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40화 (40/216)

〈 40화 〉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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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같이 생기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죽은 눈을 하고서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는 카디스텔라는 그녀가 이미 애초부터 망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할 만큼 진정한 시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짚어보던 일말의 정신조차 그 위태로운 끈을 놓아버린 채, 그녀의 모든 인지 능력이 정지되었다.

“…전에 왔을 때는 이런 방이 아니었는데…….”

“시간이 천년이나 흘렀으니, 어떻게 변하더라도 이상할 시간은 아니죠. 하물며 그런 긴 시간을 한 장소에 갇혀있게 된다면, 절제를 벗어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천 년 전, 러스테리아가 보았던 카디스텔라의 방은 이렇게 욕망과 망상이 들끓는 장소가 아니었다.

고풍스러운 장식들과 예술품들이 품격을 높여주던, 말 그대로 군주에게 어울리는 방이었다.

다시 한번 문제의 천장화를 올려다본 러스테리아.

적나라한 나신으로 농염한 색기를 두른 채, 상대를 유혹하는 네로멜티아가 그려진 망상의 결정체.

나름의 이지적인 판단을 내리는 베아트리스의 말에 러스테리아는 별다른 부정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주인과 천 년이나 떨어져 지내는데,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방이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 그 방을 꾸며대고 뒹굴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바르커스 화산 근방을 떠돌며 천 년을 지내온 러스테리아는 흙바닥에 주인의 형상을 그리는 일을 곧잘 했었기에 더더욱 마음에 와닿는 예상이었다.

“생각을 못 했어……. 내 방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해서 연회장 같은 곳으로 데려갔어야 했는데……. 너무 반가워서 내 방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도 못 하고 그냥 데려왔어…….”

안면을 양손으로 감싼 채, 이 비극적 현실에 진저리를 치며 우는 목소리로 끙끙대고 이야기하는 카디스텔라.

수치심에 잠겨 몸부림치는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기만 하던 네로멜티아는 무언가 결심한 듯 카디스텔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스스로의 안면을 가리고 있는 카디스텔라의 두 손을 잡아 내린 네로멜티아는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혼이 빠진 듯 주저앉아 있던 카디스텔라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라 낯을 붉게 물들였고, 네로멜티아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나도 네가 그리웠어. 서로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괜찮아.”

순간 마음속 깊이 감춰두었던 그리움과 슬픔이 밀려 나온 탓인지, 카디스텔라는 그 진홍빛으로 빛나는 눈에서 조금씩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카디스텔라의 떨려오는 신체를 보듬어 주던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등을 따뜻하게 다독이며 달래주었다.

카디스텔라의 귓가에 그녀가 그토록 기다려 마지않았던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카디스텔라의 헝클어진 감정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네로멜티아는 비로소 천년 간 카디스텔라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네로멜티아가 사망했던 날, 휴미안의 공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직은 감정이 다 마르지 않아 촉촉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카디스텔라.

“나는 아직도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해. 헤모니겐트에 큰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던 날.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마력의 파문을 감지하고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헤모니겐트로 이동하려던 중, 크림슨 캐슬 전체를 뒤덮는 신앙 봉인 결계가 생성됐어.”

평범한 생명체는 헤아릴 수도 없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카디스텔라는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 먼 곳을 응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언급한 마력의 파동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진지함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계를 찢고 나가려 했지만… 그 결계는 수백에 달하는 휴미안 성직자들이 디바나(Divana)를 끌어모아 만든 것이었고… 뭔지 모를 성물을 사용하는 모습도 발견됐어. 시간을 들이면 언젠가는 찢어낼 수 있었겠지만… 그 전에 네로멜티아 네 마력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어.”

마왕군에서 명실공히 이인자의 자리를 다투던 강대한 존재인 카디스텔라.

그녀가 네로멜티아에게 합류했더라면 그날의 전쟁은 헤모니겐트의 승리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휴미안들은 그녀가 전쟁에 가세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발목을 철저히 붙들어 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 중요한 전략이었기에 언데드에게 상극의 힘을 지닌 성력(?力) ‘디바나’를 이용해 그녀를 막아선 것이고, 대다수의 성직자를 모조리 크림슨 캐슬에 투입했기에 헤모니겐트를 공격했던 군대는 회복이나 가호가 필요 없는 마도거병이나 마법 무기를 이용한 포격 병대 일색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녀 역시 섬멸할 계획이었다면 봉인 결계를 사용했을 리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예상의 추는 더더욱 확고하게 기울었다.

