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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46화 (46/216)

〈 46화 〉 오우거(Ogre) (1)

* * *

포근하고 따뜻한 주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은 베아트리스.

더없이 안락한 요람에 사로잡힌 이성은 도구로서 존재한다는 속박의 사슬조차 벗어던져, 모든 욕망을 자유롭게 탐하고 있었다.

주인은 그녀가 섬겨야 할 신이며 종교였다.

주인의 손길은 세상 어느 것과도 비할 수 없는 축복이었다.

주인의 말은 곧 진실이며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주인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는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도구로서 어설픈 자신의 모든 부끄러움을 긍정해주고 인정해 주었다.

오히려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며 그녀 곁을 지키는 다른 이들과 동등한 존재임을 명시해 주었다.

그녀 곁에 존재하는 생명을 가진 소중한 이들과 조금도 다르게 대할 생각이 없으니 자신을 폄하하지 말라고 했다.

만들어진 인형에 불과한 자신이 다른 이들과 같다고 속삭여 주었다.

도구로서의 자신을 벗어 던지고 주인의 소중한 존재로서 은총을 받는 베아트리스가 남았다.

모든 속박의 사슬을 벗어던진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감추어야 할 이유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감추어야 할 것이 주인에 대한 사랑이며 모든 이성과 감성이 애타게 부르짖는 주인에 대한 욕망이라면, 더더욱 감추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어주는 주인의 인자한 모습을 고개를 들어 눈에 담으니 더욱 애가 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에 목이 마르고 변화할 리 없을 그녀의 체온이 타들어 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깊고 선명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눈동자가 마치 보석을 정밀하게 세공한 것 같았다.

하얗고 티 없이 맑은 피부는 보기만 해도 부드러웠고 매혹적인 향기마저 감도는 듯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혈색이 도드라지는 촉촉한 입술.

저것을 맛볼 수만 있다면…….

베아트리스는 천천히 주인의 입술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달콤할 주인과의 키스를 위해서라면 조금도 기다리기 버거울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모든 순간을 깨어놓았다.

바스락

네로멜티아는 이미 베아트리스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주 멀리서부터 미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 발걸음 소리.

베아트리스보다도 먼저 그 소리를 포착한 모양인지 네로멜티아는 이미 눈빛에 뚜렷한 이채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환희를 담고 있었고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하던 애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주인이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그녀 역시 긍정해야 할 것이겠지만, 베아트리스는 그녀의 인공 자아 깊은 내부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살기를 애써 억눌러야만 했다.

중요한 순간에 눈치 없이 초를 친 불청객들은 주인이 그토록 기다려오던 존재였으니.

“누, 누구냐!!”

머지않아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이들은 총 셋.

녹색의 피부에 오백 멘톨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

백 년 묵은 나무의 둘레하고도 비교할 수 있을 것같이 굵직한 팔뚝.

강철의 도끼도 튕겨낼 것같이 단단하고 우람한 근육.

위아래의 송곳니는 전부 길고 두꺼운 까닭에 입술 밖까지 튀어나올 정도였다.

명계의 거대한 헬하운드와도 힘을 겨룰 수 있다는 타고난 괴력을 가진 대형종족.

그들은 오우거(Ogre)였다.

“빠, 빨리 대답하라! 너희는 누구냐!!”

“이봐…! 우, 우선 무기를 내려놔! 아무래도 데모니안 같다!”

“데모니안이든 뭐든! 외지인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냐! 너희가 누구인지 빨리 대답해라!!”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공격성을 불태우고 있는 오우거.

동료의 호전적 기질을 말리며 상대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오우거.

그 뒤에서 어떤 오우거가 무슨 말을 하든지 모든 말을 긍정하며 자신 있게 고개만 끄덕이는 오우거.

그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조금 웃음이 났다.

오우거들이 이토록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니 마음의 짐이 많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 드디어 부활에 성공해 그대들의 앞에 섰노라. 소개는 이 정도면 되겠느냐?”

“우, 웃기지 마라!! 마왕이 사라진 지 수백 년은 됐다고 들어왔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 이거 곤란하네. 정보가 부족한 타지(??)이니 언더 바르커스 때처럼 힘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은데…….”

네로멜티아는 강경한 오우거의 태도에 난색을 표했다.

자신의 루이나를 방출한다면 아무리 바보 같은 이라 할지라도 본능에 내재된 경외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루이나의 아래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면 마왕의 권능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 없이 힘을 방출했다간 주변에 휴미안이라도 존재한다면 마왕의 존재가 단번에 발각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주변 상황에 대해 뚜렷한 정보가 있어야 택할 수 있는 방식인 것이었다.

아직 헤모니겐트 재건에 기반도 채 다지지 못한 상황에서 적에게 정보를 줄 만한 여지는 피하고 싶었기에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때 베아트리스가 고개를 들어 오우거들을 내려다본 채 말했다.

“열매나 따 먹으면서 살더니 멍청해지기까지 한 건가요?”

“뭐, 뭐라고!?”

“드래곤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 같은 분들이네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이었으나 살짝 좁혀진 미간과 구부러진 눈썹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그들을 혐오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표정 이전에 그녀의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싸늘한 냉기가 쏟아지는 듯,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냉랭한 시선만으로도 그녀가 가진 혐오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길가에 떨어진 냄새나는 말똥이나 주방 구석에서 새까맣게 썩은 토마토 따위를 발견한 듯 노골적인 혐오의 시선.

“너, 너 뭐라 그랬냐!! 이 도토리만 한 계집애가 겁도 없구나!!!”

