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47화 (47/216)

〈 47화 〉 오우거(Ogre) (2)

* * *

“죄송합니다.”

“아니… 우리가 미안하지…….”

“아닙니다… 다짜고짜 몽둥이를 휘두른 저 친구가 무조건 잘못했지요……. 이렇게 강한 분이 아니셨더라면 목숨을 잃으셨을 텐데… 백번 사죄드려야 마땅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린 정말 괜찮으니까 친구부터 잘 보살펴 줘.”

“이 친구는 당해도 쌉니다. 누구 하나 죽을만한 공격을 함부로 휘둘렀으니 벌을 받은 거지요. 정말 진심으로…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맹렬한 분노를 터뜨린 베아트리스의 자비 없는 발차기 한 방에 눈을 까뒤집고 혼절해버린 다혈질 오우거.

앞서 그를 제지하려고 했던 또 다른 오우거와 네로멜티아가 그 다혈질의 오우거를 사이에 두고 대화 중이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거듭 사죄를 올리는 오우거와 손사래를 치며 너그럽게 넘어가려고 하는 네로멜티아의 사이에는 조금의 불화도 없었고 평화만이 가득했다.

“여기 쓰러진 철없는 친구는 휴고(Hugo)라고 합니다. 우리 오우거 부족의 이인자이지요. 저는 모카(Moka)라고 하고, 여기 말 안 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친구는 코(Ko)라고 합니다.”

“이인자라니 대단한걸?”

“어차피 일인자이신 부족장님께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주제에 꼴에 이인자랍시고 돌격대장의 자리를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서 가끔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아무나 때리고 들이받고 아주 골치입니다.”

사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가벼운 대화에서도 어느 정도 오우거 부족의 현황을 엿볼 수 있었기에, 네로멜티아에게는 몹시 유익한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이 모카라는 오우거는 부족의 상황에 빠삭하고 꽤 유식하기까지 해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많았고, 예의까지 바른 터라 대화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어느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의기양양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코라는 오우거는 제쳐두고서라도, 모카와의 대화를 통해 오우거들은 대화가 잘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게 되었다.

“휴고가 돌격대장이면 모카도 뭔가 직책이 있는 거야?”

“저야 뭐, 보잘것없는 부족의 일원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은데, 정말 직책이 없다고?”

“작게나마 내정 감독관(?? ???)의 자리에서 소일거리를 하곤 합니다.”

“… 아니… 대단한 거잖아…….”

부족장이니 돌격대장이니 하는 문명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직책들 중에 홀로 ‘내정 감독관’이라는, 직함부터 엄청나게 세련된 직책을 가진 모카.

어딘가 왕국의 고위 대신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이름의 직함을 가졌음에도 별 것 아니라는 듯 넘겨버리는 그의 태도는 어딘가 세속적인 경계에서 초탈(??)한 분위기가 있었다.

“정말 별 것 아닙니다. 농경 작업 지휘, 물자 관리, 인사 관리, 경계 근무 일정, 노동 증명패 발급, 거래 중개, 민원 관리, 사건 중재, 부족법 이행 같은 사소한 일들뿐입니다.”

“아니… 엄청 바쁘잖아 너…….”

숲속에 틀어박혀 사는 부족의 일치고는 국정(國?)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더 놀라웠던 것은, 이 부족에서 모카가 빠져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때 떠오르는 광경이었지만.

누가 말할 때마다 자신만만하게 고개만 계속 끄덕이고 있을 뿐인 코는 제쳐두더라도 한 부족의 돌격대장과 내정 감독관이 모두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상황을 부족장 역시 눈치를 채고 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이토록 중요한 고위직 측근 둘을 모두 보냈다면 거의 사신(??)의 자격으로 이들을 보낸 것이라고 봐야 했다.

“우선 너희 부족장부터 만나러 갈까?”

“아, 부족장님께서는 현재 단련하시는 중이라 저녁때나 만나실 수 있을 거구요. 그전까지는 제가 잘 접대해 드리겠습니다.”

“… 마왕이 왔는데 부족장이 단련하느라 못 온다고…?”

“부족장님은 모르십니다. 새벽부터 단련장에 가 계셔서…….”

“일개 경계병도 아니고 직책 높은 너희가 모두 온 건 왜 그런 건데? 부족장이 보낸 거 아니야?”

“어차피 유사시에 똑바로 대처할 수 있는 인원이 저나 부족장님밖에 없으니… 저만 오려고 했는데,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싸울 수 있는 거냐고 무작정 휴고가 따라온 겁니다. 코는 어느새인가 뒤따라오고 있었구요.”