“너의 죽음을 느낀 나는 오드볼그의 성물을 사용하는 성직자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결계를 부수려고 쏟아내던 힘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어. 결계를 부수고 밖으로 나선다면 휴미안의 다음 목표는 나의 백성들이 될 테니까. 내 예상대로 결계가 유지되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고… 결계가 완성되고 나서부터는 외부와의 연락은커녕 실낱같은 마력조차 감지할 수 없이 철저히 고립된 환경이 되어버려서 더는 나설 수 없게 됐어.”

아무리 이종족 노예들을 좋아하고 약탈을 즐기는 휴미안이라 할지라도 언데드가 득실거리는 고성을 애써 공격하기에는 꺼림칙했던 모양이었다.

휴미안들의 망자에 대한 공포는 익히 유명한 것이었고, 크림슨 캐슬에 그 어떤 값진 보물이 잠들어있다 하더라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였다.

언데드는 노예로 부리기도 힘들고 생포하기는 더더욱 힘든 존재들이었다.

밤의 귀족이라고도 불리는 뱀파이어들은 그들이 지닌 극상의 미색 덕에 밤의 보석이라 달리 칭해질 정도로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밤마다 마음 편히 잠드는 일은 포기해야만 했다.

무력으로 그들을 학살하고 탄압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단 하나의 뱀파이어만 살아있더라도 권력자들은 매일 밤 죽음의 공포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자신들이 펼쳐놓은 결계 안에서 나오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면, 굳이 그것을 건드릴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카디스텔라의 말에 따라 그 예상은 거의 사실로 확정되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결계 밖에 진을 치고 망자들의 성에 대한 경계를 수백 년 지속해왔다고 했다.

지하에 굴을 파서 나갈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 결계는 애초에 구 형태로 생성되어 지하라 할지라도 빈틈이 전혀 없는 구조였다고 했다.

팔백 년 정도가 흐른 뒤로부터는 성의 주변에 진을 친 휴미안들이 깨끗하게 사라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결계를 부수면 휴미안들이 그 사실을 감지해버릴 수도 있어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고 했다.

성직자나 성물의 지원 없이 홀로 존재하는 봉인 결계 따위는 우습게 찢어발길 힘이 있었음에도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저 마왕이 부활해서 자신들을 찾아와 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천 년을 보냈다고 했다.

마왕이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을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부활에 연이어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런 악조건 속에서 자신들이 세상에 나와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참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그래, 잘했어. 나는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는 몸이지만… 너는 소멸하면 그것으로 끝이니까……. 네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 사실 휴미안이 승리했다면 헤모니겐트의 생존한 이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어…….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설 수 없었어……. 내가 결계 밖으로 나섰다간 내 백성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백성들을 지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미안해… 미안해…….”

네로멜티아는 감정이 격해지며 다시금 흐느끼기 시작한 카디스텔라를 다시 한번 보듬어 주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더욱 힘껏 그녀를 안아주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을 외면해야만 했던 그녀가 얼마나 많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켜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 깊숙이 사무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한동안 그녀를 품에 안아주고 다독여주던 네로멜티아는 자신이 부활하자마자 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생존자들은 크로포드의 통솔하에 잘 지내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들의 창고에는 항상 식량이 쌓여 있었고, 해진 옷은 없었으며, 비누나 술 또는 치즈 등의 기호 물품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블린들 또한 하수도에서 거주하며 먹고 마시는 것이 모자랐을지언정 단 한 번의 습격도 받은 일 없이 무사했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카디스텔라는 네로멜티아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한결 편해진 모습을 보였다.

흐느낌은 잦아들었고 은은하게 화색이 도는 느낌도 보였다.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모습이 전혀 남 일 같지 않았다.

크로포드와 재회한 이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도하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자신에게 그간 생존자들이 얼마나 안전하고 무탈하게 생활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크로포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그의 모습이 현재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네로멜티아는 언데드들을 지키기 위해 성에 은거한 카디스텔라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언데드들도 헤모니겐트 백성들의 일부이니 그들을 지켜준 카디스텔라에게 감사를 해야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네로멜티아는 카디스텔라가 그녀의 아름다운 낯에 다시 미소를 찾을 때까지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쉬지 않고 들려주었다.

크로포드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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