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 (3)
* * *
금빛이 찬연한 샹들리에와 식기들.
벽을 장식하고 있는 태피스트리와 몰딩조차 금실의 자수와 도금으로 인해 이 고급스러운 황금빛 물결에서 톡톡하게 한몫을 하고 있었다.
크림슨 캐슬의 연회장은 성이 가진 살벌한 이름과는 다르게 몹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인들이 스켈레톤이나 고스트들뿐이라 미안해. 그나마 시체 냄새는 나지 않게 하려고 좀비 하인들은 들이지 않았는데, 얘네들로도 분위기가 좀 칙칙하긴 하네.”
“… 전에 있던 뱀파이어 하인분들은 다들 어디 가신 건가요?”
“천 년이나 성에 갇혀서 살았잖아. 퍼스트 블러드인 나나 고위급 뱀파이어들은 상관없지만, 나머지 뱀파이어들은 피가 없으면 신체를 유지할 수 없어서 모두 긴 잠에 빠졌어. 고위급이라 깨어있는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그 녀석들에게 하인 임무를 맡기기도 좀 그렇고. 결계가 깨졌으니 이제 피를 구할 방법을 모색해서 모두를 깨워야지.”
천 년에 달하는 속박의 시간은 영원한 수명을 가진 망자들에게도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러스테리아의 질문에 카디스텔라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이야기했으나, 그녀 역시 잠든 권속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었다.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평소에는 과묵함을 지키던 베아트리스가 그녀답지 않은 농을 던져왔다.
“오만한 시조 흡혈귀이시니 그러진 않으시겠지만, 잠든 이들은 굳이 안쓰러워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눈 감았다가 떠보니 천 년이 지나 있었다는 정도의 감상일 거예요. 기지개나 켜면서 부스스 일어나면 정신 들게 찬물이나 끼얹어 주시죠.”
“그런 거야?”
“경험담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베아트리스 역시 마왕성의 지하 연구실에서 천 년을 잠들어있다가 네로멜티아가 깨워서 일어난 케이스였다.
그런 자신의 경우를 소재 삼아 농으로 만든 베아트리스의 과감함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녀에게도 그리 좋은 과거는 아니었을 것이기에 더더욱.
오만한 시조 흡혈귀라는 말에 발끈하기는커녕 베아트리스의 말에 솔깃해서 진실인지 되물어오는 카디스텔라의 모습은 그녀가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았다.
“배스트 샌드에서 자생하는 향신료로 숙성시킨 비프 스테이크입니다.”
“프라이멀 우즈에서 채취한 요정과(???)를 곁들인 샐러드입니다.”
“천오백 년 전 사망한 제빵의 명장 ‘브래들리 브래드’가 구운 바게트와 크로와상입니다.”
여러 가지 요리가 한 번에 나오며, 그 요리에 관한 설명들이 끊임없이 나열되었다.
음식들의 종류를 보건대 정해진 순서대로 내어지는 코스 요리임이 틀림없었으나, 격식을 잘 따지는 카디스텔라의 성격과는 다르게 모든 요리가 한순간에 내어졌다.
물론 음식들은 하나같이 따끈따끈했고 진한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갓 조리된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기에 무엇 하나 먹음직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고, 의식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네로멜티아 일행으로서는 그리 신경 쓰일 일은 아니었다.
단지 카디스텔라의 연회장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카디스텔라는 멋쩍은 미소를 띠고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사실… 결계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식재료도 없어서 내가 디멘셔널 스토리지에 보관해놨던 요리들을 내놓은 거야. 주인이 코스 순서마다 일어나서 일일이 요리를 꺼내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미리 꺼내두고 순서대로 내오자니 요리가 식어버리니까…….”
“훌륭한 만찬 대접해줘서 고마워. 내가 보관하던 요리들은 그동안 여기저기 챙겨주다 보니 많이 줄어서 못 먹고 있었거든. 잘 먹을게.”
“정말 맛있어 보여요! 이게 그 크림슨 캐슬이 자랑하는 유령 제빵사 브래들리 브래드의 빵인가요!? 갓 구운 빵 냄새가 너무 고소하고 향기로워요! 잘 먹겠습니다!”
“조리가 끝나자마자 시간이 흐르지 않는 디멘셔널 스토리지에 보관되었던 음식. 갓 요리한 음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훌륭하네요.”
