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43화 (43/216)

〈 43화 〉 언제나 태양은 뜬다

* * *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강렬한 빛이 날아가며 주변 일대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찬란한 태양이 머무르는 낮의 시간에도 하늘을 뒤덮은 분진층 탓에 어둑어둑했던 세상은 밤이 되자 그나마 실낱같은 빛이라도 내어주는 별빛과 달빛이 아예 차단되어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온 세상이 시커먼 심연의 바닥과 같았고, 한 치 앞은커녕 자신의 두 손조차 바라볼 수 없는 것이 현재 테라리스의 밤이었기에 무언가를 살피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빛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네로멜티아가 만든 빛의 구슬은 주변 일대를 환하게 밝혀, 마치 태양이 뜬 것처럼 지면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현재 석재나 목재 등의 건축 자원을 구하기 위해 데카스트라스 산맥으로 향하고 있던 일행은, 뚜렷한 목표와 목적지가 있음에도 부수적 목표인 지역 탐색을 위해 진행 경로를 샅샅이 살피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실상 이미 마왕성 일대에 마력 소모가 거대한 대규모 정화 마법진을 전개하고도 침략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현실이 전이 마법을 사용해도 안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었으나, 이동하는 김에 지역 탐색도 병행하겠다는 선택으로 비행을 통해 목적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동 중에 자원이나, 무언가 정보를 캐낼 수 있는 흔적, 혹시 있을지 모를 휴미안의 거주지 따위를 발견한다면 분명 이득이 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혹여 생존자를 발견한다면 그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될 테니 최상의 결과이기도 했다.

“정말… 끔찍해요…….”

“그렇지?”

“테라리스가 멸망 직전이라는 건 사로잡은 휴미안 병사를 통해 알고 있긴 했는데, 이 정도로 참혹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어요.”

절대적인 마력의 소유자들이었던 세 사람은 평범한 이들은 제대로 발견하지도 못할 정도의 가공할 속도로 비행 중이었다.

마왕성에서 출발한 이후 크림슨 캐슬에 들러 한때의 시간을 보내기까지 했음에도, 하루에 이동한 거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먼 거리를 날아온 상황이었다.

그 먼 거리와 광활한 지역을 탐색하며 그녀들이 본 것은 그저 메마른 대지나 검게 물든 황야뿐이 아니었다.

천 년 전에 멸망했을 민가나 마을, 작은 도시 따위가 그것이 존재했다는 흔적만을 겨우 남긴 채, 을씨년스러운 폐허가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맑고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던 호수와 그 옆에 자리한 어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시커멓고 걸쭉한 오수 따위가 가득한 채워진 역겨운 늪지대만이 남았다.

토끼나 사슴 따위가 뛰어놀던 아름다운 산림은 말라 죽어 앙상한 고목만이 가득했고, 꺼멓게 썩은 흙에 난 구멍이나 고목 안에서 어린아이만 한 바퀴벌레들이 우글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며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던 광활한 평원은 영혼에 각인된 원한과 원령의 내재된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생명을 증오하는 좀비의 무리만이 가득했다.

과거 휴미안이 세운 공장에서는 공정과정에서 생성된 오물과 오수가 흘러나와 주변 일대를 뒤덮고 있었으며, 한 모금만 마셔도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소 가스가 마구 생성되어 하나의 혼탁한 운무 지역을 만들고 있었다.

지하에 굴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드는 자이언트 파이톤(Giant Python)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죽은 모양인지 움푹 꺼진 거대한 지면은 그 아래에서 스멀스멀 썩은 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미 인적이 사라져 음습한 폐허가 된 휴미안의 마을에 아직 작동하던 마도 거병 하나가 네로멜티아 일행을 목표로 인식해 포격을 가하려 했으나, 오염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잔뜩 녹슬고 부식되어 있던 신체가 약간의 움직임에도 바스러지며 포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완벽히 무너져내려 작동을 정지해 버렸다.

본래 생명의 보고라 칭해지며 사람들에게 물고기의 은혜까지 베풀었을 광활한 습지는 현재 점성이 가득한 오수만이 가득 차 있었고, 그 내부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꿈틀대며 파문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아도 정상적인 생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식량 자원은커녕 살아있는 생물조차 찾기 힘들었고, 그나마 발견한 생물들도 보기에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것뿐이었다.

이 치명적으로 오염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변모한 것으로 추정되나, 하나같이 식량은커녕 공존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끔찍한 생명체뿐이었다.