“… 머리야…….”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건가 싶으면 너무나 허술하다.

허술하긴 한데 미개하지는 않다.

상당히 문명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역시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땀이나 뻘뻘 흘리고 있을 부족장은 그냥 대뜸 찾아가서 나오라고 하면 되겠지 싶어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한 네로멜티아는 모카를 시켜 휴고를 깨우거나 들쳐업으라고 지시한 뒤, 한구석의 나무뿌리 위에 걸터앉은 베아트리스에게 다가갔다.

심하게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바스러진 구두를 내려다보며 몹시 침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가 왜 슬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속내야 뻔한 것이었고, 주인이 선물해 준 소중한 구두가 망가졌다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베아트리스. 우선 이거라도 신는 게 좋겠다.”

어느새 자신의 디멘셔널 스토리지에서 다른 구두를 꺼낸 네로멜티아는 그것을 베아트리스의 앞에 살며시 내려두어 주었다.

다소 탁한 광택의 검은 단화 구두.

기름을 잔뜩 먹여 광을 낸 것은 아니기에 다소 투박해 보였지만, 그 위에 가죽끈으로 장식된 이중 리본이 소소한 매력을 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구두를 든 베아트리스는 그것이 상당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성용 단화 구두치고 꽤 묵직했던 그것은 어림잡아 가늠해 보아도 내장재가 금속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굽이나 밑창, 심지어는 가죽으로 이루어진 구두의 갑피 부위도 강한 경도의 금속판이 내장되어 있었다.

살짝 힘을 주어 구두를 당겨본 베아트리스는 침울해 있던 그 낯에 조금의 화색이 돌았다.

그녀의 감각 센서는 이 구두의 강도가 어림잡아도 강철 이상의 것이라는 보고를 전송하고 있었고, 그 정보는 이 구두가 먼저 망가진 구두보다 격한 움직임에도 훨씬 잘 버틸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 정도면 무리는 없을 거야. 조금 무겁긴 하겠지만, 망가지는 것보다는 낫지? 제대로 된 건 나중에 카디스텔라에게 만들어달라고 할게. 그때까지만 이거 신고, 이제 화 풀자?”

“… 주인님…….”

어느새 하녀를 어르고 달래는 모습이 되어버린 네로멜티아.

베아트리스는 멋대로 화를 내고 멋대로 토라진 자신을 달래주는 친절한 주인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주인에게 와락 달려들어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구나.

이런 귀찮은 감정을 내비치며 멋대로 굴어도 주인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는구나.

베아트리스는 휴고가 정신을 차린 뒤, 자신에게 기겁하여 볼썽사납게 뒤로 나자빠질 때까지 결코 양팔을 풀지 않았다.

어느새 도착한 오우거의 마을.

무성한 숲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마을은 바로 뒤에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웅장한 절벽을 두고 있었다.

다소 허름하고 낡아 보였으나 제대로 구성지게 지은 오두막들이 가득했고, 굴뚝에서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는 집도 여럿 있었다.

마을의 가운데에는 화톳불을 피워둔 채 토끼 고기를 막대에 꽂아 굽거나 큰 솥에 야채 스튜를 끓이는 오우거 노동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멸망의 암운이 드리운 테라리스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힘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이쪽입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부족장이 들어가 있다는 단련장으로 안내를 시작한 모카.

네로멜티아가 마왕이라는 것을 믿게 된 모카는 더없이 극진한 예를 갖춘 채, 연신 고개를 숙여 가며 안내역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토록 다혈질에 거친 성미를 보이던 휴고는 베아트리스의 발차기 한 방에 나가떨어져 혼절한 뒤로는 기가 팍 죽어 고개를 들지 못했고, 이따금 베아트리스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거리를 둘 뿐 고분고분하게 일행을 따르고 있었다.

코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따라올 뿐이었다.

일생 처음 본 이방인들의 방문에 오우거들이 저마다 크고 작게 동요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네로멜티아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 마을이 얼마나 오랜 시간 침략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유지되어왔는지를 엿볼 수 있었고, 그들의 평화는 곧 그녀의 기쁨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녀에게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을의 중심을 가로질러 마을의 후방에 위치한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절벽까지 다다른 일행.

그리고 모카는 절벽의 한편에 위치한 동굴의 입구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이곳이 우리 마을의 전사 단련장입니다. 부족장께서는 현재 이 안에 계십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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