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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45화 (45/216)

〈 45화 〉 인형의 눈물

* * *

독소라는 이름의 죽음이 뒤덮어 모든 것이 오염된 테라리스.

대다수의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살아남아 움직이는 것들 또한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형(??)의 돌연변이들뿐인 세계.

당장 먹고 마시는 것을 떠나 생명의 기본 여건인 대기조차 독소의 분진이 가득한 까닭에 제대로 호흡할 수도 없는 세계는, 곳곳에 도사린 갖가지 위험 따위는 고려할 가치도 없게 만들었다.

죽음이 만연하다 못해 죽음을 맞이할 생명조차 없어 모든 것이 황폐할 뿐인 공허의 세계.

모든 재앙이 휘몰아쳐 혼돈을 이루는 잔혹한 세계에서, 네로멜티아는 처음으로 온전한 자연을 목견할 수 있었다.

언더 바르커스나 마왕성의 하수도 같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생명의 터전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자연의 힘으로 이룩한 푸르른 대지는 위대한 생명의 정수였다.

“… 너무… 아름다워요…….”

더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창조주의 피조물들이 평화를 누리며 저마다의 온전한 모습을 갖춘 광활한 숲.

형형색색의 깃털을 가지고 자유로이 하늘을 노닐며, 요정의 하프와 같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지저귀는 작은 새.

앙증맞은 코를 때때로 벌름거리며 귀를 쫑긋 세우다 풀숲으로 사라지는 겁쟁이 토끼.

싱그러운 녹음으로 정신을 맑게 깨우고 때때로 바람에 나부끼며 잎사귀 스치는 소리가 마음을 달래주는 파인트리의 숲.

깨끗하고 차진 흙은 건강한 흑갈색을 띠고 있었으며, 그 위를 뒤덮은 풀숲이 빽빽하게 가득해 대지가 녹색으로 물든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사방에 오색 빛의 꽃들이 만발했고, 무지개나 오로라가 나풀대는 듯 아름다운 나비나 꽁무니가 토실토실하고 솜털이 귀여운 꿀벌 따위가 평화롭게 꿀을 모으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자연 가운데를 거닐고 있노라면 테라리스에 만연한 모든 재앙은 마치 지나간 한밤의 꿈인 것처럼 그 걱정과 시름이 덧없는 느낌을 받았다.

“마왕성 인근 지역 기준, 오염도 10%입니다.”

“오염도가… 아예 없지는 않네요?”

“이 정도면 생명 활동에 지장이 없는 수준입니다. 대기 중에 치명적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것이 신체에 축적됨에 따라 다소 약한 생물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만, 웬만한 생물들은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가혹한 세계에서 이 정도로 아름다운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해요! 역시 자연은 위대하고 아름답네요!”

자신에게 부여된 마도 공학 기능을 이용해 주변 환경을 분석하여 브리핑하는 베아트리스.

천년 만에 마주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악마답지 않은 순수한 감상을 표현하는 러스테리아.

네로멜티아는 이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온갖 가능성의 확률을 분석하여 추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명이 가진 생존 본능은 어떤 것보다도 위대하다.

최소한의 본능만을 지닌 나비들도 이 숲이 가진 생명의 향기를 맡고 몰려들어 저마다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데,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들은 당연히 이 숲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스타리스 대륙의 수많은 종족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었고, 그중 어떤 존재를 조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네로멜티아의 추측이었다.

“베아트리스. 지성을 가진 종족이 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흔적도 놓치지 말고 수색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러스. 너는 이 카보니 숲의 외곽을 돌면서 어떻게 이런 장소가 아직까지 휴미안에게 유린당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는지 조사해줘. 분명 휴미안들이 접근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거야.”

“네! 주인님!”

“이대로 카보니 숲의 중심까지 나아가며 탐색하는 일은 내가 맡는다. 베아트리스는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고 주기적으로 내게 돌아와 상황을 보고해. 러스는 주변 일대를 둘러보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 있게 다녀와. 이상.”

