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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53화 (53/216)

〈 53화 〉 베리베리 벡 베그리트 (2)

* * *

오크의 성 연회장에 도착한 일행은 하인들이 안내하는 대로 각자의 위치에 앉았다.

큰 덩치를 가진 오우거들의 자리는 의자부터 티가 났기에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각자의 위치에 앉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지정된 위치에 안내를 받아 차례대로 착석했다.

어느 성이나 늘 있는 긴 테이블이 없어서 평범한 테이블들을 이어 붙여 놓았는지, 테이블보가 일정 간격으로 틈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긴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원목이 필요할 테니, 여러모로 모자람이 있는 현재의 세계에서는 이 정도도 훌륭한 연회임은 틀림이 없었다.

“오크의 성, 스토니 포트리스(Stony Fortress)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루이나의 여신님을 맞이하기에는 여러모로 조촐하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니 부디 양해 바랍니다.”

“아니다, 내게는 더없이 행복을 주는 훌륭한 연회장이다. 진실로 만족스러우니 개의치 말거라.”

가장 상석에 네로멜티아가 앉았고, 그 양측에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가 앉았다.

그다음으로 오운과 모카가 마주 앉았고 반대편 끝에는 베리베리가 자리에 앉았다.

모든 이들의 착석이 끝나고 연회의 요리를 내오기 위해 하인들이 분주한 와중, 베리베리의 옆에 놓인 빈 의자 하나가 네로멜티아의 시선에 들어왔다.

마왕의 의아함이 깃든 시선을 느낀 것인지 베리베리는 머쓱하게 웃으며 빈자리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았다.

“제 여동생의 자리입니다. 여인답지 않게 공방에서 일하고 있었던지라 땀도 많이 흘렸고 작업복 차림이기도 했으니, 속히 깨끗이 씻고 예쁜 드레스라도 입고 오라고 지시를 했는데 이렇게 늦고 마는군요. 송구스럽습니다.”

“여동생이 있었구나. 여동생 말고 다른 가족들 역시 불러도 괜찮다만.”

“제게 남은 혈육은 여동생뿐이니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모자란 아이를 보여드리게 되어 폐하의 눈을 어지럽힐까 염려스럽습니다만, 이곳 스토니 포트리스의 공병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아이인지라 폐하께 인사드리도록 호출했습니다.”

네로멜티아는 현재 여러모로 이 성과 베리베리가 마음에 들었다.

연회장까지 다다르며 본 오크들의 생활은 네로멜티아가 베리베리를 만나고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가 보여준 귀족으로서의 훌륭한 모습이 거짓된 가면이 아니라면, 이런 영주 아래에서 백성들이 불행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네로멜티아의 예상대로 오크들은 모두 먹고사는 일에 불편함이 없는 듯, 안색이 좋았고 누구나 활기를 띤 채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서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이만이 지을 수 있는 충실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성채의 방비는 몹시 튼튼했고,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통해 백성들이 얼마나 안전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영주라는 직책의 지체 높은 베리베리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안겼고, 베리베리 역시 일상이라는 듯 아이들을 힘껏 안아준 뒤 친절하게 인사를 나눴다.

실로 이상적인 모습을 지닌 작은 나라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모든 평화의 모습들을 하나둘 떠올린 네로멜티아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따뜻해진 마음에서 전해지는 기쁨을 즐겼다.

“마요네즈 소스를 얹은 토마토 샐러드입니다.”

“뿌리채소와 빅 보어의 안심, 각종 허브를 곁들인 포테이토 스튜입니다.”

“3년 숙성한 블랙베리 와인입니다.”

예법에 충실한 하인들의 손에 정중히 들려 나온 애피타이저.

싱그러운 채소가 다채롭게 구성된 샐러드와 허브의 향기가 일품인 따끈한 스튜.

거기다 달콤한 향기가 인상적인 블랙베리 와인이 곁들여져 모자람이 없는 연회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다른 메뉴가 더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일품이라고 할 수 있는 메뉴였다.

“혹시 사탕수수가 있나?”

“오오! 역시 마왕 폐하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군요! 맞습니다. 밀이 없어서 애피타이저에 빵조차 내오지 못하는 부끄러운 상황입니다만, 카보니 숲에서 사탕수수를 발견하여 재배에 성공한 것은 저희 스토니 포트리스의 자랑입니다.”

네로멜티아는 스토니 포트리스의 저력에 대해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료인 사탕수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설탕을 추출하여 정제하는 일은 상당한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힘겨운 일이었다.

이는 곧 베리베리의 수완과 지혜를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은 업적이기도 했다.

