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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66화 (66/216)

〈 66화 〉 헤스티니아 위즈위치 (1)

* * *

난데없이 들려온 음성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울창한 숲의 모습뿐이었다.

일행의 모두가 음성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내비치며 미간을 좁힌 채, 자신의 안면을 감싼 네로멜티아.

긴장감에 움츠러들어 네로멜티아의 등 뒤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너머로 고개만 조금 내민 채 숨어버리는 러스테리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를 일뿐이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고개를 돌리는 넬라넬라.

약간의 적대심을 가진 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소매의 매듭을 풀어 전투태세에 들어서는 베아트리스.

그 상황에서 일행이 저마다 당황하거나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었다.

“여전하구나. 만나자마자 장난부터 걸어오고?”

네로멜티아는 전방을 향해 든 오른손에 힘을 가했고, 허공의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손가락을 전부 구부렸다.

그녀의 오른손은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은 무언가에 걸려서 다 구부러지지 않는 듯 정지했다.

까드드드드드득

전방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삐걱대는 듯 요란한 소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들려온 불명의 음성과 같이 현재의 위태로운 소리도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으나, 전방의 공간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한 까닭에 무상(無?)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마치 잔혹한 여름의 열기가 만드는 아지랑이로 세상을 그린 것 같은 비현실적인 광경.

꽈드드득!!!

네로멜티아의 손가락들이 조금 더 구부러지자 무언가 깨지는 듯, 요란한 굉음이 나며 전방의 광경에 다섯 개의 구멍이 발생했다.

마치 유리창에 구멍이 난 듯 날카롭게 깨져서 생성된 다섯 개의 구멍은, 누군가 손가락을 박아넣어 생겨난 모양 그 자체였다.

허공에 생성된 그 구멍들 너머로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암흑만이 존재했다.

아무리 마법적 지식이 부족한 넬라넬라라 해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차원의 틈이었다.

꽈차아아아앙!!! 쩌저정…!!!

네로멜티아가 허공을 향해 든 오른손을 측면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마치 무언가를 잡아 뜯거나 찢어발기는 듯 거친 모습이었고, 그에 따라 강대한 마력으로부터 생성된 맹렬한 돌풍이 밀려와 보는 이들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전방에서는 거대한 유리 따위가 박살나 무너지는 듯, 요란한 굉음이 주변을 진동시켰다.

태고의 숲이 가진 울창한 삼림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던 전방의 광경 그 모든 것 자체가, 흡사 유리 조각의 모습이 연상되는 형태로 조각나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무너진 배경의 너머에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비현실.

그야말로 초현실.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공허.

허구로 구성된 심연의 가운데 한 여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역시 마왕님이셔. 이래 봬도 꽤 전력이었는데, 겨우 손짓 한 번에 망가뜨리시네요.”

“네가 항상 이러니까 너를 마냥 좋아할 수가 없어. 오랜만에 인사 정도는 좀 평범하게 할 수 없는 거야?”

네로멜티아가 공간을 부수고 만든 차원의 틈을 통해 유유히 걸어 나오는 의문의 여성.

오로지 암흑뿐인 무상의 공간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빠져나온 여성은 자신의 손에 들린 부채를 살짝 흔들었고, 처참하게 깨져 생긴 차원의 틈은 거짓말같이 간단하게 메워져 본래 현실의 모습만이 남게 되었다.

울창한 태고의 숲만이 배경으로 남았고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차원의 균열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오랜만이에요. 우리 천년만인가요? 다시 보니 정말 좋네요.”

“그래, 만나서 반가워. 보아하니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네, 헤스티니아.”

“후후후. 나 보고 싶었어요?”

“조금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지금은 모르겠는걸.”

“어머, 너무하셔라. 저는 마왕님이 보고 싶어서 기다리는 동안 선물도 많이 준비했는데.”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인 여성.

지체 높은 휴미안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나긋한 태도는 우아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자이언트 레이븐의 갈색 줄무늬 깃털이 장식된 검은 원단의 프로파일 해트(Profile Hat).

그 고풍스러운 모자와 같은 원단으로 구성된 검은빛의 오픈 숄더 드레스가 그녀의 농익은 여체를 더욱 드러내고 있었고, 풍성한 스커트와 그것에 부착된 고급스러운 프릴은 숙녀로서의 품격을 더욱 드높이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실크 원단으로 제작된 검은 이브닝 글러브는 사소한 부분조차 놓치지 않는 기품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을 착용한 손은 가벼운 손짓 한번에서조차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빛의 부채 또한 새끼 설산 백조의 솜털 같은 값비싼 소재로 장식되었기에 어딘가의 대귀족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고상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었다.

“어머, 이 아가씨는 못 보던 분이시네?”

다소 머뭇거리고 있던 넬라넬라에게 다가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는 여성.

