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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44화 (44/216)

〈 44화 〉 카보니 숲

* * *

이미 생명을 잃고 말라버린 고목들만이 무성한 데카스트라스 산맥.

깊고 무성한 숲이 끝없이 펼쳐진 데카스트라스 산맥이라면 동식물들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현재 일행이 도착한 지역 역시 살아있는 것은 풀 한 포기 없었다.

드높은 데카스트라스 산맥 일대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는 산맥 위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주변 일대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흐으으… 여기도 살아있는 나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네요…….”

“이래서야 어쩌다 살아있는 나무를 찾아낼 수 있더라도 베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보호해야 할 상황일 듯하네요.”

사실 죽음이 만연한 불모지가 되어버린 테라리스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동식물을 키우고 세상을 정화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목재를 구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쓸만한 나무를 자르겠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이렇게 비교해서 보면 모순된 이야기이지만, 데카스트라스 산맥 같은 숲이 우거진 산림은 아직 나무가 많이 살아있을 줄 알았기에 생각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녀들이 딛고 있는 지역은 적어도 살아있는 것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주변을 살피며 깊게 생각에 빠졌던 네로멜티아는 문득 옆에 자리한 큰 고목을 발로 살짝 차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은 네로멜티아는 조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뭔가 느끼는 거 없어?”

네로멜티아의 질문에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자 네로멜티아는 고목을 한 번 더 찼는데, 이번에는 더욱 세게 발길질을 했다.

강하게 가해진 충격에 고목이 꼭대기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하며 잔가지끼리 비벼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하! 나무가 튼튼해요!”

“그렇군요. 오염되어 말라비틀어진 고목이라면 바스러지거나 부러져버렸겠지요. 이 나무는 적어도 죽었을 뿐이지 오염이 심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 거기다가 휘청댈지언정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질기지. 아직 수분을 머금고 있다는 이야기야.”

“…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라는 뜻이네요.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이미 죽은 나무를 확인해 본 네로멜티아의 행동에서 희망이 피어났다.

사실 그녀 역시 고목을 조사해볼 생각을 바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목의 밑동 한 편에 푸르스름한 흔적을 발견했기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다.

이미 말라비틀어져 죽은 것이었으나, 그것은 분명 이끼의 흔적이었다.

이끼가 있었다는 건 나무에 수분이 있었다는 의미였고, 나무에 수분이 있었다는 건 나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데카스트라스 산맥을 타고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자. 숲이 더 많이 우거진 지역이라면 아직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빠른 비행으로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줄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그에 따라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기세는 더욱 광활해졌고 더욱 드높아졌다.

점점 고도를 높여서 비행할 수밖에 없었고, 탐색할 면적 역시 확장되어 비행 속도 역시 점점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오염도 수치가 더 하락했습니다.”

“아까도 마왕성 인근 지역의 절반 정도라고 하지 않았어?”

“네. 이제는 3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숲이라는 것은 대기 중의 오염을 흡수하기에, 그곳의 공기는 언제나 맑고 싱그럽다.

오염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는 점점 더 깨끗한 환경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곧 살아있는 숲을 만나볼 수 있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눈에 수많은 상황 분석 정보를 띄워대며 빠르게 지역을 탐색함과 동시에 대기 오염도를 측정하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평범한 생명체들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이었고, 에고 돌이 가진 마도 공학적 시스템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표를 가장 빨리 발견한 것 역시 베아트리스였다.

“전방에 생존한 나무 발견. 침엽수로 추정됩니다.”

“안내해!”

투콰아아아앙!!!

주인의 명령을 받자마자 회로가 뜨거워질 정도로 마력을 끌어올린 베아트리스.

그녀의 후방 허공에 등을 중심으로 원형의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술식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원형의 마법진 중심에서 맹렬한 마력 기둥이 사출되며, 마치 혜성이라도 날아가는 듯 그녀의 신체가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초고속으로 속도를 높임에 따라 마치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한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투콰아아아아앙!!!

“흐… 흐아아아아…!!”

베아트리스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감에 따라 주변의 대기가 폭풍같이 휘몰아쳤고, 네로멜티아가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똑같이 속도를 높여 똑같은 충격파가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그에 따라 러스테리아는 두 번의 충격파에 연달아 노출되어 눈을 질끈 감은 채 중심을 잃고 허공에서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아야만 했다.