한편, 어떻게 사탕수수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인지 몹시 신기했던 러스테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네로멜티아를 바라보았다.

그 순수하게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띠고, 그녀가 던지는 무언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마요네즈에는 설탕이 들어간단다.”

“아앗! 그래서 아셨구나! 저는 막 베리베리님 안색 같은 걸 보시고 ‘음, 당분을 많이 섭취하고 있는 모양이군.’ 하며 추측하신 줄 알았어요!”

“러스, 그거 실례되는 말이야.”

“껄껄껄!!! 괜찮습니다! 제 얼굴이 그토록 부유하고 윤기 있어 보이는 모양이로군요! 참으로 유쾌합니다!! 껄껄껄껄!!”

참으로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러스테리아는 네로멜티아의 말에 뒤늦게 아차 싶어 베리베리의 눈치를 보았고, 베아트리스는 조용히 한숨을 지을 뿐이었다.

마음씨 넓고 호방한 베리베리는 그저 크게 웃어넘겼고, 이는 예의를 차리느라 짓는 가짜웃음이 아닌 진실이 느껴지는 웃음이었기에 자리의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물론 그 와중에 떨떠름한 표정을 한 이도 존재했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몹시 화목했다.

“이 정도로 어떻게 식사를 한단 말인가. 이러니 오크들이 키가 조그마한 애송이 밖에 안되는 것이다.”

모카가 무언의 경고로 고개를 힘껏 저으며 말려보았지만, 오운의 분위기를 깨는 투덜거림은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자리의 분위기를 못 읽고 찬물을 끼얹는 일은 몹시 실례되는 일이고 예의를 모르는 일이었으나, 해당하는 이가 오운이라는 것에서 자리의 모든 이들은 순순히 상황을 납득하고 가볍게 넘기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감아 준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부족장, 자네같이 대단한 전사를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는 자네와 꼭 닮은 버팔로 다섯쯤은 구워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 우리 오크의 빈궁한 살림이 거덜 날 테니 부디 큰 마음씨로 양해해 주게나. 앞으로 메인 디시와 디저트가 남았으니 조금만 더 참아주게.”

“으허허허허허!!! 뭘 좀 아는구만!!! 그래!!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보다도 위대한!! 우리 대전사 오우거가 먹기에 이런 한 줌도 안 되는 음식들로는 많이 모자라지!!!”

분명 예의를 가장하고서 오운을 식충이 취급하고 짐승에 빗대어 비꼰 것인데, 그런 베리베리의 저의를 알아채지 못한 순진한 오운은 베리베리가 자신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으며 미안해한다고까지 여겨 크게 만족스러워하고 호탕하게 웃어댔다.

물론 오우거 부족의 지식인인 모카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으나, 굳이 큰일을 만들기 싫어 부하된 입장을 가지고서도 오운에게 귀띔조차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구나. 오크들이 키가 조그마한 애송이라니. 짐보다 반은 더 큰 것 같은데, 그럼 짐은 애송이조차 못 된다는 말인가?”

“어윽…!!!”

“껄껄껄!!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폐하!! 오우거 치프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보다도 위대한 전사이니 부디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지요!!”

“으윽…!!!”

그 눈치 없는 오운도 네로멜티아가 지나가는 듯 흘린 빈정대는 이야기는 용케 깨달았고, 자신이 큰 말실수를 한 것마저 깨달은 오운은 아직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건만 급체라도 한 듯 헛바람을 삼키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베리베리가 유쾌하게 웃으며 오운 스스로가 한 말을 되짚어대며 마왕의 장단을 맞추니 순식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사색이 되었다.

“그래.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보다도 위대한. 대전사 오운의 말이니 애송이보다 못한 마왕은 조용히 한 줌도 안 되는 모자란 식사를 깨작깨작 즐겨야겠구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쿠우우우웅!!!

감히 마왕이 존재하는데 그런 오만한 말을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은 자신의 입을 원망하며 정신이 하얗게 물들어가던 오운은 냅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뒤, 바닥에 머리를 힘껏 부딪치며 격렬히 사죄를 올렸다.

그의 강렬한 절 한 번에 성의 바닥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고, 그 진동이 테이블 위까지 전해져 포테이토 스튜가 그릇에서 넘칠 정도로 거센 파문이 일었다.

그런 요란한 와중에도 러스테리아는 샐러드에 얹어진 고소한 마요네즈의 풍미를 즐기며 행복하게 미소짓고 있었고, 베아트리스는 그녀의 정밀 센서가 충격을 미리 예측했는지 어느새 네로멜티아와 자신의 스튜 그릇을 조용히 들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위대한 대전사 오운이여. 그대의 힘을 버티기에 이 스토니 포트리스는 너무 빈약하니 너른 마음으로 봐주지 않겠나. 죄다 무너지겠네, 껄껄껄!!”

