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차원의 틈, 공허의 세계. (1)
* * *
부엌에서 간단한 쿠키를 구워 나온 헤스티니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손님의 사이에 섰다.
여유가 넘칠 정도인 그녀는 콧노래마저 나긋한 느낌이 가득했고, 그것을 듣고 있자면 마치 자장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단단하다 싶을 정도로 굳은 라즈베리 잼과 살구 잼이 쿠키의 위에 둥글게 얹어져 보석같이 아기자기하게 빛나고 있었고, 쿠키의 위로 양껏 뿌려진 슈거 파우더가 소복이 쌓인 눈과 같아 예쁘기까지 했다.
본래 러스테리아는 달콤한 과자라면 홀딱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서 내온 것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모양이었다.
“정말 맛있다구요, 비서관님. 구하기 힘든 슈거 파우더도 잔뜩 얹었답니다?”
“으우우…….”
마치 침입자를 경계하는 어린 고양이처럼 헤스티니아를 노려보기 바쁜 러스테리아.
그녀로서는 자신의 불만을 어필하면서 헤스티니아의 행동을 질책하려는 생각이었으나, 전혀 무섭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귀여울 뿐이었기에 문제였다.
“아아, 귀여우셔라. 볼 한 번 꼬집어봐도 돼요?”
“키이이이이익!!!”
마치 앙칼진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듯 의미 모를 격렬한 소리를 내며 인상을 쓰는 러스테리아.
그녀의 반응은 오히려 헤스티니아의 호감을 더욱 부추겼고, 헤스티니아는 두 손을 모은 채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귀여워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쿠키 하나를 집어 들어 러스테리아의 입가에 갖다 대는 헤스티니아.
“자자, 맛있다구요? 달콤하다구요?”
“음므으으으으…”
선홍빛 보드라운 입술에 문질러지는 갓 구운 쿠키의 촉촉하면서도 바삭한 감촉.
피어오르는 설탕과 잼의 달콤한 향기.
딱 기분 좋을 정도의 따스한 열기.
입을 꾹 다물고 먹지 않겠다고 버티던 러스테리아가 그 쿠키를 한 입 베어 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와작!
“하우으으으으…!”
결국 달콤한 설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쿠키를 힘껏 베어 문 러스테리아는 입안에 가득 퍼지는 감미에 매료되어 두 눈을 크게 뜨고 쿠키를 받아들었다.
결국 헤스티니아가 내온 쿠키를 먹기 시작했지만, 두 눈은 여전히 헤스티니아를 노려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쿠키의 달콤함에 황홀한 눈빛을 했다가, 의식적으로 헤스티니아에게 앙칼진 눈빛을 보내는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는 러스테리아.
헤스티니아는 그녀를 마냥 귀엽게 여기며 흐뭇한 미소를 띠고 바라볼 뿐이었다.
“흠흠. 그래서 두 분은 지금 어디에 가 계시는 겁니까?”
조용히 차를 마시며 사태를 관망하던 넬라넬라는 나직이 헛기침을 하고 헤스티니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차분한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녀였지만, 은근한 불안감이 감도는 시선에서 주군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엿보이고 있었다.
넬라넬라가 한 질문에 러스테리아도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쿠키를 입에 한가득 넣어 양 볼을 부풀리고 있으면서도 헤스티니아에 대한 질책의 시선을 쏘아내고 있었다.
헤스티니아는 어디에선가 손수건을 하나 꺼냈고, 러스테리아의 입가에 가득 묻은 쿠키 조각들을 닦아주며 말했다.
“어련히 때가 되면 나오시겠죠. 저 같은 게 마왕님을 한순간이라도 가둬둘 수 있을 것 같나요?”
모든 것이 어둠뿐인 공간.
공허로 이루어진 그곳은 하늘이나 대지조차 존재하지 않으며, 좌표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상(無?) 그 자체였다.
공간이라는 개념만이 유일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고, 규모에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었다.
고작 한 뼘이라고 정의한다면 한 뼘이고, 무한하다고 정의한다면 무한한 공간.
그 어떤 물질적 개념조차 범접할 수 없는 초현실의 공간이 의지 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 여, 여긴…….”
베아트리스는 갑작스럽게 변화한 주변 환경에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력조차 존재하지 않아 둥실둥실 떠다닐 뿐인 공간.
그녀의 옆에는 거꾸로 선 채 떠다니는 네로멜티아가 있었다.
사실 베아트리스가 거꾸로인지 네로멜티아가 거꾸로인지 따지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기준이 없는 공간이었다.
일말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해 동요의 감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던 베아트리스에게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공간. 차원의 틈에 존재하는 실현된 허구의 공간이야. 아이러니하지?”
“실현된… 허구…?”
“이 공간을 뭐라고 하더라…….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라고 했었지 아마?”
어떤 식의 이야기인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
상충하는 두 가지의 개념이 공존하는 이야기였고, 인지를 상당히 벗어난 개념이었기에 섣불리 다가설 수도 없는 영역의 이야기였다.