다행히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흐트러진 정신과 균형감각을 되찾기 위해 잠시 제자리에 멈춰서 숨을 돌려야만 했다.

강대한 마력을 가졌다고는 하나 네로멜티아나 베아트리스와는 달리 연약한 신체를 가졌던 러스테리아는 배려가 부족했던 두 사람에게 툴툴대며 뒤늦게나마 속도를 높여 그녀들을 따라갔다.

“파인트리(Pine Tree)잖아!”

“상록침엽수는 확실히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하죠. 살아남은 나무가 파인트리라는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바늘과 같은 모양의 잎은 시커먼 분진이 가득 묻어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푸른 기운을 잃지 않고 확연하게 활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네로멜티아가 부활에 성공한 이래로 처음 발견한 살아있는 나무.

이것은 몹시 기념비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파인트리잖아요! 맙소사!”

“오셨군요.”

뒤늦게 나타나 호들갑을 떨며 감동에 눈시울마저 붉어지는 러스테리아.

생명이 귀중한 세상에서 드디어 살아남은 나무를 찾아냈다는 현실에 깊은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감동은 감동이고 불만은 불만이었다.

“두 분 다 그렇게 쌩하고 가버리시니까 충격파에 휘말려서 정신을 잃을 뻔했잖아요!”

“미… 미안해….”

“…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운 소식이라 미처 러스테리아를 생각지 못하고 날아간 것을 그녀의 지적을 받고서야 인지한 두 사람은 순순히 사과를 했다.

사과를 받은 러스테리아는 별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고, 그저 방금까지 느끼고 있던 감동의 순간을 이어가려는 듯 나무의 앞에 종종걸음으로 다가섰다.

“어머… 파인트리 잎으로 차를 끓이면 그렇게 상쾌하고 청아할 수가 없는데…!”

나무의 종류나 특성을 설명해대며 정보를 나열하던 베아트리스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

문득 둘의 판이하게 다른 반응에 대해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고 느낀 네로멜티아는 그녀들 각자의 모습이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하녀복을 입었으나 몹시 사무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을 지닌 베아트리스.

정장에 바지를 입은 사무적인 복장이나 누구보다 소녀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을 지닌 러스테리아.

둘의 직책이 바뀌었다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살짝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사무적인 정장을 입고 펜대를 놀리며 날카로운 눈매로 서류를 작성하는 비서관 베아트리스.

귀엽고 아름다운 하녀복을 입고 차를 따르며 헤실헤실 웃어주는 러스테리아.

너무 잘 어울려서 현실감각이 떨어질 정도였다.

“주인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바로 눈앞에 고개를 쭈욱 내밀어오는 러스테리아의 행동에 깊이 빠져들었던 상념을 황급히 깨고 정신을 차린 네로멜티아.

육망성이 각인된 그녀의 티 없이 맑은 보랏빛 눈동자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자, 네로멜티아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하마터면 꼬옥 끌어안아 버릴 뻔했다.

“아니야! 음, 베아트리스. 이대로 쭉 가면 살아있는 숲이 나올 확률이 높겠지?”

“물론입니다. 이 근처의 오염도는 마왕성 인근 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20%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나무뿐만 아니라 곡식이나 채소를 키울 수 있을 정도에 해당합니다.”

몹시 희망적인 말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들이 처음 찾은 이 나무는 살아있는 숲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모양이었다.

지체 없이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은 현실에서 네로멜티아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나열된 정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녀 머릿속에 든 테라리스의 지도를 펼쳐 지금까지의 이동 경로와 현재 위치를 표시해보려던 중, 더욱 정확한 정보를 지니고 있을 베아트리스에게 지나가듯이 물어보았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지역은 어디지?”

네로멜티아의 질문에 베아트리스는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든 정보가 준비되어있다는 듯 즉각적으로 답을 내어놓는 그녀의 모습은 가끔 잊어버리곤 하는 그녀의 본질을 상기시켜주었다.

“현재 위치는 데카스트라스 산맥 북부, 카보니 숲(Kabony Woods)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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