“누구보다도 강하고 위대한 대전사 오운이여. 그대에게는 한 줌도 안 되는 이 스튜가 짐에게는 몹시 맛있고 소중한 성찬(??)이니 너른 마음으로 봐주지 않겠나. 뒤집어엎지는 말아다오.”

능글맞게 놀려대는 베리베리의 말을 그대로 베껴서 똑같이 놀리는 네로멜티아.

오운은 이 두렵기 짝이 없는 상황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위태로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적임자가 떠올라 살짝 고개를 들어 그 인물을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글이나 들여다보는 책상물림이라고 놀려대기 일쑤이기는 했으나, 그의 유능함을 인정하여 마을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신임했던 지식인.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해 오운이 깊게 신용했던 해결사.

마을에서 가장 지혜롭고 아는 것이 많은 현자.

내정 감독관, 모카.

“저는 강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으니, 오우거가 아닌 모양입니다.”

“껄껄껄!! 그대 같은 인재가 위대한 오우거가 아니라니! 그럼 오크라도 하시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주님.”

“내 평소 탐내던 인재를 드디어 손에 넣었구려!! 참으로 유쾌한 일이오!! 껄껄껄껄!!!”

우적우적 샐러드나 씹으며 무심히 이야기하는 모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우거를 포기하고 오크가 되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었다.

오운은 당장에라도 오열해 버릴 듯,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출렁댈 정도로 울상이 되어있었다.

그러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목숨이라도 내놓을 듯,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떨구는 오운의 모습에 모카는 한숨을 짓고 말을 이었다.

“이쯤 놀리시고 용서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식하고 생각이 없긴 해도 착하고 의로운 부족장이십니다.”

부족장인 오운도 설설 기며 넙죽 엎드리는 마왕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튜를 들이키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카.

네로멜티아는 그저 오만한 태도의 오운을 따끔하게 혼낼 생각으로 장난스럽게 놀리고 있을 뿐이란 걸 알고 있기는 했으나,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모카의 태도는 무척이나 대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부족장에게 서슴없이 악담마저 퍼붓고 태연하게 칭찬을 이어붙이는 태도는 담대하기까지 했다.

이런 당당한 인재가 싫지 않았던 네로멜티아는 싱긋 웃은 뒤, 모카의 요청대로 오운을 향해 조용히 이야기했다.

“네가 오크들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짐에게는 유능하고 소중한 백성들이다. 이번에는 용서해 줄 테니 다시는 함부로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모, 목숨을 바쳐 받들겠습니다!!!”

“맛있는 스튜가 식겠구나. 어서 자리에 앉거라.”

비틀거리며 얼떨떨한 모습으로 일어선 오운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고, 마왕의 명에 따라 조용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평소 성미 같아서는 그릇째 들어 그 큰 입에 스튜를 단숨에 털어 넣을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 여러모로 위축되었는지 스푼을 들어 깨작깨작 먹는 모습이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가 한 줌도 안 되는 애피타이저를 깨작거리는 동안 하인들은 이미 비어버린 마왕의 그릇을 보고서 다음 요리를 내오기 시작했다.

“로즈메리 화이트 래빗 바비큐입니다.”

“빅 보어 스모크드 바비큐입니다.”

메인 디시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즈메리의 향기로움이 가득 입혀진 토끼 바비큐와 빅 보어라 불릴 만큼 거대한 멧돼지의 훈제 바비큐가 모습을 드러내자, 먹음직스러운 고기 냄새에 허기가 극에 달한 오운은 배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의 큰 손에는 무척이나 작았던 스푼을 허겁지겁 요란하게 놀려 애피타이저를 빨리 해치우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이트 래빗의 바비큐는 크기가 적당한 까닭에 각자의 앞으로 한 마리씩 놓였으나, 빅 보어의 훈제 바비큐는 그 크기가 거대하여 테이블의 정 중앙에 놓였다.

로즈메리의 향기와 함께 바삭하게 구워진 고기가 일품인, 감히 아름답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화이트 래빗 바비큐.

타오르는 장작이 입힌 연기의 향기가 풍미를 입히고 고소한 육즙이 질척일 정도로 줄줄 흐르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위장이 요동치게 하는 빅 보어 훈제 바비큐.

빅 보어의 바비큐를 썰어 각자의 접시에 나누어 주기 위해 오크 하인 둘이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을 무렵, 연회장의 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쿠우웅!!

“오라버니!! 고기 아직 남아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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