.
네로멜티아가 오두막에서 차원 너머로 도망친 그녀를 찾아내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헤스티니아가 도망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추적이 가능했던 것뿐이었다.
이 정도로 차원 조작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그녀였기에,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헤모니겐트의 영지는 더욱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추가 인력이 없어도 여러모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포션 제조라던가, 마법 기술 지원이라던가, 각종 분야의 연구자 육성 등의 다양한 계획이 논의되었다.
네로멜티아는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는 헤스티니아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고, 헤스티니아는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지. 예나 지금이나 내게 도움이 되어줘서 고맙다.”
“정말 별거 아니라니까요. 호호호. 정 그렇게 감사하시다면… 포상으로 마왕님과의 찐한 하룻밤을 부탁드려도?”
“그건 기각.”
“에에에! 다른 분들이랑은 매번 같이하실 거면서 치사해요!”
네로멜티아는 헤스티니아가 언동만 조심한다면 정말 완벽할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언제나 그녀는 말이 한마디가 더 많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행동을 하곤 했다.
그녀의 말에 기겁하며 주변을 둘러본 네로멜티아는 넬라넬라가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베아트리스와 부엌에 가 있던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미 서로 깊은 관계까지 맺은 러스테리아나 베아트리스는 상관없었으나, 넬라넬라에게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해주세요! 불공평해요!”
“조, 조용히 해! 다 들리겠어!”
“들을 테면 들으라죠! 아!! 나도!! 마왕님 젖가슴에 코 박고 싶…!!”
난처해하는 네로멜티아의 반응에 영악하게 반응한 헤스티니아는 더 부끄러워 보라는 듯 네로멜티아의 제지에도 오히려 음담패설을 더욱 소리높여 외치려 들었다.
총명하고 머리가 잘 굴러가는 그녀였기에 네로멜티아의 약점을 즉각 간파하여 반쯤 협박에 들어간 것이었다.
단지 명석한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마왕에게 있어서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다는 진리였다.
“흐갸아아아아아악!!!!!”
“응? 무슨 소리였죠?”
거실에서 들린 괴상한 비명에 스튜의 간을 보던 넬라넬라가 의문을 가지고 거실로 나가려 했다.
그에 당근을 썰던 베아트리스는 살포시 넬라넬라의 어깨를 짚어 그녀를 제지했고, 조용히 고개를 저어 관심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를 표했다.
넬라넬라는 거실에서 들려온 해괴한 소리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으나, 베아트리스가 아니라면 아닐 것이니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단지 오두막의 밖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토끼의 훈제구이를 만들고 있던 러스테리아가 재미있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혼잣말 한마디를 흘릴 뿐이었다.
“오늘 헤스티니아님 머리에 구멍 나시겠네. 히힛.”
넬라넬라와 베아트리스가 부엌에서 완성된 저녁 식사를 들고 나왔다.
각종 채소의 싱그러운 향기가 일품인 스튜와 따끈하고 고소한 냄새가 일품인 밀빵, 그리고 육즙이 줄줄 흐르는 소시지가 준비되었다.
그 시각에 잘 맞춰 오두막의 밖에서는 러스테리아가 장작의 향기가 식욕을 돋우는 토끼 훈제구이를 들고 들어왔다.
모든 식재료는 헤스티니아의 식량 저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었고, 혼자 사는 입장에서도 식사에 대해 철두철미한 그녀의 확고한 취향이 느껴지는 식탁이 아닐 수 없었다.
거실의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세팅되는 동안, 넬라넬라는 헤스티니아의 새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보고 조금 전 들렸던 괴상망측한 비명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분명 헤스티니아는 또 능글맞은 허튼짓을 하다가 마왕님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넬라넬라의 추측은 정확하게 정답이었다.
“웅? 왜 그러시죠오?”
“아, 아닙니다. 좀 아파 보이셔서… 괜찮으신가 하고…….”
“아항! 멋진 넬라넬라님은 자상하기도 하셔라! 아웅, 헤스티니아는 넬라넬라님이 호 해주면 나을 것 같은걸요?”
“으읏…!!”