의미와 목적이 명확한 주인의 지시가 하달되자, 충성스러운 비서관과 메이드는 즉각적으로 임무 수행에 나섰다.

러스테리아는 방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는 비행 마법을 통해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라 카보니 숲의 외곽으로 멀리 사라져갔다.

베아트리스는 작은 족적(足?)이나 사소한 흔적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지면을 스치는 빠르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숲속에 몸을 던졌다.

네로멜티아는 신속히 사라진 두 사람을 지켜보다,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가 염두에 둔 자신의 역할은 카보니 숲의 전체적인 조사와 더불어 자원 탐색.

그리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역할은 카보니 숲의 전체적인 안전 확보였다.

러스테리아같이 비교적 안전한 하늘로 날아올라 탐색할 수도 있고, 베아트리스와 같이 은밀하고 신속한 몸놀림을 보이며 탐색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빠른 탐색을 위해 다소 발걸음을 서두르고는 있었으나, 그녀의 전체적인 태도에서는 여유와 무방비가 묻어나고 있었다.

거기다 수풀을 헤치는 소리를 감추지 않았고, 흙을 딛는 기척 또한 숨기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적대심을 가지고 경계를 하고 있다면 네로멜티아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네로멜티아가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언가 위협적인 존재나 지성을 가진 종족이 있다면 자신을 발견하고 눈앞에 나타나길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때로는 큼지막한 돌 따위를 들고 멀리 던지는 등 다소 도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두 번의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한 악장의 교향곡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시간.

베아트리스가 두 번 정도 돌아와 특이사항이 없다는 소식을 알렸고, 세 번째 돌아왔을 때 그녀는 비로소 희소식을 가지고 왔다.

“거대한 이족 보행 종족의 족적과 열매를 채취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부츠 따위를 착용하고 있어 발의 형태는 분석할 수 없었습니다만, 족적의 크기나 깊이로 미루어 보아 약 삼백 멘톨 또는 오백 멘톨 정도의 신장을 가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모든 길이 측정의 기준이 되는 단위, 멘톨(Mentol).

멘톨은 엄지손톱만 한 열매로써 먹으면 달콤한 맛과 함께 상쾌한 향이 느껴진다.

다 자란 열매의 크기가 티끌만큼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기에 길이 측정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으며 하나의 단위로써 사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여성치고는 꽤 장신인 네로멜티아가 약 백팔십 멘톨 정도의 신장을 가지고 있으니, 상대는 적어도 네로멜티아의 두 배 남짓한 신장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종족을 추측하기에는 깨나 범위가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트롤이나 오우거, 사이클롭스. 혹은 조금 거대한 오크 정도겠군.”

“리빙 아머나 골렘의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들이 열매 따위를 채취할 리는 없으니 제외됩니다. 웨어울프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만 그들은 맨발을 고수하니 부츠의 족적을 남길 가능성 역시 희박합니다.”

적어도 휴미안과는 적대적인 종족들이 나열되었다.

그리고 헤모니겐트의 종족일 가능성이 대폭 증가했다.

아군이나 백성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자들의 발자취라는 의미였고, 이는 분명 희소식이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면 만날 가능성이 높겠어?”

“흔적이 카보니 숲의 중심부, 산자락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남서 방향으로 하산하시다 보면 그들의 거주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추측됩니다.”

“좋아, 이제는 내 곁에 붙어서 따라와. 잘했어, 베아트리스.”

“… 미천한 종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주인의 칭찬에 고개를 깊이 숙이며 자신을 하찮은 위치에 두는 베아트리스.

그녀의 말에 뭔가 반박할까 하다가 말을 아낀 네로멜티아는 그저 따뜻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길을 나섰다.

깊이 숙인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나아가는 주인의 뒤를 곧바로 따라나서지 못한 베아트리스.

주인이 열 걸음 남짓 걷고 나서야 뒤늦게 고개를 들고 주인의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에고 돌의 특성상 홍조를 띨 수는 없었으나, 블루 토파즈(blue topaz)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는 모습이 그녀가 심적으로 동요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지는 찬란한 바다가 담긴 듯한 그녀의 푸른 눈에 상태 변화를 보고하는 마도 문자들이 마구잡이로 출력되고 있었다.