남아있는 물적 자원 역시 전무했으며, 본래 쓸만한 자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확실히 기억되는 장소들은 휴미안이 모조리 채취한 모양인지 하나같이 깨끗하게 고갈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생존자는 당연히 발견할 수 없었고, 그들의 흔적조차 발견해낼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군가 생존하기는커녕 한 시도 버티지 못한 채 쓰러져 죽어버릴 것이라는 확신마저 드니 참담한 심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주인님의 부활 시기에 맞춰 휴미안들은 매번 그랬듯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커스 화산에 도착한 이들은 비서관님의 말씀대로라면 열다섯. 사로잡은 병사에게서 가혹한 환경에 군대가 전멸하고 생존한 인원이 고작 열다섯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셨습니다만, 이 상황들을 보니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오히려 열다섯이나 살아서 아스타리스 대륙 최북단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네요. 나약한 휴미안 주제에 말이에요.”

마지막에 덧붙인 차가운 경멸의 말을 제외한다면 베아트리스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휴미안에 의해 발생한 멸망의 오염에 의해 휴미안의 군대가 전멸했다는 이야기는 자업자득이며 통쾌하기까지 했으나, 높은 수준의 마도 기술로 무장한 휴미안들도 버텨내지 못한 환경에서 다른 생존자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기에 심경은 참담함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 그래도! 주인님은 생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오셨잖아요! 저를 만나셨고, 크로포드님과 데모니안 백성들도 만나셨고, 아티스님과 고블린들도 만나셨어요! 그리고 베아트리스님도 만나셨고, 크림슨 캐슬에서 멀쩡히 잘 지내고 계시던 카디스텔라님과 언데드들도 만나셨어요! 분명 각자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너무 실망하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러스테리아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에는 반짝이는 희망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몹시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말은 단지 위로에서 끝나지 않았고, 사실만을 담고 있었기에 더욱 강한 힘이 있었다.

이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그간 만나온 생존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강하고 약하고는 중요하지 않았고, 강자는 강자의 방식대로 약자는 약자의 방식대로 환경을 이겨낸 채 꿋꿋이 살아남아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의 말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러스테리아의 눈빛에는 어두운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결코 자신이 내어놓은 말과 다르게 생각하며 현실을 비관하고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깊고 어두운 수렁과 같은 상념에 사로잡혀 생기를 잃은 네로멜티아의 눈을 보았기 때문으로 보였다.

따뜻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활기차게 위로의 말을 건네오는 러스테리아의 눈빛 깊은 곳에는 불안감이 숨겨져 있었다.

소중한 주인의 안위를 걱정하며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으나, 주인이 그것을 눈치채고 근심할까 염려하여 애써 감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괜한 감정으로 소중한 이를 걱정하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 네로멜티아는 고개를 흔들어 질척대는 상념을 애써 털어버렸다.

“드디어 데카스트라스 산맥이 보이네. 우선 산맥 위에 착지해서 잠시 쉬었다 가자.”

드높은 고도(高?)를 자랑하는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기세는 그 규모만 따지고 보아도 장관이었다.

아스타리스 대륙의 동부 해역인 칼라바스 해(Kalabas Ocean)와 마주한 채 북부지역부터 남부지역까지 길게 이어진 데카스트라스 산맥.

그 길고 광활한 산맥 중에서도 본격적으로 산세가 높아지며 가장 드높은 고도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지역은, 산맥의 중앙이자 아스타리스 대륙의 중동부에 위치한 헤븐리 필러(Heavenly Pillar)였다.

아스타리스 최북단인 마왕성에서 날아왔으니, 현재 그녀들이 도착한 장소는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끝자락이며 본격적으로 산세가 시작되는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스타리스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위용은 가장 끝자락이라 할지라도 주변 일대의 모든 지형을 압도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웅장한 산맥의 위에 안착한 네로멜티아 일행은 새벽이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데카스트라스 산맥의 동쪽은 곧바로 바다였다.

바다의 여신 ‘칼라시아(Kalasia)’의 이름을 따서 지은, 테라리스에서 가장 깊고 광활한 바다 칼라바스 해.

데카스트라스 산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일출의 빛은, 산맥의 위에 서자 비로소 눈앞에 펼쳐졌다.

오염된 대기의 분진층에 의해 그 빛은 확연하지 않았고 일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 붉은 빛은 따뜻함과 화사함이 있었다.

그 모습에 네로멜티아는 마음 깊은 곳을 간질어 오는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마음 깊이 바라마지않으며 소망을 품게 만드는 애절한 감각.

감상에 젖은 네로멜티아는 생각했다.

언젠가 저 찬란하게 빛나는 가려진 아름다움을 되찾고 싶다고.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