괜히 걱정해 줬다가 헤스티니아의 부담스러운 구애(??)를 자처한 넬라넬라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마녀에게 큰 실수를 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넬라넬라는 반사적으로 강하게 몸서리를 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짓궂게 넬라넬라를 놀린 헤스티니아는 그녀의 풋풋한 모습에서 귀여움을 느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피부를 타고 흐르는 마왕의 살기에 급히 태도를 고쳐야만 했다.
마치 정숙한 귀부인과 같은 기품있는 모습으로 변화한 헤스티니아는 자신의 이마에 가벼운 손짓을 했다.
“힐링(Healing). 자, 간단하죠? 타인을 가여이 여기시는 그 고귀한 성품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보시는 바와 같이 보잘것없는 일일 뿐이니 괘념치 마시지요.”
태도의 변화가 극과 극을 달리며, 모습이 순식간에 변모하는 헤스티니아는 익숙지 않은 넬라넬라에게 있어서 대처하기가 몹시 난해한 인물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성격을 다시금 되새기며, 앞으로 그녀와 함께할 앞날이 조금은 걱정되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는 넬라넬라의 걱정과는 다르게 비교적 평화로이 진행되었다.
도중에 헤스티니아가 소시지를 쪽쪽 빨며 입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하응, 너무 뜨거워요.’ 같은 말을 하긴 했으나, 네로멜티아가 조용히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사건은 간단히 해결되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간단한 와인을 즐기며 담소를 나눴고,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야심한 밤까지 지속되었다.
소시지가 맛있다고 끝없이 먹어댔던 러스테리아는 포만감에 의해 금방 졸렸는지, 2층에 마련된 침실로 일찍 자러 들어갔다.
넬라넬라 역시 수면 시간을 지키는 일은 신체를 단련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습관이라며 러스테리아와 함께 자러 갔다.
몰려오는 졸음에 정신이 몽롱해서 비틀거리던 러스테리아를 넬라넬라가 친절하게 부축해서 2층으로 올라갔고, 이토록 자상하고 배려가 깊은 넬라넬라가 있으니 러스테리아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어 보였다.
벽난로의 따스한 장작불이 은은한 빛을 내어 정취가 가득한 거실.
때로는 화목하고 때로는 옥신각신하는 네로멜티아와 헤스티니아의 대화가 끊임없이 오가던 중이었다.
베아트리스는 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넬라넬라가 느낀 바는 베아트리스 역시 확신할 정도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헤스티니아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속내를 알기 힘든 자였다.
그럼에도 때로는 친절하고 때로는 유쾌하며 때로는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베아트리스는 그 모든 모습들이 그저 흉내에 불과한 것도 알고 있었다.
몹시 음습하고 음흉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냉혈한 그녀가 유일하게 네로멜티아에게만은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베아트리스는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으며, 그 세월을 모두 네로멜티아의 곁에서 지내왔기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제작되기 전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던 네로멜티아와 헤스티니아.
적어도 자신이 바라본 모든 순간에서 헤스티니아는 늘 네로멜티아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타인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는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주인에게만은 진심이 담긴 애정을 마음에 담고 있었으니, 도저히 알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반면 이러한 자에게조차 애정을 받아낼 수 있는 자신의 주인이 몹시 대단하다고 느껴져, 마음 한편이 주인에 대한 경애로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헤스티니아가 베아트리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괴로워하든 그녀는 모르는 척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적어도 주인에게 얻어맞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귀찮은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헤스티니아는 자신을 배려했다.
다소 과격하고 급작스럽기는 했으나, 자신이 주인과 단둘이 있을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공간으로 그녀를 이끌었고, 그 덕에 주인과 진심을 나눴고 소중한 은총도 받을 수 있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악의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그녀의 행동.
베아트리스는 앞으로 조금 더 자세히 그녀를 지켜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멧돼지가 글쎄 매일 사과를 물고 오는 거 있죠? 호호호호!”
“헤스티니아.”
대화에 불현듯 끼어들어 헤스티니아를 부르는 베아트리스.
화목한 담소에 열중하고 있었던 두 사람은 베아트리스를 바라보았다.
베아트리스는 그녀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단지 짧은 한마디의 감사 인사였을 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은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헤스티니아는 그녀답지 않은 천진한 웃음을 활짝 지어 답을 대신했다.
베아트리스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
무미건조한 인형의 안면에서 언뜻,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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