다행히 손님들은 예의에 어긋나는 식사 순서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놓인 카디스텔라는 미리 준비되어있던 크림슨 캐슬의 특산 와인을 지시했고, 기분 좋게 축배를 들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인이 만든 고소하고 달콤한 빵을 누구보다 많이 먹으며 양 볼이 빵빵해진 채 행복해하는 러스테리아.
누구보다 철저한 식사 예법을 구사하며 우아하게 요리를 한 종류씩 맛보는 베아트리스.
술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강대한 신체를 가졌음에도 분위기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네로멜티아와 카디스텔라.
언데드 하인들을 보호하고자 두꺼운 커튼으로 철저히 가려진 창문.
그 틈으로 실낱같이 들이치던 햇볕이 점차 가늘어지며 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행복한 재회의 만찬은 찬란한 태양이 지고 두 개의 달이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후우…….”
연회장의 발코니로 나온 네로멜티아와 카디스텔라.
카디스텔라는 별은커녕 그 거대한 두 개의 달도 보이지 않을 만큼 오염된, 분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한껏 떠들고 즐기다가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짓는 환기의 한숨.
네로멜티아는 발코니를 중심으로 정화 결계를 펼쳐 외부의 오염된 공기를 차단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대기의 오염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였으나, 호의라는 것에는 감사함을 느꼈다.
적어도 들고 있던 와인 잔에 먼지가 들어갈 일은 없으니 무용(無?)한 것도 아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깨끗하게 정화되어 폐를 타고 흘러들었다.
카디스텔라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에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행여 휴미안이 숨어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지난 천 년 동안 창문 한 번 열어본 적도 없었다.
자신이 외부에 노출하는 사소한 정보 하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으니, 봉인 결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철저히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고 살아왔었다.
그 기나긴 유폐(??)의 나날이 마왕의 방문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성을 둘러싼 결계가 요란하게 뒤흔들릴 때는 드디어 휴미안들이 자신들을 섬멸하고자 공격을 시작한 것인가 싶어 창가로 달려갔었다.
그러나 결계를 부수고 있던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에고 돌 메이드 베아트리스였다.
그리고 또 다른 익숙한 존재인 서큐버스 비서관 러스테리아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주인이자 자신의 소중한 벗인 마왕 네로멜티아 또한 보였다.
천 년이나 기다렸던 사랑하는 이의 방문으로 모든 불행의 나날이 종막을 맞이한 것이었다.
카디스텔라는 자신이 숨죽여 죽은 듯 기다렸던 기나긴 세월은 씻은 듯 잊었고, 저 증오스러운 결계를 부수고 당당히 자신을 맞이하러 온 네로멜티아에게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희망, 환희, 친애, 열락, 경애, 순정, 그 무엇으로도 감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저마다의 색을 내며 휘몰아쳐 하나의 격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애정을 담아 자신을 바라봐주는 달콤한 눈빛.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긍정해주는 사랑스러운 속삭임.
선혈의 여제라 불리는 자신이 유일하게 기대어 의지하고 싶어 하는 든든한 손길.
카디스텔라는 네로멜티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넌 나의 유일한 관이고 포근한 밤의 장막이야.”
“그거 좋은 말이지…?”
천 년 만에 느껴보는 애정이 가득한 품속.
보드랍고 따뜻한 가슴에 고개를 파묻으면 느껴지는 달콤한 체취.
자신의 어깨를 감싸오는 손길에서 느껴지는 안락함.
“뱀파이어가 하는 말 중에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이 달리 있겠어?”
“그것도 그렇네.”
다소 부끄러움을 느낀 카디스텔라는 네로멜티아의 품에 자신의 고개를 더욱 깊이 파묻고 새침하게 이야기했다.
소중한 벗이며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말은 애써 삼켰다.
고개를 파묻은 젖가슴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여체의 향기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카디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기 시작했고,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숨결을 흘리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번뜩이기 시작했고, 붉은빛의 촉촉한 혀는 당장이라도 맛을 보고 싶다는 듯 애달프게 내밀어졌다.
진홍빛의 눈동자에 음산한 안광이 타오르고, 송곳니의 끝이 붉게 물들어 원초적 욕망이 끓어오름을 알리고 있었다.
피의 갈증을 느꼈다.
“해도 괜찮아, 카디스. 늘 그랬듯이.”