“헤스티니아와 얽혀있는 것치고 제대로 된 게 있겠어? 그냥 그렇게만 알아 둬. 딱히 이해할 필요도 없지만, 정 알고 싶으면 나중에 알려줄게. 우선 여기서 나가자.”
그리고 네로멜티아는 허공을 향해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베아트리스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주인이 조금 전 보여주었던 권능을 다시 한번 보여주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차원의 벽을 찢어 부수고 헤스티니아가 숨은 차원을 강제로 열어버린, 인지를 벗어난 권능.
베아트리스는 차원을 찢으려던 네로멜티아의 손을 힘껏 붙잡았다.
“베아트리스?”
“…했어요…….”
어렴풋이 들릴 정도의 희미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베아트리스.
네로멜티아는 그녀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명확한 답을 원했기에 침묵을 지켰다.
“… 제가… 잘못했어요… 주인님…….”
완고한 성격을 지닌 베아트리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여린 말.
그녀는 이 공간에서 나가기를 원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당장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끝을 맺고 나가길 원했다.
사실 베아트리스는 딱히 고집을 부린 것이 아니었고, 진작에 용서를 구하고 싶어 했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을 하던 주인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었고, 주인이 틀렸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었다.
딱히 주인이 내린 벌이 고통스러워 굴복한 것도 아니었고, 그녀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내린 벌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지난밤의 시간에는 주인이 어느 정도 방치를 원했기에 기다린 것이었고, 하루가 시작되고 나서는 다른 이들의 이목이 있어 입에 담지 못했던 말.
헤스티니아가 만든 현재의 상황은 베아트리스에게 더없는 기회였기에, 그녀는 공간을 빠져나가려는 주인을 애써 붙잡았던 것이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주인과 단 둘뿐인 공간은 그녀가 기다렸던 밤의 은밀한 시간보다 더욱 완벽했다.
그리고 네로멜티아 또한 베아트리스의 생각을 다 알고 있었다.
“한마디의 말에도 의심 없이 따라줄 너인데, 괜히 짓궂게 대해서 미안해. 단지 내가 너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너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소중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 주인님께서는… 잘못하신 게 없으십니다……. … 주인님의 종으로서… 실격인 제가… 러스테리아님에게… 모질게 굴어서… 벌을… 받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곁에 선 이들에게는 더없이 자애로운 주인.
그렇기에 신들에 필적하는 권능을 가지고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
자신만을 생각했다면 결코 피를 흘릴 일이 없었을 테지만,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선택한 주인.
다시는 그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주인의 곁을 보필하는 신하들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주인의 의지를 저버리게 되더라도, 필요할 때는 자신의 손을 더럽혀서라도 주인을 지키고자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하찮은 질투심을 가져서 주인에게 토라졌었다는 러스테리아를 보았을 때는,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적잖이 화가 났었다.
오롯이 주인만을 섬기며 모든 것을 바쳐도 여력이 모자랄 텐데, 그런 하잘것없는 마음을 먹고 불경한 행동을 했다니.
그래서 주인이 내려준 권한으로 그녀를 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인은 벌이라며 그녀에게 두 가지의 문양을 내린 뒤, 자신에게 맡겼었다.
더없이 자애로웠던 주인은 그녀가 힘들어하면 문양과 속박을 해제해 주라는 명을 내렸으나, 자신은 그에 따르지 않았다.
성감이 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중에도 절정에 이를 수 없는 애달픈 고통을 느끼던 러스테리아를 바라보며, 문득 자기 자신을 투영하게 되었다.
자신 또한 러스테리아를 바라보며 질투를 느끼지 않았던가.
더없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그녀의 모습을 동경했고, 주인의 귀여움을 받는 그녀의 모습에 질투를 느꼈었다.
자신 또한 불경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화가 나 그녀를 더욱 모질게 대해버렸다.
결국 자신의 주인이 연회의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까지 그녀의 속박을 풀어주지 않았다.
주인에게는 신하된 도리를 입에 담으며 변명을 했지만, 사실은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인이 자신에게 벌을 내렸을 때, 그것을 달갑게 받고 견디고자 했다.
자신도 마찬가지면서 다른 이에게 화풀이나 한 형편없는 종으로서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는 사치스럽고 애정이 느껴지는 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벌을 받으며 속죄하는 일은 자신이 바랄지라도, 주인이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용서를 빌어야 했다.
또한 그렇지 않더라도 용서를 빌어야 했다.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할 마도 인형 따위가 질투를 느껴 명을 저버리다니, 이처럼 우습고 수치스러운 일은 없었다.
그러나 벌이 무서워 자신의 뜻을 굽히고 용서를 비는 모습은 더더욱 없어야 할 일이었다.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진실한 용서를 구해야만 주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종이 될 수 있었다.
잘못된 자신을 모두 바로 잡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용서를 구할 순간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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