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태고의 숲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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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마법을 처음 경험해 본 넬라넬라가 네로멜티아의 품 안에서 비행의 감각에 익숙해져 갈 무렵, 일행은 태고의 숲 근방에 다다랐고 서서히 지면으로 안착했다.
어떤 지역을 가던 오염물질을 가득 머금은 시커먼 대지만이 존재했었던 여정이 무색하게, 카보니 숲과 태고의 숲 사이에 존재하는 황야는 드문드문 생명이 살아있었고 토양 또한 쓸만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반면에 이런 이름 없는 황야조차 드문드문 잡초나 덩굴식물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는 상황에, 오히려 태고의 숲은 살아있는 존재를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작은 잡초나 버섯은커녕 한 줌의 이끼조차 찾을 수 없었고,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바스러지고 있을 정도로 오래전에 죽은 고목이 여럿 모여 숲의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인 죽음의 땅이었다.
“이건 뭐… 오히려 우리가 지나온 황야 쪽이 더 생기가 있겠는걸?”
“엘프들이 태고의 숲을 버리고 떠나던 시점에서는 이미 상당한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다 배웠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모든 것이 메말라 황폐해졌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네로멜티아의 품에 안겨 비행하는 동안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던 넬라넬라는 그 귀여운 모습이 사라지고 기강이 완벽하게 잡힌 강직한 군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다소 아쉬웠던 네로멜티아는 편하게 있어도 된다는 식으로 넬라넬라를 잘 구슬려 볼까 싶었으나, 당장 눈앞에 무시할 수 없을 큰 문제가 발견되어 후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거 결계네요?”
“낯익은 패턴인데… 설마 아니겠지…….”
“윽…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그 아줌마라면 좀비 건도 이해가 가는데… 이런 꼬인 결계까지 보여주면 거의 사실이잖아…….”
러스테리아와 네로멜티아는 이 상황에 대해 연상되는 인물이 있는 듯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동일한 인물을 떠올린 데다 거의 확신의 단계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 그녀들이 떠올리고 있는 인물이 이 모든 광경에 얽혀있다는 건 확정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사실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가 확인했다는 대규모 좀비 무리를 먼저 살펴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심지어는 태고의 숲으로 향하는 길을 조금만 꺾어서 진행했어도, 좀비 무리를 살펴보고 태고의 숲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좀비 무리를 무시한 채 태고의 숲으로 일직선 비행을 진행한 이유는 명백하게 따로 있었던 것이다.
자칫 카보니 숲의 위협이 될 수도 있을 좀비들을 먼저 확인하는 일이 시급할 수도 있겠지만, 태고의 숲이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뚝 떨어졌는지도 모를 대규모 좀비 무리가 카보니 숲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으면서 그 주변을 에워싼 채 떠나지도 않는다.
그 행동 패턴부터 수상하기 짝이 없는데, 그것들이 태고의 숲까지 에워싸고 있다는 대목에서 확신이 생긴 것이었다.
좀비들은 카보니 숲과 태고의 숲을 지키고 있으며, 좀비 무리의 발생 원인은 태고의 숲에 있을 것이라고.
그런 신빙성 높은 추측을 가지고 태고의 숲까지 바로 날아온 것인데 이제는 거의 확신의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고, 심지어는 원인이 누구인지까지 인물을 특정할 정도로 모든 상황을 확정해 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폐하께서는… 원인을 아시는 겁니까?”
“응.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어. 자세히 보니까 숲도 싱싱하게 잘 살아있네.”
“… 미천한 제 눈으로는 죽은 고목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폐하.”
“어허, ‘미천한’ 뭐 그런 수식어 붙이지 마.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금방 보여줄게, 기다려.”
모든 것이 죽어버린 숲을 바라보며 싱싱하게 잘 살아있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는 마왕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넬라넬라는 그저 스스로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넬라넬라의 지극한 태도로부터 파생된 자기비하적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네로멜티아가 단호하게 이를 지적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낮춰 말하는 언행 자체를 싫어하는데, 심지어 좋아하는 측근이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건 더더욱 싫었던 것이었다.
이런 별것도 아닌 일 정도로 자신을 낮추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네로멜티아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 다른 이를 내세우려 뒤를 돌아보았다.
“베아트리스.”
“… 흣……. 네…! 주, 주인… 님…….”
“… 보나마나 아무것도 못 하겠구나. 러스!”
“결계 깨버릴까요, 주인님?”
“깨끗이 치워버려.”
두 다리를 좁히고 무릎을 서로 붙인 채, 서 있기도 벅찬 모습으로 부들부들 떨어대다 힘겹게 겨우 대답한 베아트리스.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냉정하게 고개를 돌려 러스테리아를 호출해 결계의 해제를 명령할 뿐, 베아트리스에 대해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러스테리아는 전방에 양손을 뻗어 마력을 끌어올렸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마법진이 허공에 여럿 떠올랐다.
각자 하나하나가 읽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복잡한 술식을 지닌 마법진이었고, 그것들이 크고 작은 형태로 무수히 나타나 전방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넬라넬라는 공성전차 하나를 무력화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쓰겠어?”
러스테리아가 수십의 크고 작은 마법진을 생성하며 결계의 해제를 준비하는 동안, 현재의 상황과 전혀 연관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네로멜티아.