콱!!
네로멜티아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디스텔라의 송곳니는 사랑하는 이의 젖가슴에 사정없이 박혔다.
다소 고통을 느끼는지 네로멜티아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그럼에도 자신의 가슴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피를 마시는 흡혈귀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어주며 애정을 가지고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에서 일어선 시조 흡혈귀, 퍼스트 블러드.
결코 생존을 위해 피를 빠는 것이 아니었다.
뱀파이어들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피의 저주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것이 그녀였다.
현재의 흡혈 행위는 순전히 그녀의 욕망에 의해 행해진 일이었다.
그러나 흡혈귀에게 피라는 것은 언제나 달콤하고 감미로운 것이었기에 흡혈귀인 이상 피를 즐기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사랑하는 이의 피라면 비교할 바가 없는 압도적인 쾌락이었다.
꿀꺽 꿀꺽 꿀꺽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향기로운 혈액에서 강렬한 루이나가 가득 느껴졌다.
피에서 생명과 힘을 찾는 뱀파이어로서 받는 본능적인 감각 정도가 아니었고, 네로멜티아의 피에는 실제로 강대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이보다 훌륭한 만찬은 존재할 리 없었다.
그러나 다 마실 수는 없었다.
기꺼이 자신의 피를 허락해 준 소중한 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게걸스럽게 피를 탐하는 자신의 본능을 힘껏 억누른 카디스텔라는 어느새 타오르던 안광과 송곳니를 붉게 물들이던 혈기가 사라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단지 아쉬운 듯, 네로멜티아의 가슴을 핥으며 남은 피를 깨끗이 맛보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송곳니가 뽑히자마자 상처가 깨끗이 아물어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가슴과 아쉬운 듯 뻗어진 붉은 혀 사이에, 끈적한 타액으로 이루어진 실이 늘어졌다.
“가슴이 없는 분은 부끄러움도 없는 건가요? 불쾌하군요.”
“…!!! 뭐야아아아아!!!!?”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온 도발적인 말.
명백히 카디스텔라를 겨냥한 모욕적 언사였기에 카디스텔라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려 발언의 당사자를 찾았다.
연회장에서 발코니로 유유히 걸어 나오며 카디스텔라의 약점을 자극한 이는 베아트리스.
보아하니 러스테리아는 아직도 브래들리 브래드의 빵에 심취해, 디저트로 준비된 케이크나 도넛마저 먹어치우는 중이었기에 현재의 충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감히 나에게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다니!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깡통 메이드!?”
“가슴이 없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슴이 작은 분도 아니고 없는 분이요.”
“야아아아아아!!! 너 고철 되고 싶냐!!!!!”
사실 상반신이 빈약한 카디스텔라는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을 가슴도 상당히 작았다.
바짝 마른 남성의 가슴을 빗대어 가슴이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녀 역시 가슴이 없는 것이었다.
철저히 마른 가슴.
실낱같은 굴곡조차 허락되지 않은 절대적인 평면.
“모루.”
“야아아아아아!!!!!”
“바람 없는 겨울에 얼어붙은 빙판.”
“…!!!!!”
“무유(無?).”
카디스텔라는 이미 말을 잇지 못하고, 호흡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던 것도 잠시였을 뿐이고, 분노가 과해지면 사고가 정지하며 숨이 넘어간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상황에 베아트리스는 쐐기를 박듯이, 자신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무유’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야 말았다.
자신의 탐스러운 젖가슴을 주무르며 과시함과 동시에, 카디스텔라가 가진 유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빈곤한 흉부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띠는 모욕적인 행동.
카디스텔라의 진홍색 눈동자에 동공이 수축하며 살기가 넘실대는 섬뜩한 안광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톱이 붉게 물든 채 길게 늘어났고, 닿는 것은 모조리 찢어버리겠다는 듯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위협적으로 드러난 송곳니에도 혈기가 돌아 그 끝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은빛과 진홍빛이 공존하는 긴 머리는 타오르는 강한 마력에 요란히 나부끼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스 역시 손목의 리본 매듭을 풀어, 손목부터 어깨까지 이어져 소매를 고정해주는 끈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모든 상황 정보를 분석해 출력하는 복잡한 마도 문자가 방대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이는 그녀가 본격적인 살상 모드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현상이었다.
그 일촉즉발의 현장 속에서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난장판이로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