“그쪽은 그 잘난 덩치에 뇌는 티끌만 하신가 봅니다. 뇌가 근육에 파묻혀서 제 기능을 못 하는 건가요?”

오우거의 거친 분노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를 매도하는 메이드.

언제나 자신에게는 예스럽고 착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베아트리스가 이렇게 냉혹한 모습을 하고서 다른 이를 매도하고 있으니 네로멜티아는 살짝 겁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베아트리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오우거에게는 그저 화를 돋우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눈보라라도 휘몰아칠 듯한 냉대와 멸시의 눈빛이 오히려 분노의 불길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코에서 거센 김이 뿜어져 나오고 온몸의 근육이 한껏 부풀어 오른 오우거.

더욱 크고 우람해진 근육에 굵은 혈관마저 펄떡이며 도드라지고 있었다.

입술이 험악하게 벌어지며 두껍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가득 드러났다.

그리고 그 참을성 없는 오우거는 자신의 통나무 몽둥이를 치켜들어 베아트리스에게 내리치며 고함을 쳤다.

“육포로 만들어 주마!!!!!”

쿠우우우우웅!!!!

지반마저 내려앉을 듯 강력한 일격에 산사태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로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통나무 몽둥이가 휘둘러지며 생성된 풍압에 주변의 수풀들이 뽑혀 나갈 듯 요동치며 나부꼈다.

그 어떤 것이라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던 묵직한 한 방.

그러나 정작 공격을 행사한 당사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몽둥이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멈춰버린 것이었다.

오히려 무언가 단단한 것에 공격이 막혀, 몽둥이를 휘두르던 충격이 고스란히 자신의 팔로 전해져 찌릿한 고통마저 수반되고 있었다.

그러나 감각이 마비되는 듯 얼얼하고 욱신대는 고통도 현실에 비하면 신경 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전력으로 휘두른 공격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덩치만 컸지 별 것 아니네요. 혹시 굶고 다니시는지?”

“아… 아으으…!!”

눈앞에 서 있는 마르고 가녀린 여자가 한 손으로 자신의 통나무 몽둥이를 막아낸 것이다.

단지 손으로 붙잡는 것만으로 맹렬한 일격을 수포로 돌려버린 것이다.

심지어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오우거는 뒷걸음질 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을 공격하고 어디를 가려 하십니까. 무릇 신사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어으으으…….”

베아트리스의 손에 잡힌 통나무 몽둥이가 꿈쩍도 하지 않는 까닭에 도무지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 번이고 힘을 쏟아도 몽둥이가 꿈쩍도 하질 않자, 아예 자신의 체중을 실어 잡아당겨 보았다.

신장 오백 멘톨에 달하는 근육 덩어리 대형종족 오우거가 자신의 전력과 체중마저 실어 잡아당기는데도 몽둥이는 미동조차 보이질 않았다.

누가 봐도 명확한 강자의 힘 앞에 기겁한 오우거는 자신의 소중한 무기를 놓고 빈손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반면 베아트리스는 슬슬 살기를 거두고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작은 한숨을 지으며 표정 역시 본래의 모습인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터무니없이 약한 오우거의 힘에 기운이 빠졌고, 이런 상대에게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자신의 주인을 감히 루이나의 아래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났고, 중요한 순간에 초를 치고 좋은 분위기를 모조리 깨버렸던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약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기품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베아트리스는 오우거들이 순순히 말에 따라주기만 한다면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너그러이 상황을 넘어가겠다 마음먹었다.

그저 하인으로서 주인을 대신하여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한 뒤, 상대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할 생각이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오우거에게 입을 뗀 베아트리스.

“여기 계신 분은 진정한 마왕님이시니…”

베아트리스의 말은 끝을 맺기는커녕 절반도 채 나오지 못한 채 끊어졌다.

무게중심이 조금 흐트러진 감각에 베아트리스는 불안감을 느끼며 시선을 내렸다.

모든 정보를 취급하며 관리하는 마도 공학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는 듯, 베아트리스의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으나, 이런 선명한 감각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둔한 감각 회로가 아니었다.

감정이라는 것을 얻은 인공 인격이 현실 부정이라는 불필요한 행동을 반복하는 현상일 뿐이었다.

통나무 몽둥이의 강렬한 공격 한 번에 베아트리스는 조금의 타격도 받지 않고 무사했겠지만, 그녀가 착용한 구두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하녀복을 입는 베아트리스는 활동에 불편함이 없는 굽이 낮은 단화(??)를 착용했기에 웬만한 충격으로는 결코 구두가 망가질 일이 없었으나, 오우거의 공격에 견디는 일은 역시 무리가 많았던 탓인지 구두의 밑창이 충격에 버티다 터져나가 바스러져 버린 것이었다.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베아트리스는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의 고성능 렌즈에 제어 불능을 뜻하는 경고 문구가 어지럽게 점멸하고 있었다.

정신 체계 내부에서는 긴급 상황을 알리는 경고신호가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으나 그녀의 모든 정신은 단 하나의 정보만을 처리하고 있었다.

주인이 선물해 준 소중한 구두가 망가졌다.

“이 쓰레기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순간 네로멜티아가 말릴 틈도 없이 오우거에게 작렬한 발차기 한 방.

화약고에 불이 붙어 대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엄청난 굉음이 터졌고, 오우거의 신체는 형편없이 구겨져 숲의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도중에 몇 차례나 나무에 부딪쳤으나 나무 역시 산산조각이 나며 부러져나갔고 오우거는 그렇게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처참한 광경에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이마를 짚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 맙소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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