그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넬라넬라는 조금 당황했으나,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나사 몇 개를 푸는 것으로 바퀴를 해체해 이동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장갑이 두꺼우니 외부의 공격은 잘 막아낼 수 있겠지만 하부에 불을 지르면 내부가 순식간에 타오릅니다. 대량의 물을 퍼부어 지면을 진흙탕으로 만들면 육중한 무게 때문에 바퀴가 진흙에 파묻혀 헛돌게 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을 화재 연기로 가득 채우면, 전차 내부의 적을 모두 질식시킬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당장 생각나는 방법들을 정성껏 명확하게 나열한 넬라넬라는 각각의 방법마다 원리와 결과까지 확실하게 설명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간결하면서도 체계적인 답변이 마음에 들었던 네로멜티아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
“네가 인지하지 못하던 결계를 간단하게 발견하고 가볍게 해제하기까지 하는 러스테리아가 대단하게 느껴지지?”
“네, 폐하. 경이롭습니다.”
“러스테리아에게 병사들을 이용해서 공성전차를 해결하라고 하면 너와 같은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녀도 유능한 인재이니 트랩이나 지형지물 설계 같은 해결책은 내놓겠지만, 너의 답변과 같은 구조적으로 해박한 답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넬라넬라는 마왕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현재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난데없는 질문은 오롯이 넬라넬라 자신을 위한 질문이었고, 오히려 명확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각자 적재적소가 있는 거고, 각자 활약할 수 있는 특기 분야가 있는 거야. 러스테리아는 대략적인 전략을 설계하거나 본인이 직접 나서서 마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뛰어나겠지만, 그녀는 혼자니까 모든 문제에 나설 수 없어.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병사들을 계획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한 법이지. 단 한 번의 고위계 마법보다 일천의 투석기가 훨씬 무서운 법이거든. 강한 힘을 가진 나나 러스테리아는 가장 앞서서 싸워야 할 텐데, 그럼 마왕군의 현장 지휘는 누가 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하지는 않고 있으나, 네로멜티아가 넬라넬라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오만은커녕 오히려 겸손한 성격인 넬라넬라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네로멜티아가 들어준 예시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공병대를 이용한 전략 전술이라면 자신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었고, 백병전의 지휘에서는 자신의 오빠를 따를 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자신과 오빠가 각자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이었고, 근거가 확실한 믿음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이러한 점을 넬라넬라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에둘러 이야기한 것이었다.
쯔우우우우웅!!
“술식 보호 장벽 파괴. 마력 간섭 대응 술식 파괴. 마력 공급 회로 차단. 메인 제어 회로 차단. 마력 변환 술식 해제.”
쩡! 쩌엉! 콰창!!
러스테리아가 연속적으로 늘어놓는 한마디마다 크고 작은 마법진들이 가동되며 사라졌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의 요란한 파열음이 발생하며 전방의 모습이 위태롭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은 오래된 창문에 금이 가듯 갈라졌고, 어떤 사물은 가루가 되어 형체가 사라지고 있었으며, 본래 무엇이었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변형된 무언가도 보였다.
메말라 죽어버린 태고의 숲만 볼 수 있었던 전방의 광경 전체가 각양각색의 변형과 소멸의 모습을 보이며, 본래의 형태를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술식 파괴 전면 가동.”
콰아아아아!!
러스테리아가 남은 마법진 모두를 동시에 발동시키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허공에 나타난 듯 요란한 굉음을 내며 주변의 모든 광경이 그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총 일곱의 마법진은 새빨갛게 달궈진 금속을 보는 듯 타오르는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마법진에 각인된 여러 마도 문자와 마력 회로가 각자의 방향대로 회전하기도 했다.
이미 전방의 모든 광경은 그것이 전부 허상이며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느껴질 정도로 형태 구성에 힘을 잃어버렸고, 한여름의 아지랑이 따위를 보는 듯 덧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요란하게 뒤틀리는 전방의 모든 형상들 너머로, 생소한 배경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마치 커다란 커튼을 한순간에 걷은 듯, 거짓된 모습들은 전부 사라지고 그 너머의 진실한 광경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짹짹짹짹짹!
찌르르르 찌르르르
싱싱한 녹음(??)이 가득한 숲의 모습.
바람에 나부끼는 수풀의 모습만으로도 생명의 기운이 활기차게 느껴지고, 숲의 작은 주민들이 만드는 여러 가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물씬 밀려왔고, 촉촉하게 젖은 건강한 흙의 내음 또한 향긋한 정취가 있었다.
“들어가실까요, 주인님?”
주인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 러스테리아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여운 비서에게 칭찬하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숲으로 함께 들어서는 네로멜티아.
갑작스러운 주인의 스킨십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동시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던 러스테리아는 낯을 조금 붉힌 채,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갔다.
반면 네로멜티아는 그녀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스스럼없는 행동과 대비되게 무척이나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에 여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는 대자연은 무엇보다 큰 선물이었지만, 이 환경을 조성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거부감.
그 인물은 분명 큰 도움이 되는 다재다능한 인재(人?)였으나, 한편으로는 잘 제어가 되지 않는 인재(人災)이기도 했던 것이다.
네로멜티아 본인도 무척 반가운 인물이기는 한데, 껄끄럽거나 불편하기도 한 인물.
그런 마왕의 복잡한 고민을 알지 못했던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주인의 손길에 마냥 기뻐할 뿐이었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넬라넬라는 잔뜩 상기된 낯을 보이며 마왕을 향해 강하게 고동하는 자신의 심장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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