연보랏빛 색상에 웨이브가 인상적인 그녀의 긴 머리 사이로, 찬연한 페리도트(Peridot)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녹안(??)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넬라넬라는 미적 가치에 관한 감상보다는 음습함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

아름다운 보석을 담은 것 같은 그녀의 눈 아래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이 어둡다는 느낌을 넘어 퇴폐적이라 할 정도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나긋한 미소를 띤 안면과 대비되게, 그녀의 눈은 감정 같은 인간적인 감상을 엿볼 수 없을 정도로 생기가 없었다.

말 그대로 찬연한 보석과 같이 아름다웠으나, 살아있는 존재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하나의 사물.

“어머, 이 복근 좀 봐! 아응! 한번 안겨보고 싶어라!”

허리를 숙이고서 넬라넬라의 복근을 감상하기 시작한 여성.

몹시 실례되는 행동이니 넬라넬라가 화를 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으나, 넬라넬라는 제지의 말 한마디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녀의 오픈 숄더 드레스의 깊게 파인 네크라인 위로 드러난 젖가슴을 보게 된 것이었다.

상당히 깊게 파인 네크라인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의 가슴은 결코 그 너머로 흘러넘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컸다.

거대하다는 말은 여성의 젖가슴에 사용될 표현이 전혀 아니었으나, 그녀에게만큼은 이 보편적인 상식을 깰 정도의 규모가 있었다.

넬라넬라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 봐왔던 커다란 가슴을 지닌 여성들을 모두 떠올렸다.

그 무수한 여성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

그녀들의 가슴은 신장이 이백 멘톨을 넘기는 큰 체격을 지닌 자신이 붙잡아도, 한 손으로 다 감싸지 못할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체격이 상당한 오크 중에서도 그 정도 크기의 젖가슴은 평생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자신의 복근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성의 가슴은 그녀들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팔십오 년의 일생을 살면서 쌓은 상식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충격.

“무례하게 굴지 마.”

“에에, 마왕님 너무하시네. 저 좋은 거 혼자 독점하시려구요?”

“독점은 무슨 독점!! 너 같은 짓 한 번도 한 적 없어!!”

“에에! 정말요!!? 말도 안 돼!!”

네로멜티아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고 넬라넬라를 지키기 시작하자, 여성은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면서도 네로멜티아가 가릴 때까지 넬라넬라의 복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여성은 아쉽다는 듯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았고, 넬라넬라는 그 모습이 심장이 얼어붙는 듯 소름 끼쳤다.

“우리 마왕님이 아직까지 안 건드렸을 리가 없는데… 천 년 동안 명계에 계시면서 사신(死?)한테 거짓말만 배워 오셨어요?”

“무슨 말이야!! 너 자꾸 나 곤란하게 할래!?”

초면에 대뜸 남의 신체 뜯어보며 품평하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이나 던지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그녀의 모습에 넬라넬라는 몹시 기겁하여 얼어붙어 버렸고, 러스테리아는 그 느낌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넬라넬라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마왕군 신입이 여자다 싶으면 개인 면담 일정부터 잡으시던 레이디 킬러 어디 가시고…”

콰악!

“너… 거기서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이 무식하게 큰 살덩이 쥐어뜯어 버릴 거야.”

“하으응! 마왕님 너무 거칠어!”

상당히 화가 난 네로멜티아는 평소 보이지 않던 과격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고, 잠시라도 이 무례한 여성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기세였다.

네로멜티아는 여성의 그 거대한 젖가슴 중간 부분을 강하게 움켜쥐었고, 네로멜티아의 악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여성의 그 거대한 유방은 호리병의 모습으로 형태가 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과격한 협박에도 오히려 저속한 교성을 지르며, 하나의 성교로 받아들이는 태연한 모습을 보일 뿐인 여성.

그에 따라 네로멜티아의 눈빛에는 살기가 감돌았고, 너무 화가 치밀면 웃음이 난다는 말을 몸소 실현하듯 살기등등한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뒤, 주변은 불쾌한 적막이 가득 드리웠다.

상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태연하게 반응하던 여성은 불현듯 모든 기색을 안면에서 지웠다.

“천 년이 지났어도 여전하시네요. 착하고 여린 네로 아가씨.”

“그런 애칭으로 부르지 마.”

“아무리 무섭게 대하셔도 결국은 진심이 아니신 거네요. 어떻게 해야 아가씨가 진심을 내실 수 있을까.”

네로멜티아는 손을 풀고 조용히 물러났다.

무겁게 내려앉은 기세는 소리 없는 폭풍과 같았다.

태연한 일상의 모습을 하고서 물러나는 네로멜티아의 내면에 온갖 감정이 격류를 일으키며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 하나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선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여성은 네로멜티아로 인해 구겨진 자신의 상의를 바르게 고친 뒤, 일행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자신의 스커트 양쪽을 잡아 들며 고개를 숙이는 전형적인 귀족의 예법.

우아한 숙녀의 인사와 함께 여성은 뒤늦은 자기소개를 건네왔다.

“제 이름은 헤스티니아 위즈위치(Hestinia Wiswitch). 과거 헤모니겐트에서 ‘영생의 마녀’라 불렸던 자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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