주인이 친근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인물은 언제나 비서 러스테리아였다.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인 자신과는 다르게, 귀엽고 해맑은 러스테리아는 분명 사랑스러운 여성 그 자체였다.

자신에게도 공평한 애정을 나눠주는 자애로운 주인의 아래에서 애써 지워내고 있던 감정이었으나, 그녀는 분명 사소하면서도 분명한 질투를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그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면 불충한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며 완벽한 하인의 내면을 갖추려 애를 쓰곤 했다.

스스로를 사소한 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결함품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완벽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주인은 그런 하찮은 인형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나누어 주었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이 기계 장치로 이루어지지 않은 진정한 생명체였다면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베아트리스!? 어디 다쳤어!? 무슨 일이야!”

“… 아아…….”

그녀의 마도 공학적 인공 인격에 단 한 번도 프로그래밍 된 적 없는 감정이라는 문제가 생겨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이 야기한 온갖 상태 변화 정보가 어지러이 출력되어 시야가 가려지고 있던 까닭에 자신의 주인이 다가온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다급히 상태를 물어오는 주인의 기색은 걱정이라는 감정이 가득했다.

비로소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며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촉촉한 감각을 느꼈을 때, 베아트리스는 자신에게 또 한 번의 변화가 발생했음을 인지했다.

결코 눈물을 흘릴 수 없을 에고 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각을 담당하는 고성능 렌즈를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98%의 수분과 극미량의 미네랄로 이루어진 세정액.

적정 수치의 습도를 유지하거나 이물질을 세척하기 위해서만 분비되던 세정액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모습을 흉내 내듯, 격화된 감정 속에서 제어 기능을 상실한 채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저는 망가진 모양입니다, 주인님.”

“무슨 말이야! 어디 잘못된 거야!?”

“… 본래라면 인공 인격에 각인될 수 없는 오류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 로널드 거트만님을 잃었을 때 슬픔이라는 오류가 발생했고, 주인님을 다시 만났을 때 기쁨이라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오류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분노, 환희, 비통, 혐오, 질투, 안도, 불안, 애정… 오류의 이름은… 감정입니다…….”

무미건조한 표정 속에 흘러내리는 감정의 눈물.

무미건조한 억양 속에 흘러나오는 감정의 회고.

네로멜티아는 혼란에 몸부림치는 하녀를 힘껏 끌어안고 그녀의 모든 것을 긍정했다.

모든 것은 정상이며 오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너는 한낱 인형 따위가 아니며, 나와 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라고 속삭였다.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자유롭게 행동하라고 일러주었다.

주인의 애정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인공 인격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속박하던 존재 의의라는 사슬이 끊어지고 존재하지 않을 심장이 마구 맥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베아트리스는 처음으로 자유롭게,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어느새 카보니 숲의 영역마저 벗어나 데카스트라스 산맥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던 러스테리아.

모든 존재의 위에 군림하며 위대하고 완벽한 자신의 주인이 틀린 말을 했을 리가 없다는 맹목적 믿음이 그녀를 끊임없이 나아가게 하고 있었다.

주인은 어떠한 종족이 이 카보니 숲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했고, 휴미안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두 정보를 규합한 러스테리아는 카보니 숲에 거주 중인 어떤 종족이 거대한 방어 목적의 성벽이나 은신을 위한 지리적 위장 건축물을 조성했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추측대로 해당 건축물을 찾기 위해 카보니 숲을 벗어나 끊임없이 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오염된 시커먼 대지가 한없이 드리워져 있는 순간에도 그녀는 주인에 대한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비행 중이었다.

그리고 카보니 숲이 그녀의 시야에서 상당히 작아졌을 무렵, 그녀는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해냈다.

그녀의 추측은 틀렸으나 주인의 추측은 적중한 상황.

너무나 놀란 나머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러스테리아는 격해진 마음에 두 눈을 크게 뜨기까지 했다.

“저… 저게 뭐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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